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활사업과 향후 2개월

2000년 10월 1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실시되었다. 그러나 자활사업은 이제서야 준비단계에 돌입하게 된다. 당장 생계급여 수급자로 선정된 사람 중 노동능력과 노동의지가 있는 조건부 수급자를 선별해 내고, 이들을 취업대상자와 비취업대상자로 분류한 뒤, 이들이 자활할 수 있도록 가구별 자활지원계획을 수립하고, 이들을 자활지원기관에 의뢰하는 일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활사업은 이 모든 준비를 마치는 12월이 되어야 부분적으로 실시될 것이며, 2001년이 되어야 전체적으로 실시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활사업에 있어 시작 혹은 실시는 상징적 의미를 가질 뿐이다. 정작 2001년 자활사업이 실시된다 해도, 그 목적이 곧 바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계보호사업이 수급자로 선정된 사람에게 일정 액의 생계비를 지급함으로서 그 목적이 달성되는 특성을 갖는다면, 자활사업은 조건부 수급자에게 자활에 필요한 각종 지원을 하여 그가 스스로의 힘으로 삶을 영위할 때, 그 목적이 달성되는 특성을 갖는다. 따라서 자활사업은 시작보다는 준비과정과 그 결과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준비과정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그 성과가 명확하게 드러나며, 이 결과를 통해 사업 전체가 평가되는 특성을 갖게 될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자활사업은 조건부 수급자의 빈곤탈출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그들 중 몇 %가 안정된 일자리와 소득을 확보하고 현재의 지원체계에서 벗어났는가 하는 점이 명확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고, 그 결과에 따라 비판의 대상이 되기 쉽다. 따라서 자활사업에게 앞으로 남은 2개월은 그 성패를 좌우할 매우 중요한 시기이다. 준비가 철저하다면 기대했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빗발 같은 비판 속에서 사업의 방향과 내용을 수정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자활사업은 남은 2개월 동안 준비해야 할 사항을 점검하고 보완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일정한 원칙과 방향에 따라, 그리고 기존의 원칙과 추진체계의 한계를 의식하며 진행되어야 한다.

자활사업의 이상과 원칙

자활사업이 추구하는 이상은 지난 30년 간 그리고 좀더 가까이는 외환위기이후 발생한 '(장기)실업자의 빈곤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직빈곤계층에게 좀더 체계적인 지원을 함으로서 빈곤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국내에서 최초로 시행되는 실험적 성격을 가진다는 점에서 시행착오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까지 이와 관련된 정책적 논의나 실험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전국적인 단위에서 제도, 예산, 인력을 갖추고 시작되는 것은 최초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고려할 때, 시행과정에서 미미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이를 침소봉대 하여 여론을 오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이것이 자활사업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으며, 사업실시에 필요한 준비를 하고, 지속적으로 수정·보완하고자 노력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물론 이 모든 작업은 현재 자활사업을 규정하고 있는 원칙과 추진체계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 자활사업의 준비과정 자체가 바로 이 원칙과 추진체계에 의해 이미 규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활정책이 애당초 어떠한 한계를 갖고 있었으며,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문제점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자활사업은 개방된 체계와 빈곤탈출을 지향하지만, 현실의 자활사업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최저생계비'의 논리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 실제 자활사업이 기초법 속에 자리잡고 있는 한, 모든 자활 프로그램의 지원내용과 수준은 최저생계비라는 금전적 기준에 영향을 받게 되며, 이것이 자활사업의 활성화를 가로막을 우려가 있다.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현재의 자활사업은 생계급여와 자활급여가 동시에 지급되는데 따른 혼란을 겪을 소지가 있으며, 빈곤선 이상의 소득을 보장함으로서 조건부 수급자가 자활사업에 참여할 동기를 유발하는데 - 사실 자활사업은 빈곤탈출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빈곤선 이하의 소득만을 보장해서는 않된다 - 어려움을 겪을 소지가 있으며, 설사 한 방편으로 소득공제를 확대한다 해도 생계보호대상자뿐 아니라 차상위 계층과의 형평성 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있다.

