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재정위기로 인하여 지난 달 내내 의료체계 및 의료보장과 관련된 기사와 논평들이 각 신문 지상을 가득 메웠다. 일견해서 의료개혁과정에서 스스로 소외되었음을 자처하는 이들과 세력들이 의약분업과 의료보험통합 정책의 그릇됨을 광야에서 홀로 외쳐 왔다는 것이 특징처럼 부각되어 있다. 이를 뒷받침하듯이 흔히 보수 언론으로 불리는 신문들에서는 일제히 이들을 필자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세력간 갈등관계를 차치하고도 이러한 견해들에 일견된 논리적 모순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가장 크게 부각되는 것은 의료보험통합 일원화가 문제의 근원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 어디에도 의료보험통합일원화가 현재 건강보험재정위기의 근원이라는 객관적 증거는 제시되어 있지 않다.

3월 23일자 조선일보 시론(이규식)에 따르면 "의료보험통합을 하면 국고 지원을 줄일 수 있고 소득 재분배를 통하여 형평성을 증진시킨다, … 그러나 이것을 믿다가 오늘의 낭패를 보았다면 … 시장경제를 근간으로 하고 의료공급을 민간자본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리고 지역주민의 소득 파악은 결코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형평에 대한 욕구는 매우 강하다는 점에서 현재의 보험관리 방식은 재검토되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정부의 공식적이 해석에 따르더라도 현재의 재정위기의 주요 원인은 의약분업 추진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의료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무리하게 인상한 수가에 그 원인이 있다. 어디에도 의료보험통합이 재정위기에 관련되었다는 객관적 증거는 찾을 수가 없다.

3월 21일자 중앙일보 시론(김한중)에 의하면 "보험제도 통합과정에서 나타난 도덕적 해이가 한몫을 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을 십분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는 보험제도 통합자체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다. 보험통합을 하기로 한 이후 그에 대한 준비를 철저하게 하지 않았음에 기인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주장이다.

둘째로 찾을 수 있는 것은 서서히 한국의료를 걱정하는 이들이 민간의료보험 도입을 위주로한 시장경제원리의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3월 14일자 조선일보 논단(문태준)에 의하면 "의료보험제도는 전국민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의료를 제공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치과 보철이나 미용성형수술, 보약 등이 의료보험 급여에서 제외되고 있는 이유도 의료보험재정의 근원적인 제약 때문일 것이다. … 이왕 시장경제를 근본적으로 채택했다면 위화감 운운이라는 주장에서 탈피해 민간보험제도의 도입도 고려해 볼만하다"고 씌어 있다.

의료보험제도의 목적이 최소한의 의료를 제공하는데 있다는 것은 어느 책에 나오며 누가 동의한 사실인가. 세계보건기구에 의하면 사회의료보험체계는 1) 보건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함으로써 주민의 건강수준을 높이고 2) 적절하고 질높은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고 3) 비용 절감을 통해 진료의 지속가능성과 시행가능성을 높이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설사 의료보험의 목적이 최소한의 진료 보장에 있다고 십분 동의를 한다 쳐도 과연 우리나라 의료보험이 최소한의 의료를 제공하고 있는가. 각종 필수적인 예방 및 건강증진 서비스는 물론이고 "최소한의 급성기 진료"에 있어서도 본인부담금율이 50%를 상회하는 우리 나라의 건강보험체계를 두고 과연 최소한의 의료를 제공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즉, 이는 전혀 "사실(Fact)"에 근거하지 않은 주장이다.

사회보험이 최소한의 의료를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 민간의료보험이 도입된다면 논단의 필자가 걱정하는 위화감의 문제에 앞서 사회보험체계는 질 낮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으로 변질될 것이고 그 경우 최소한의 의료보장은커녕 사회보험이 붕괴되고 과거 대부분의 중산층이 병이 나도 병원비가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하고 죽어가야 하는 시절로 되돌아가게 된다. 이러한 경우 그나마 유지하고 있던 사회적 안전망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게 된다. 노동자들은 고용안정에 필사적으로 매달려야만 한다. 필자가 주장하는 시장주의를 의료부문에 도입하다가 국가 경제의 시장질서가 흔들리게 되는 모순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이러한 것들의 배경에 흐르는 것은 한결같이 의료체계에 시장의 원리를 도입하자는 주장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선진외국의 예를 들고 있다. 그러나 선진외국의 보건의료체계야 말로 튼튼한 공공성에 기초하고 있어서, 시장의 원리를 도입한다 해도 우리의 기준으로 볼 때 아직도 먼 수준의 공공성을 지키고 있음을 한결같이 간과하고 있다. 심지어 가장 시장경제에 가까운 미국의 경우에도 공공부문의 병상은 30%로서 10%인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국가의 개입도 마찬가지다. 미국 정부가 보건의료에 개입하는 정도는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의료의 질적 수준을 모니터링하고 공표하기 위해서 각종 결과 지표들을 각 병원에 요구하고 있으며 병원들은 그 요구에 기꺼이 부응한다. 우리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다. 시장의 원리를 이제 조금씩 도입하고자 하는 유럽의 보건의료는 건강한 사회적 연대의식(solidarity)에 근거를 둔 공공의료체계이다.

기본적으로 보건의료는 제공자와 이용자간의 정보의 비대칭성, 예측불가능한 수요발생, 외부효과, 공급자 독점, 수요와 공급간의 시간적 불일치로 인하여 시장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market failure) 대표적인 분야이다. 대부분의 선진외국은 실제 보건의료를 시장에 맡기지 않고 철저히 국가가 보호하고 있다. 그러는 와중에 나타난 관료주의를 해결하기 위한 처방과, 현재 국가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처방을 같이 해야 한다는 주장이야 말로 상황에 대한 무지의 결과라 아니할 수 없다.

편집부
2001/04/10 00:00 2001/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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