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을 6월 항쟁을 분기점으로 하여 우리 사회는 권위주의체제로부터 민주주의체제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처해있다. '돌진적 근대화'를 수행하였던 60년대부터 80년대 중반까지의 권위주의체제는 성장이라는 목표를 향하여 전국민을 총동원하던 체제였다. 이러한 구 권위주의체제는 돌진적 근대화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였지만 그 과정에서 독점적 성격과 배제적 성격을 내재화하게 되었다. 87년 6월 항쟁은 바로 이러한 독점적이고 배제적인 체제에 대한 전국민적 항쟁이었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 국민적 항쟁에 의해 독점과 배제의 체제는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87년 6월 항쟁 이후의 일련의 민주주의 이행의 과정은 바로 이러한 독점과 배제의 패러다임을 극복하고 새로운 체제를 형성하여 가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독점과 배제의 패러다임에 대한 대안적 패러다임의 성격을 나는 공생과 참여의 패러다임이라고 생각한다. 독점이라는 것이 각종 사회경제적 자원들을 소수의 엘리트들이 통제하는 질서를 의미한다고 할 때, 공생의 패러다임은 다수의 민중들이 사회경제적 자원에 접근하고 그것을 향유할 수 있는 체제를 의미한다. 또한 소수에 의해 한 사회의 의사결정과정이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것을 배제라고 할 때, 참여는 작은 시민들이 자신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의사결정에 접근할 수 있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의 참여는 다양한 수준에서 관철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87년 6월 항쟁 이후 우리 사회에서 표출되고 있는 아래로부터의 시민적 운동들은 모두 '아래로부터의 참여'를 위한 운동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동안 밀실에서 이루어지던 정부의 각종 의사결정에 대한 시민들의 참여, 노동자들의 경영참여, 소액주주들의 감시와 참여, 대학 내에서의 학사행정에서의 학생참여, 사찰 재정회계에의 평신도들의 참여는 그러한 예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독점과 배제의 패러다임이 공생과 참여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여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로 찾을 수 있다. 먼저 현재와 같은 독점과 배제의 패러다임으로는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적 안정성이 확보될 수 없다는 것이다.예컨대 시민사회와 노동부문의 활성화에도 불구하고 제도정치권에는 노동자계급을 대표하는 집단적인 정치세력이 부재하다. 시민사회의 진보세력이 제도정치권에 진출하지 못함으로써 제도정치세력들은 잠재적인 경쟁세력을 없앨 수는 있었으나, 제도정치와 시민사회의 괴리로 인하여 정치적 불안정은 지속되게 된다. 시민사회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배제의 정치는 끊없는 정치불안을 낳는다. 87년 이후 한국의 정치발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불안정이 숙명적으로 따라 다니는 것의 근본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또한 현재와 같은 독점과 배제의 구조는 더 이상 더 이상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도 부정적인 것이라고 생각된다. 예컨대 사회보장제도가 없으므로, 구조조정 시 인력조정은 더욱 어려워지고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인력조정 자체를 반대하는 투쟁을 '극렬하게' 해야 하는 불가피성이 구조적으로 주어진다. 노동자로 하여금 '사생결단'의 구조조정 반대투쟁을 하도록 만드는 것은 역설적으로 적극적인 사회보장제도의 미발달에서 비롯된다. 물론 이처럼 사회보장제도가 발전하지 못한 데에는 기업가들과 보수진영의 '적극적' 반대가 큰 요인을 이룬다. 어떤 점에서 한국의 기득권층이 미시적으로는 자신의 '계급적' 이해에 부응하는 것 같으나 거시적인 면에서는 자신의 이해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경우도 많다.

다음으로 많은 기업가들의 경우 협소한 '경영권' 논리에 매몰되어 있어서, 노동자들의 참여를 불온시하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배제의 논리로 기업가들이 의식이 고착되어 있는 것이다. 그 결과 노동자들의 참여가 보장됨으로써 누릴 수 있는 기업의 '존재론'적 안정화를 기업들은 '향유'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점에서 노동자들이 참여함으로써 노동자들은 기업 생존의 동반자로 전환되게 되는데, 노동자들이 기업생존의 동반자가 될 기회마저 주어지지 않는다. 주지하다시 중간경영자마저 '머슴'으로 인식하는 배제적 태도가 기업가와 노동자의 동반자적 관계를 가로막고 있다.

이런 독점과 배제의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가의 성격과 행위에 일대 전환이 나타나야 한다. 과거의 개발독재체제 하에서 국가는 장기적으로 국민의 이해에 기여한다는 명분--'경제성장을 하게 되면 전국민이 잘살게 된다'는 논리--하에 소수의 독점적 엘리트들을 집중지원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소수 기득권층과 자본가층의 '계급적 이해'에 복무하는 방향으로 왜곡되어갔다. 이제 국가는 사실 공공성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그 활동의 방향을 전환하여야 한다. 즉 국가는 '잘 나가는' 독점적 강자(强者)를 위해서가 아니라, 시장의 약자와 시민사회의 약자들의 보호하고 빈익빈부익부를 야기하는 강자의 독점적 논리를 공적으로 통제하는 기구가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성장이라는 이름 하에 시장의 강자를 지원하는 것이 기본방향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바로 시장과 시민사회의 약자를 지원하고 그들의 '주변화'를 상쇄하는 공적 정책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에는 국가의 막강한 권력 하에서 시장이 성장하는 과정이었다. 이제 시장은 성장하여 이제 '자립적인' 힘으로 시민사회를 성장의 논리로, 또한 자본의 논리로 지배하는 단계로 진입하였다. 어떤 점에서 국가는 시장으로부터 '자립화'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공적 기능을 수행하여야 한다.

또한 더나아가 국가는 과거와 같은 배제의 논리가 아니라 참여를 통한 투명성 제고를 촉진하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 참여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패를 극복하고 투명한 사회를 만들어가는데 중요한 계기가 된다. 아래로부터의 시민참여는 권력의 횡포를 제약할 수 있고 권력자들 간의 담합을 감시하고 예방할 수 있다. 이제 국가는 참여의 미학을 국가정책화하는 방향으로 자기변신을 하여야 한다.

공생과 참여의 패러다임에 기초한 사회적 국가(social state)를 향한 새로운 전진. 이것인 우리 시대가 지향하여야 할 기본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조희연 / 성공회대 시민사회복지대학원장
2001/06/10 00:00 2001/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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