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의 민영화 논리에 대한 대응
월간 복지동향/2000 :
2000/07/10 00:00
지난 몇 년 사이 사회보험과 관련하여 주목을 끄는 현상중의 하나는 사회보험제도가 담당하고 있는 기능의 전부 또는 일부를 민간부분으로 이전하자는 이른 바 '민영화' 논의가 일부 주창자들의 단순한 이슈 제기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쟁점화 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단적인 예가 아마 지난 5월 정부 규제개혁위원회에서 민간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기로 하고 구체적 실행계획을 보건복지부에 권고한 사건이 아닐까 한다.
의료보험은 우리 나라 4대 사회보험중 적정급여보장과는 괴리가 가장 커서 국가책임의 시장으로의 이전이란 논리가 적용될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으며, 또한 의료의 특성상 역선택(adverse selection) 및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등의 문제로 인해 사보험이 담당하기에는 가장 어려운 보험분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보험제도가 민영화의 대상으로서 정부의 공식적 의제, 즉 정책의제로 채택되었다는 것은 다른 사회보험에서도 민영화 관련 이슈들이 언제든지 정책의제로 부상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의 필요성이 시급함을 시사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민연금과 관련하여 제기되었거나 제기될 수 있는 민영화의 논거 및 그것이 가지는 의미를 정리해 보고, 그것이 우리 나라 노인들의 노후소득보장 및 분배에 어떤 영향들을 미칠 수 있을지 분석해 보며 그에 대한 대응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우리 나라 노후소득보장체계를 구성하는 각 요소들의 실태를 분석하고, 특히 국민연금을 포함한 각종 연금제도들이 전체 소득보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현재적 또는 잠재적 역할들을 검토해 본다. 또한 연금체계에서 사적연금의 역할확대, 곧 민영화가 어떤 논거하에서 제기되며 그것들이 실행된다고 가정할 경우 미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효과들을 분석해 보며 민영화에 대한 대안으로서 연금체계를 구성하는 각 제도간 역할관계를 정립해보고자 한다.
노후소득보장체계에 대한 실태분석 및 전망
노후소득원천은 근로소득, 공적연금, 공공부조, 사적연금, 자녀로부터의 소득이전, 자산소득 등 매우 다양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중 현재 우리나라 노인들의 노후총소득에서 거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소득원은 자녀로부터의 소득이전이라고 할 수 있다. 노인에 대한 가족부양의식의 약화에 따라 자녀로부터의 소득이전이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1990년에 노인가구소득의 약 55%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주된 소득원인 것이다. 하지만 자녀로부터의 소득이전은 점차 줄어들면서 이를 대체하는 수단으로서 다른 소득원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근로소득의 성장이 두드러졌는데 1981년 총노후소득의 약 16%에서 1990년에는 약 32%로 16%포인트나 증가한 것이다(Palacios et al, 2000). 그러면 현재 노인들의 주소득원이라고 할 수 있는 자녀로부터의 가족이전과 근로소득이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인가?
OECD 9개국 67세 노인들의 소득원천구성을 분석한 한 연구에 따르면 국가별로 그리고 소득계층별로 각 소득원이 총노후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다소 차이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현상 중의 하나는 최고소득계층을 제외하고는 주소득원이 공적연금이라는 것이다(Disney and Mira d'Ercole, 1998). 한편, 네덜란드, 스웨덴, 프랑스, 미국, 영국 등 사적연금이 준강제적으로 실시되어 상당 정도 보편화되어 있거나 또는 사적연금의 역사가 오래되고 발달된 국가의 경우 사적연금 또한 공적연금과 더불어 주요 노후소득원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다른 선진국가의 경험을 통해 추론해 볼 때 앞으로도 자녀로부터의 소득이전 및 근로소득이 우리 나라 노인들의 주소득원의 자리를 유지할 것 같지는 않다. 1988년에 실시된 국민연금, 1994년에 실시된 개인연금이 점차 성숙해지고, 퇴직금의 기업연금으로의 전환이 확산됨에 따라 연금소득이 자녀로부터의 소득이전을 빠르게 대체하여 대부분의 소득계층에 있어서 연금이 가장 주요한 소득원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노인들중 상대적으로 젊은 60대 계층의 상당수가 현재 근로소득을 획득하고 있지만 점차 노후소득원으로서 중요성이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부터 삼사십년 이후인 2030년 무렵에 가장 보편적이고 주된 노후소득원은 연금제도, 즉, 국민연금, 퇴직금(기업연금), 개인연금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연금체계를 구성하는 각 제도들이 노후소득구성에서 어느 정도의 역할을 담당할지는 매우 불확실하다. 그 이유는 각 제도들이 도입될 때 상호간의 역할분담에 대한 면밀한 검토없이 분립적으로 도입되어 발전되어 왔기 때문이다.
