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활지원정책의 현황과 과제
월간 복지동향/2001 :
2001/03/10 00:00
생산적 복지와 체감 사회안전망
과거 30년이 세계적으로 유례 없는 '압축 경제성장'의 과정이었다면, 지난 3년은 그 폐해를 극복하기 위한 '압축 복지성장'의 과정이었다. 대량실업 사태를 맞아 수십만 명 규모의 공공근로사업이 전격적으로 시행되었으며, 한시생활보호제도를 통해 생활보호대상자를 일시에 30∼40% 이상 늘렸다. 너도나도 사회안전망 부재가 위기를 가속화시켰다는 데 동의했으며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불가피한 선택의 하나였다. 소위 근로유능력자에게도 생계보호를 실시하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2001년의 기초생활보장예산은 전년도에 비교해 30% 가까이 늘어나게 된다.
민주주의, 시장경제와 함께 국정 지표의 3대 축에 포함된 생산적 복지정책은 '사기극' 여부를 떠나서, 우리 사회정책사에 큰 획을 그은 것이 사실이다. 국민연금확대, 1인 종사자까지 고용보험 확대, 임시·일용직 고용보험 추진, 의료보험 통합, 의약분업 실시 등은 모두 이전 정부에서는 감히 추진할 엄두도 못 냈던 정책들이다.
그러나 이들 정책의 도입에도 불구하고 취약한 복지 인프라와 부족한 예산, 특히 각 제도 간의 연계성 부재 등으로 인해 '체감 사회안전망'은 거의 나아지지 못한 것도 현실이다. 정부가 자랑하는 기초생활보장제도마저도 보호대상자의 범위와 수준이 당초 기대에는 훨씬 못 미치고 있다. 더구나 '쉬운 채용-쉬운 해고'를 가능하게 하는 노동시장 유연성은 높아졌지만, 그를 보완하고 지탱해줘야 할 사회안전망은 아직 제대로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생산적 복지정책이 소득재분배를 위한 유효한 정책수단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빈부격차 확대와 사회적 배제는 불가피하다. 따라서 지난 3년의 생산적 복지정책 전반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 중에서도 근로의지를 고취하고, 빈곤탈출을 돕는다는 의미의 '자활지원정책'은 그 허실을 밝히고 과제를 새롭게 정립할 필요가 있다.
자활지원정책의 성과와 한계
지난 2년 간 '자활지원', '제3섹터', '지역사회 중심의 자활공동체' 등의 논의가 가히 붐을 이룬 바 있다. 특히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과 함께 근로능력이 있는 생계보호 대상자들을 위한 자활지원이 제도화되었으며, 정부는 '취약계층의 자활을 지원하는 복지'를 '국민기본생활을 보장하는 복지', '생산과정에의 참여를 통한 복지'와 함께 생산적 복지의 3대 요소에 포함시킨 바 있다.
2001년에는 자활지원 촉진을 위해 2,000억 원이 넘는 별도 예산이 확보되었으며 복지부, 노동부는 전담 조직까지 신설하였다. 현재 70개인 자활후견기관은 조만간 200개로 늘어남으로써 주요 사회복지 전달체계의 하나로 정착될 전망이다. 그런데 특히 주목할 것은 그 동안 지역사회운동이나 실업극복 활동에 종사해 왔던 민간단체들이 후견기관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풀뿌리 지역운동의 잠재력이 자활지원사업으로 모이고 있는 것이다.
이와 함께 자활지원정책은 우리 사회정책의 접근법을 바꾸는 데 기여하고 있다. 복지와 고용서비스가 통합적으로 제공되어야 할 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다양한 자원들이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지역자활기관협의체가 모든 지자체별로 구성되어 전통적인 사회복지 서비스 전달기관 외에도 고용안정센터나 비공식 민간단체까지 참여하고 있다. 특히 각 지자체들이 가구별·지역별 자활지원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빈곤탈출 지원'을 지역사회 복지의 목표로 인식하게 된 것은 성과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자활지원정책의 제도화에도 불구하고 아직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다.
우선 자활지원의 목표에 대한 혼란이다. 현행 자활지원정책은 생계보호에 안주하지 못하도록 밀어내려는 목표와 빈곤층들이 일할 기회를 사회가 적극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요구가 어정쩡하게 타협한 상태이다. 그래서 자활지원의 목표가 생계보호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을 통한 보람과 공동체의 소속감을 높이는 데 있는지 혼란스럽다. 물론 후자가 목표로 되어야 마땅하지만, 현실에서는 생계보호에 대한 '조건부' 성격이 크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두 번째로 현재의 자활지원정책 대상자가 지나치게 협소하다는 문제가 있다. 원칙적으로 조건부수급자에 한해 자활지원 프로그램을 제공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근로능력은 미약하지만 일하고 싶은 사람들이나, 어린 자녀를 돌봐야 하는 모자가정, 그리고 언제 생계보호 대상자로 내려올지 모르는 차상위 빈곤계층들은 자활지원대상자가 되기 어렵다.
