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지대 틈 속에서 힙겹게 민초는 자라고
월간 복지동향/2001 :
2001/05/10 00:00
지난 4월 19일 4.19묘역 참배를 하면서 영정을 모신 곳으로 계단을 올라가고 있었다. 언덕배기 오른쪽으로 많은 철쭉꽃이 피를 먹고사는 민주주의의 화신처럼 힘차게 피어나고, 그 많은 줄기 뻗어 오른 가지 아래 틈 사이에 끼어 아주 키가 작은 제비 꽃 가녀린 서너송이가 하나의 뿌리에서 잎파리 사이로 삐쭉 외롭게 피어 있었다. 언제는 소수였던것이 이제는 제도권이 되고 그 사각지대 틈 속에서 초라하고 힘겹게 민초가 자라고 있었다. "와, 제비꽃이다! 힘내라, 힘내!" 함께 동행하던 상담전공 노교수님께서 흰머리를 수그리면서 가던 길을 되돌아와 어디에 있냐고 물어보셨다. "수많은 것들 중에서 하나를 보시는군요! 나는 못 보는데 어찌 보셨나요?", "상처를 가진 사람들과 살다보면 그래요. 맨날!"
우리는 함께 늦은 점심시간 수제비를 먹으면서 부시 정부의 보수성과 식민지 학문에 가까운 어쩌면 한국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다. 특히나 한국 상황과는 무관하게, 미국식으로 접근하는 연구방법에 대한 성토로 이어졌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죄인입니다." 고개숙인 교수님의 하얀 머리가 연륜을 말해주는 듯하여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가시 방석에 앉아있었다.
지하철에서 앞으로 보다 빈곤 환경에 있는 아동, 청소년에 관심을 가지시기로 약속을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내 마음속엔 용기와 따뜻함이 오래 남아있었다.
해마다 5월이 다시 오면 광주사태의 피끓는 아픔을 생각하던 시대가 가고 복지선진국가라서 그런지 결식아동청소년의 문제가 심심찮게 신문의 큰 글자를 장식하였다. 그래도 늘 아쉬웠던 것은 우리들의 미래를 이끌어갈 다음 세대들의 문제-빈곤, 결식, 방임, 학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교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IMF이후 급증한 실직자들이 백만을 넘어서고 절대빈곤층이 급증하여 UNDP와 참여연대의 빈곤층에 대한 숫자 발표에 대해 논쟁이 분분하여 빈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가도 또 슬그머니 다른 이슈들에 의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다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지난 25년 간 도시빈민과 가장 가까이 살을 대고 살아온 내가 사회복지 공부를 하기 전에 빈민선교를 헌신적으로 하여 목회현장에서 일을 할 때나 올해 사회복지대학원을 졸업하고 두번째 석사학위를 받게된 큰 변화가 있었음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빈곤에 대한 두 가지 시각이 혼재한다는 것이다. 그 하나는 소득을 중심으로 빈곤선을 계산해내고 그들을 명명하여 저소득 계층으로 분류하고 결식아동은 식권이나 상품권을 나누어주고 노숙자 실직자들에게 생계지원비로 겨울나기 지원비로 돈을 나누어주며 대책마련 실적보고로 위안을 삼고자 하는 것이다.
사회복지의 전문성이 결여된 다수의 공무원이나 언론에서만 「저소득계층 혹은 저소득층」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지는 않는다. 사회복지 전문 교수님들도 빈곤 아동 청소년의 문제나 복합적인 빈곤문제에 대한 사회복지 통합적인 접근대책을 마련하여야 함에도 '저소득층'이라고 명명된 논문이나 발제문을 발표한다.
사회, 심리, 정서적인 빈곤과 문화적인 빈곤으로 70년대 사당3동 판자촌에서 물지게를 같이 지고 살았던 때와 IMF를 치루고 극심한 사회 병리 현상이 미친 사람 머리 속처럼 엉겨서 풀어지지 않는데도 빈곤의 문제를 '소득'이 낮은 계층의 문제로 축소시켜 대안을 제시한다.
뿐만 아니라 민간에서 실시되고 있는 대안을 무시하기도 한다. 빈곤가족의 문제나 빈민층이 밀집한 지역사회 속에서의 다양한 문제들이 지역사회를 변화시키고 생태환경에서부터 개인의 문제로 접근하며 단지 수혜자(클라이언트)가 아니라 적극적인 문제 해결자로 또 과거의 병리현상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을 풀어나가는 해결중심가족치료기법 나아가서 빈곤문제 해결의 출발을 빈곤의 영성치료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노력에 대해서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정말로 답답하기만 하다.