둘째 통합적 고용·복지 서비스 전달체계를 구축해야 하지만, 현 전달체계의 3원 구조는 자활사업의 원활한 추진을 저해할 위험성이 있다. 현재 자활사업의 추진주체는 복지부이지만, 노동부와 지방정부도 자활사업의 또 다른 주체로 참여하고 있다. 물론 조건부 수급자의 대다수가 실업과 질병 혹은 가구여건 상의 이유로 빈곤계층이 되었고, 일자리를 제공하는 고용서비스와 복지서비스가 모두 필요하다는 점에서, 이를 담당하는 노동부와 복지부가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방정부 또한 자활사업의 최종적이며 실질적인 추진주체라는 점에서 참여가 불가피할 것이다. 이 체계는 다행히 추진주체간의 협조가 원활하게 진행된다면 전문성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함으로서 매우 바람직한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노동부와 복지부는 이 점을 고려하여 서비스의 상호부분위탁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이 지방정부를 포함한 3원화라면 상황은 더욱 복잡하고, 전달체계는 불안정하거나 비효율적으로 운영될 위험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두 가지 사항은 현재 자활사업의 범위와 성격을 규정하고 있으며, 이것이 자활사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야기할 위험성이 있다. 따라서 자활사업은 이 문제점을 의식하며, 시행과정에서 단계적으로 정책을 수정·보완하는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이다.

자활사업의 다섯 조건과 그 현황

이처럼 자활사업의 원칙과 추진체계 등의 문제가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해서, 이것이 면죄부가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따라서 현재 자활사업이 그 범위 내에서 어떠한 조건을 갖추고, 어떻게 대비책을 강구해야 하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자활사업이 효과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다음 다섯 가지 조건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첫째 노동능력과 자활의지가 있는, 즉 실제로 자활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둘째 수요 원칙에 입각해 자활사업 추진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셋째 자활 인프라 조성이 일종의 SOC투자라는 생각으로 지원인력과 기구를 확충해야 한다. 넷째 대상자들의 참여동기를 유발시킬 수 있도록 진취적인 업그레이드 (Up-Grade)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다섯째 자활사업의 역동성과 자발성을 촉진하기 위해 민간단체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물론 현재 한국의 자활사업에 대한 경험, 사회복지예산의 규모, 기존 지원체계의 취약성, 민간단체의 참여의지 등을 고려하면, 이러한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이 모든 조건이 갖추어질 때까지 무한정 기다리거나 핑계로 일관하는 것은 올바른 선택이 아닐 것이다. 자활정책이란 이상향을 지향하면서도, 이상과 현실을 절충하며 수정·보완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본연의 임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절충은 제대로 이루어졌는가? 자활정책은 현재의 실직빈곤계층에게 빈곤의 책임을 전가하기 보다 사회적 책임을 인정하고, 형식적인 지원보다는 실질적인 지원을 구상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빈곤정책에서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다섯 가지 조건을 갖추려는 노력에는 다소 미흡한 점이 있다고 여겨진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자활사업이 외환위기 이후 증가하고 있는 '(장기)실업자의 빈곤화'를 저지하는 예방책이자, 이미 발생한 '빈곤화된 장기실업자'의 빈곤탈출을 지원하는 사후지원책이라는 두 가지 성격을 갖는다면, 지금의 지원체계는 후자에 치우쳐 있어 보완이 시급하다고 말할 수 있다. 비록 차상위 계층에 대한 지원을 규정하고 있지만 2001년에도 현실적인 지원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장기실업자를 위한 유일한 실업대책 중 하나인 공공근로사업마저 축소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후자의 자활이 더욱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자활사업은 대상자의 범위를 확대하여 사업수행을 용이하게 해야 한다.