현재 국민연금은 40년 가입 평균소득자에게 과거소득의 60%에 해당하는 급여를 지급하도록 되어있다. 퇴직금제도는 직장을 이동할 때마다 일시금으로 지급되고 있어 그중 얼마가 노후소득원으로서 사용될지 알 수 없지만 노후에 이르기 전까지 소비하지 않고 전액 투자하는 것으로 가정한다면 법정최저급여만 하더라도 최소한 과거소득의 약 30%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연금은 개인의 욕구 및 부담능력에 따라 급여수준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과거소득의 얼마를 대체할지는 예측할 수 없다.
개인연금을 제외하고 국민연금과 퇴직금만을 고려하더라도 산술적으로 두 제도의 합산급여수준은 평균소득자에 대해 약 과거소득의 90%를 보장해 줄 수 있음으로써 매우 풍족한 노후생활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이 실제로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국민연금제도가 장기재정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보험료율이 장기적으로 지금의 약 두 배에 해당하는 수준인 약 17-18%까지 인상되어야 하는데 현재 8.3%이상을 부담하는 퇴직금제도가 존속하는 한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급여 및 부담 측면에서 두 제도간 급여수준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적연금 민영화의 논거
국민연금제도의 민영화는 단적으로 말하면 노후소득보장에 대한 국가의 책임 내지 역할을 축소하는 대신 개인과 시장의 역할 증대를 강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현행 국민연금제도의 전부 또는 일부를 민간에서 운영하는 개인연금 또는 기업연금으로 대체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공적연금을 민영화 하자는 주창자들의 논거는 매우 다양하고 상호 연관되어 있지만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이데올로기에 기반하고 있는 것으로서 공적연금을 사적연금을 통해 대체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을 축소함으로써 개인 선택의 자유를 증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경제적 논거로서 공적연금의 민영화는 국가재정부담 완화, 노동시장 왜곡현상의 완화, 근로의욕의 촉진, 저축 및 투자 증대, 자본시장발달을 통한 경제성장 등 사회경제적으로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첫 번 째 논거는 보수주의자들이 신봉하는 사회적 가치 및 이들의 국가에 대한 관점을 반영한 다. 이들에게 있어서는 누군가로부터 간섭과 강제를 받지 않을 의미로서의 소극적 자유, 경제활동의 원천이 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불평등, 시장에서의 경쟁 등이 주요 사회가치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복지에 대한 국가개입은 개인의 자유를 축소하며, 복지혜택을 둘러싼 사회집단간 분열을 조장하고 자원을 낭비하며, 경제적 비효율을 초래하는 것으로 인식된다(George and Wilding, 1976). 반면, 사회복지지지자들은 사회통합, 소득재분배, 무엇을 할 수 있는 의미로서의 적극적 자유, 평등 등의 가치를 주요 사회가치로 받아들이며 복지에 대한 국가개입을 무엇을 할 수 있는 의미로서의 적극적 자유를 신장하며, 시장에서 초래된 불평등한 소득분배를 완화하고, 집단간 사회통합을 증진시키는 것으로 바라본다. 공적연금의 민영화가 이러한 보수주의적 이데올로기에 근거하는 한 이는 사회가치 또는 관점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응은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하지만 두 번째 논거는 첫 번째 논거와는 달리 연금의 실제 기능과 관련된 것이고 이데올로기에 관계없이 민영화를 통해 성취할 수 있다고 하는 사회경제적 효과 자체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응은 실질적, 실증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즉, 연금제도의 역할로서 노후소득보장외에 경제적 기능을 추가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공적연금의 민영화를 통해 달성된다는 사회경제적 효과들이 과연 객관적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등을 분석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먼저 연금제도의 역할과 관련된 것으로서 저축 및 투자증대와 같은 경제적 기능은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바람직한 것일지라도 이것이 연금을 통해 추진되어야 할 정당성을 찾기 어렵다. 연금제도가 노후소득보장외에 경제성장 촉진이란 기능까지 담당한다면 노후소득보장 목적이 소홀히 다루어 질 가능성이 크고 또한 경제성장 촉진은 연금제도를 통해 수행되기보다는 금융·재정정책 또는 산업정책을 통해 직접적으로 추진되는 것이 보다 타당하고 효과적일 것이기 때문이다(Gillion et al, 2000).
