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4] 병원비 걱정없이 질병 치료를 할수 있는 건강보험, 내 몸을 잘알고,믿고 찾아갈수 있는 병의원
<건강보험,보건의료 분야>
이진석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
1. 국가보건의료체계의 목표와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성과
세계보건기구는 국가보건의료체계의 궁극적인 목표를 ‘국민건강 향상’으로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국민건강 향상’은 평균 수명 연장이나 유병률 감소 등과 같은 평균치의 향상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 사회계층 혹은 집단 간의 건강 격차를 줄이는 형평성의 가치를 동시에 가진 개념이다. 즉, 국가보건의료체계의 궁극적인 목표를 달리 표현하면 ‘모든 국민이 골고루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국가보건의료체계의 양대 축인 건강보장제도와 의료제공체계가 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건강보험과 의료급여로 구성되는 건강보장제도는 사회적 연대를 통해 건강보장 재원을 마련함으로써 질병으로 인한 개별 가계의 과중한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 기본 역할이며, 의료제공체계는 양질의 보건의료서비스를 생산하여 국민에게 적절한 양만큼 적시에 제공하는 것이 기본 역할이다. 건강보장제도와 의료제공체계의 관계 역시 중요하다. 국가보건의료체계에서 이 둘은 서로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상호 간에 밀접한 영향을 미친다. 건강보장제도의 성과는 의료제공체계의 성과에 의해 좌우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며, 그 반대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국가보건의료체계의 목표 달성을 위한 우리나라의 건강보장제도와 의료공급체계의 성과는 낙제점을 면하기 힘들다. 우리나라 건강보장제도의 취약한 보장성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보다 건강보장제도의 보장성이 낮은 국가는 몇 개에 지나지 않는다. 영리 위주로 운영되는 대다수 병의원으로부터 지속성과 포괄성이 보장된 양질의 보건의료서비스를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이와 아울러 의료공급체계는 건강보장제도의 재정적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으며, 건강보장제도는 의료공급체계의 왜곡을 방치하거나 조장하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2. 건강보험,보건의료 분야의 의견조사 결과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가 사회복지 관련 전문가와 종사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사회복지 대선 의제에 대한 의견조사 결과는 이 같은 현실을 일면 반영하고 있다. 조사 참여자들이 건강보험․보건의료 분야의 6개 의제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의제는 건강보장제도의 보장성 강화와 건강보장제도의 지출 효율화였으며,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 확대도 비교적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상병수당 도입, 도시형 보건지소 확충, 전국민 주치의제도 실시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 수준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3. 건강보험 보장성의 획기적인 강화와 재정적 지속가능성 향상
건강보장제도의 보장성 강화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다. 우리나라의 건강보장제도는 질병으로 인한 빈곤화를 예방하는 최소한의 사회안전망 역할조차 제대로 담당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2004년 말 대구 지역 25개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지원받은 1,863명에게 위기 사유를 물은 결과, 저소득(49.1%. 중복 응답)과 같은 경제적 원인보다 질병(54.1%)을 꼽은 사람이 더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2006년부터 시행된 긴급복지지원제도의 상담사례를 위기 사유별로 분석한 결과에서도 중한 질병 또는 부상으로 인한 경우가 전체 상담의 69%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5년의 암, 일부 심장질환과 뇌혈관계질환에 대한 집중적인 보장성 확대에도 불구하고, 고액 중증질환으로 인한 가계 파탄은 여전한 실정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지난 몇 년 사이에 건강보장제도의 보장성 확대를 위해 적지 않은 재정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병의원을 방문하는 환자들의 부담은 별로 줄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보장성 확대의 속도를 훨씬 앞지르는 비급여 서비스의 팽창 때문이다.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접근방식으로 뒤틀린 현재의 상황을 바로잡기에는 역부족인 듯 하다. 어쩌면 기존의 통념을 뒤엎는, 도발적이고 상상력을 동원한 보장성 확대 전략이 필요할 때일 수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일각에서 제시하고 있는 건강보장제도의 보장성 확대를 위한 적자재정 전략을 주목할 만 하다. 적자재정 전략의 요체는 금융기관 차입을 통해 국민이 감동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장성을 일시에 획기적으로 강화하고, 이를 통해 형성된 국민의 신뢰를 기반으로 점진적으로 적자를 해소해 나가자는 것이다.
