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IMF의 경제적 타격이 어느정도 해소된 상황에서, 이제 생산적 복지라는 이름으로 여러 가지 국민복지대책들이 붐을 이루고 있다. 군사정권하에서 정치적 정당성고양책의 일환으로 태동한 우리나라의 국가복지시스템은, 문민정부하에서의 무관심을 거쳐, 이제야 비로소 하나의 중요한 정치적 이슈로 자리매김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으로 한걸음 다가온 통일의 시대를 위해서도 이러한 변화는 긍정적인 것이 아닐 수 없다. 독일의 경우에도 보여지듯, 탄탄한 국가복지시스템이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통일이 파생할 사회적 혼란들이 효과적으로 제어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구의 경험을 통해서 우리는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한 정권이 추진하는 제도개혁은 앞으로 쉽게 손볼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현시점에서 추진되는 모든 사회정책들은 명실상부한 백년대계가 되어야 한다. 한나라의 복지국가의 방향을 어떻게 설정하고 세부정책과 제도를 어떻게 준비하는가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하나 다행스런운 일은 우리에겐 선진국들이 거쳐간 복지권확대의 경험이라는 유용한 거울이 있다는 점이다.

복지권확대의 과정은 정치적 고려와 경제적 제약의 상호작용의 역사라는 인식하에 출발하는 이 글은 근자 유럽복지국가들에서 빈번한 이슈가 되고있는 사회보험의 민영화문제를 다루고자한다. 최근 생산적 복지라는 다소 모호한 이념형에 기반한 사회보험 관련정책들이 민영화를 화두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연 이러한 것들이 유럽의 선진복지국가들에서는 어떠한 이유에서 논쟁거리가 되고 있으며 어떠한 정치경제적 결과를 낳게 되는지에 관한 언급은 시의적절하리라 여겨진다.

민영화정책의 등장배경

민영화를 지지하는 정책적 논의들에서 빈번히 제기되는 것으로, 기존의 공적복지시스템이 후기산업사회의 다양화된 욕구들을 적절히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국가복지시스템하에서는 개인적 '위험들'이, 법적으로 강제된 틀내에서 인지되고 제도화된, '인위적인 종류와 수준'들로 구획된다. 민영화 지지론자들의 논지는 이러한 '구획과 편입'의 과정이 다분히 비민주적이며, 개별적인 인간적 욕구와 요구들을 효과적으로 수용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들에 의하면 '민영화' 혹은 '사적' 보험장치의 확대만이 다양성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견 그럴싸한 이유에 근거한 이러한 논의들이 신자유주의의 발흥과 시기적으로 일치한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사회보험의 민영화문제는, 1970년대의 두 차례 오일쇼크 이후 유럽복지국가들이 당면한 여러 가지 경제적 어려움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던 1980년대를 통해 이슈화 되었고, 신자유주의의 헤게모니가 완성되는 1990년대에 들어서서 바야흐로 전성기를 맞이한다. 초반기 민영화지지론자들이 '다양화'라는 다소 규범적인 목적에 기대어 있던데 반해, 좀더 최근의 지지론은 '경제적'이유를 표면화하고 있다. 그들은 경제적 지구화와 이에따른 심화된 국가간 경쟁이라는 최근의 상황아래서 유럽의 특징인 '복지과부하'는 경제에 악영향을 초래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또한, 경제의 침체는 결과적으로 실업문제 등의 복지국가의 근본적 문제들을 양산하기 때문에 민영화가 심각하게 고려되어야한다고 주장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러한 신자유주의 논자들은 과거 신좌파에 의해 제기된 '복지국가의 재정위기'를 민영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의 중요한 논거로 제시한다. 실업과 경제불황에 따른 세수격감, 노령화사회하의 노동세대의 과도한 부담 등으로 인해, 더이상의 국가복지는 불가능하며 다양한 경로의 복지자원과 전달체계가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상 극단적 신자유주의자들은 복지국가자체의 전복을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이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익히 알고있는 온건파 신자유주의자들은 중앙정부의 재정위기 타개책들로서 지방화와 민영화전략을 주요대안으로 상정해왔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개혁전략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는가에 관한 평가는 아직 이르다. 아래에서 살펴볼 바와 같이, 유럽의 민영화전략들은 주로 세제혜택이나 민영화주체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원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민영화는 미미한 실정이며 다만 장부상의 기술적 변화일 따름이라고 여겨진다. 하지만 일련의 신자유주의적 민영화전략은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민감한 이슈로 남았을 뿐 아니라, 그것을 포함한 사회보장개혁조치들은 좌우파를 막론한 정권의 생명력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유럽복지국가의 민영화현황