세 번째 문제는 근로소득 공제제도 전면시행이 유보됨으로써, 수급자가 자활사업에 참여해서 얻는 이익이 기대 이하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현재 약간의 소득기회라도 있는 사람들은 자활사업에 참여하기를 기피하고 있는 실정이다. 보다 체계적인 자활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이 그냥 저임금 노동시장에서 추가소득을 얻도록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자활지원대상자가 당초 정부가 예상한 수준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그 외에도 전달체계 취약, 전문인력 부족, 다양한 지역사회 참여 모형의 부재, 자활공동체 모델의 미정착 등이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자활지원정책이 사회적 일자리 창출이라는 과제와 연계되어 있다는 데서 나타난다. 현재 취약계층이 처한 문제의 본질은 '일자리 자체가 없어짐'으로써 빈곤으로 전락하는 데 있기 때문에, '일자리'를 사회적으로 창출하지 않는 이상 문제의 본질은 그대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일자리가 확보되지 않는 자활사업은 생계급여라는 빈곤 풀(pool)에 머물게 하는 면죄부(혹은 반대 의미의 스티그마)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개인의 취업능력(employability) 뿐 아니라 사회전체의 고용용량(employment capacity)을 높이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자활지원정책의 과제
자활지원정책이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많은 분야의 정책이 바뀌어야 할 뿐 아니라, 복지 및 고용 서비스 인프라가 강화되어야 한다. 따라서 조만간 자활지원사업의 성과가 나타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오히려 금물이다. 특히 자활지원의 사회적 목표가 수렴되지 않은데다 인프라도 취약하기 때문에 조급한 성과에 집착할수록 이 정책이 지녀야 할 창의력이 훼손될 것이다. 당분간은 한국적인 모형개발을 위한 사례발굴에 주력하는 것이 현실적인 접근이라 할 것이다. 다만 이를 위해서라도 다음의 과제들이 해결되어야 한다.
우선 자활지원대상자의 확대가 필요하다. 취업빈곤층, 근로능력과 의지는 있으나 가구여건상 자활사업에 참여하기 어려운 수급자, 차상위 취약계층들이 자활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특히 여성가구주에 대해서는 보육·간병 등의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자활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늘려야 할 것이다.
둘째, 근로소득 공제제도의 실질화가 시급하다. 물론 2002년부터는 확대시행이 예정되어 있지만 공제율을 현실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단기적으로는 공제제도로 인해 부분적 예산증가가 불가피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일을 통한 빈곤극복'을 유도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전달체계 강화와 지방정부의 참여가 중요하다. 자활지원사업이야말로 사례관리가 아니고서는 실효를 거둘 수 없다. 각 가정의 조건과 특성을 감안하여 가구별 자활지원계획을 수립하고 이를 지역사회 내에서 해결해 나가는 것이 자활지원사업의 요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사회복지 전담공무원은 과중하고도 잡다한 업무부담으로 인해 사례관리자라기보다는 '사회담당 행정공무원'에 그치고 있다. 사례관리가 가능한 수준으로 전담공무원을 늘림으로써 2조원이 넘는 기초생활보장 예산의 효율화를 기할 수 있고, 수급자들의 자활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지방정부가 지역특성에 맞는 자활지원 모형을 개발하고 다양한 지역자원을 활용할 수 있도록 촉진하기 위해 다양한 인센티브가 구상될 필요가 있다. 특히 자활공동체에 대한 지원책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지자체가 창의력을 발휘해야 한다. "∼를 지원할 수 있다"로 되어 있는 규정이 실제로 적용된 모델개발이 절실한 것이다.
넷째, 보다 근본적이면서도 필수적인 과제가 '자활을 위한' 일자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보건, 복지, 환경, 교육 등의 분야에서 취약계층의 능력에 적합하면서도 공익적인 일자리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무료간병을 대폭 확대함으로써 환자를 돌보느라 자활사업에 참여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지원하고, 동시에 다른 사람의 일자리를 만드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간병, 가사도우미, 숲가꾸기 등의 분야에서 10만개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당면한 운동목표가 되고 있다.
실효성 여부를 떠나 자활지원사업이 우리 사회정책의 전면에 등장한 것만 해도 큰 성과이자 진출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부족한 예산, 취약한 전달체계, 한국적 모델의 부재 등은 이 제도의 목표와 과제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이의 극복을 위해서는 10만개 일자리 확보, 전담공무원 30% 확충, 근로소득 공제율 평균 20%로 확대, 자활지원대상자 확대를 위한 시행령 개정 등이 과제로 대두되었다. 또 지자체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자활사업에 대한 지자체 평가를 민간단체가 실시하고 이를 공개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자활지원사업의 활성화 정도는 곧 그 지역사회의 통합적 복지운영의 수준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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