민영화의 사회경제적 효과와 관련하여 지금까지 나온 경험적 연구결과들은 대개 공적연금의 사회경제적 효과들을 검증한 것들이 대부분이고 직접적으로 공적연금의 민영화가 미칠 사회경제적 효과들을 검증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설령 공적연금의 부수적 효과(side effects)로서 사회경제에 부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민영화를 정당화하는 논거로 삼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적연금의 사회경제적 효과에 대한 경험적 연구들은 각기 상반된 결과들을 보임으로써 그것의 효과 여부가 결코 확정적이지 않다(Gillion et al., 2000). 한편, 매우 드물지만 주로 칠레를 사례로 하여 공적연금의 민영화가 경제성장에 미친 효과들을 검증한 연구들이 더러 있다. 하지만 칠레의 경제성장이 과연 공적연금의 민영화를 통해 이루어졌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흔히 칠레 연금개혁의 성공요소로서 저축증대 및 자본시장 발달을 제시하는데, 한 연구에 따르면 1980년과 1990년사이 사적저축은 칠레 국내총생산의 2.8%에서 14.3% 크게 증가했지만 그 기간동안 정부저축 및 해외저축이 대폭 감소하여 오히려 총저축은 21.0%에서 20.2%로 감소했다는 것이다(Singh, 1996). 또한 칠레의 주식시장 규모는 1983년에 비해 1992년에 약 11.4배 정도 커졌지만 동기간동안 공적연금의 민영화 효과가 없었던 한국, 대만에서 각각 24.4배, 13.3배나 증가한 점을 고려할 때 칠레 자본시장 발달이 공적연금 민영화의 주된 효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이와 같이 볼 때 경제성장에 미치는 긍정적 사회적 효과에 근거한 공적연금 민영화 논리는 객관성 및 타당성 측면에서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결국 실질적,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공적연금의 민영화 논리조차 사실은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짙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연금 민영화 논리 및 대응
우리나라에서 국민연금을 민영화 하자는 주창자들의 논거는 앞서 제시한 일반론적 차원의 두 가지 논거외에 정부에 대한 불신의 연장선상에서의 국민연금정책에 대한 불신, 저부담·고급여 구조에 따른 장기적 재정불안정, 비공식부분에 대한 소득파악 곤란으로 인한 소득재분배 왜곡, 국민연금기금운영의 비민주성· 비투명성·비전문성·비효율성 등에 기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중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은 상당 정도 오랜 기간의 군사독재 과정의 부산물이란 점에서 단시일내에 해소되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국민연금 재정의 장기불안정이나 소득재분배 왜곡 등은 공적연금의 발달 맥락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이므로 타당한 논리라고는 할 수 없다. 예컨대 연금재정의 장기불안정이란 것은 제도 도입을 원활하게 하고, 자신의 노부모를 부양하는 동시에 스스로의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초기세대의 이중부담을 고려하여 보험료를 초기에는 낮게 부과하되 점차 높여 나가는 국민연금 재정방식의 특성을 의도적으로 부인하거나 또는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소득파악 곤란으로 인한 소득계층간 소득재분배 왜곡은 국민연금의 초기단계의 특성상 급여에 비해 보험료부담 수준이 매우 낮아 모든 소득계층이 이득을 보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2010년 이후 장기재정균형 차원에서 보험료율이 상향조정될 때까지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권문일, 2000)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설령 비록 주관적일지라도 소득파악곤란으로 소득재분배 왜곡현상이 발생하는 것으로 가정하더라도 소득재분배 자체를 약화시키거나 포기한다면 모르지만 그것이 주요 사회가치로 받아들이는 한 국민연금제도를 민영화 한다고 하여 왜곡현상이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득재분배 왜곡은 국민연금의 제도구조를 변경하는데 있다기보다는 국민들의 소득신고에 대한 성실한 태도의 확립 및 소득신고의 성실성을 제도적으로 관철하려는 정부의 의지, 그에 따른 효과적 소득파악체계의 확립을 통해서만 해소가능한 것이다(권문일, 1999). 한편 국민연금기금운영을 둘러산 문제는 1998년 국민연금법 개정을 통해 적어도 제도적으로는 거의 대부분이 개선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남겨진 과제는 개선된 제도의 틀하에서 기금운영을 얼마나 어떻게 실질적으로 운영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위의 결과들을 종합해 볼 때 국민연금의 민영화 주창자들의 논거는 이데올로기적 논거를 제외하면 별달리 객관적이고 타당한 논거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 민영화가 정책의제로 채택되고 정치적으로 실행된다고 가정한다면 과연 어떤 현상이 빚어질 것인가?
