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계를 대표하는 전경련은 지난 3월 26일 "건강보험 개혁방향에 대한 의견"을 내고 건강보험제도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료저축제도와 민영의료보험 도입 등 근본적인 개혁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의사협회의 김재정 회장은 건강보험의 재정적자의 한 원인이라고 주장되는 수가인상은 의약분업의 비용에 불과한 것이고 이러한 재정적자를 부추긴 것은 의보통합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건강보험을 재 분리하고, 국고보조를 늘이고, 국민을 설득하여 보험료를 올리는 대안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 약사회의 신현창 사무총장은 보험재정의 70%를 차지하는 의사들의 진료수가를 대폭 인상해 준 것이 재정파탄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의사협회와 약사회는 보험수가인상, 부당청구와 약제비 증가에 대한 의약계의 공동 책임론에 대하여서는 의약분업 거부투쟁을 또다시 전개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민주당은 건강보험 재정적자 문제를 예측하여 대비하지 못한 정부의 책임 특히 복지부의 무사안일한 행정을 질타하는 한편 보험재정 적자를 보충하기 위해, 수가인하, 국고보조금 지원, 건강보험세 신설, 총액제한제, 처방료와 진찰료 통합, 차등수가제의 도입 등을 검토하고 있으나, 재정적자의 규모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은 상황을 이유로 5월에 당정 협의를 거쳐 종합대책안을 마련한다고 한다.

한나라당은 의보통합을 원상으로 회복하고 의약분업을 전면적으로 재 검토해야 한다는 원론적 주장과 함께 선 보험재정지출감소-후수입 증가, 의보수가 조정, 보험료인상 최소화, 재정적자 대책 마련 후 국고지원을 검토해야한다는 기본 원칙에서 구체적인 대안 마련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한편 보수 언론들은 건강보험 재정파탄을 D.J 정권의 무리한 개혁 정책의 실패로 규정하면서 의약분업 철폐, 의보통합을 원점으로 돌리라는 취지로 헤드라인을 뽑으면서도 기사 내용에서는 의료수가 인상, 의약계의 부당청구, 보험료 부담의 형평성 등을 지적하고 있는 이중성을 보이고 있다. 이런 이중성은 이들 언론들이 건강보험 재정적자의 진단과 해법에 관한 사실 보도보다 현 정권에 대한 비난에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건강보험의 재정적자 문제에 대응하여 시민사회단체가 공대위를 구성하여 의보수가 인하를 요구하며, 건강보험 재정적자를 해소하기 위한 장단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서자 경제계와 사회 일각에서 시민단체의 책임론을 들고 나오고 있다. 시민단체가 의약분업 실시에 따른 재정증가를 예측하지 못하고 무리하게 정부를 압박하고 의료계를 도덕적 타락 집단으로 매도하여 의약분업을 밀어부친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해야한다는 것이다. 전경련은 의료보험통합과 의약분업이 개혁이라는 명분아래 이해관계 집단과 일부 무책임한 시민단체의 압력에 밀려 밀어붙이기 식으로 졸속 시행되었다고 시민단체와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서울대 송호근 교수는 3월 21일 동아일보를 통하여 "이교도들을 징벌하려 떠나는 십자군처럼 사회적 정의를 부르짖으며 진군했던 '분업동맹'은 지금 왜 침묵하는가?"라고 질타하면서 환자증가와 고가약 처방 증가를 예측하지 못하고 의사들에 대한 도덕적 비난에 매몰돼 재정정상화라는 의약분업 최대의 목적을 망각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동아일보 송상근 기자도 시민단체가 특정집단을 매도하기보다 동참을 유도하고 준비 안된 분업의 문제점과 후유증을 지적했어야 한다며 '시민단체는 책임없나'라고 외치고 있다. 또 익명의 복지부 공무원은 실무자 반대를 억누르고 장관과 시민단체가 의약분업을 강행하고 이제 와서 복지부를 비난한다고 울분을 토하고 있다.

