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찬 섭 (동아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지난 9월 중순은 한국과 중국, 일본 세 나라의 사회복지연구와 관련하여 매우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즉, 9월 14일과 15일 이틀에 걸쳐 한·중·일 세 나라의 사회복지학자들이 한국의 중앙대학교에 모여 사회보장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였던 것이다. 이 학술대회는 2005년에 처음 개최된 이후 세 번째 열리는 학술대회인데 제1회와 제2회 학술대회는 중국 인민대학 사회보장연구센터 주최로 북경에서 개최되었고 이번에 개최된 제3회 대회는 한국이 개최하게 된 것이다. 이 날 학술대회에 한국의 사회복지학자들은 물론이고, 중국에서 26명, 일본에서 36명의 사회복지학자들이 참석하였고, 대회가 열린 이틀간 세 나라 학자들이 쓴 50여 편의 논문이 발표되었다.

  발표된 논문의 수나 참석한 사회복지학자들의 규모 면에서도 이 학술대회는 성대한 것이었지만 이것이 동아시아에 대한 최근의 다양한 관심의 흐름 내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그러한 다양한 관심을 촉발시킨 새로운 정치경제적 경향 속에서 동아시아 세 나라 사회복지의 현황과 방향을 점검하려는 시도를 한 것이라는 점에서도 매우 의미 있는 대회였다고 할 수 있다.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었지만 최근의 관심은 자본주의 정치경제의 큰 변화 흐름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낳는 모순에 대한 대응의 일환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함께 등장한 사회복지는 역사적 과정에서 여러 번의 변용을 겪어 왔는데, 최근에는 자본주의 경제의 지구화, 세계화라는 흐름과 함께 사회복지는 또 한 번의 큰 변용과정을 겪고 있으며, 이에는 동아시아 세 나라의 사회복지도 예외가 아니다.
  경제의 지구화, 세계화는 금융자본의 전지구화와 이를 뒷받침하는 정보화에 의해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으며, 이를 배경으로 전지구적 노동분업의 재편을 강요하고 있고, 이에 따라 사회복지도 과거와 다른 작동방식을 요구받고 있다. 사회복지의 입장에서 이는 외부적 요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외부적 요인으로는 인구학적 변화를 들 수 있는데, 노인인구 비중이 빠른 속도로 높아져가고 있으며 출산율은 떨어지고 있고, 이 역시 사회복지의 작동방식이 변화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복지의 입장에서 외부적 요인인 것처럼 보이는 이들 요인이 사회복지에 가하는 변화압력은 사회복지의 제도내적 과정과 이 제도내적 과정을 둘러싼 일국 사회의 내부적 역관계에 의해 나라마다 다른 모습으로 현실화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외부적 요인과 내부적 요인이 작동하는 방식은 서구와 동아시아가 서로 차이를 보인다. 경제지구화나 정보화 등의 흐름이 사회복지에 대해 외부적 요인이라는 사실은 서구 유럽국가들보다 동아시아 국가들에 있어서 더욱 강하게 체감되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복지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낳는 모순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 편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일부이기도 하며, 이는 서구 유럽의 경우 오랜 기간 동안의 사회복지의 변용과정을 거쳐 사회복지 자체가 서구 유럽의 정치경제에 융합되어(embedded)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동아시아 국가의 경우 자본주의의 발달이 빨랐던 일본도 선발국들에 비하면 후발주자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뛰어들었고 한국은 그보다 더 늦은 1960년대부터 본격적인 자본주의화가 시작되었으며 중국은 그보다 더 늦은 1970년대 중반 이후부터의 개방·개혁정책을 통해 자본주의적인 시장경제를 이식하고 있다. 요컨대 동아시아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동아시아 사회가 과거부터 가지고 있던 사회구조 속에서 발현하였다기 보다는 그것과는 이질적인 요소로 유입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회복지도 동아시아 사회가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것과는 다른 이질적인 요소로 유입된 것이다. 동아시아 사회복지를 거론하면서 흔히 거론하는 유교문화적 특성은 이를 서구와 다른 것으로서 동아시아가 가진 공통적 특성을 말하기 위한 것인데 동아시아가 공통점을 갖는다면 그것은 아마도 유교문화적 특성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발전과정이 서구와 달랐으며 이로 인해 사회복지의 발전과정도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일 것이다.