노인부양의식 약화에 따라 점차 시간이 경과될수록 노후소득원으로서의 자녀로부터의 이전소득의 중요성은 약화될 것이다. 그래서 노후소득의 안정성을 꾀하기 위해서는 다른 소득원이 이를 대체해 주어야 할 것이지만 중간 이하 소득계층의 경우에는 스스로 노후를 대비하기에는 저축여력이 낮아 별다른 소득원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급여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고 물가 및 사회 전반의 소득수준 향상에 따라 급여가 보장되는 국민연금의 전부 또는 일부가 기여금 및 기여금의 이식수익에 의해 급여액이 결정되는 사적연금으로 대체된다면 저소득계층의 대부분은 안정된 노후소득을 보장받을 수 없음으로써 노후빈곤에 직면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그 결과 이들은 수치심을 수반하는 자산조사에 의한 공공부조의 대상으로 전락하기 쉬울 것이다. 또한 사적연금에서는 기본적으로 근로활동기 때의 소득차이가 급여에 그대로 반영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노후의 소득불평등 현상은 보다 심화될 것이다.
노후소득의 안정성을 꾀하고 노후의 소득불평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국민연금제도가 적정급여수준을 유지하고 수급의 보편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보다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연금이 이러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래세대가 부담가능하고 부담할 용의를 가질 수 있도록 보험료부담에 대한 장기계획을 준비하고 실행해 나감으로써 부담이 지나치게 커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는 결국 제도 초기에 낮게 설정된 보험료부담을 제도가 성숙화되기 이전에 적정수준으로 상향조정하여 후기세대로의 부담전가분을 가능한 축소해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앞에서 보았듯이 현재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국민연금과 퇴직금간 역할분담과 관련하여 아무런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강제적 성격을 지닌 두 제도에 대한 부담수준이 너무 높아 기업이 노동비용부담 증가를 이유로 반발할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국민연금은 재원확보에 있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국민연금 급여의 대폭적인 축소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대안이 제시될 수 있다. 첫째, 국민연금제도를 유지하면서 퇴직금제도의 급여수준을 단계적으로 축소하되 그에 따른 퇴직금의 잉여재원을 국민연금보험료로 흡수시키는 것이다. 둘째, 퇴직금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국민연금 급여수준을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것이다. 셋째, 국민연금과 퇴직금제도를 공히 축소함으로써 어느 한 제도만이 대폭 축소되는 상황을 완화하는 것이다.
이중에서 수급대상의 보편성, 급여의 예측가능성과 보증, 노후소득의 불평등 완화라는 가치에서 볼 때 첫째 방안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그렇지만 첫째 방안은 일시금에 대한 선호, 지급시기의 유연성, 수혜계층의 광범위한 존재 등의 특징을 가진 퇴직금제도를 유지하고자 하는 근로자들의 애착이 매우 높음을 고려할 때 실행가능성 측면에서 어려움이 예상될 수 있다. 둘째 방안은 퇴직금제도는 노후소득의 안정성과 보편성, 노후소득불평등의 완화 등의 효과면에서 볼 때 국민연금에 비해 커다란 결함이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은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방안은 실행가능성을 다소 높이는 대신 바람직성은 다소 낮추는 점에서 첫째 방안과 둘째 방안을 절충한 안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사회적 합의를 통해 선택해야 할 합리적인 방안이라면 첫째 방안과 셋째 방안일 것이다.
앞서 제시한 방안들중 어떤 안이 선택되든지 그것은 국가에 의한 강제연금(퇴직금 포함)의 수준을 줄이고 근로자의 복지를 줄인다는 점에서 민영화 주장과 다를 것이 없지 않느냐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국민연금을 도입할 때 전체 연금체계의 차원에서 국민연금과 퇴직금간 역할관계 및 두 제도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충분한 검토를 하지 않은 결과 발생한 과다급여와 그에 따른 미래의 부담가능성 확보곤란을 제도 초기에 합리적으로 개선함으로써 두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며 그것은 장기적으로 계속 이어지는 미래근로세대들의 복지를 안정되게 증진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국민연금에 대한 부담가능성 문제를 민영화의 빌미로 삼을 수 있는 요소를 사전에 제거하는 의미 또한 함께 지니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권문일 (2000) "국민연금에 대한 수익분석 : 국민연금급여는 과연 보험료에 대한 공평한 수익인가?." 『한국사회복지학』. 통권 제41호(출간예정)
권문일. (1999). "국민연금 전개과정상의 쟁점분석" 『사회복지연구』 제14호
Disney, R., M. Mira d'Ercole and P. Scherer(1998) "Resources during Retirement." OECD. Ageing Working Papers 4.3.
George, V. and P. Wilding. (1976) Ideology and Social Welfare. London:Roultledge and Kegan.