둘째 자활사업예산이 조건부 수급자의 규모와 사업유형에 근거해 편성되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수급자 규모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예산편성에 어려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자활사업관련 예산이 관련 부처의 의지와 무관하게 공급중심의 원칙에 따라 제한적으로 편성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당장 2000년 자활사업을 추진하는데 필요한 예산은 중앙정부의 추경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으며, 지방자치단체의 경우는 편성조차 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리고 2001년 예산 또한 사업유형(인프라 조성, 취업알선, 직업교육, 창업지원, 자활공공근로, 자원봉사)에 따라 조화롭게 편성되지 못한 이유 또한 이러한 공급중심의 예산편성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 고려할 때 수요중심의 예산편성을 채택할 필요가 있다.

셋째 자활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인프라가 제대로 조성되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물론 자활사업을 추진하는데 필요한 고용안정기관이나 자활후견기관이 조성되어 있고, 2001년에도 단계적으로 확충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2001년 자활사업을 추진하기에는 인프라가 여전히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단적인 예로 창업지원이나 자활공동체를 지원할 수 있는 인프라가 충분히 조성되지 않았음을 지적할 수 있다. 여기서 자활인프라를 조성하는 것이 SOC를 확충하는 것과 유사하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초기비용은 많이 들지만 일단 조성되고 나면 적은 비용으로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으며, 수급자들의 자활을 촉진하여 복지예산을 절감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넷째 자활사업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사업 프로그램 또한 몇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물론 이 또한 기존 자활사업의 경험과 최근 2년 간 공공근로 민간위탁을 통해 축적해 왔던 경험이 있다는 점을 전제해야 한다. 그러나 대상자들의 참여동기를 유발할 수 있는 전망과 사업내용을 가진 프로그램이 부족하며, 지역실정에 맞는 특성화된 프로그램 개발도 뒤따르지 못하고 있다. 그 밖에도 사업 프로그램간의 연계성이 부족하고, 대상자의 진척도에 따라 단계적으로 프로그램을 업그레이드(Up-Grade)하는 시도가 부족하다는 점 또한 지적할 수 있다.

끝으로 자활사업을 추진함에 있어 민·관 협력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과 시행령, 시행규칙 등에는 민·관 협력에 대한 규정이 자세하게 규정되어 있으나, 지역에서는 이것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각종 조례는 배정된 예산을 관리하기 위해서만 아니라, 새로운 방식으로 자원을 동원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는 자활사업을 예산에 의존해서만 수행하려는 타성적 사고에서 벗어나 지방정부 차원에서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분명한 것은 예산이 확보되었다고 일자리가 창출되고, 자활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 예로 지방정부의 사업을 자활관련기관에 위탁하는 등의 조례는 일자리와 소득을 동시에 보장하는 효과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민간단체의 참여는 자활사업에 대한 지역사회 혹은 시민사회의 합의를 도출하는데 필수적이며, 사업운영의 측면에서도 참가자들의 자발성을 촉진하는데 유용하며, 현실적으로 공공기관을 무한정 확장하는데 따른 비용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음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를 위해 조례제정과 새로운 관행을 만드는 불편을 감수하는 것은 충분한 가치가 있다.

자활사업의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자활사업에 대한 책임이야 모두에게 있겠지만, 향후 일자리 창출문제는 지방정부에게 맡겨질 것이며, 비취업대상자를 위한 일자리 창출이 최대현안으로 부각될 것이다. 그러나 지방정부는 노동시장진입형 자활사업을 추진하는데 한계에 직면할 것이고, 결국 사회적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남은 2개월 동안 수급자의 특성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개인별 자활지원계획을 충실히 수립하고, 수요 혹은 필요에 따라 자활 인프라를 구축하고, 사회적 일자리 창출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이야 말로 지방정부가 해야 할 일이고, 이것이 사업시행 초기부터 조건부 수급자들의 이탈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노대명 / 인천발전연구원 연구위원
2000/10/10 00:00 2000/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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