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인도적 상황

장기간의 경제피폐와 식량난으로 북한 주민들이 처하게 된 인도적 상황은 구조적인 문제로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북한 경제가 회생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지만 이는 외부의 지원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일례로 1999년 국제사회의 대북 식량지원 규모는 109만톤(유엔 56만톤, 미국 10만톤, 중국 15만톤 등)에 달하며, 금년에도 북한은 최소 소요량에서 약 100만톤의 식량이 부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엔인도지원조정국(UNOCHA) 북한사무소의 '북한의 인도적 상황에 관한 6월 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의 가뭄이 매우 심각하여 평년 강수량의 58%에 머물러 있고, 비료도 소요량의 30%밖에 확보하지 못하였다고 한다. 이에 따라 당초 예상보다 올해 식량생산이 약 20% 정도 감수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공공배급망(PDS)을 통한 식량공급도 6월에는 일부 지역에서만 1인당 150g/1일 을 지급하고 있고, 동북부 지역 등 어려운 지역에서는 열악한 대체식량에 의존하여 지내고 있다고 한다.

또한 북한의 열악한 보건의료 상황은 북한주민의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주고 있다. 1998년 9월에 유엔아동기금(UNICEF), 세계식량계획(WFP), 유럽연합(EU)은 공동으로 6개월 이상 7세 이하 아동에 대한 영양조사를 실시했다. 이 연령대의 아동은 약 300만 명에 이르는데, 그 중 15.6%가 영양결핍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발육부진 및 저체중 아동이 2/3에 달하고 있다. 저체중아 출산도 심각하여 2.5kg 이하의 신생아가 22.7%에 달하고 있다. 유엔아동기금(UNICEF)의 평양사무소 대표 알리 칸(Dilawar Ali Khan)에 따르면 북한의 유아사망률은 1996년에 1,000명 당 23명에 달하였고, 현재 유엔아동기금(UNICEF)은 유아사망률을 1000명 당 5명 이하로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질병 중에서는 특히 결핵 발병이 매우 심각한데, 결핵은 충분한 영양공급과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으면 3∼5년 사이에 약 50%의 환자가 사망을 하게 된다. 북한은 1976년에 결핵 발병률이 제로에 도달한 바 있는데, 지난 5년여간의 심각한 식량난으로 인해 최근에는 결핵환자가 급증하고 있다. 1999년에만 약 4만 명의 결핵환자가 신규 발생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식수 오염도 매우 심각한 문제인데 전체 주민의 75%만이 상수도 공급을 받고 있고, 나머지는 우물이나 지하수를 이용하고 있다. 상수도의 경우에는 약품 부족으로 정수가 제대로 되지 못하고, 더욱이 수도관 노후로 금이 간 경우가 많아서 오폐수들이 파손된 파이프로 유입되는 상황에 있다. 그나마도 정전이 잦아 불규칙하게 공급되고 있다. 이러한 식수오염으로 매년 전염병이 발생하며, 5세 이하 아동 중 20.3%가 심한 설사병으로 고생하고 있다.

북한 보건의료체계의 붕괴는 통일해서 함께 살아가야 할 북한의 한 세대에게 발육부진, 신체장애 등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히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절박한 문제가 되고 있다. 그동안 북한의 인도적 상황에 대한 관심은 주로 식량문제에 초점이 맞춰져왔다. 그러나 단순 식량지원은 북한으로 하여금 외부세계에 의존만 높일 뿐 실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유엔기구, 국제NGO, 한국의 대북지원 민간단체들은 농업, 보건의료 분야에서 북한의 자립능력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지원정책을 전환하고 있다.

