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화된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1년 (표,각주 누락)
월간 복지동향/2000 :
2000/01/10 00:00
참여민주주의의 '신모델'?
1998년 12월 31일 개정된 국민연금법의 내용 중 주목할 만한 것은 1990년대 초반부터 시민사회와 노동계에서 줄기차게 요구해 온 국민연금기금 운용의 민주성과 투명성 확보 문제가 상당부분 해결되었다는 점인데 그 핵심에는 이른바 '민주화'된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이하 운용위원회)가 자리잡고 있다. 운용위원회는 국민연금법상 국민연금기금운용에 관한 '의결권'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심의권과 자문권만 갖고 있는 정부의 여타 위원회와는 그 권한에 엄청난 차이점이 있다. 물론 구 국민연금법에도 운용위원회에 기금운용에 관한 의결권을 부여하였으나 운용위원회가 대부분 정부측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회의도 제대로 열리지 않고 '서면회의'1)로 대체되는 등 가입자의 의견과는 전혀 무관하게 운영되는 '허수아비 위원회'에 불과하였다. 더욱이 국민연금기금을 정부가 강제적으로 차입할 수 있도록 규정한 '공공자금관리기금법'(이하 공자법) 때문에 운용위원회의 권한은 거의 사문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국민연금법 및 공자법의 개정으로 운용위원회의 민주성과 기금운용의 투명성 확보의 측면에서 상당한 진전이 이루어졌는데 중요한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운용위원회의 위원구성이 민간인 위주로 재편되었다.〈표 1〉에서 보는 것처럼 운용위원회 위원 총 20인 중 가입자를 대표하는 위원이 12명으로 형식적으로 가입자 대표가 위원의 과반수를 넘고 있다. 이것은 가입자의 실질적인 대표성이 확보된다면 가입자들의 의견이 정확히 반영될 수 있는 구조이다. 운용위원회의 상정 안건을 사전에 심의하는 '국민연금기금운용실무평가위원회'(이하 실무위원회)도 형식적으로는 가입자 대표가 전체 위원의 과반수를 넘고 있다.
둘째, 개정 국민연금법에는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위원은 불출석으로 간주하고(대리참석도 불허), 서면회의를 금지하며 분기별로 의무적으로 회의를 개최하게끔 하는 등 실질적인 회의가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이러한 엄격한 법규정 때문에 1999년에 개최된 총 4차례의 운용위원회 회의와 실무위원회 회의는 연금법 개정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실질적인 회의가 이루어졌다. 또한 회의록을 작성하여 공개하도록 법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회의내용의 공개에서도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2)
셋째, 운용위원회 및 실무위원회의 권한이 실질적으로 강화되었다. 공자법의 개정으로 3) 운용위원회는 연금기금운용에
<표1>
관한 모든 사항을 결정하는 유일한, 합법적인 권한을 갖게 되어 운용위원회의 의결을 거치지 않는 기금운용 행위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국민연금법과 공자법 개정 이후 1년 동안 개최된 4차례의 운용위원회와 실무위원회의 상황을 보면, 약간의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기금운용에서 가입자의 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한다는 개정 국민연금법의 취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4) 이런 점에서 보면 국민연금기금운용 결정과정은 과거의 복지정책이 결정되는 패턴과는 질적으로 다른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정책결정구조에 해당된다. 운용위원회의 구조는 행정부의 관료가 대부분의 정책을 결정하는 기존의 관료적 정책결정구조와도 판이하며, 국회의원들이 행정의 세부적인 사항을 결정하는 대의민주주의 체제와도 상이하다. 개정 국민연금법에 규정된 운용위원회의 구성과 그 권한은 어찌 보면 국민연금 가입자의 참여와 목소리가 선출직이 아닌 관련단체의 대표들에 의해 제도적, 실질적으로 보장된다는 점에서 일종의 '참여민주주의'의 한 형태(?)로 인식할 수도 있다.
국민연금법 개정으로 실질적 위원회로 변화하게 된 운용위원회와 실무위원회의 구조는 위와 같은 긍정적인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입자와 참여가 완벽하게 보장되는 가입자 참여 민주주주의로 정착되기에는 여전히 한계를 갖고 있다. 지난 1년간의 운용위원회의 활동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첫째는 운용위원회가 갖고 있는 권한에 대한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기초적인 구조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운용위원회는 법적 근거가 있는 법정위원회에 해당되나 비상설기구이기 때문에 영향력 행사에 한계가 드러나고 있다. 운용위원회 위원이건 혹은 실무위원회 위원이건 모두 전업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분기별로 한번씩 개최되는 회의에 참석하여 책임있는 결정을 하기에는 애초부터 한계가 있는 것이었다. 특히 법에 의해 규정된 운용위원회의 임무 중 기금배분, 기금운용의 평가와 기금운용에 대한 상시적 감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비상설기구로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따라서 운용위원회와 실무위원회를 전문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사무국의 신설 등 운용위원회 자체를 상설기구화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상설기구를 어떤 형태로 구조화시킬 것인지에 대해서는 깊은 연구가 필요하지만 다른 나라에 존재하는 연금기금감독위원회 같은 형태를 고려해 볼 수 있다. 현재처럼 운용위원회가 비상설기구로 존재하는 한 운용위원회는 연금기금에 관한 관료적 통제를 합법화시키는 세련된 형태의 또 다른 관료통제기구로 변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둘째, 가입자 대표로 참석하는 운용위원회와 실무위원회 위원들의 전문성과 대표성 문제가 제기되었다. 연금기금의 배분을 결정하고 기금운용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공적연금기금운영의 원칙에 대한 원칙적 이해도 필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금융시장의 작동원리에 대한 고도의 전문적 지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면 운용위원회 위원과 실무위원회의 위원에 좀더 전문성을 갖춘 인사가 배치되어야 한다. 물론 이 점은 앞에서 언급한 기금운용위원회의 상설화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전문가 몇 명을 위원회에 보완한다고 하여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대표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연금가입자의 이해관계를 표현하는 데 있어 정부와는 완전히 독립된 의사를 자유롭게 제기할 수 있는 단체가 실질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이다.
셋째, 기금운용의 결정에서 여전히 '정치적 위험'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것이 국민연금기금의 보육시설 융자금의 원금상환을 3년 동안 연기한 결정이다.5) 보육시설 융자를 받은 시설주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명백하게 기금운용의 손실을 가져올 수 있는 상황을 예견하면서 원금상환을 3년 동안이나 유예한 것은 기금운용의 원칙을 훼손한 것이다.
네 번째로 운용위원회와 실무위원회에 정부위원들이 계속적으로 불참하는 문제가 드러났다. 재경부, 기획예산처, 산자부 등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하게 법에 규정된 정부위원들은 운용위원회와 실무위원회 대부분의 회의에 참여하지 않는 무책임한 태도를 보였다. 특히 기금운용이 거시경제운용과 밀접히 연관된다는 점에서 재경부와 기획예산처가 회의에 전혀 참석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국민연금법의 개정으로 새롭게 변신한 운용위원회와 실무위원회의 1년을 평가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이다. 사회복지분야 혹은 더 넓게는 정부정책결정에서 '참여민주주의 신모델'이 될지 혹은 새로운 형태의 '세련된' 관료적 통제기구가 될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국민과 이해관계자를 배제한 채 모든 결정이 관료들에 의해 독점적으로 이루어지는 과거의 정책결정과정 패턴이 변화했으며 일단은 그 변화가 긍정적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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