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자활사업의 사회연대적 경향

한국의 자활사업은 법이 제정되고 사업이 시작되면서 기본이념과 정책방향 수립을 둘러싼 힘 겨루기가 본격화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1999년 기초생활보장법의 한 부분으로 자활사업이 포함될 당시, 법 제정의 辯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현재 추진되고 있는 자활사업의 기본방향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이는 2001년 현재 세계 각국의 자활사업을 지배하던, 그리고 1999년 한국사회를 떠돌던 두 가지 경향간의 대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첫째는 반소외와 사회통합을 지향하는 사회연대적 경향이고, 둘째는 인적자본개발을 통한 취업 및 고부가가치 창출을 지향하는 신자유주의적 경향이다. 이 둘간의 대립은 1997년 이후 지금까지 한국사회에서 지속적으로 가시화 되고 있다.

하지만 1999년 자활사업이 도입될 당시에는 후자의 경향, 즉 개인의 빈곤탈출 및 고부가가치창출 노력을 중시하는 신자유주의적 빈곤정책이 지배적 경향을 이루고 있었다. 따라서 기초생활보장제도가 매우 전향적 관점에 따라 제정되었을지라도, 자활사업은 그 전향적 관점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사지 멀쩡한 빈곤계층에게 생계비를 제공하는데 따른 부담감을 더는데 필요한 보완장치 혹은 들러리로서의 한계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 보완장치는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위기에 직면하고 자신의 제도적 위상을 공고히 하는 전환기적 노력을 하게 된다. 발단은 근로능력이 있는 실직빈곤계층에게 생계비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일을 시키려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다. 대량실업이 발생하여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인적자본이 취약하여 평시에도 취업이 곤란한 실직빈곤계층에게 공공근로가 아닌 정상적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한 마디로 자활사업은 개점휴업상태에 놓일 위험에 처해 있던 것이다. 이 때부터 자활사업은 진로수정작업에 착수하였고, 그것이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관련한 보완적 위치에서 '자기 완결적 위치'로의 위상 재정립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새로운 방식의 모색으로 발전하였던 것이다.

이를 위한 새로운 논거는 당시 노동시장에 진입할 수 없었던 실직빈곤계층에게 새로운 유형의 일자리(사회적 일자리)를 제공하는 서구 제 3 섹터 방식의 실험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것은 자활사업의 두 경향 중 하나인 사회연대적 경향으로, 기존 한국 자활사업을 이끌던 주체들의 확고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 낸 부분적인 성과는 자활사업의 기본방향을 사회연대성의 강화로 이동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처럼 활성화된 민간단체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지원은 자활사업의 방향전환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 방향전환은 첫째 조건부 수급자 및 차상위계층의 열악한 인적자본, 건강상태, 근로여건으로 인해, 둘째 구조적으로 산업재편과정에서 나타나는 제조업부문의 고용인력 감소경향과 불완전한 노동시장유연화로 인해 '불가피한 것'이었다. 이는 자활사업의 사회연대적 경향이 몇몇 활동주체에 의한 선택이었을 뿐 아니라, 구조적 결과이기도 했음을 말해준다.

취약한 사회연대문화로 인한 자활사업의 停滯

비록 역사가 일천해도 한국의 자활사업이 그 규모와 추진주체의 역동성의 측면에서, 외국사례에서 발견하기 힘든 놀라운 잠재력을 갖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자활사업은 외국의 그것에 비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한계를 갖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이미 많은 연구자들이 자활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었다. 그 중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세 가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회보장제도 내에서 자활사업의 위치를 명확히 설정해야 하며, 둘째 자활사업에 대한 자발적 참여를 도출할 수 있는 근로유인책을 제시해야 하며, 셋째 실직빈곤계층의 다양한 욕구에 걸 맞는 사업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하지만 정작 이 문제들은 기능적이며, 보완적 성격을 갖는데 불과하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연대원칙에 근거한 좀더 강한 추진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한국 자활사업은 '파괴된 사회연대문화'로 인해 결정적인 취약점을 갖게 된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현재 우리가 소비하는 공동체정신과 자기 희생적 미담이 대중매체의 몇몇 생산자들이 가공해 낸 스펙타클에 불과하며, 그것이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우리사회는 사회연대문화를 완전히 상실하였고, 낮에는 가혹한 경쟁을 통해 다른 구성원을 배제하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면 미담이라는 가공된 스펙타클을 소비하며 우리사회 어딘가 그리고 누군가 사회연대성을 담보하고 있다는 부도덕한 안도감에 편한 잠을 이루는 이중성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자활사업을 역동적으로 추진하는데 필요한 사회연대성에 대한 문화적 체험이 결핍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 지역사회 차원에서 실직빈곤계층의 사회통합을 돕고 견인하기 위한 세력과 문화가 매우 취약하며, 이들을 지원하는데 필요한 제도마저 부실한 실정이다. 사실 자활사업의 사회연대적 경향이 천명하는 실직빈곤계층을 위한 '사회적 일자리 창출'과 이를 통한 '지역주민의 삶의 질 향상'은 매우 아름다운 구호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를 위해 사회연대성을 지역사회문화로 정착시키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제도로 발전시키는데 필요한 도덕적 헤게모니가 취약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도덕적 헤게모니는 지역사회에서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조차 자활사업의 도덕성과 효용성을 지지함으로서 자본주의적 과열경쟁에서 밀려난 약자를 도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하는 문화적 힘이다. 이 힘은 한편으로 우리 사회 각 주체의 적극적 참여를 유도하고,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실천을 가로막는 제도적 장애물을 제거함으로서 사업을 활성화시킨다.