민간단체의 대북지원 일반 현황

올해는 대북 인도적 지원운동이 전개된 지 만 5년이 되는 해이다. 처음 이 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쏟아졌던 우리 사회 일부의 비난과 반대, 그리고 정부의 비협력을 생각해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로 지난 5년간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북한 정권과 주민을 구분하여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 주민을 도와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고, 정부의 대북 인도지원정책도 비협력과 규제정책에서 지원정책으로 변화 발전하여 왔다. 또한 20여 개 내외의 대북지원 전문단체가 형성되어 남북 교류협력의 물꼬를 터 나가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1995년 9월 대북 인도적 지원활동을 시작한 이래 2000년 6월 말까지 민간의 대북 인도적 지원 금액은 805억원에 이르고 있다. 민간의 지원물품은 옥수수·밀가루 등 긴급 구호 식량, 비료·종자·비닐 등 영농자재, 의약품, 의류 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대북 인도적 지원운동은 IMF 경제위기 이후 대폭 위축되어 20여 개 내외의 대북지원 전문단체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으나, 최근 한국경제의 빠른 회복과 남북관계의 진전에 의해 대북 인도적 지원운동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되살아나고 있다.

최근 대북 인도적 지원운동의 흐름을 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대북 지원규모가 급증하고 있으며, 지원물자의 대부분은 대북지원 전문단체들에 의해 조달되고 있다.

2000년 상반기 민간의 대북 지원규모는 110억원으로 작년 동기 47억원의 2.3배에 달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대북지원은 IMF 이후 20여 개의 대북지원 전문단체들에 의해 수행되었고, 주요 지원단체들로는 국제옥수수재단,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월드비전, 유진벨재단, 이웃사랑회, 제이티에스(JTS), 한민족복지재단 등이 있다. 이들 대북지원 전문단체들의 지원금액이 전체 지원규모의 90%를 상회하고 있다.

둘째, 대북지원 전문단체의 사업이 긴급 구호 차원의 단순 물자지원에서 협력사업으로 전환되었다.

농업개발 지원분야에 국제옥수수재단, 남북농업발전협력민간연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월드비전, 이웃사랑회, 제이티에스(JTS) 등 6개 단체, 보건의료분야에 유진벨, 한민족복지재단 등 2개 단체, 임업분야에 로타리총재단, 평화의 숲 등 2개 단체가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들 단체들의 사업에서 협력사업의 비중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는 데 금년에만 약 170억원 정도의 사업예산 집행을 계획하고 있다. 특히 북한 농업개발 지원사업은 앞으로 계속 확대될 전망인데, 이들 사업의 내용은 옥수수 종자 개발 및 옥수수 증산 지원사업(국제옥수수재단), 감자종자 교류 및 지원사업(남북농업발전협력민간연대), 감자 증산 및 잠업 지원사업(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수경재배(월드비전), 계약재배(제이티에스), 축산지원(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이웃사랑회) 등이다.

셋째, 민간 대북지원 단체에 대해 남북교류협력기금의 지원이 이뤄지고 있다.

정부는 1999년 10월 21일 제60차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서 "인도적차원의대북지원사업처리에관한규정"을 의결하였다. 민간단체가 지속적으로 요구해 온 매칭펀드와는 거리가 있지만 남북교류협력기금을 민간단체의 대북지원사업을 위해 지원키로 했다. 이에 따라 7개 단체가 46.49억원의 남북교류협력기금을 지원받게 되었다.

넷째, 남북정상회담 개최 이후 대북지원 및 협력사업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높아지면서 지역, 부문별로 다양한 사업들이 모색, 추진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를 비롯해서 문화·교육·여성·노동 등 부문별 단체들이 대북지원 및 협력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이런 단체들은 자신의 단체 성격에 조응하는 북한의 기관 및 단체들과의 연계사업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대북지원 NGO의 과제

국제사회와 한국 NGO는 대북 인도적 지원을 실시하면서 북한의 잠수정 침투사건, 핵 개발, 미사일 발사 등과 같은 정치, 군사적인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어왔다. 그러나 올해 들어서는 긍정적 방향에서 커다란 상황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첫째, 분단 55년만에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열리면서 한반도에 평화와 화해의 무드가 조성되고 있다. 남북적십자회담, 외무장관 회담이 이뤄졌고, 앞으로 장관회담, 이산가족 교환방문이 예정되어 있으며 민간차원에서도 다양한 교류가 추진되고 있다. 아직까지는 남북한 모두 '6.15 남북공동선언'을 이행하는데 성의를 보이고 있어 앞으로의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둘째, 북한의 대외관계 개선이 급속히 이뤄지고 있다. 북한은 중국, 소련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전통적인 우방이었던 두 나라와의 관계 개선을 이루었다. 또한 금년 1월에는 이탈리아, 4월에는 호주와 국교수립을 하는 등 서방국가와의 외교관계 수립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북한은 7월 26일, 27일 양 일간 개최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23번째 회원국으로 가입을 하였고, 북-캐나다 외무장관 회담에서 양국간 외교정상화를 이루기로 합의하였다.