  하지만 동아시아는 공통점보다 차이점을 더 많이 갖고 있는 것 같다. 서구와의 비교에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도입시기가 늦은 것은 사실이나 동아시아 각 나라를 보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도입 시기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게다가 일본을 제외한 두 나라는 식민지 내지 반식민지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이 경험에는 모두 근대 동아시아에서의 일본과의 관계가 매우 중요한 요소로 포함되어 있다. 또한, 경제적으로 중국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매우 다른 경제체제를 가지고 있는 가운데 개방·개혁을 통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요소를 도입하고 있다. 또한, 동아시아 세 나라의 경제발전 수준도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일본은 서구 유럽을 능가할 정도의 경제규모 및 소득수준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자본주의 경제가 성숙한 상태이지만, 중국은 한국의 1960년대와 같은 급속한 경제발전 속도를 보이면서 동시에 도농간 격차나 지역간 격차 등의 문제가 심각하게 나타나는 발전도상에 있으며, 한국은 이들 두 나라와 비교하면 중간정도에 위치하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세 나라는 매우 다른 특성을 가지면서 또 한 편으로는 매우 흥미로운 지리적 연속선과 같은 특성을 보여준다. 일본은 정치적으로 자본주의 친화적인 보수적 색채를 강하게 가지고 있으며, 중국은 정치적으로 공산당에 의해 지배되고 있고, 이 두 나라의 가운데에 위치한 한국은 자본주의 친화적인 정권과 사회주의 경제 친화적인 정권에 의해 양분되어 있다.
  이러한 차이는 사회복지에도 반영되어 있다. 동아시아 세 나라에서 사회복지는 자본주의처럼 이질적인 요소로 도입되었지만 일본은 세 나라 가운데에서는 가장 안정적인 사회복지를 가지고 있고, 중국은 과거 사회주의 경제체제에서 지배적인 형태였던 기업중심의 사회보장체제가 급속히 효력을 잃어가면서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하는 상태에 있고, 한국은 최근 몇 년 동안 사회복지제도가 매우 빠른 속도로 발전해가고 있는 상황에 있다. 요컨대, 동아시아 세 나라는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단계에서도 그리고 사회복지제도의 발전단계에서도 매우 다른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경제와 사회복지를 다루어나갈 정치시스템의 면에서도 매우 다른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동아시아 세 나라가 서구와 달리 갖는 위와 같은 공통점과 또 동아시아 세 나라가 경제와 정치의 면에서 각기 갖는 차이점, 그리고 동아시아 세 나라가 보이는 사회복지제도 발전단계에서의 상이함이야말로 최근의 세계화 흐름과 인구학적 변화라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 동아시아 세 나라의 사회복지에 주어진 도전이 어떻게 처리될 것인가를 결정짓는 핵심 요인이다. 정치적으로 보수주의적인 경향이 강한 일본은 세 나라 가운데 가장 성숙한 자본주의 경제와 사회복지제도를 가졌지만 매우 강한 인구학적 압력에 직면하고 있고, 중국은 정치적으로 공산당에 의해 비교적 전일적으로 지배되고 있지만 개방·개혁 이후의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삶의 다양한 부문에서 격차가 커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그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복지의 필요성은 증가하고 있으나 내부적으로 자원량이 제한되어 있고 외부적으로는 급속한 세계화 흐름에 직면하여 있다. 한편 한국은 경제발전 정도에 비해 많이 뒤졌던 사회복지가 최근 몇 년 간 매우 빠른 속도로 성장하였으나 이러한 성장이 성숙된 제도로 결실을 맺기 전에 세계화와 인구학적 변화에 직면하여 새로운 작동방식을 요구받고 있다.

  사회복지의 발전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동아시아 사회가 가진 과제는 사회복지의 성숙이었고 이는 주로 사회복지에 대한 국가책임의 강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날 급속한 세계화와 경쟁의 격화로 사회복지에 대한 국가책임의 강화와는 다른 흐름과 담론들이 나타나고 있고 이는 동아시아 사회에도 매우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거 지역사회와 가족을 강조했던 논리가 전통사회의 논리에 근거했다면 오늘날은 그것이 시장원리와 경쟁, 작은 정부론과 같은 논리에 근거하고 있으며 그러한 논리의 이면에서는 국가에 대해 사회복지의 책임보다는 지구화된 경제의 정치경제적 경쟁에서 국가사회를 살려야 한다는 생존의 책임을 지우는 거대담론적인 민족주의 논리가 점차 강화되고 있다.

  다소 이질적인 요소로 도입된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사회 내부에서부터 건전하게 정착시키면서 시장경제의 모순에 대응할 수 있는 내실 있는 사회복지의 성숙화를 이루어야 하는 한편 시장원리와 경쟁이 강조되고 인구학적 변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상황에서 지속가능하고 동아시아의 평화공존에 기여할 수 있는 사회복지제도의 작동원리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 동아시아 국가들이 요구 받는 도전이다.

  이번 학술대회의 주제인 “사회서비스, 사회투자, 그리고 동아시아 사회복지의 미래”도 동아시아 세 나라가 직면한 이런 도전에 대응하려는 시도를 나타내고 있다. 사회서비스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구고령화 등으로 인한 가족구조와 기능의 변화에 직면하고 있는 세 나라가 모두 중요하게 다루어야 하는 문제이며, 사회투자 역시 그 전략에 동의하는가의 여부를 떠나서 최근의 정치경제적 경향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려는 한 흐름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의 근저를 이루는 가족구조와 기능의 변화 그리고 새로운 정치경제적 동향에 대응한 새로운 사회복지전략이 적절히 모색될 때 동아시아 세 나라의 사회복지는 그 미래를 담보할 수 있을 것이다.

  한·중·일 사회보장 국제학술대회는 내년에는 일본에서 개최키로 결정되었는데, 앞으로 학술대회뿐만 아니라 세 나라 사회복지학자들간의 교류도 좀 더 활발하게 일어나 동아시아 사회복지에 대한 연구와 실천에 의미있는 기여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2007/10/01 15:15 2007/10/01 15:15

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Welfare/trackback/40431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