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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복지동향/2000 :
2000/10/10 00:00
다시 한번 복지의 의미를 생각함
마르크스에 의하면, 소외는 개인이 공동체적 사회에 존재하고 있던 인간적 유대와 사회적 의존관계에서 벗어나게 되고 그리고 그 개인이 비(非)인격적, 계약적, 수단적 관계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시장을 기반으로 한 부르조아 사회의 가혹한 현실에 종속됨으로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인간이 비(非)인간화된다는 사실, 즉 전체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노동자가 인격적 존재로서의 인간이 아닌 단지 생산수단으로 취급되고 사회적으로 배제되어진다는 사실은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사회의 잔인함을 비난할 때에 사용한 강력한 주제였다. 뒤르켐에게 있어서도 자본주의사회는 경제생활의 탈규제화, 자아를 효과적으로 제어하고 인간과 사회를 효과적으로 통합시킬 의미있는 공동체의 부재상태로 특징지어지는 아노미로 표현된 바 있다.
그 강조하는 바와 표현방식은 비록 다르다 할지라도, 오래 전부터 사회 사상가들에게 비쳐진 자본주의 사회의 진정한 모습이라는 것도, 오랜 신분적 예속과 종교적 질곡에서 고통받아야 했던 중세 봉건제와는 완전히 다른, 모든 인간의 해방과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믿음을 갖게 하는 새로운 사회체계로서 비쳐졌다기보다는 공동체의 상실과 통합의 결여라는 심각한 우려 쪽으로 모아졌던 것 같다.
사실 그들의 우려는 지금까지 자본주의적 발전과정을 밟아온 모든 사회에 있어서 '두 국민(부르조아와 프로레타리아)'의 분립, 또 이들을 양축으로 하는 계급과 다양한 이해집단간의 긴장과 갈등으로 현실화되어 나타났고, 이러한 현상은, 사적 부양체계나 종교에 의해서 해결되는 방식을 원칙으로 삼아오던 복지부문에서, 국가개입이라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새로운 사회적 요구(requirement)의 등장을 불가피하게 만든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복지국가라는 제도적 장치는 (적어도 그 지지자의 입장에서는) 부르조아 사회에서 제공되는 보편적인 복지 서비스를 통하여, 노동자 계급을 비롯한 전 국민을 자본주의적 사회질서에 조화시켜서 사회통합을 증진시키도록 하는 것과 같은 공동체적인 조건을 조성하려는 시도로 간주되어왔다. 그러기에 이것에 소요되는 막대한 재정적 부담은 사회적 긴장완화와 정치적 정당성 확보를 위해 응당 감당해야할 사회적 비용으로 받아드려져 왔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사회적 합의가 손쉽게 형성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오랜 세월에 걸쳐서 가진 자들의 시행착오와 격렬한 계급갈등을 겪는 등과 같은 값비싼 대가를 치룬 끝에 이루어 진 것이었다. 그래서 적어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이 없는 자들에게는 인간적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재산이 보장되어지는 것과 같은 권리, 즉 사회권의 확립과 같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이었고, 이것의 연장선상에서 일부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탈(脫)소외적 및 인간화의 가능성까지 그릴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오늘과 같은 시점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점에 관련된 복지의 역할을 지나치게 과장할 생각은 없다.
거기에는, 복지에 의한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화 효과가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 있는 결과를 가져왔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아직도 명쾌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또 심지어는 비스마르크와 히틀러 같은 극우 반동적 정치가들에 의해서도 근대 자본주의적 사회질서에 노동자 계급을 순치 시켜서 자국의 국민적 통합을 이루기 위한 정략적 수단으로서 사회보장제도를 이용하였던 역사적 사실이 있음을 알고 경계해야 한다.
게다가, 지금까지 (좌파들의 입장에서는) 복지를 통한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화란,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변혁이 없는 상태에서 자본주의적 냉혹한 시장질서를 부드럽게 하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었음을 비판해오고 있고, 또 그 인간화의 현실적 효과가 워낙 미미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착취에서 기인한) 계급간 불평등을 눈감아 주면서까지 국민적 연대감에 의한 사회적 통합을 수용한다거나 체제에 대한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하기는 어렵다는 점이 남아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20세기의 후반부 수십 년 동안 오직 자본의 이익창출과 부의 축적만을 위해 매진해오다 보니, 자본주의의 인간화를 위한 노력에 대해서는 인색하다 못해 오히려 그 잔인함과 폭력성마저 부끄러운 줄 모르고 노정시켜 왔던 것이 우리 사회가 걸어왔던 행적이다. 그 결과 곳간에 먹고 입을 거리는 어느 정도 축적했는지 모르겠지만, 가진 소양은 천민 자본주의의 천박한 속성을 그대로 배양해왔음에 다름 아니다.
근년에 들어서, IMF 관리체제라는 경제위기와 김 대중 정부의 출범이라는 경제적·정치적 변수의 상호작용에 따른 복지개혁조치가 여럿 있었고 반신반의하는 가운데 주목의 대상이 되어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 시행과정상에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는 기득권 및 보수 층의 격렬한 반발과 정부의 일관성 없는 대응방법에 깊은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서구의 역사적 경험이 우리의 타산지석이 될 수는 없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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