Gillion, C., J. Turner, C. Bailey, and D. Latulippe. (2000). Social Security Pensions:Development and Reform. International Labour Office. Geneva
Palacios, Robert. Y. Sin, M. Dorfman, and A. Musalem. (2000) " The Korean Pension system at a Crossroads." World Bank Report No. 20404-KO.
Singh, Ajit. 1996. "Pension Reform, the Stock Market, Capital Formation and Economic Growth: A critical Commentary on the World Bank's Proposals." in International Social Security Review. Vol. 49 3/96:21-43
의료보험은 우리 나라 4대 사회보험중 적정급여보장과는 괴리가 가장 커서 국가책임의 시장으로의 이전이란 논리가 적용될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으며, 또한 의료의 특성상 역선택(adverse selection) 및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등의 문제로 인해 사보험이 담당하기에는 가장 어려운 보험분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보험제도가 민영화의 대상으로서 정부의 공식적 의제, 즉 정책의제로 채택되었다는 것은 다른 사회보험에서도 민영화 관련 이슈들이 언제든지 정책의제로 부상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의 필요성이 시급함을 시사해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국민연금과 관련하여 제기되었거나 제기될 수 있는 민영화의 논거 및 그것이 가지는 의미를 정리해 보고, 그것이 우리 나라 노인들의 노후소득보장 및 분배에 어떤 영향들을 미칠 수 있을지 분석해 보며 그에 대한 대응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우리 나라 노후소득보장체계를 구성하는 각 요소들의 실태를 분석하고, 특히 국민연금을 포함한 각종 연금제도들이 전체 소득보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현재적 또는 잠재적 역할들을 검토해 본다. 또한 연금체계에서 사적연금의 역할확대, 곧 민영화가 어떤 논거하에서 제기되며 그것들이 실행된다고 가정할 경우 미칠 수 있는 사회경제적 효과들을 분석해 보며 민영화에 대한 대안으로서 연금체계를 구성하는 각 제도간 역할관계를 정립해보고자 한다.
노후소득보장체계에 대한 실태분석 및 전망
노후소득원천은 근로소득, 공적연금, 공공부조, 사적연금, 자녀로부터의 소득이전, 자산소득 등 매우 다양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이중 현재 우리나라 노인들의 노후총소득에서 거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소득원은 자녀로부터의 소득이전이라고 할 수 있다. 노인에 대한 가족부양의식의 약화에 따라 자녀로부터의 소득이전이 비중이 점차 줄어들고 있기는 하지만 1990년에 노인가구소득의 약 55%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주된 소득원인 것이다. 하지만 자녀로부터의 소득이전은 점차 줄어들면서 이를 대체하는 수단으로서 다른 소득원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특히 근로소득의 성장이 두드러졌는데 1981년 총노후소득의 약 16%에서 1990년에는 약 32%로 16%포인트나 증가한 것이다(Palacios et al, 2000). 그러면 현재 노인들의 주소득원이라고 할 수 있는 자녀로부터의 가족이전과 근로소득이 앞으로도 계속 그러할 것인가?
OECD 9개국 67세 노인들의 소득원천구성을 분석한 한 연구에 따르면 국가별로 그리고 소득계층별로 각 소득원이 총노후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다소 차이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공통적인 현상 중의 하나는 최고소득계층을 제외하고는 주소득원이 공적연금이라는 것이다(Disney and Mira d'Ercole, 1998). 한편, 네덜란드, 스웨덴, 프랑스, 미국, 영국 등 사적연금이 준강제적으로 실시되어 상당 정도 보편화되어 있거나 또는 사적연금의 역사가 오래되고 발달된 국가의 경우 사적연금 또한 공적연금과 더불어 주요 노후소득원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다른 선진국가의 경험을 통해 추론해 볼 때 앞으로도 자녀로부터의 소득이전 및 근로소득이 우리 나라 노인들의 주소득원의 자리를 유지할 것 같지는 않다. 1988년에 실시된 국민연금, 1994년에 실시된 개인연금이 점차 성숙해지고, 퇴직금의 기업연금으로의 전환이 확산됨에 따라 연금소득이 자녀로부터의 소득이전을 빠르게 대체하여 대부분의 소득계층에 있어서 연금이 가장 주요한 소득원으로 자리잡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노인들중 상대적으로 젊은 60대 계층의 상당수가 현재 근로소득을 획득하고 있지만 점차 노후소득원으로서 중요성이 약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부터 삼사십년 이후인 2030년 무렵에 가장 보편적이고 주된 노후소득원은 연금제도, 즉, 국민연금, 퇴직금(기업연금), 개인연금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 연금체계를 구성하는 각 제도들이 노후소득구성에서 어느 정도의 역할을 담당할지는 매우 불확실하다. 그 이유는 각 제도들이 도입될 때 상호간의 역할분담에 대한 면밀한 검토없이 분립적으로 도입되어 발전되어 왔기 때문이다.