셋째, 북-미, 북-일 관계의 개선 움직임이다. 북한의 미사일발사 유예선언의 재확인과 맞물려서 미국의 대북 경제제재 조치가 일부 해제되었다. 물론 만족할 정도로 경제제재 조치의 해제가 이뤄진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북-미 고위급 회담의 성사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고, 북-미간 대화의 진전에 따라 추가적인 제재 해제 조치도 기대해 볼 수 있다. 또한 북-일 관계정상화 문제도 가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넷째, 북한 경제가 1989년 이후 10년만에 처음으로 1999년에 플러스 성장을 기록하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작년에 북한 경제는 6.2% 성장하였고, 농업의 경우 양호한 기상여건과 외국의 비료지원으로 10.1% 증가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변화가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이것이 대북 인도적 지원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이며, 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먼저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졌다고 한순간에 북한의 인도적 상황이 개선될 것이라는 막연한 환상을 가져서는 안될 것이다. 최근의 변화는 구조화되고 제도화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불안정한 상태에 있으며, 변화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 변화에 따른 성과물이 나오기까지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북한의 변화를 의미 있게 하기 위해서도 대북 인도지원이 더욱 큰 규모로 이뤄져야 한다는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

또한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한반도 문제 해결에 있어 남북 당사자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최근 국제사회의 대북지원은 장기간의 지원에 따른 '피로현상'으로 모금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미 국제사회의 대북지원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줄어들고 있으며, 그간 6년간에 걸친 국제사회의 대규모 지원은 예외적인 경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국경 없는 의사회'(MSF), OXFAM의 철수가 있었고, 최근에는 CARE 및 CRS가 USPVOC를 탈퇴키로 결정하였다. 이제 북한의 인도적 상황의 개선은 전적으로 우리 한국의 몫이 되고 있다는 점을 자각해야 하며, 앞으로 한국 NGO가 대북 인도지원의 정책개발, 쟁점에 대한 조정, 국제협력관계의 구축에 중심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와 민간의 역할분담이 정립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북한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풀어야 하는 과제는 북한의 인도적 상황 개선, 분단의 평화적 관리, 민족통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정부가 할 일이 있고, 또한 민간이 하는 것이 더욱 적절한 일이 있다. 민족동질성 확보와 남북간 다양한 분야의 사회통합의 문제는 민간운동의 주된 역할임은 자명하다. 더구나 그간 대북 민간지원운동은 남북간 화해의 큰 물줄기를 이끌어내는 견인차였고, 국내적으로 대북포용정책의 국민적 공감대를 확대하여 대북정책의 안정적 추진을 가능케 한 안전판 역할을 담당해왔다. 그러나 정부는 아직 민관의 바람직한 협력관계 정립에 대해 별다른 고민을 갖고 있지 않다.

현재 대북지원 민간단체들은 북한과의 교류협력사업에서 자금과 교섭력, 전문성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문성은 스스로 강화해야 할 요소이지만 자금과 교섭력은 상호 불가분의 관계가 있고, 대북 교섭력 강화를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자금이 필수적이다. 현재의 남북교류협력기금의 지원방식은 소수의 단체들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많으며,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 활성화가 될 수 있도록 기금 지원의 문호를 대폭 개방해야 한다. 특히 농업, 보건의료, 환경 분야 등에서는 정부의 직접지원 방식보다 민간을 통한 간접지원 방식이 이뤄지도록 정부정책이 전환되어야 한다.

6월에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었고, 8월 15일에는 감격적인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질 예정이다. 북한동포들이 겪는 어려움들이 이러한 커다란 이벤트에 묻히지 않기를, 그리고 이를 계기로 남녘 동포들의 훈훈한 인도주의와 동포애가 커다란 물결로 넘쳐나기를 기대해본다.

이종무 /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기획조정실장
2000/08/10 00:00 2000/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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