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업법에 따른 사회복지시설평가의 일환으로 장애인생활시설을 평가하면서 일부에서 불만에 부딪혔다. 여러 불만들 중에서 가장 큰불만은 사회복지서비스의 특성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평가를 받는 재화 또는 서비스가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 있는 것이라면 평가는 의외로 쉬울 수 있다. 예를 들어, 컴퓨터라면 펜티움 Ⅲ에 RAM이 36메가 등등, 구체적으로 정의를 하고 그 성능을 평가하면 된다. 그러나, 사회복지서비스는 그렇게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 없고, 따라서 평가는 쉽지 않다.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평가는 기본적으로 시설의 환경과 사회복지서비스라는 요소에 대한 평가이다. 따라서, 시설의 환경에 대한 평가는 비교적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 있기 때문에 객관적인 지표로 평가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복지서비스는 구체적으로 정의하기 어렵기 때문에 객관적인 지표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사회복지서비스에 대한 평가는 평가도구를 아무리 잘 만든다고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문제를 안고 시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깨끗하고 넓은 식당을 갖추고 방에는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는 시설과 공간이 좁고 에어컨도 없는 방안에서 함께 식사를 해야 하는 시설을 비교한다면 전자가 더 좋은 시설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전자가 더 나은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설인가? 그렇지는 않을 수 있다. 후자의 시설에 근무하는 직원이 더 헌신적으로 장애인생활자를 대하여 생활자들이 더 만족스러운 생활을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사회복지서비스의 질은 후자가 더 좋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차이는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생활시설에서 며칠을 장애인들과 함께 지내면서 평가를 하게 되면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평가는 하루 동안에 끝내야 했고 객관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점 때문에 많은 평가문항들은 서류를 통해서 확인하는 문항이었다. 뿐만 아니라, 처음 평가를 실시하는 것이어서 아직도 평가도구는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많은 생활시설에서는 현재의 평가도구가 사회복지서비스의 수준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며 평가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시설의 직원들은 평가가 장애인생활자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하였다.

시설평가를 통해서 우리 나라 사회복지서비스의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일부에서는 아직까지도 생활시설에서는 의·식·주만을 충분하게 해결해 주면 된다는 의식을 갖고 있기도 했지만 많은 시설들이 장애인들의 재활을 위한 노력도 함께 병행하고 있었다. 아직 필요한 서류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시설들도 상당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시설에서도 대부분의 직원들은 평가를 통해서 열심히 배워서 장애인 생활자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시설평가를 하면서 한편으로는 감사와 다른 한편으로는 분노를 함께 느꼈다. 대부분의 장애인생활시설 직원들이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근무하고 있어서 외부에서 걱정하는 것과는 달리 상당히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면서 장애인들에게 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직원들, 특히 장애인들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장 직접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생활재활교사들은 1일 24시간을 근무하면서 초인적인 봉사와 희생정신을 보여주고 있었다. 게다가 이들이 받는 월 급여는 초봉이 50만원을 넘지 않고, 상여금을 모두 합쳐도 70만원이 넘지 못한다. 이들의 헌신이 없다면 우리 나라의 사회복지서비스는 제대로 제공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렇지 않아도 업무부담이 과중한 직원들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하면서 스스로에게 분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생활재활교사들은 장애인생활자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식사, 목욕 등 그들의 모든 생활을 돌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낮 동안에는 장애인생활자들을 대상으로 재활프로그램도 운영을 하게 된다. 언제나 장애인생활자들을 돌봐야 하는 생활재활교사들에게는 장애인생활자들의 일상생활과 재활과정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 자체가 상당한 부담이었다. 그러나, 평가에서 사용된 평가도구는 이들이 더 많은 서류를 작성하도록 요구하였다.

대부분의 시설과 직원들은 장애인생활자들의 복리 향상을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더 이상 쥐어짤 수 없을 만큼 열심히 일하고 있다. 마치 한국 축구가 충분한 투자 없이는 더 이상 선수들의 정신력에 호소하여 잘 뛸 수 있도록 요청하는 것에 한계가 있듯이 보건복지부의 지원 없이 사회복지시설 직원들의 헌신과 봉사에 호소하여 장애인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요구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 한계이다. 이미 법정근무시간을 1주일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이겠다는 노·사·정 합의까지 이루어진 상황에서 사회복지생활시설에서는 1일 24시간 근무라는 노동착취가 있을 수 있는가? 그 상황에서 어떻게 생활재활교사들이 장애인생활자들에게 계속 높은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인가?

생활재활교사를 포함하여 생활시설의 직원들은 대부분이 여성, 그것도 미혼여성이다. 남성, 특히 결혼한 남성은 자신이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완전한 희생정신이 있기 전에는 현재의 급여수준으로는 생활시설에서 근무를 계속할 수 없다. 기혼여성의 경우도 돌봐야 할 자신의 가족이 있는데 어떻게 1일 24시간 근무를 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현재 생활시설의 근무환경은 헌신적이고 경험이 많은 직원들이 장애인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 열악한 근무조건은 이들의 이직율을 높게 만드는 가장 직접적이며, 가장 중요한 원인이다.

다른 모든 분야에서처럼 사회복지서비스에서도 경험의 축적에서 전문성이 높아지게 된다. 그러나, 생활시설에서는 직원들이 자신의 가정을 지키면서 일할 수 있는 여건이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경험을 축적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이는 결국 장애인생활자들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수준이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의 개선 없이는 장애인생활자들이 받는 서비스의 수준은 더 이상 높아질 수 없다.

올해에도 생활시설에서는 직원들의 근무조건 개선을 보건복지부에 요청하였다. 믿을 수 없을 만큼 낮은 급여의 인상은 차치하고라도 우선 1일 2교대 근무가 이루어지도록 요청하였으나 예산부족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의약분업과 국민기초생활보장제 시행에 따른 정부의 추가 부담으로 인해 더 이상의 예산 지원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에 비추어 볼 때, 당분간 정상적으로는 생활시설의 근무여건이 개선되기 어려울 듯하다. 따라서, 우리 나라 생활시설의 전근대적인 근무여건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정치적 결단을 이끌기 위해서는 사회복지계와 시민단체가 함께 집단적·체계적으로 개선 요구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선우 /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00/11/10 00:00 2000/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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