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생활협동조합운동의 현황과 전망
월간 복지동향/2000 :
2000/05/10 00:00
보건의료, 사회복지영역에서의 시민참여모델
의료라는 고도로 전문화된 영역에서 시민들은 늘 진료를 받는 대상화된 존재였다. 진료라는 혜택도 이전에는 일부 특권 계층만이 향유할 수 있는 전유물이었고, 의사가 환자에게 시혜적으로 진료를 베풀어 줘야 시민들은 비로소 그 혜택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전통적인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는 권위적이고, 일방적이고 수직적인 관계였다. 의약분업의 시행을 앞두고 병의원의 휴진이 이어지는 등, 지금 의료계에서는 의약분업 시행의 찬반 논쟁이 뜨거운 이슈로 부각이 되고 있다. 이미 오래전에 의약분업 시행을 결정해놓고도 그 오랜 세월동안 시행시기를 연해온 결과, 시민들이 의약품 오남용의 희생 제물이 된 채 그 피해를 다 뒤집어 써왔다. 하지만 이제까지 의약분업의 시행처럼 시민들의 건강에 관련한 중요한 일들에 있어 시민들과 시민단체들은 결정과정에서 늘 소외되었었다.
하지만, 의료처럼 고도로 전문화된 영역에서도 시민들의 참여 바람은 역시 불고 있다. 의료생활협동조합(이하 의료생협)운동이 그것이다. 시민들의 무지속에 전문가들의 전횡이 발생할 소지가 많아, 시민들의 피해가 잇따르는 것이 바로 의료분야이다. 이러한 의료풍토에서 시민들과 의료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한 의료생협은 환자의 권익보호 등 혁신적인 노력과 더불어, 지역주민들을 위한 여러 지역보건사업을 펼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 제정과 더불어 활성화의 계기를 맞은 의료생협을 간략히 소개한다.
의료생활협동이란?
의료생협이란 지역 사람들이 각자의 건강, 의료, 생활과 관련된 문제를 이웃과 함께 해결하기 위하여 만든 모임으로서 협동조합의 원칙을 따르는 조직이다. 그러므로 의료생활협동조합은 지역주민이 의료기관을 포함한 건강과 관련된 시설을 설립하고 운영하며 그 기관에서 일하는 의료 전문가와 힘을 모아 건강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주민 자치 조직이다. 의료생협은 질병이 생기기 이전에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예방보건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으며, 지역주민들이 주인으로 활동할 수 있는 모임(반)을 구성하고, 의료기관등을 민주적으로 운영하여 민주적인 지역주민조직의 모태가 되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의료생협이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본에서는 의료생협이 140개이고 참여하는 조합원이 200만이나 되는 잘 알려진 협동조합 조직이다. 우리나라에도 현재 안성, 인천평화, 안산의료생협이 활동하고 있는데, 지역주민이 참여하는 새로운 의료 모델로 발전되리라 기대된다.
왜 의료생활협동조합인가?
'보건의료발전과 지역주민 참여: 새로운 보건의료를 향하여'라는 주제의 '세계보건기구 연구모임'(A WHO Study Group on Community Involvement in Health Development: Challenging Health services)은 1978년 12월 11일부터 18일까지 제네바에서 회의를 가졌다. 이 회의에서는 보건 개발과 의료에서 개인. 가족 또는 지역사회 참여의 필요성이 강조되어졌다. 그동안 주민들의 참여를 증진시키고 행동을 이끌어내는 데 있어, 참여를 위한 상황이나 보건의료와 개발 측면을 개선하려는 노력 대신 지역사회 주민들을 변화시키는 쪽에 노력이 집중되어왔다 . 따라서 지역주민들은 참여하도록 조직되고 동원이 되기는 하였지만 참여할 보건의료 활동을 선택할 수는 없었다. 의료서비스 역시 경직되어 주민들의 의사에 따라 변하지 않았으며, 주민들은 의사 결정에 참여하지도 못하고 권한을 배분 받지도 못하였다. 한편 우리 나라에서도 몇몇 지역에서 지역의료활동이 있었지만, 그간의 경험과 연구에 의하면 보건의료에 대한 지역사회 주민들의 참여는 '쉽게 정착'되지 않을 것이며, 사람들을 자신들의 보건개발에 참여시키기 위해서는 보건의료와 다른 개발 부분 안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의료생활협동조합운동이 일본과 여러 나라에서 의료소비자운동으로서 큰 성장을 하게 된 배경에는 의료소비자에게만 변화를 요구한 것이 아니고, 의료인들과 병원의 변화와 더불어 의료소비자들이 의료의 한 주체로 참여하도록 할 수 있는 사회조직의 변화도 같이 추구를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생각이 된다. 지역 내 생활환경의 변화와 보건, 예방체계 구축은 중앙 및 지방자치단체의 지원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렵고, 지역주민 스스로가 보건, 예방체계를 의료인과 함께 구축하고 지역환경을 개선할 때만이 가장 효과적이다. 21세기의 지역의료란 과거처럼 단순히 치료위주의 기능으로부터 보건, 예방 및 전반적인 마을 건강을 위한 기능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의료인과 지역주민이 연대하여 건강한 마을을 위한 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
건강한 시민사회 건설을 위해
이제 21세기 한국 의료의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하여 우리에게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소수 의료전문가들에게 독점되었던 의료체계의 의사 결정과정을 개방하고, 시민들의 참여를 진작시키는 일은 의료서비스의 실질적인 개혁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즉, 의료소비자들에 의한 의료소비의 합리적인 통제기전을 만들어, 의료시장의 낭비와 비효율의 구조를 제거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정부도 의료정책을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획기적인 전환을 해야 할 때라고 여겨진다.
