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5월 30일 건강보험재정안정과 의약분업조기정착을 위한 종합대책을 발표하였다.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5년 내 건전재정기조를 회복하기 위하여 정부는 지역보험에 50% 지원 확충, 보험자는 보험료 징수 및 보험자 경영합리화를 이룩하며, 의약계는 급여기준 합리화와 적정진료에 협조하고 가입자는 급여에 상응하도록 보험료를 연차적으로 인상하도록 한다. 단기적으로는 일부를 금융권에서 차입하고 일부는 단기 대책으로 재정을 개선하기로 하였다. 이 과정에서 금년도 추가 보험료 인상은 없애되 외래 본인부담금을 인상하기로 하였다.

의약분업 과정의 국민 불편사항을 해소한다는 의미로 주사제를 분업대상에서 제외하였으며 만성질환자 처방전 반복사용을 가능하게 할 것이로 발표하였다.

그리고 근본적 재정안정을 위하여 건강보험증을 전자카드화하고 의료자원의 적정배치를 유도하며 포괄수가제를 실시하고 건강보험에 부가하여 노인요양보험을 도입하며, 공공의료기관의 기능을 확충하겠다고 하였다. 이러한 대책을 강력하고 일관성 있게 추진하기 위해서 국민건강보험재정건전화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이러한 요지의 재정안정화 및 의약분업 조기 정착 방안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첫째 종합대책을 발표하기까지 의사결정과정에 큰 문제점을 안고 있다. 작금의 상황은 그야말로 건강보험이 총체적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으로 풀이된다. 건강보험이라는 것은 엄연히 사회보험으로서 그 정책방향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건강보험을 둘러싼 많은 이해당사자(Stakeholder)들이 함께 결정해야 하는 것이 사회보험의 가장 중요한 특성이자 지켜야 할 원칙이기도 하다. 또한 의약분업 역시 이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주도한 개혁정책이라기보다는 시민사회단체와의 합의하에 이뤄진 개혁이었다는 점에서 기존의 개혁과 차별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건강보험 재정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나 의약분업을 정착화하기 위한 방안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안을 제시하고 국민들이 그것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