시민단체 책임론은 4조원(최소로 예측되는 적자 폭)의 건강보험 재정적자를 시민단체가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이들은 대체로 재정적자의 원인을 의약분업 제도 자체에 내재된 요인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의 일부 언론과 한국노총 등은 의보통합이 재정적자를 가속시킬 것으로 주장하며 차제에 의보통합을 포기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건강보험 재정 적자에 대한 시민단체 책임론은 건강보험 재정적자의 원인을 분석함으로써 가능하다. 만약 재정적자가 의약분업제도 자체의 내재적 요인과 의보통합에서 발생했다는 결론을 내린다면 시민단체도 재정적자를 예측하고 이를 예방하는 정책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해야 할 것이다.

4조원으로 예상되는 재정적자 내역은 다음과 같다. 지난해 7월 1일 수가 9.2%인상으로 연 9,200억원, 9월 1일 수가 6.5%인상으로 연 4,300억원, 올해 1월 1일 수가 7.08% 인상으로 연 4,700억원, 또 약국 임의조제 환자의 의료기관 이용 20%증가로 연 6,800억원, 본인부담금 조정으로 연 3,350억원, 의약분업후 약제비 증가로 연 7,000억원, 급여확대와 수진율 증가 등 자연 증가로 연 9,000억원이다. 이중 수가인상에 의한 증가분은 1조 8,000억원이며 의약분업의 직접적 효과로 볼 수 있는 것은 의료기관 이용 증가에 따른 6,800억 뿐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4조의 재정적자의 대부분이 의약분업 자체에 내재된 요인 때문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부족하다.

시민사회단체가 의약분업에 따른 추가적인 부담이 없다고 주장한 것은 주사제 처방의 감소와 기준약가제의 도입을 통해서 고가약 처방의 감소를 조건으로 한 것이었으나, 현행 의약분업에서는 이를 줄일 수 있는 장치가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약효동등성 평가에 대한 입장차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의사와 의료소비자들의 협조를 통해서 주사제 남용의 의료관행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주사제 처방료와 조제료를 없애지 못한 때문이다. 따라서 시민사회단체의 책임이 있다면 의료기관의 이용증가에 따른 6,800억원의 추가부담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한데 따른 책임일 것이다.

하지만 의보통합에 따라 재정적자가 발생했다는 주장은 좀더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직장의보와 지역의보의 재정통합은 2002년 1월부터 이루어지기 때문에 통합이 재정적자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볼 수 없다. 이는 주로 96년부터 시작된 직장의보의 적립금 감소 현상에 초점을 둔 것으로 97년 98년의 IMF에 따른 임금 삭감에 따른 보험료 감소와 보험료 징수율의 감소가 그 원인이다. 이는 재정 통합을 앞둔 직장 조합의 재정관리 노력의 소홀이라는 도덕적 해이와 관련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의보재정통합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다른 문제는 자영자 소득파악률이 낮은 데 따른 직장인과 자영업자간의 부담의 형평성 문제이다. 개인의 입장에서 장기적으로 보면 직장인들도 실업 혹은 은퇴로 자영업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내돈이냐 당신돈이냐를 따지는 것은 재고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자영업자들의 소득파악률이 낮은 것이 사실이고 이는 부담의 형평성 문제를 필연적으로 수반하기 때문에 시민사회단체는 자영자 소득파악률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노력할 것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또한 시민사회단체는 그동안 정부에 대하여 행정소송과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국회에 탄핵을 청원하기도 하였지만 수가인상을 막아내지 못했다.

시민사회단체가 시민들에게 진정으로 사과하고 책임져야할 일은 수가인상을 막지 못한 것이다. 의약계는 현재의 보험수가로도 의약계의 원가를 보전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교수의 원가는 얼마인가? 의약계의 원가는 얼마인가?
백종만 / 전북대 교수, 참여연대사회복지위원회 위원
2001/04/10 00:00 2001/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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