건강보장제도의 지출 효율화는 건강보장제도의 재정 건전성뿐만이 아니라 의료공급체계의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중요한 개혁과제이다. 건강보장제도의 수익 구조를 아무리 개선해도 지출 구조가 낭비적이라면 건강보장제도의 재정 건전성을 보장할 수 없다. 행위별수가제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현행 건강보장제도의 진료비 보상방식은 낭비적 지출 구조의 전형이다. 서비스를 제공하면 할수록 수익이 늘어나는 구조에서 적정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할 의료공급자가 있을 리 만무하다. 이와 더불어 건강보장 지출의 30%에 이르는 과다한 약제비 지출을 절감하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으로 2007년부터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 방식이 ‘지역가입자 급여비 등의 50%’에서 ‘전체 보험료 예상수입의 20%(국고지원 14% + 건강증진기금 6%)’로 변경되었다. 이로 인해 건강증진기금을 포함한 국고지원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지역가입자가 단계적으로 지역가입자로 전환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장기적으로는 국고지원 규모가 현행보다 증가할 수도 있다. 그러나 법적으로 건강증진기금은 2011년까지만 지원하도록 명시되어 있기 때문에 국고지원 규모의 증가를 낙관하기는 힘들다. 건강보험에 대한 국고지원 확대는 건강보험의 재정 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국민건강보장에 대한 국가 책임성을 강화한다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과제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건강보험 분야의 3개 정책의제는 사회복지학계와 관련 종사자들 사이에서 비교적 익숙한데 반해 상병수당 도입, 도시형 보건지소 확충, 전국민 주치의제도 실시 등은 아직도 낯설거나 정책적 중요성에 비해 인지도는 낮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국가보건의료체계의 목표 달성 측면에서 이들 후자 영역의 과제 역시 매우 중요하다. 상병수당의 부재는 우리나라 건강보장제도가 사회안전망의 역할을 제대로 담당하지 못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결함이다. 고액 중증질환에 대한 보장성 확대로 인해 ‘의료’ 영역의 본인부담은 과거에 비해 한결 경감되었다. 그러나 중증질환에 걸린 환자 입장에서 보면, 질병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은 의료서비스 이용과 관련된 ‘의료’ 영역에서만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2004년 국립암센터에서 이루어진 실태조사에 따르면, 암 발생 1차년의 환자 1일당 비용 합계는 약 2,600만원 수준(건강보험 부담분 포함)이었다. 이 중에서 환자 혹은 간병 가족의 노동능력 상실로 인한 소득 손실이 1,300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암 환자의 56%가 암으로 진단받은 지 3개월 이내에 직장을 잃게 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상병수당 도입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가볍게 여길 수 없다.
4. 내 몸을 잘 알고, 나의 건강을 적극적으로 챙겨주는 보건의료
도시형 보건지소는 민간 위주의 의료공급체계로부터 비롯되는 문제점을 해소하고, 국민건강증진을 촉진시키는 매우 중요한 공공보건의료 인프라이다. 참여정부 대통령 공약에도 도시지역 보건지소 설치가 포함되어 있었고, 인구 5만명당 1개소의 보건지소를 설치하겠다는 구체적인 방안까지 제시되었다. 그러나 2006년까지 신설된 도시 보건지소는 10개에 불과하며, 2007년에 5개 내외의 보건지소가 추가 신설될 예정이다. 도시 보건지소는 2005년 처음으로 신설된 이래, 지역 주민에 대한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건강관리를 통해 이미 상당한 성과를 낳고 있다. 특히, 노인, 장애인, 거동 불능 중증질환자, 저소득층의 의료 접근성을 향상시키고, 이들의 건강 취약성을 완화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에 도시 보건지소를 지속적으로 확대 설치하여 건강증진과 질병예방에서부터 질병관리, 재활, 방문보건에 이르는 포괄적인 도시지역 보건의료사업을 시행해야 한다.