위기 상황이 도래한 순간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시민사회단체와 의약계, 그리고 정부가 토론과 합의를 거쳐 대책안을 마련할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정부가 단독으로 그것도 전혀 공개되지 않은 밀실에서 작성된 대책은 대책안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시민사회단체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더욱이 건강보험과 관련하여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각종 위원회를 법적으로 두고서도 이러한 의사결정기구를 통하지 않았다는 점은 정부가 애초부터 의사결정과정에서 국민들을 참여시킬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정부의 종합대책안을 받아들일 수 없음은 이러한 절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개별적인 대책에서도 건강보험과 보건의료에 있어서의 정부의 궁극적 의지가 국민의 건강권을 보장하고 형평성을 유지함에 있지 않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첫째 수가 인하에 대한 부분이 그러하다. 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재정위기 원인 분석 결과를 보더라도 최근 악화된 건강보험재정상황은 상당부분 폐·파업 사태에서 의료계를 무마하기 위하여 무리하게 인상된 수가에 기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수가인하에 대한 계획은 조금도 없다는 점은 문제의 본질을 회피하는 것이며, 힘을 가진 보수세력의 눈치를 보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둘째 인터넷을 통한 진료내역 확인이나 스마트 카드를 이용한 허위부당청구 방지 방안에 있어서도 문제점을 안고 있다. 우선 이러한 대책이 허위부당청구를 얼마나 막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도 회의를 품고 있는 가운데 개인사생활정보의 공개 가능성이 심히 우려된다. 사생활 중에서도 가장 비밀이 보장되어야 할 질병에 관련된 정보가 누출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는 절대로 실시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셋째 가장 직접적이며 현실적인 문제로서 외래 본인부담금의 인상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현재 외래 이용을 많이 하는 이들은 주로 어린이와 노인으로서 질병 뿐 아니라 사회 경제적으로도 취약계층이다. 따라서 이들이 부담하는 외래본인부담금은 소폭으로 인상되더라도 가계 및 개인에게는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며, 이로 인하여 의료이용이 제한되는 경우 더 큰 질병으로 자라 결국 총 지출은 절약되지 않을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본인부담금을 높이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재정지출을 줄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지출을 줄이지 못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현재의 재정 위기를 사회적 약자에 전가하고자 하는 대책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넷째 의약분업에서 주사제를 제외하는 것은 왜곡되어 온 의약분업 정책을 다시 한번 왜곡시키는 것으로서 의약분업의 원 취지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 사항이다. 의약분업 실시 이전부터 전세계에서 주사제의 남용이 높은 우리 나라의 약물 남용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주사제를 의약분업에서 예외로 하는 것은 정책의 본말에 대한 인식부족의 결과라고 밖에 볼 수 없다. 현재 주사제 처방이 남발되는 것은 주사제 처방에 대한 처방료 설계의 잘못에 기인한 것으로서 주사제 처방을 줄이고도 재정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 다른 방법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단지 의료계를 달래면서 재정지출을 줄이고자 하는 이러한 식의 방식은 의약분업의 원취지를 손상시키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다섯째 보충적 민간의료보험을 도입하고 노인요양보험을 도입함에 있어서 임의가입 방식을 채택하겠다는 것은 그나마 어렵게 이룩한 사회보험을 정부 무너뜨리겠다는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 동안 경총과 전경련등 사회 보수세력들은 호시탐탐 민간의료보험 도입을 주장해 왔다. 우리 나라와 같이 사회보험이 불안정한 경우 민간의료보험이 도입될 경우 사회보험방식의 건강보험은 "값싸고 질 낮은" 의료보장시스템으로 전락하여 의료제공자의 외면을 받게 되고, 소득재분배 기능을 통한 저소득층 보호나 보장성의 확대 등은 더 이상 논의를 할 여지조차 없게 된다. 이러한 위험성을 안고 있는 민간보험을 정부에서 앞장서서 들여오겠다는 주장은 현 정부가 과연 국민의 정부라는 점을 의심하게 한다. 더욱이 노인요양보험을 임의 가입 방식으로 하겠다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빈부의 격차가 심하게 문제가 되고 있는 노인보호의 문제점을 가속화시키겠다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건강보험에서 노인요양보호서비스를 떠안고 있어 재정 악화요인으로 작용할 것이기 때문에 둘을 분리하겠다는 발상에서 출발하였다면 사회적 합의를 거쳐서 새로운 사회보험으로 이룩하여야 할 것이다. 만일 이러한 목표달성을 한번에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라면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침을 정하는 것이 현실적이며 수용가능할 것이다. 전국민이 한번에 가입하기 어렵기 때문에 임의 가입 방식을 채택하겠다면 이미 사회보험방식을 포기한다는 의미이며, 그러한 경우 노인요양보호에 있어서의 사회적 안전망은 국가적으로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책 전반에 나열된 방안들은 건강보험재정의 근원적인 문제점을 애써 회피하고 있다. 건강보험재정의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의약분업과 수가 인상으로 악화가 가속화되기는 하였으나 곧 재정의 심각한 위기 상황이 도래될 것이라는 것은 수년전부터 예측하여 왔던 바이다. 따라서 건강보험을 저부담 저급여 체계에서 적정부담 적정급여 체계로 전환하고, 행위별 수가제 및 기형적인 의료공급체계를 정상화하여 재정의 누수요인을 없애기 위한 근원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한 모든 대안은 미봉책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종합할 때 최근 정부에서 발표한 건강보험재정대책과 의약분업 조기 정착화 방안은 총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시민사회단체가 받아들여 협력할 수 있는 안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시민과 의약계, 정부가 머리를 맞대고 합의를 이루어 낼 수 있는 협상 테이블을 이제라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협상 과정에서 상정되는 과제는 보장성을 강화하고 형평성을 유지 증진하는 원칙을 견지하는 가운데 효율성을 극대화시키는 것들이어야 한다. 이러한 전제조건이 무시되는 한 역사적으로 어렵게 지켜온 건강보험체계는 후퇴하고 말 것이며 이는 우리 나라 사회보장 역사를 후퇴시키는 크나큰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문혜진 /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정책부장
2001/06/10 00:00 2001/06/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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