지난 97년 IMF이전부터 지금까지 결식아동들의 상처나 힘겨움은 외면하려 하고 배고픈 아이들의 급식을 위한 식당 이용 식권과 방학중 1개월치 상품권 지급 등으로 일관하는 공무원들의 시정되지 않은 실적중심의 행정. "할머니가 계시니까", "누나가 있으니까" 등등의 이유로 보건복지부의 저녁급식에서 조차도 제외된 아이들.
안양 7동과 은평구청의 경우는 급식을 위해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식권을 15일마다 동사무소에 부모들이 직접 받으러 가야 하는 일. 부모들은 공무원들의 근무시간에 맞추어 일하다 말고 식권을 받으러 가야하고 자녀를 굶기는 창피를 당해야 하는 일. 다른 친구들은 돈을 내고 사먹는데 아이들은 식권을 내야해서 창피하다고 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아동이 직접 싸인을 해야 저녁급식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노숙자들이나 결식노인들은 결코 싸인을 하지 않아도 밥을 먹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더욱 평택의 경우 본 회(한국부스러기복지선교회)에서 결식아동으로 선정하여 통합적인 사회복지 접근 방식의 지원을 받는 아동이 80여명이 지난 3년간 지원받았음에도 평택 시청에서는 결식아동이 39명이라고 발표하고 위의 '신나는집'에 전혀 중식과 석식 급식 지원을 하지 않는 일. 또 After School 개념인 방과후 아동지도가 이 땅에 수입되어 와서 가족복지, 지역사회복지, 아동교육복지 및 지역주민 조직과 학교생활 적응과 지지를 지난 20여 년간 실행하였던 공부방 활동의 정당성을 멀찌감치 밀어내 버린 일.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에서 결식아동과 아동복지교육센터 '신나는 집' 사업비로 지원되던 2억원이 2001년부터 확실하게 중단된 뒤 알콜중독 노숙자 등등에게 일인당 7만원씩 자활비로 지급된 일 . . .
그리고 또 있다. 민간재단에 빈민 여성을 위한 교육 및 훈련 프로젝트를 제출하였는데 불행하게도 문맹 여성 및 빈민 여성을 돕는 여성 실무자 훈련 등등에 관한 프로젝트는 보기 좋게 떨어지고 빈곤 퇴치를 위한 거리행진 사업과 빈민여성 심포지움 개최사업은 당첨되었다고 인터넷 게시판에서 보았다.
언제쯤이면 아주 작은 사람들의 상처와 아픔과 분노와 권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소중하게 사람들에게 인식되어질까?
어제는 갈비탕 큰 국그릇에 공기밥 두개를 말아서 땀을 뻘뻘 흘리며 먹고, 아이스크림과 콜라 한 병을 먹고도 아직도 더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그 아이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이 아이들의 정신적, 영적, 문화적, 사회적, 심리적인 빈곤은 누가 해결해 줄 것인가? 5월 5일을 달력에서 없애고 싶은 아이들의 눈망울이 떠오른다.
우리는 함께 늦은 점심시간 수제비를 먹으면서 부시 정부의 보수성과 식민지 학문에 가까운 어쩌면 한국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다. 특히나 한국 상황과는 무관하게, 미국식으로 접근하는 연구방법에 대한 성토로 이어졌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온 죄인입니다." 고개숙인 교수님의 하얀 머리가 연륜을 말해주는 듯하여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가시 방석에 앉아있었다.
지하철에서 앞으로 보다 빈곤 환경에 있는 아동, 청소년에 관심을 가지시기로 약속을 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내 마음속엔 용기와 따뜻함이 오래 남아있었다.
해마다 5월이 다시 오면 광주사태의 피끓는 아픔을 생각하던 시대가 가고 복지선진국가라서 그런지 결식아동청소년의 문제가 심심찮게 신문의 큰 글자를 장식하였다. 그래도 늘 아쉬웠던 것은 우리들의 미래를 이끌어갈 다음 세대들의 문제-빈곤, 결식, 방임, 학대-를 바라보는 시각이 교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IMF이후 급증한 실직자들이 백만을 넘어서고 절대빈곤층이 급증하여 UNDP와 참여연대의 빈곤층에 대한 숫자 발표에 대해 논쟁이 분분하여 빈민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가도 또 슬그머니 다른 이슈들에 의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다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지난 25년 간 도시빈민과 가장 가까이 살을 대고 살아온 내가 사회복지 공부를 하기 전에 빈민선교를 헌신적으로 하여 목회현장에서 일을 할 때나 올해 사회복지대학원을 졸업하고 두번째 석사학위를 받게된 큰 변화가 있었음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빈곤에 대한 두 가지 시각이 혼재한다는 것이다. 그 하나는 소득을 중심으로 빈곤선을 계산해내고 그들을 명명하여 저소득 계층으로 분류하고 결식아동은 식권이나 상품권을 나누어주고 노숙자 실직자들에게 생계지원비로 겨울나기 지원비로 돈을 나누어주며 대책마련 실적보고로 위안을 삼고자 하는 것이다.
