우리나라 사회복지의 역사에서 지역이 실질적인 중요성을 띠게 된 것은 불과 최근의 일이다. 굳이 시점을 정하자면 2003년이 그 분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회복지서비스의 실행에 관한 기본법의 성격을 가진 사회복지사업법에서 사회복지사업의 실행에 따른 지역의 책임과 권한을 강조하는 몇가지 근원적인 변화들(예를 들어, 지역사회복지계획의 수립, 지역사회복지협의체의 설치와 운용 등)을 포함하는 개정이 이루어졌고, 보다 실질적으로는 사회복지의 재정분권화가 이 시점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들은 한결같이 지역사회를 강조하는 의도를 담고 있다.

사회복지 분야에서는 이전부터도 지역사회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가 있어왔다. 그럼에도 그것은 구조적 합일성을 수반하지 않은 피상적인 주장에 불과한 것에 그쳤다. 전국가적인 빈곤이 문제였던 시기에 지역 자치적 사회복지 구조를 주창하는 것은 별무 소용이었던 것이다. 1950년대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발생한 대규모 요구호자 수요에 대처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 후 1960-70년대에 진행되었던 도시산업사회화로의 급격한 이행 과정에서 발생했던 노동 관련 수요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지역 차원보다는 전국가적 차원의 조직화가 보다 긴요했었다. 이것이 중앙집중식 거대 관료제의 구축을 초래하게 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지역성 혹은 지역사회는 소외되거나 오히려 배제되어야 할 대상으로까지도 인식되어졌다. 이제껏 사회복지의 전달체계에서 지역은 단지 행정구역상 혹은 명목상의 존재에 불과한 것이 되어왔었다.

2000년대에 이르러 우리 사회복지의 지형은 급격히 바뀌게 된다. 절대 빈곤의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와졌다는 것과 함께, 한편으로는 개별화된 인간 변화를 의도하는 휴먼서비스의 특성이 강조되는 사회복지적 문제의 특성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빈곤과의 연관 속성은 사회복지 문제 어디에나 잔존하는 것이지만, 그것의 해결을 위한 접근만큼은 반드시 현금 자원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게 되었다는 점이다. 노숙자의 문제라든지 차상위계층의 문제 해결에서 그렇고, 아동 보육에서부터 노인 부양에 이르는 제반 문제의 해결이 모두 그렇게 연관되어 있다.

우리 사회가 절대 빈곤의 문제에서 한발짝만 벗어나게 되면, 거기에는 우리들 삶의 의미와 정체성(identity) 상실과 같은 보다 까다로운 문제들이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공적 구조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그 문제를 악화시키는데 기여해 왔다고도 평가된다. 관료제적 공적 구조는 필연적으로 소외적 구조이다. 개인들은 그러한 사회적 과정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기 어렵고, 그 결과 정체성의 혼란을 일으킨다. 비록 빈곤이나 실업과 같은 도시산업사회의 거대 문제들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공적 거대구조의 존립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모든 사회복지 문제 해결의 유일한 해결책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회심리학의 거장 피터 버거(Peter Berger)는 그의 저서 「To Empower People」에서 대규모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 우리가 구축해왔었던 거대 관료제적 정부 구조가 개인의 사적 영역을 약화시키고, 그 결과 공적 영역의 과대한 확대로 인한 병폐들을 유발한다고 보았다. 공적 거대구조(megastructure) 안에서 개인들은 소외되고, 삶의 의미와 정체성을 찾기 어려워진다. 그것은 곧 개인들의 자발성 상실을 유발해서, 다시 공적 구조에 대한 의존성을 더욱 확대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경고한다. 거대 관료제의 문제란 단순히 비효율성이나 둔감성과 같은 조직 역학적 문제들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그것과의 관계에서 영향을 받는 사람들의 삶의 본질에 대한 상실이 오히려 더 큰 해악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역설한 것이다.

버거는 현대사회에서 공적 영역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면서도, 그로 인해 사적 영역의 파괴라든지 두 영역간 단절로부터 초래될 수 있는 병폐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 이웃이나 가족, 종교, 자발적 결사체와 같은 중재 구조(mediating structure)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한 구조가 중요한 이유는 그 안에서만 개인들은 자신의 삶의 의미와 정체성을 찾아갈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직접적인 대인적 상호작용이 가능한 영역의 관계망 속에서 삶의 의미와 정체성을 획득하게 된다. 그러한 관계망의 구조를 그래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중재하는 구조로서 본 것이다. 비록 그러한 다층 구조적 사회가 소규모적 분파성과 지엽성을 초래할 위험성이 있지만, 그럼에도 개인들의 삶에 ‘어떤 정체성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좋다(any identity is better than none)'라는 공리는 인정될 수밖에 없다.

지역복지운동은 지역사회의 중재구조를 회복하기 위한 운동이다. 이것은 2000년대에 우리 사회에 주어진 시대적 과제인 지역사회에 대한 재평가 작업과도 일치한다. 지역사회는 이전부터도 앞으로도 개인들의 삶의 터전이 되는 것이다. 이 때의 지역사회(community)란 반드시 지역성(locality)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지역성에 중요한 기반을 두고는 있으나, 새롭게 출현하는 공동체들도 전통적인 지역사회의 의미를 대신할 수 있다. 지역사회의 재평가에는 그간 소외되어왔던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을 되찾자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도시산업사회의 거대 구조화의 과정에서 지역사회는 철저히 파괴되어 왔었다. 그래서 지역복지운동은 ‘지역사회를 다시 만드는(rebuilding community)’ 운동이다. 비록 완벽한 공동체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지역사회를 만든다는 것은 현대사회의 특성상 어차피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지역사회의 몇몇 특수한 사회심리학적 기능들은 앞으로 더욱 강조될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사실이다. 비록 무형적이어서 쉽사리 드러내기는 어렵겠으나, 그러한 기능들이 갖는 중요성은 현재와 미래의 우리 사회에 가히 치명적일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 없이는 우리 개인들의 삶도 피폐해 지고, 전체 사회의 목적도 상실하게 되고 마는 그런 것이다.

지역사회의 기능 회복에 대한 강조는 사회복지서비스의 지방화와 직결된다. 사회복지서비스의 지방화는 단순히 중앙정부의 기능을 지방정부로 이양하는 정부간 기능 이동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지방화의 의미에는 거대구조의 관료제적 소외로부터 시민 혹은 주민으로서의 삶을 회복시키자는 것이 담겨있다. 그런 점에서 이 시대에 지역복지운동의 의미는 지대하다. 그것은 공적 구조와 사적 구조로 단절되어 이원화된 사회 구조를 중재시키는 것이고, 현재와 미래의 우리 사회에 절실한 지역사회적 가치와 기능의 재발견으로 이끄는 것이다.

앞으로도 지역복지운동이 이루어나가야 할 과제는 산적해 있다. 그 가운데서도 운동의 목적과 정체성을 올바로 찾아나가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운동은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것인가가 곧 운동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자칫 지역복지운동의 목적이 사회복지전문가들의 목적으로 혼동될 우려도 없지 않다. 그것이 우려가 되는 것은 전문가들의 목적이 불순해서라기 보다는, 전문가적 목적이 반드시 지역사회적 목적과 일치한다고 보장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역복지운동을 이끄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지역복지운동의 사회심리학적 함의만큼은 놓치지 않아야 할 것 같다.
김영종 /경성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2007/06/01 00:00 2007/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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