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개혁의 초석
월간 복지동향/2000 :
2000/01/10 00:00
국민건강보험법 , 약사법 개정 평가
12월 7일 국회를 통과한 국민건강보험법과 약사법(의약분업 시행 법안)은 우리 국민들의 의료관행에 많은 변화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건강보험법은 올초 임시국회에서 통과되었으나, 직장의료보험조합의 반발과 왜곡선전으로 많은 진통을 겪었다. 의약분업 또한 당초 1999년 7월에 실시할 예정이었으나, 의사와 약사단체들이 반발하는 바람에 1년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고, 시민단체가 전면에 나서서야 겨우 시행방안을 마련할 수 있었다. 두 법안 모두 기존 관행에 안주해 있던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에게 반발을 사고 있지만, 전근대적인 우리 의료제도를 바로세우기 위해서 피할 수 없었던 선택이다.
의료보험통합법안으로 더 많이 알려진 국민건강보험법안의 골자는 2000년 7월 1일까지 조직을 통합하고, 2001년 1월까지 직장조합 가입자와 공무원 교직원 조합 가입자의 재정을 통합하며, 최종적으로 2002년 1월까지 지역조합 가입자와 재정을 통합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1998년 10월까지 우리 보험제도는 224개 지역조합과 140개 직장조합으로 분리 운영되었다. 관리운영비를 많이 지출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고, 저소득자가 고소득자보다 더 많은 보험료를 부담하는 현상까지 발생하였다. 질병에 따른 위험을 사회적으로 분산하고 소득재분배 역할을 기대하는 의료보험의 정신에 부합하고 사회적 형평성을 확보할 수 있는 의료보험제도를 만드는 것은 사회적 요구였고, 국민건강보험법안은 그러한 사회적 요구가 반영된 결과이다.
국민건강보험법은 잘 알려진 통합조치 이외에 몇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선 명칭이 의료보험법안에서 국민건강보험으로 바뀐 것에서 드러나듯이, 기존 법안이 질병에 대한 치료 서비스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면 국민건강보험법은 건강증진과 예방, 재활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는 국민건강권 보장이라는 개념을 의료보험에 접목한 것으로 당장의 변화는 어렵겠지만, 궁극적으로 의료보험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 자체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또한 보험료 부과의 형평성에도 많은 개선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전에는 각 조합별로 조합재정 형편에 따라 각각 보험료를 부과하였기 때문에 적립금이 적은 조합(재정형편이 어려운)에 속한 가입자는 적립금이 많은 조합(재정이 남아도는)에 가입한 사람보다 더 많은 보험료를 납부해야 했다. 즉, 이전 조합방식은 소득이 적은 사람이 소득이 많은 사람보다 더 많은 보험료를 내야 하는 부당한 일이 발생하는 구조였다면, 조합통합을 통해 소득이 많은 사람이 더 많이 내고 적은 사람은 적게 내는 형태로 바뀜으로써 형평성을 크게 높였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형평성은 통합이 완전히 마무리되는 2002년 2월까지 단계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때까지 지역가입자에 대한 소득파악을 투명하게 하는 것이 과제라 할 것이다.
국민건강보험법이 가지는 또 다른 의미는 그 동안 의료보험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은 불만을 가져왔던 보험급여를 확대하고 본인 부담금을 줄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는 데 있다. 이는 조합통합으로 인한 관리운영비 절감, 소득파악 개선, 보험료 부과 형평성 개선 등에 따른 효과로서 향후 의료보험정책을 수립하는 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심사평가원을 설립하여 환자가 받는 의료서비스의 질을 평가하게 한 것이나, 보험가입자가 각종 이사회나 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는 조처를 마련한 것도 국민건강보험법이 갖는 중요한 의의이다.
의약분업은 1963년 약사법 개정시에 이미 법제화되어 있던 제도이다. 그러나 당시 열악한 의료환경에서는 이를 시행할 수가 없었고, 수십 년간 의약 양 단체간에 논란만을 거듭해 왔다. 1993년 한약분쟁을 거치면서 1999년 7월 이전에 실시하기로 결정하였지만, 그 시행방안을 마련하지 못한 채 1998년을 넘기고 말았다. 결국 1년 연기와 시민단체 개입이라는 과정을 거치고서야 시행방안을 마련할 수 있었고, 그 시행방안을 반영한 약사법 개정안이 이번에 국회를 통과하였다.
이번 의약분업 시행방안은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기본명제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여기에 '소비자의 알 권리를 보장한다'는 정신을 포함한 것이 이전에 논의되었던 의약분업 방안과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조제에 대한 개념을 신설하고 전문의약품과 일반의약품 모두 의사처방에 따라 조제하게 함으로써 그 동안 관행적으로 인정해 왔던 약사의 임의조제를 금지하였다. 반면 일반의약품 혼합판매는 조제가 아닌 것으로 보고 허용하였다. 단순히 말하면 의사처방 없이 감기약을 조제받을 수는 없지만, 복합 감기약과 쌍화탕을 사먹을 수는 있다. 병원을 다니는 외래환자(입원, 응급환자는 예외)도 처방을 받아 약국에서 조제하게 규정하였는데, 이는 외국 여러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병원을 이용하는 경질환 환자가 많기 때문이다. 병원 외래환자 중 거동이 불편한 중질환자는 따로 예외규정을 두어 환자편의를 도모하고 있다.
이번 법안에서 중요한 것은 환자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조처들을 다수 반영하였다는 점이다. 모든 외래환자에 대해 반드시 처방을 발행하게 하여 환자가 자기가 복용하는 의약품에 대해 알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처방된 의약품을 약사가 대체할 경우(동일성분, 동일제형, 동일함량 의약품으로) 환자동의를 구하게 하였다. 대체여부에 대한 최종판단 권한을 환자에게 위임한 것이다. 의약분업 이전에 약효 동등성을 확보하게 함으로써 환자가 안심하고 투약받을 수 있는 조처를 마련하였고, 약화사고에 대한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방안으로 의약품 식별코드를 도입하기로 하였다.
환자편리를 위한 조처도 마련되었는데, 처방전 전송 제도는 처방전을 환자가 지정하는 약국에 미리 전송하여 환자가 이동하는 동안 조제를 해 놓을 수 있게 함으로써, 환자가 약국에서 대기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한 것이다. 주사제에 대해서는 사전처방 제도를 도입하여 정기적으로 주사를 맞거나 자주 주사를 맞아야 하는 환자가 여러 번 이동해야 하는 불편을 없앴다.
의약분업 법안 통과 이후 일부에서 반대의견을 표시하고 있으나, 이는 법안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일부러 왜곡한 결과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내년 구성되는 지역별 의약분업 협력위원회에서 세부시행에 필요한 것들을 논의할 것이기 때문에 일부 미비점을 침소봉대함으로써 의약분업이라는 국민건강증진에 필요한 획기적 제도시행 자체를 어렵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의약분업과 의료보험 통합은 오랜 세월 많은 논란끝에 사회적 합의 절차를 거쳐 시행하는 제도이다. 기존 관행을 버리고 새로운 제도에 적응하는 것이 어려운 일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잘못된 관행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자세는 결국 모든 국민에게 피해를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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