이 점에서 현재 한국 자활사업이 가장 심각하게 결여하고 있는 것은 제도적 불안정성, 사업 프로그램의 부족, 근로유인체계의 부재보다, 이 모든 것을 관철시킬 수 있는 사회연대의 문화인 것이다.

사회연대에 근거한 자활사업의 아름다움

서구의 자활사업은 우리보다 긴 역사를 갖고 있으며, 나름대로의 철학에 근거해 선구적 실험에 매진하고 있다. 이 점에서 이 역사와 철학이 배어있는 유럽 자활사업의 한 사례를 통해 한국자활사업을 위한 작은 시사점을 발견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프랑스의 사회적 기업 앙비(Envy)는 사회연대문화에 대한 체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보여주고 있다. 앙비는 가전제품을 재활용함으로서 환경을 보호하고, 이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서 장기실업자의 실업문제를 해결하고, 재활용된 상품을 지역 저소득계층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는 매우 복합적인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프랑스 전역에 수 십 개의 체인을 구축한 이 기업은 지역 비영리민간단체가 모체가 되었고, 수익성보다는 사회적 유용성을 지향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기업의 장점은 지역사회 자원을 동원함에 있어 사회연대문화가 어떻게 물질화(혹은 구체화) 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이를 세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앙비는 고장났거나 버려진 가전제품(냉장고, 세탁기, 가스렌지)을 수거하는 과정에서 프랑스의 가전제품 유통회사(Darty)의 전폭적 지원을 받는다. 새 가전제품을 설치해 주며 낡은 가전제품을 수거하던 이 기업은 구제품을 민간업자에게 넘기는 대신, 사회적 기업에 무상 지원하여 자활사업 활성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한국의 가전제품회사들도 자신이 만들어낸 상품을 재활용하는 자활공동체에게 그러한 지원을 하는 그림을 그려보게 한다.

둘째 앙비는 지역의 유휴공간을 자치단체로부터 무상으로 임대받아 활용하고 있다. 사무실 건물과 수리공장, 창고, 매장, 주차장 등 그 규모는 웬만한 중소기업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 건물은 과거 프랑스 가스공사가 식당으로 활용하던 것이었으나, 기업이전에 따라 유휴건물로 남게 되자 사회적 기업에 무상 임대하였던 것이다. 이 사례 또한 한국의 수 많은 공기업과 자치단체가 현재 보유하고 있는 유휴공간과 건물을 자활공동체에 무상 임대하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보게 한다.

셋째 앙비는 비영리민간단체가 모체가 된 기업이다. 왜 시민단체가 생산공간에 참여하고 있는가 설명할 필요가 있다. 시민단체들은 노동조합과 달리 생산공간이 아니라, 소비공간을 통해 자신의 존재이유를 발견한다. 그러나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사회적 유용성을 갖는 경제활동이 시장과 국가로부터 버림받을 때, 비영리민간단체는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 이 점에서 그들은 중요한 갈림길에 놓여 있다. 하나는 이러한 사회적 유용성을 이류노동시장으로 전락시켜 가진 자들만이 소비할 수 있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비영리민간단체 스스로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이를 가치있는 사회적 노동으로 재평가해 내는 것이다. 여기서 또 한번 한국 비영리민간단체들이 사회적 유용성을 가진 노동의 가치를 복원하는데 참여하여 삶의 질을 높이고, 그 동안 간과해 왔던 노동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상상해 본다.

노대명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초빙연구원
2001/06/10 00:00 2001/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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