사회복지의 전문성이 결여된 다수의 공무원이나 언론에서만 「저소득계층 혹은 저소득층」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지는 않는다. 사회복지 전문 교수님들도 빈곤 아동 청소년의 문제나 복합적인 빈곤문제에 대한 사회복지 통합적인 접근대책을 마련하여야 함에도 '저소득층'이라고 명명된 논문이나 발제문을 발표한다.
사회, 심리, 정서적인 빈곤과 문화적인 빈곤으로 70년대 사당3동 판자촌에서 물지게를 같이 지고 살았던 때와 IMF를 치루고 극심한 사회 병리 현상이 미친 사람 머리 속처럼 엉겨서 풀어지지 않는데도 빈곤의 문제를 '소득'이 낮은 계층의 문제로 축소시켜 대안을 제시한다.
뿐만 아니라 민간에서 실시되고 있는 대안을 무시하기도 한다. 빈곤가족의 문제나 빈민층이 밀집한 지역사회 속에서의 다양한 문제들이 지역사회를 변화시키고 생태환경에서부터 개인의 문제로 접근하며 단지 수혜자(클라이언트)가 아니라 적극적인 문제 해결자로 또 과거의 병리현상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가능성을 풀어나가는 해결중심가족치료기법 나아가서 빈곤문제 해결의 출발을 빈곤의 영성치료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노력에 대해서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래서 정말로 답답하기만 하다.
지난 97년 IMF이전부터 지금까지 결식아동들의 상처나 힘겨움은 외면하려 하고 배고픈 아이들의 급식을 위한 식당 이용 식권과 방학중 1개월치 상품권 지급 등으로 일관하는 공무원들의 시정되지 않은 실적중심의 행정. "할머니가 계시니까", "누나가 있으니까" 등등의 이유로 보건복지부의 저녁급식에서 조차도 제외된 아이들.
안양 7동과 은평구청의 경우는 급식을 위해 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식권을 15일마다 동사무소에 부모들이 직접 받으러 가야 하는 일. 부모들은 공무원들의 근무시간에 맞추어 일하다 말고 식권을 받으러 가야하고 자녀를 굶기는 창피를 당해야 하는 일. 다른 친구들은 돈을 내고 사먹는데 아이들은 식권을 내야해서 창피하다고 하고, 또 어떤 곳에서는 아동이 직접 싸인을 해야 저녁급식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노숙자들이나 결식노인들은 결코 싸인을 하지 않아도 밥을 먹을 수 있는데도 말이다. 더욱 평택의 경우 본 회(한국부스러기복지선교회)에서 결식아동으로 선정하여 통합적인 사회복지 접근 방식의 지원을 받는 아동이 80여명이 지난 3년간 지원받았음에도 평택 시청에서는 결식아동이 39명이라고 발표하고 위의 '신나는집'에 전혀 중식과 석식 급식 지원을 하지 않는 일. 또 After School 개념인 방과후 아동지도가 이 땅에 수입되어 와서 가족복지, 지역사회복지, 아동교육복지 및 지역주민 조직과 학교생활 적응과 지지를 지난 20여 년간 실행하였던 공부방 활동의 정당성을 멀찌감치 밀어내 버린 일.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에서 결식아동과 아동복지교육센터 '신나는 집' 사업비로 지원되던 2억원이 2001년부터 확실하게 중단된 뒤 알콜중독 노숙자 등등에게 일인당 7만원씩 자활비로 지급된 일 . . .
그리고 또 있다. 민간재단에 빈민 여성을 위한 교육 및 훈련 프로젝트를 제출하였는데 불행하게도 문맹 여성 및 빈민 여성을 돕는 여성 실무자 훈련 등등에 관한 프로젝트는 보기 좋게 떨어지고 빈곤 퇴치를 위한 거리행진 사업과 빈민여성 심포지움 개최사업은 당첨되었다고 인터넷 게시판에서 보았다.
언제쯤이면 아주 작은 사람들의 상처와 아픔과 분노와 권리가 제도적으로 보장되고 소중하게 사람들에게 인식되어질까?
어제는 갈비탕 큰 국그릇에 공기밥 두개를 말아서 땀을 뻘뻘 흘리며 먹고, 아이스크림과 콜라 한 병을 먹고도 아직도 더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그 아이는 중학교 1학년이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이 아이들의 정신적, 영적, 문화적, 사회적, 심리적인 빈곤은 누가 해결해 줄 것인가? 5월 5일을 달력에서 없애고 싶은 아이들의 눈망울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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