내 몸을 잘 알고, 나의 건강을 알아서 챙겨주는 의사, 언제든 건강문제에 대해 상담을 할 수 있는 의사를 갖고 싶은 것은 모든 국민의 바램이다. 우리나라 국민 중에서 이런 주치의를 갖고 있는 사람은 대통령, 대기업 회장 등 극소수 특권층뿐이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대다수 선진국에서 주치의는 극소수 계층의 특권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누리는 보편적인 혜택이다. 주치의 제도는 인구 고령화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될 만성질환, 그리고 이로 인한 의료비 지출 급증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하면서도 국민이 만족하는 양질의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첩경이다. 의료이용량이 세계 최고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만성질환 관리가 엉망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도 주치의 제도는 하루빨리 시행되어야 한다. 주치의 제도를 전면 시행하는 것이 힘들다면, 포괄적이고 지속적인 건강관리의 중요성이 큰 노인, 소아, 만성질환자, 취약계층 등을 대상으로 우선 실시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5. 의료공급체계의 합리화와 건강 친화적인 생활환경 구축
이번에 실시된 조사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의료공급체계의 합리화와 건강 친화적인 생활 환경 구축, 취약계층의 건강보장도 중요한 정책과제이다. 최근 무서운 추세로 급성병상의 신증설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급성병상은 2005년 기준으로 이미 3만여 병상이 과잉 공급된 상태이지만, 그 이후 2년 사이에 수도권 지역에서만 무려 1만5천여병상이 더 늘어났다. 늘어난 수도권 지역의 급성병상은 흡사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전국의 환자들을 흡수하고 있다. 환자가 줄어든 지방병원은 경영수지를 맞추기 위한 나름의 자구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 지출을 줄이기 위해 서비스의 질을 낮추거나 매출을 늘리기 위해 불필요한 검사와 시술을 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병원이 많다고 무작정 좋은 것이 아니다.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병원이 필요한 만큼 있어야 좋은 것이다. 이에 반해 요양병상은 7만5천여 병상이 부족한 상태이다. 지난 10년 사이에 단위 인구당 급성병상수가 늘어난 국가가 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는 사실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현대사회에서 발생하는 건강 문제의 70% 이상이 건강하지 못한 생활습관과 주변 환경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강한 사람이 평소 자신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건강 문제의 상당 부분을 사전에 해결하는 매우 효율적이고 윤리적인 방안이다. 특히, 취약계층은 건강에 위해한 환경에 이중, 삼중으로 노출되어 있다. 이들을 둘러싼 환경 자체를 건강 친화적으로 개선하지 않는다면, 날로 심화되는 건강 양극화를 해소할 수 없다. 전체 국민의 16%에 이르는 학령기 인구집단과 32%에 이르는 임금노동자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학교와 직장을 건강 친화적인 공간으로 구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전염병 예방을 위해 손 씻기를 강조하는 포스터를 학교에 붙일 것이 아니라 손을 씻을 수 있는 세면대를 설치해 주어야 한다. 학생들의 건강한 신체 활동을 증대시킬 수 있는 운동시설을 갖추고, 많은 선진국과 같이 학생들의 체육활동을 의무화해야 한다. 산업재해 처리와 특수건강검진에 국한된 산업보건(Industrial Health)을 직장보건(Occupational Health)의 개념으로 확장하여, 직장 내에서 건강증진, 질병예방, 질병관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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