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자 중심의 사회복지시설보호로의 전환
월간 복지동향/2000 :
2000/09/10 00:00
사회복지시설 이용권 제도의 도입과 쟁점
사회복지시설 이용권제도는 시설보호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일종의 이용권(voucher)을 발급하고, 수요자 스스로 원하는 시설을 선택하여 보호를 받도록 하면서, 발급된 이용권을 보호비용에 대한 지불수단으로 사용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특정한 재화나 서비스를 구입할 수 있도록 구매력을 높여주는 소득지원의 한 형태로 정의되는 것이다. 동시에 현금급여에 비해 수혜자의 소비행위를 통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용성을 평가받고 있다. 현재 미국·영국·일본 등의 국가에서는 교육훈련(educational voucher), 주택(housing voucher), 의료(health care voucher), 통근(commuter voucher)이나 식료품 지원(food stamp program), 정신보건서비스, 의료보호 등의 분야에서 다양하게 실시되고 있다. 본 稿에서는 이러한 이용권제도의 의의, 이용권제도 도입의 쟁점을 중심으로 논의하고자 한다.
국내에서는 아직 이용권제도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도되지 않았지만, 서구의 경험은 수요자중심의 복지서비스체계 구축을 추구해왔음을 보여주고, 국내의 기업과 공공부문에서도 '고객중심' 혹은 '수요자중심'이라는 개념이 적극적으로 적용되고 있음을 감안할 때, 사회복지분야에서도 조만간 현행의 공급자주도 구도에서 수요자중심 구도로의 전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급속도로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공급자중심에서 수요자중심의 서비스체계로 전환시키는 과정에서 이용권제도의 가능성은 광범위한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으리라 판단되는 것이다.
또한, 복지시설체계에 이용권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기반여건 조성이 전제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용권제도의 도입을 긍정적으로 보도록 하는 요인은, 현재의 사회복지시설체계가 수요자중심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극히 열악하며 아직도 심각한 문제들이 잠재해 있기 때문이다. 현행의 국가가 공급자에게 직접 비용을 지원하는 방식에서 이용권을 활용해 실제로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에게 개별 지원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은, 시설보호가 구빈법적 시각에 기초한 시혜적 급부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당연한 권리로서 복지권을 보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는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시행과 관련해 검토할 때, 시설보호 대상자들도 적극적인 복지권 행사의 시대로 진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용권제도는 서구의 경험을 비추어 볼 때, 다음의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두 가지 측면에서 확산되어왔다.
첫째, 정치적 측면에서는 수요자중심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가가 공급자에게 비용을 지원하여 공급자로 하여금 대상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는 방식은 경직적이며, 수혜자의 요구에 민감하지 못하고 불필요한 낙인감을 줄 수 있다. 오히려 대상자에게 직접 증서의 형태로 지원하여 선호하는 공급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고, 그 대가로 증서를 지불하도록 하는 방법은 급여혜택을 시혜적 시각이 아니라 복지권에 입각한 구도로 전환시켜 대상자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시민민주주의에 부합되며, 정치인들은 유권자들이 수요자중심의 접근을 원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적극적일 수 있는 것이다.
둘째, 경제적 측면에서는 공급자간의 적정한 경쟁을 유도하여 해당 산업분야의 전반적인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측면이 부각된다. 이는 공급자들이 수요자들을 확보하기 위해 질적 경쟁을 시도할 것이고, 수요자로부터 선택받지 못하는 공급자는 운영상의 어려움을 겪어 자극을 받게되고, 결국에는 효율성을 높이고자 노력할 것이라는 것이다. 특히, 서구의 경우 공공부문의 비효율성과 관련하여 사회복지분야도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시각은 폭넓게 확산되어왔다.
사회복지생활시설에 이용권(voucher)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우리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시기상조라는 견해가 일견 타당할 수 있다고 보지만, 이용권제도가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측면을 고려한다면 그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제한적으로나마 도입을 추진해야 한다고 본다. 사회복지서비스 분야에 이용권제도를 도입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면, 물론 시설보호가 아닌 지역복지관중심의 서비스분야에 먼저 도입하는 것이 적합할 것으로 본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사회복지서비스체계에서 가장 도전을 받는 부분이 시설보호분야이고, 인권문제로까지 심각하게 부각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보다 적극적인 견지에서 이용권제도가 가져올 수 있는 효과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시설보호분야에 있어서 개선을 위한 제도적인 접근의 폭이 극히 좁은 현실을 고려할 때, 이용권제도는 정치적인 명분과 경제적인 명분 모두를 지니고 있어 시설보호의 전체적인 틀의 재구축 가능성까지도 기대해 볼 수 있도록 한다.
시설보호체계에 이용권제도를 도입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걸림돌은 수요자가 이용권을 사용할 수 있고 선택대상이 될 수 있는 공급자의 수가 시장에 적정 규모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의 시설보호체계가 만성적인 공급부족 상태를 보인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에 대한 단계적이고도 종합적인 대책이 추진되면서 이용권제도 도입이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그룹홈이나 주간보호센타 등의 중간보호시설을 확충하면서 절대적인 시설의 공급규모를 확대해야 할 것이다. 더하여서 실비시설과 유료시설의 활성화를 통해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노력도 병행되어야 한다.
이용권제도 도입의 두 번째 걸림돌은 적정 공급규모가 확보된다고 하더라도 과연 수요자가 공급자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취합하고 분석하여, 현명하게 시설을 선택할 수 있겠는가의 문제이다. 특히 인지능력이 낮은 노인이나 장애인의 경우 주체적인 현명한 판단이 어렵다고 보이며, 시설생활자의 과반수 이상으로 추정되는 무연고자의 경우도 대변할 수 있는 가족조차 없어 공급자 선택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사례관리센타(case management)를 주축으로 상담과 알선, 옹호, 서비스계획 수립, 정보수집 및 제공, 사후상담 등이 가능하도록 하여 수요자의 공급자선택과정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더하여서 후견인프로그램을 활용하여 수요자의 권익이 제도적으로 옹호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결국, 공급자의 부족과 사례관리의 필요성 등을 감안하면 이용권제도의 도입은 단계적으로 시범사업을 기초로 추진되어야 한다. 시범사업도 광역단위를 기초로 하되 비교적 여건이 덜 열악해 보이는 경기도 지역의 장애인이나 노인시설을 대상으로 우선적으로 실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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