시민들의 참여 하에 새롭게 만들어지는 보건의료조직은 기존의 민간, 공공부분과 구별되는 제 3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우리사회의 제3부분으로서 위치한 의료생협은 의료의 개혁에 있어 다음의 과제를 가지고 있다.
첫째, 보건의료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시민들의 참여를 중시하고, 이러한 자원을 활용하는 의료 모델을 개발하는 일이다. 일차의료부문에서의 지속적이고 포괄적인 의료서비스가 비용 절감과 의료서비스의 질 향상에 기여한다는 것이 널리 인정되어지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지역의료 시범사업, 주치의제, 최근에는 단골의사제 등 여러가지가 제시되고 있지만, 이것을 추진할 의료조직, 주민의 참여가 확보되지 못하여 성공적인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한 나라의 의료체계의 근간을 이루는 일차의료모델, 지역예방보건사업 모델을 만드는 일로 의료개혁에 있어 핵심 과제이기도 하다. 의료생협은 지역주민의 협동과 자치를 중시하고, 그 자체가 주치의 제도, 시민참여의 지역보건의료사업을 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의료생협이 우리 나라에서 일차의료의 강화, 지역보건사업의 활성화를 추진하는데 상당한 역할을 해야 할 것으로 기대가 된다.
둘째는 기존 공공의료부문의 경직성과 비효율성을 감시하고, 공공의료부문의 개혁을 촉진하도록 하는 역할이다. 공공의료부문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병원이고, 당연히 시민들을 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해야함에도 불구하고 공공부문은 마치 개혁의 사각지대로 방치되어있다. 공공의료부문이 개혁될 수 있도록 공공의료개혁모임을 구성하고, 시민들의 목소리를 지방자치단체와 중앙 정부에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시민단체가 이 부문에 관심을 가지도록 연계하고, 또 전문성의 뒷받침을 하는 것이 의료생협의 역할로 중요하다.
셋째는 시장 경제에 있어서 정보의 불균등으로 발생하는 의료소비자의 일방적인 피해를 막는 일이다. 시민단체와 의료생협이 연대하여 의료소비자상담센타를 운영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하여 의료소비자에게 필요한 정보와 참여 기회를 알려주어야 한다. 특별히 소비자의 알 권리 보장과 합리적인 의료 소비를 위한 정보서비스, 병원서비스 개혁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알리는 일, 의료소비자의 요구를 병원경영층에 알리는 일, 실직자 및 외국인노동자 의료소외층에 대한 의료지원서비스 정보를 제공하는 일등이 당장 시급하다. 지역에 산재해있는 의료소비자를 자원봉사자로 조직하여 지역보건사업이 참여하게 하는 일도 정보 네트워크를 통하여 촉진할 수 있다. 지역에서 의료생협은 시민단체들과 더불어 자원봉사활동의 활성화를 위하여 지역화폐 발행을 추진하고 있다. 지역화폐는 지역에서 통용되는 유형 또는 무형의 교환매개체를 통하여 지역주민끼리 상품과 노동을 교환 할 수 있는 제도로 지역주민의 고용촉진, 소득 증진의 효과와 더불어 자원봉사활동, 지역공동체운동의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사회에서 시민사회의 영역을 확장하고 시민단체가 그 사회적인 역할을 높여 가는 과정에서 의료생활협동조합활동은 시민들이 주인으로 참여하는 시민사회의 성숙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의료의 형평성 진작, 의료서비스의 질 향상, 의료 비용절감, 의료소비자와 의료인의 일체감 형성, 의료의 민주화 등으로 의료사회의 발전과 성숙도 가져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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