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회복에 즈음한 우리의 과제
지난 2년간 우리 국민 모두는 경제위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힘겨운 노력을 기울여 왔다. 그리고 지금은 그러한 노력이 상당한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적어도 실업률, 경제성장률, 외환보유고 등의 지표가 보여주는 우리 경제는 위기를 완전히 극복했다. 그러나 경제위기가 단순히 경제지표의 악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삶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이었듯이,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 역시 단순한 경제지표만은 아니다. 경제지표의 호전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가 불러온 우리들의 삶의 위기는 아직 극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제위기로 말미암아 무너진 삶의 희망을 복원하고 이를 사회정책으로 제도화하는 일이 경제회복을 맞고 있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 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전환기에 서 있다. 성장제일주의가 초래한 대량실업과 경제파탄의 아찔한 기억을 잊지 않는다면, 성장과 분배가 균형을 이루는 진정한 복지사회의 길을 모색해야만 한다. 이는 지난 30년 이상 우리 사회를 이끌어왔던 불균형적 성장지상주의로부터 인간을 위한 성장, 근대화 과정 속에서 잃어가던 사회적 연대의 회복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겨야 함을 의미한다.

경제회복과 새로운 성장이 진정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소득분배구조를 개선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고 절실한 과제이다. 우리 사회의 물질적 부를 창조하는 '일하는 사람'들이 일한 만큼 공정하게 분배받는 기본적인 도덕적 가치가 회복되지 않는다면 새로운 세기의 발전이란 의미가 없을 뿐 아니라 가능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또한 경쟁적인 시장구조에서 충분한 자기실현의 기회를 갖기 힘든 장애인, 노인 등 사회적인 취약계층에게도 새로운 희망에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고 모든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는 적극적인 재분배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소득분배구조를 개선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무엇보다 빈곤퇴치를 위해 모든 힘을 기울일 것이다. 경제위기가 곧바로 빈곤층의 급속한 증가와 가족해체, 그리고 노숙자 증가로 이어진 것은 사회안전망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결과라 할 것이다. 실업과 빈곤에 대비한 사회안전망을 갖추는 일은 국가의 당연한 역할이다. 그러한 점에서 올해부터 시행될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동안 시혜적인 차원에서 최소한의 수준에 머물던 빈곤대책으로부터, 모든 국민들의 인간답게 살 권리에 기반하여 국가가 생계, 교육, 의료 등 기본생활을 보장하는 정책으로의 큰 전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빈곤퇴치를 위한 정부의 역할은 단순히 소득을 재분배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일할 의지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립적으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도록 자활의 토대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공동체내의 기업, 시민단체 등이 지역문제를 해결할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이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라 할 수 있다. 시민사회 내에 존재하는 공동체적 연대의식에 바탕한 새로운 복지모델을 구축함으로써 효과적인 빈곤퇴치가 가능할 것이다.

빈곤퇴치와 함께 소득분배구조 개선을 위해 중요한 과제는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들의 재산형성을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우선 현재는 적극적인 운영이 되지 않고 있는 최저임금제도를 현실화하여 저소득근로자들이 일에 대한 보람과 의욕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스톡옵션형 우리사주제' 등 다양한 정책개발을 통하여 부정한 방법이나 부동산 투기 등 우리 경제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 아닌 정당한 근로의 대가를 통하여 재산을 형성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을 할 것이다.

한편 소득분배구조 개선을 위하여 중요한 과제로 조세제도의 개혁을 빼놓을 수 없다. 조세제도의 개혁은 그 자체로서 분배정의를 실현하는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사회보장제도를 위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우리나라 예산은 그동안 개발중심으로 편성되어 복지예산이 차지하는 비율이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사회보장의 재분배 기능을 대폭 강화하기 위해서는 OECD 국가에 상응하는 복지재정 규모로 점차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조세제도의 개혁이 병행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소득이 투명하게 드러나는 근로자들이 납세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 있는 데 비해 일부 고소득 자영업자들은 소득에 비해 적은 세금을 내고 있는 상황에서는 근로자들이 불만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음성탈루소득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여 성실 납세자들이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며 이는 곧 복지재정을 확보할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경제위기의 극복과 새로운 도약의 희망 속에서 새로운 세기를 맞게 된 것은 여간 다행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는 IMF의 시련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새로운 세기를 시작하는 지금 우리가 오랫동안 기다리고 준비해온 미래가, 진정 삶이 풍요로워지고 모두가 더불어 행복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성장일변도의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의 삶을 최우선하는 정책으로의 큰 전환이 요구된다. 아마티아 센의 말을 빌자면 경제성장 과정에서 잊혀져 갔던 '다양한 인간 모습'을 복원하는 것이 절실한 것이다.

경제회복 과정을 통해 위기에 빠졌던 모든 국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나아가 우리 경제의 왜곡된 구조의 근본적인 개선을 위한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2000년 3월

김유배 / 청와대 복지노동수석비서관
2000/03/10 00:00 2000/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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