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이번 일을 경험하게 된 것은 산업재해보상관계로 알게 된 장애우 때문이었습니다. 과부사정 홀애비가 안다고 이 분은 97년에 교통사고를 당한 후 2년 전까지 전신마비로 있다가 기적적으로 회복해서 이제는 어려운 이웃들의 일을 자신의 일로 알고 도와주고 있는 분입니다. 이분이 작년 12월 중순경에 저에게 전화를 걸어 딱한 사정으로 살고 있는 늙은 부부내외 사정을 말씀해주셨습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다 80세가 넘으셨는데 할아버지는 귀가 안 들리고 할머니는 디스크로 인해 하반신을 못쓴다고 하셨습니다. 집안에 가진 것도 없고 자식들은 연락이 끊겨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근처에 있는 '나눔의 집'에서 밥을 타 드시거나 겨우 풀칠을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특히 할머니는 전쟁터에 월남하여 홀아비였던 할아버지와 살면서 할아버지 자식 여섯 명을 키웠다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거동을 못하시는 할머니의 대소변을 비우고 생활유지는 한 달에 국가에서 주는 8만원 노인경로연금으로 살아가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소유의 작은 집이(동사무소 직원은 공시지가 6000만원으로 판정)있어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물론이고 아무런 혜택도 받을 수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장애 2급으로 병원치료도 제대로 못 받아 병원 치료 한번 받는 것이 소원으로 여기며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집만 있다 뿐이지 죽지도 살지도 못하는 80대 무의탁 노인들이었습니다. 지금도 할머니 댁에 처음 같을 때 걷지를 못해 할머니 발목이 어린아이 팔뚝만한 것을 보고 가슴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참으로 난감하기도 하고 답답했습니다. 그나마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수급자가 되어야 정말 기초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데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그런데 저를 분노케 한 것은 담당 공무원의 업무처리였습니다. 처음에 동사무소에 갔을 때 담당 사회복지 공무원은 할아버지의 딱한 사정을 듣더니 그러면 되는 방향으로 하고 1월 초에는 수급자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얼마 있다 발생했습니다. 일을 마치고 할머니 댁에 갔더니 한 분의 노숙자가 있었습니다. 부인도 없고 계속되는 사업실패에 몇 번이고 자살을 시도하다 어렵게 살아가는 50대 아저씨였습니다. 이 분 역시도 있는 것은 빚 밖에 없고 겨울이라 일도 없어 낮에는 나눔의 집으로 저녁에는 천주교 무료급식소로 돌아다니며 근근히 살고 있어 겨울만이라도 한시적 수급자가 되기 위해 동사무소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도 상냥하던 동사무소 직원은 안면 몰수하더니 '한번 해주었더니 줄줄이 데려온다며' 기존에 해주기로 했던 할아버지까지 재조사를 해야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아무런 연락이 없어 1월 20일경 동사무소에 연락해보니 조사는 물론이고 접수조차 하지 않고 담당 공무원은 휴직을 해버렸던 것입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화가 났습니다. 실랑이를 하다 다시 접수를 시키고 있는데 이번에는 동사무소에서 할아버지 가옥이 공시지가 6000만원이라 수급자가 될 수 없다고 통보해왔습니다. 갈수록 태산이라고 답답했지만 그래도 확인해 보자는 심정으로 법원에 가서 할아버지 등기를 띄어 보았습니다. 아니다 다를까 등기에는 건물은 할아버지 명의로 되어 있지만 대지는 이미 다른 사람 명으로 넘어 가버린 상태였습니다. 집을 지은 지가 20년이 넘었고 다 쓰러져가는 집이어서 누구하나 거들떠보지 않는 집이어서 부동산 가격으로도 2000만 정도 밖에 안 되는 집이었습니다. 이것을 확인하고 얼마나 기분이 좋았더니 당장 가서 할아버지, 할머니께 말씀드렸습니다. 할머니는 연신 감사하다는 말씀밖에 안 하셨습니다. 급한 대로 할머니에게 지역 노인복지회와 연계하여 무료침술과 간병인까지 확보되었기에 할머니의 기쁨은 더 크셨나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다음날 침술을 맞게 하기 위해 할머니 댁에 갔더니 집안에는 곡소리가 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 아침에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던 것입니다. 당황해서 병원에 가 보았더니 담당의사는 뇌출혈이 너무 심해 식물인간이 되거나 돌아가실 것 같다고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3일을 못 넘기시고 선한 얼굴을 뒤로 한 채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팔순이 넘으시도록 병원가면 아예 못 나올 것 같아 병원에 안 가신다던 할아버지가 그렇게 갑작스레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그 후 할머니는 설음에 받쳐 연일 술을 드시다가 이제는 주변의 도움으로 건강을 회복하고 계십니다. 이번 달 22일이면 할머니는 첫 번째 수급을 받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무료 간병인의 도움으로 식사와 대소변 등은 처리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모든 문제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꾸깃꾸깃한 통장이 한 장 나왔는데 거기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일생동안 모아놓았던 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집 큰아들이라는 자는 장례식 부조금은 물론이고 이 돈마저도 한 푼도 안 남기고 다 가져가 버렸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부모를 버린 것도 모잘라 아버지 장례부조금, 남은 통장마저도 가져가 버린 자식이 야속했습니다. 얼마 전 그 아들과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중형자가용에 대기업 건설회사까지 얼마 전 다녔다고 합니다. 얼마간 말미를 주었습니다. 자식된 도리를 다하라고 그렇지 않으면 할머니의 뜻에 따라 법 절차를 발아서라도 할머니의 몫을 찾겠다고 단단히 일러 놓았습니다.

주저리 주저리 쓰다 보니 어느새 여백이 다 채워지고 있습니다. 제가 이번 일을 하면서 느낀 것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허실이었습니다. 다 쓰러져 가는 집에 80먹은 노인네들이 죽지 못해 살고 있는데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뭐 이리도 까다로운지... 특히 부양가족의 부양능력에 의한 산출근거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였습니다. 자식이 여섯이어도 자기 먹고살기에 급급한 자식들에 부모의 생존권을 떠맡겨 버리는 제도적 한계가 자식을 폐륜아로 내몰고 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또한 공무원들의 아직까지 무사안일한 공무수행이었습니다. 사회복지전문요원들이 수고하는 것은 알지만 아직도 못된 공무원들이 많다는 것을 확신케 했습니다. 공시지가 6000만원을 매기고 수급자에서 제외시켜버린 공무원, 자신은 할 말이 있겠지만 두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는 이사회, 이 나라가 마지막으로 해 줄수 있는 수혜마저도 거부한 것입니다. 어디 이뿐입니까? 움직이지도 못하는 지체부자유자가 전세를 구하기 위해 돈을 빌려도 이 돈을 추정소득으로 잡아 수급액 산출근거를 턱없이 내린 동사무소 직원.

그러나 저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공무원도 나랏님도 아닌 바로 우리 이웃이었습니다. 주는 것 하나 없어도 마지막까지 할아버지 가는 길까지 지켜 준 이웃, 손수 할머니 빨래며 설겆이를 해주는 노숙자들, 김치 한 그릇, 깻잎 한 종이 나누어 할머니 보살펴주는 이웃에서 사람을 보았고 희망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확신을 얻었습니다.

우리에게 희망은 있다. 열 가진 자들에서가 아닌 열을 잃고서도 나눔을 실현하는 그들에게서!

나성철 / 민주노총강원본부 정책기획부장
2001/04/10 00:00 2001/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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