현재 국민연금은 40년 가입 평균소득자에게 과거소득의 60%에 해당하는 급여를 지급하도록 되어있다. 퇴직금제도는 직장을 이동할 때마다 일시금으로 지급되고 있어 그중 얼마가 노후소득원으로서 사용될지 알 수 없지만 노후에 이르기 전까지 소비하지 않고 전액 투자하는 것으로 가정한다면 법정최저급여만 하더라도 최소한 과거소득의 약 30%를 보장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연금은 개인의 욕구 및 부담능력에 따라 급여수준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과거소득의 얼마를 대체할지는 예측할 수 없다.
개인연금을 제외하고 국민연금과 퇴직금만을 고려하더라도 산술적으로 두 제도의 합산급여수준은 평균소득자에 대해 약 과거소득의 90%를 보장해 줄 수 있음으로써 매우 풍족한 노후생활을 보장해 줄 수 있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그러한 상황이 실제로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고 하겠다. 왜냐하면 국민연금제도가 장기재정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보험료율이 장기적으로 지금의 약 두 배에 해당하는 수준인 약 17-18%까지 인상되어야 하는데 현재 8.3%이상을 부담하는 퇴직금제도가 존속하는 한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급여 및 부담 측면에서 두 제도간 급여수준 조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적연금 민영화의 논거
국민연금제도의 민영화는 단적으로 말하면 노후소득보장에 대한 국가의 책임 내지 역할을 축소하는 대신 개인과 시장의 역할 증대를 강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현행 국민연금제도의 전부 또는 일부를 민간에서 운영하는 개인연금 또는 기업연금으로 대체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공적연금을 민영화 하자는 주창자들의 논거는 매우 다양하고 상호 연관되어 있지만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이데올로기에 기반하고 있는 것으로서 공적연금을 사적연금을 통해 대체하는 것은 정부의 역할을 축소함으로써 개인 선택의 자유를 증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경제적 논거로서 공적연금의 민영화는 국가재정부담 완화, 노동시장 왜곡현상의 완화, 근로의욕의 촉진, 저축 및 투자 증대, 자본시장발달을 통한 경제성장 등 사회경제적으로 매우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첫 번 째 논거는 보수주의자들이 신봉하는 사회적 가치 및 이들의 국가에 대한 관점을 반영한 다. 이들에게 있어서는 누군가로부터 간섭과 강제를 받지 않을 의미로서의 소극적 자유, 경제활동의 원천이 되는 것으로 여겨지는 불평등, 시장에서의 경쟁 등이 주요 사회가치로 받아들여진다. 또한 복지에 대한 국가개입은 개인의 자유를 축소하며, 복지혜택을 둘러싼 사회집단간 분열을 조장하고 자원을 낭비하며, 경제적 비효율을 초래하는 것으로 인식된다(George and Wilding, 1976). 반면, 사회복지지지자들은 사회통합, 소득재분배, 무엇을 할 수 있는 의미로서의 적극적 자유, 평등 등의 가치를 주요 사회가치로 받아들이며 복지에 대한 국가개입을 무엇을 할 수 있는 의미로서의 적극적 자유를 신장하며, 시장에서 초래된 불평등한 소득분배를 완화하고, 집단간 사회통합을 증진시키는 것으로 바라본다. 공적연금의 민영화가 이러한 보수주의적 이데올로기에 근거하는 한 이는 사회가치 또는 관점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응은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하지만 두 번째 논거는 첫 번째 논거와는 달리 연금의 실제 기능과 관련된 것이고 이데올로기에 관계없이 민영화를 통해 성취할 수 있다고 하는 사회경제적 효과 자체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응은 실질적, 실증적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즉, 연금제도의 역할로서 노후소득보장외에 경제적 기능을 추가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공적연금의 민영화를 통해 달성된다는 사회경제적 효과들이 과연 객관적 타당성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등을 분석검토해야 하는 것이다.
먼저 연금제도의 역할과 관련된 것으로서 저축 및 투자증대와 같은 경제적 기능은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바람직한 것일지라도 이것이 연금을 통해 추진되어야 할 정당성을 찾기 어렵다. 연금제도가 노후소득보장외에 경제성장 촉진이란 기능까지 담당한다면 노후소득보장 목적이 소홀히 다루어 질 가능성이 크고 또한 경제성장 촉진은 연금제도를 통해 수행되기보다는 금융·재정정책 또는 산업정책을 통해 직접적으로 추진되는 것이 보다 타당하고 효과적일 것이기 때문이다(Gillion et al, 2000).