국민복지 제공방식을 민영화하는 방식은 너무 다양하여 단순한 도식화가 거의 불가능하다. 여기서는 중요한 몇가지의 방식을 중심으로 유럽의 민영화추이를 정리해보기로 하자. 복지국가의 발달이 국가별로 혹은 체제별로 상이한 경로를 통해 제도화된다는 것은 이제 사회정책학의 하나의 공리로 받아들여진다. 공공복지의 민영화 또한 각국별로 상이한 제도화된 틀내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몇몇 나라의 경험이 유럽을 대표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여기서는 유럽복지국가의 대표적 모델들로서 종종 거론되는 덴마크,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그리고 영국을 중심으로 사회보험의 민영화동향을 정리하고자 한다. 현재 유럽의 민영화는 사회보험의 다양한 분야에서 분절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지면의 제약상 아래에서는 총량적 변화에 논의를 집중한다.

<표1> 공적/사적 사회지출 변화추이

(% GDP; 괄호안이 공적지출)























































































  1980 1985 1990 1993
덴마크 0.29(27.63) 0.37(26.47) 0.56(28.25) 1.21(30.51)
스웨덴 1.27(30.42) 1.27(31.64) 1.40(32.62) 2.34(38.25)
독일 2.83(24.98) 2.78(25.51) 2.94(23.83) 2.88(28.66)
영국 2.09(18.32) 3.09(21.04) 3.43(19.78) 3.80(23.41)
네덜란드 1.27(28.77) 1.78(28.95) 3.86(29.23) 4.33(30.64)


자료: OECD (1998) The growing role of private social benefits

<표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사적사회보험급여는 특히 네덜란드와 영국에서 중요성을 더해가고 있으며, 공적부문의 부담을 어느정도 줄이고 있다. 두 나라의 경우, 사적연금의 성숙과 인구변화추이 그리고 증가된 사적연금에의 의존은 이러한 경향을 심화시키리라 예상된다. 두 나라가 표에 제시된 다른 세 나라와 비교할 때, 주어진 기간중 신자유주의의 헤게모니가 상대적으로 강한 나라들이라는 사실은 흥미롭다. 또한 어느 나라에서도 공적 사회지출수준에 괄목할 만한 변화는 보이지 않는다.

<표2> 1993년도 순(net)사적지출 (% GDP)



































































  덴마크 스웨덴 독일 영국 네덜란드
사적지출 0.78 1.36 2.35 3.39 3.41
강제/사적지출 0.33 0.39 0.90 0.20 -
자원/사적지출 0.44 0.97 1.45 3.19 3.41


자료: OECD (1998) The growing role of private social benefits

유럽 복지국가들의 민영화는 크게 두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법적으로 강제된 프로그램들이며 다른 하나는 개인적 혹은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는 자원적 프로그램들이다. 먼저 법적으로 강제된 프로그램의 경우 주로 고용주나 수혜자의 부담에 의해 비용이 충당되며, 자원적인 프로그램들의 경우에는 세제상의 혜택이 주어진다. 양자공히 정부의 보조금이 지원되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현재 진행중인 유럽의 복지민영화는 상당부분 공적부문과 겹치고 있다.

