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서울의 "비닐하우스촌"

21세기, 최첨단의 인텔리젠트 빌딩과 사이버 아파트가 있는 서울의 어느 한 모퉁이에는 아직도 "비닐하우스촌"이 있다. 심지어 강남구에조차 대단위 비닐하우스촌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비닐하우스라지만 그 안에는 아궁이와 구들이 있어 추위를 피할 수 있고, 지붕엔 보온용 담요를 두텁게 덮어 웬만한 바람에도 끄떡하지 않으며, 수도와 전기를 갖추어 사람이 살지 못할 곳도 아니다.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있는 "개미마을"도 그런 비닐하우스촌의 하나이다. 그런데, 개미마을 사람들(97가구 250여명)은 송파구민이 아니다. 마을 전체가 무허가 비닐하우스촌이라 주민등록을 받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은 86아시아경기와 88올림픽에 앞선 재개발로 살던 집에서 밀려나 이곳에 정착한 뒤, 지금껏 행정적으로는 "유령 주민"으로 살고 있다.

생활보호의 사각지대, "비닐하우스촌"

최근 개미마을의 생활실태를 조사한 결과, 세대주가 무직이거나 실직 상태인 가구는 무려 46%였다고 한다. 거동이 어려운 노인과 장애자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개미마을과 같은 비닐하우스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생활보호의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다. 이들이 살고 있는 곳의 동사무소에 가서 생활보호를 신청하면 주민등록이 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거부를 당한다. 그리고, 주민등록이 되어있는 동사무소에 가서 급여신청을 하면 실제로 살지 않기 때문에 생활보호 적용을 받을 수 없다고 한다. 이렇게 기초생활보호의 필요성이 어느 동네보다 절박한 "비닐하우스촌"에서는 막상 아무도 생활보호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비닐하우스촌에 사는 사람은 주민도 아닌가?

그렇다면, 비닐하우스촌에 사는 사람들은 주민등록을 할 수 없는 것인가? 동사무소가 이들의 주민등록, 즉 전입신고를 거부하는 것은 과연 적법한 것인가? 주민등록법 제6조는 "시장·군수 또는 구청장은 30일 이상 거주할 목적으로 그 관할구역 안에 주소 또는 거소(이하 '거주지'라 한다)를 가진 자를 이 법의 규정에 의하여 등록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민법 제18조 제1항은 "생활의 근거가 되는 곳을 주소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관련법규의 어디에도 거주지는 콘크리트로 견고하게 지어져 있어야 한다거나, 무허가건축물이 아니어야 한다는 규정은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비닐하우스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그곳을 생활의 근거로 하고 있으며, 30일 이상 거주하고 있는 이상 '마땅히' 주민등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꽃동네 판결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높고 으리으리한 서울지방법원의 앞에도 얼마 전까지는 비닐하우스촌이 있었다. 이름하여 "꽃동네". 상계동에서 살다가 서초 3동의 꽃동네로 이사를 온 어떤 주민이 서초 3동 동사무소를 찾아가 전입신고를 하였다. 그러나, 서초 3동 동사무소에서는 전입신고를 수리하지 않았고, 주민등록표를 전 거주지 동사무소로 반송하였다. 그가 살고 있는 곳은 원예용 비닐하우스로서, 주민등록법상 주소로 정할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는 소송을 제기하였고, 법원은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판결하였다.

"원고가 전입신고를 한 주소지상의 건축물이 타인의 토지 위에 토지소유자의 승낙 없이 지은 원예용 비닐하우스를 개조한 불법무허가건축물이어서 언제든지 철거대상이 되는 것이고, 원고가 아파트입주권 등을 얻기 위한 불법한 목적으로 거주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건축물이 30일 이내에 철거될 것이 확정되어 있지 아니하고 원고가 이미 2년 6개월 이상 생활의 근거지로 하여 실제로 거주하고 있다면, 원고는 주민등록법상 주소 또는 거소를 가진 주민이라 할 것이므로, 그 주소지의 지번이 분할되어 명백한 호수를 알기 어렵다거나 통반장이 없어서 전입신고시 관할 통장의 확인을 받지 못한 채 전입신고를 하였다 하더라도, 관할 동장은 같은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원고의 전입신고를 수리하여야 한다." (1991. 7. 26. 선고 90구3067 판결)

서초 3동장은 위 판결에 맞서 상고하였다. 그리고, 대법원은 이 사건의 원고가 주민등록 전입신고를 수리하지 아니한 처분의 위법확인을 구한 것은 법리상 청구를 잘못한 것이라는 이유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고 한다. 원고가 주민등록 전입신고 거부처분의 취소를 구하지 아니하고, 위법확인을 구한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이는 법리적인 문제이므로 여기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그런데, 파기환송된 하급법원에서 다시 판결을 선고하기 전에 꽃동네에 불이나 버렸다. 따라서 원고의 소송은 무익한 것이 되버렸다. 결국 원고의 청구는 소송의 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되었다. 결론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을 보았지만, 그래도 중요한 것은 법원이 위 사건에서 비닐하우스촌에서 사는 사람도 주민등록의 대상이 되고, 따라서 전입신고를 거부하는 것은 위법하다는 판단을 하였다는 것이다. 비닐하우스촌 주민들도 희망을 갖자!

임성택 / 변호사
2000/08/10 00:00 2000/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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