민영화의 사회경제적 효과와 관련하여 지금까지 나온 경험적 연구결과들은 대개 공적연금의 사회경제적 효과들을 검증한 것들이 대부분이고 직접적으로 공적연금의 민영화가 미칠 사회경제적 효과들을 검증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설령 공적연금의 부수적 효과(side effects)로서 사회경제에 부정적인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민영화를 정당화하는 논거로 삼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공적연금의 사회경제적 효과에 대한 경험적 연구들은 각기 상반된 결과들을 보임으로써 그것의 효과 여부가 결코 확정적이지 않다(Gillion et al., 2000). 한편, 매우 드물지만 주로 칠레를 사례로 하여 공적연금의 민영화가 경제성장에 미친 효과들을 검증한 연구들이 더러 있다. 하지만 칠레의 경제성장이 과연 공적연금의 민영화를 통해 이루어졌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흔히 칠레 연금개혁의 성공요소로서 저축증대 및 자본시장 발달을 제시하는데, 한 연구에 따르면 1980년과 1990년사이 사적저축은 칠레 국내총생산의 2.8%에서 14.3% 크게 증가했지만 그 기간동안 정부저축 및 해외저축이 대폭 감소하여 오히려 총저축은 21.0%에서 20.2%로 감소했다는 것이다(Singh, 1996). 또한 칠레의 주식시장 규모는 1983년에 비해 1992년에 약 11.4배 정도 커졌지만 동기간동안 공적연금의 민영화 효과가 없었던 한국, 대만에서 각각 24.4배, 13.3배나 증가한 점을 고려할 때 칠레 자본시장 발달이 공적연금 민영화의 주된 효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이와 같이 볼 때 경제성장에 미치는 긍정적 사회적 효과에 근거한 공적연금 민영화 논리는 객관성 및 타당성 측면에서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결국 실질적,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공적연금의 민영화 논리조차 사실은 이데올로기적 성격이 짙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국민연금 민영화 논리 및 대응
우리나라에서 국민연금을 민영화 하자는 주창자들의 논거는 앞서 제시한 일반론적 차원의 두 가지 논거외에 정부에 대한 불신의 연장선상에서의 국민연금정책에 대한 불신, 저부담·고급여 구조에 따른 장기적 재정불안정, 비공식부분에 대한 소득파악 곤란으로 인한 소득재분배 왜곡, 국민연금기금운영의 비민주성· 비투명성·비전문성·비효율성 등에 기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중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은 상당 정도 오랜 기간의 군사독재 과정의 부산물이란 점에서 단시일내에 해소되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국민연금 재정의 장기불안정이나 소득재분배 왜곡 등은 공적연금의 발달 맥락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기인하는 것이므로 타당한 논리라고는 할 수 없다. 예컨대 연금재정의 장기불안정이란 것은 제도 도입을 원활하게 하고, 자신의 노부모를 부양하는 동시에 스스로의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초기세대의 이중부담을 고려하여 보험료를 초기에는 낮게 부과하되 점차 높여 나가는 국민연금 재정방식의 특성을 의도적으로 부인하거나 또는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소득파악 곤란으로 인한 소득계층간 소득재분배 왜곡은 국민연금의 초기단계의 특성상 급여에 비해 보험료부담 수준이 매우 낮아 모든 소득계층이 이득을 보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2010년 이후 장기재정균형 차원에서 보험료율이 상향조정될 때까지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점을(권문일, 2000)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설령 비록 주관적일지라도 소득파악곤란으로 소득재분배 왜곡현상이 발생하는 것으로 가정하더라도 소득재분배 자체를 약화시키거나 포기한다면 모르지만 그것이 주요 사회가치로 받아들이는 한 국민연금제도를 민영화 한다고 하여 왜곡현상이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소득재분배 왜곡은 국민연금의 제도구조를 변경하는데 있다기보다는 국민들의 소득신고에 대한 성실한 태도의 확립 및 소득신고의 성실성을 제도적으로 관철하려는 정부의 의지, 그에 따른 효과적 소득파악체계의 확립을 통해서만 해소가능한 것이다(권문일, 1999). 한편 국민연금기금운영을 둘러산 문제는 1998년 국민연금법 개정을 통해 적어도 제도적으로는 거의 대부분이 개선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남겨진 과제는 개선된 제도의 틀하에서 기금운영을 얼마나 어떻게 실질적으로 운영해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위의 결과들을 종합해 볼 때 국민연금의 민영화 주창자들의 논거는 이데올로기적 논거를 제외하면 별달리 객관적이고 타당한 논거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 민영화가 정책의제로 채택되고 정치적으로 실행된다고 가정한다면 과연 어떤 현상이 빚어질 것인가?