<표2>는 공적 자금의 유입을 제한 뒤의 순(net)사적지출의 정도를 보여준다. 사적 사회급여의 회계방식과 세제혜택의 영향을 감안할 때, 유럽복지국가들간의 민영화추이상의 차이는 어느 정도 줄어들기는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득세가 민영화와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표에서 보여주고 있지는 못하지만, 두가지 사적급여의 방식들은 각각 특정한 사회정책분야와 연관되어있다. 자원적/사적 사회급여의 경우 노령연금의 현금급여와 건강보험의 분야에서 중요성을 더해가는 반면, 강제적/사적 사회급여의 경우에는 질병시 소득유지 프로그램에서 중요시되고 있다. 특기할 사항은 실업과 가족급여의 경우에는 민영화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간략한 관찰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정리해 낼 수 있다. 민영화는, 당초 제기된 다양한 욕구의 충족이라는 규범적 목적과는 달리, 중앙정부의 재정위기의 타개책으로서의 신자유주의적 전략인 것으로 여겨진다. 연금이나 의료 등의 선택적인 부문에서만 부가적으로 시행됨으로써, 민영화추진의 주요한 이유로 제기되었던 후기산업사회의 다양한 욕구충족과 보다 나은 서비스를 위한 선택범위의 확장이라는 목표는 경제적 상층에 국한된 매우 부분적으로만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 것으로 평가된다. 한편, 이러한 사실은 계층간 불평등과 갈등을 낳게된다. 따라서, 민영화의 사회적 기회비용은 계층간 단결이며, 이는 미쉬라가 예단한 신자유주의적 각개격파전술의 명백한 사례로 보여진다.

민영화를 포함한 최근 개혁의 정치경제적 결과들

에스핑-앤더슨이나 오페 같은 학자들은, 소위 복지국가의 위기시대에 있어서 선진복지국가들의 정치경제적 성적표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그들에 의하면, 신자유주의노선으로의 완전한 전환 혹은 사민주의노선의 방어에 성공한 국가들만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성공적인데 반해, 어정쩡한 중간의 길을 선택한 나라들의 경우 정치적 경제적으로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유럽적 사회정책개혁안의 정치적 효과는 주로 집권당에 부정적인 것으로 평가된다. 민영화를 포함한 일련의 복지국가개혁프로그램들은 이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장미빛으로 포장된 조치들이 결국은 무한경쟁을 바탕으로한 경제논리의 산물임이 백일하에 드러나자, 복지수혜계층을 이루는 일반 국민들은 그러한 조치를 취한 정권에 등을 돌리게 되었다. 요컨대, 90년대 중반이후의 유럽정치권의 판도변화는 주로 신자유주의적 복지개혁조치에 대한 국민들의 반동으로 요약될 수 있다.

대처주의의 정치적 실패와 영국노동당의 정권탈환은 이러한 경향의 첫 페이지를 열었다. 그러나, 블레어의 불투명한 노선과 복지수준의 실질적인 저하는 국민들의 선명좌파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촉발하고 있다. 최근 런던광역시장에 반블레어파이자 좌파의 선봉장인 리빙스턴이 당선된 것도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경향에 대한 국민적 반감의 표현으로 보여진다. 독일의 경우도 통일을 성취해낸 기민당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신자유주의적 복지개혁에 대한 국민적 불만을 등에 업은 슈뢰더의 사민당이 정권탈환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이후 복지문제에서의 신자유주의적 색채를 털어내지 못함으로써 영국과 유사한 정치적 반동을 경험한다. 스웨덴의 경우도 1994년 재집권에 성공한 사민당이 경제논리에 밀려 복지개혁을 서두르자 최근의 총선에서는 사민당지지표의 상당수가 좌파당으로 몰리는 등 집권 사민당의 정치적 실패가 가시화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경험들에 비추어 볼 때, 국민복지의 민영화 등과 같은 신자유주의와의 어정쩡한 동거를 통해서는 결코 정치적 성공을 기대할 수 없을 뿐아니라, 결과적으로 사회통합을 막고 분배상의 혼란을 야기함으로써 경제적으로도 좋지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은 친복지적 정당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정당의 경우 심각하게 고려해야할 문제일 것이다.

안상훈 / 스웨덴 웁살라대학교 사회정책연구원, 사회학박사
2000/07/10 00:00 2000/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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