노인부양의식 약화에 따라 점차 시간이 경과될수록 노후소득원으로서의 자녀로부터의 이전소득의 중요성은 약화될 것이다. 그래서 노후소득의 안정성을 꾀하기 위해서는 다른 소득원이 이를 대체해 주어야 할 것이지만 중간 이하 소득계층의 경우에는 스스로 노후를 대비하기에는 저축여력이 낮아 별다른 소득원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급여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고 물가 및 사회 전반의 소득수준 향상에 따라 급여가 보장되는 국민연금의 전부 또는 일부가 기여금 및 기여금의 이식수익에 의해 급여액이 결정되는 사적연금으로 대체된다면 저소득계층의 대부분은 안정된 노후소득을 보장받을 수 없음으로써 노후빈곤에 직면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그 결과 이들은 수치심을 수반하는 자산조사에 의한 공공부조의 대상으로 전락하기 쉬울 것이다. 또한 사적연금에서는 기본적으로 근로활동기 때의 소득차이가 급여에 그대로 반영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노후의 소득불평등 현상은 보다 심화될 것이다.
노후소득의 안정성을 꾀하고 노후의 소득불평등을 줄이기 위해서는 국민연금제도가 적정급여수준을 유지하고 수급의 보편성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보다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연금이 이러한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래세대가 부담가능하고 부담할 용의를 가질 수 있도록 보험료부담에 대한 장기계획을 준비하고 실행해 나감으로써 부담이 지나치게 커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는 결국 제도 초기에 낮게 설정된 보험료부담을 제도가 성숙화되기 이전에 적정수준으로 상향조정하여 후기세대로의 부담전가분을 가능한 축소해야 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앞에서 보았듯이 현재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국민연금과 퇴직금간 역할분담과 관련하여 아무런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강제적 성격을 지닌 두 제도에 대한 부담수준이 너무 높아 기업이 노동비용부담 증가를 이유로 반발할 가능성이 높고 그렇게 되면 국민연금은 재원확보에 있어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결국 국민연금 급여의 대폭적인 축소가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대안이 제시될 수 있다. 첫째, 국민연금제도를 유지하면서 퇴직금제도의 급여수준을 단계적으로 축소하되 그에 따른 퇴직금의 잉여재원을 국민연금보험료로 흡수시키는 것이다. 둘째, 퇴직금제도를 그대로 유지하고 국민연금 급여수준을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것이다. 셋째, 국민연금과 퇴직금제도를 공히 축소함으로써 어느 한 제도만이 대폭 축소되는 상황을 완화하는 것이다.
이중에서 수급대상의 보편성, 급여의 예측가능성과 보증, 노후소득의 불평등 완화라는 가치에서 볼 때 첫째 방안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다. 그렇지만 첫째 방안은 일시금에 대한 선호, 지급시기의 유연성, 수혜계층의 광범위한 존재 등의 특징을 가진 퇴직금제도를 유지하고자 하는 근로자들의 애착이 매우 높음을 고려할 때 실행가능성 측면에서 어려움이 예상될 수 있다. 둘째 방안은 퇴직금제도는 노후소득의 안정성과 보편성, 노후소득불평등의 완화 등의 효과면에서 볼 때 국민연금에 비해 커다란 결함이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은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방안은 실행가능성을 다소 높이는 대신 바람직성은 다소 낮추는 점에서 첫째 방안과 둘째 방안을 절충한 안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사회적 합의를 통해 선택해야 할 합리적인 방안이라면 첫째 방안과 셋째 방안일 것이다.
앞서 제시한 방안들중 어떤 안이 선택되든지 그것은 국가에 의한 강제연금(퇴직금 포함)의 수준을 줄이고 근로자의 복지를 줄인다는 점에서 민영화 주장과 다를 것이 없지 않느냐는 의구심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국민연금을 도입할 때 전체 연금체계의 차원에서 국민연금과 퇴직금간 역할관계 및 두 제도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충분한 검토를 하지 않은 결과 발생한 과다급여와 그에 따른 미래의 부담가능성 확보곤란을 제도 초기에 합리적으로 개선함으로써 두 제도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며 그것은 장기적으로 계속 이어지는 미래근로세대들의 복지를 안정되게 증진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국민연금에 대한 부담가능성 문제를 민영화의 빌미로 삼을 수 있는 요소를 사전에 제거하는 의미 또한 함께 지니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권문일 (2000) "국민연금에 대한 수익분석 : 국민연금급여는 과연 보험료에 대한 공평한 수익인가?." 『한국사회복지학』. 통권 제41호(출간예정)
권문일. (1999). "국민연금 전개과정상의 쟁점분석" 『사회복지연구』 제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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