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홍 식
(전북대 사회복지학과,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저출산과 고령화로 대표되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현상은 한국사회에서 여성아동가족정책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기대를 증대시켰다. 출산율 저하와 급격한 고령화가 미래의 성장 동력을 회손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출산율 저하와 급격한 고령화로 인한 성장 동력의 저하는 한국사회가 직면한 근본적인 문제가 아니다. 소위 새로운 사회위험이라고 지칭되는 노동시장의 유연화, 일과 가족생활 양립의 위기 등은 저출산과 고령화라는 현상적 문제를 넘어 한국사회의 불평등과 양극화를 심화시킴으로써 사회연대와 통합을 저하고 있다.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된 사회, 부와 기회가 계층에 따라 세습되는 사회에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기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본 평가는 정부는 물론이고 대선을 앞두고 각 후보 진영에서 쏟아내는 여성아동가족정책에 대한 다양한 정책제안과 공약이 한국사회가 직면한 사회적 위기에 대한 합당한 대안인지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특히 새로운 사회위험이라 지칭되는 현상들이 여성아동가족정책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는 점에서 이들 정책들의 핵심 내용을 집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시도라고 생각된다.
 
<표 1> 주요 여성아동가족정책에 대한 대선후보들의 공약비교

<표 1>은 핵심적 여성아동가족정책에 대한 대선주자들의 공약을 정리한 것이다. 먼저 이명박 후보를 보면 보편적 아동수당, 아동양육과 관련된 휴가(산전후 휴가, 육아휴직)의 보편적 확대, 유급부성휴가와 육아휴직 내 아버지할당제 도입에 대해 찬성하고 있다. 이명박 후보가 한국사회의 보수진영을 대표한다면 측면에서 보면 의외의 결과이다. 산업화된 서구 사회에서 보수정당은 상대적으로 전통적 가족가치(모성강조)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남성의 양육참여를 제도화하기 위한 육아휴직 내 아버지할당제 도입과 유급부성휴가에 대해 찬성한다는 것은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다. 국공립보육시설에 대해 임기 내 30%까지 확대한다는 정책제안에 대해서는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시장이 가장 효율적인 자원배분의 기제라고 인식하고 있는 이명박 후보의 입장에서 보면 어쩌면 당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후보는 국공립시설 확충에 대한 반대이유로 “국공립보육시설은 빈곤밀집지역, 농어촌 지역 등에 우선적으로 설치하도록 하고 나머지 부분은 민간의 시설을 질적으로 개선하여 보육수요를 대처해 나가도록 해야 할 것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질 높은 인적자원의 보편적 확대가 지식기반사회의 핵심적 전제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아동보육에 관한 이명박 후보의 공약은 향후 한국사회의 필요를 적절하게 반영했다고 할 수 없다. 역사적 경험을 반추해보면 시장과 민간시설을 중심으로 양질의 보육서비스를 보편적으로 제공한 전례가 없다. 국가의 직접적 역할 대신 시장을 통해 보육수요를 충당한 많은 국가들에서 아동의 인지능력 발달과 학업성취, 이후 노동시장의 지위에서 출신배경에 따른 차이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결국 국공립시설의 확대에 반대하는 이명박 후보는 현재의 계층적 차이를 용인하고 확대하겠다는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또한 국공립시설의 30%확대는 지난 2006년 시민사회단체, 경제계, 노동계, 종교계, 학계, 정부 등 한국사회의 다양한 부문의 이해를 대변하는 집단들의 사회적 합의의 결과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사회적 합의의 전통이 일천한 한국사회에서 어렵사리 이루어낸 사회적 합의를 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손바닥 뒤집듯 번복할 수는 없다. 아니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정동영 후보는 위의 4가지 정책에 대해 모두 동의하고 있다. 정동영 후보가 내세우고 있는 “가족행복시대”라는  슬로건이의 내용을 짐작하게 한다. 그러나 그 내용을 자세히 들여 다면 여성아동가족정책들의 정책방향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혼란스럽다. <표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정동영 후보는 0-2세 아동에 대한 양육보조금을 지원하겠다고 하면서 국공립 보육시설을 확대하겠다고 하고 육아보육의 공공성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정동영 후보가 생각하는 공공성 강화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공공성이 단순히 정부가 재원을 제공하는 것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된다. 서구의 사례를 보면 아동양육수당(지원)의 확대는 공적보육시설의 확대의 중요한 장애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양육수당 지급은 젠더 관점에서는 여성의 전통적 역할을 강화하고, 계층적 측면에서는 저소득 계층의 노동시장 참여를 막고 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또한 보편적 아동수당의 도입에 찬성하고 있지만 그 구체적 내용을 보면 “아기축복 바우쳐”를 아동수당으로 간주하고 있다. 현재로써는 “아기축복 바우쳐”의 구체적 내용은 알 수 없지만, 바우쳐가 시장에서의 서비스 구매를 지원하는 정책도구인 점을 고려한다면 아동이 있는 가구에 대한 기본적 소득보장 역할을 하는 보편적 아동수당제도의 도입의 진위에 의구심이 들게 하고 있다. 지금 우리사회에 필요한 것은 아동이 있는 가족에 대한 기본적 생활보장과 함께 보편적이고 질 높은 공적보육시설의 확대를 통해 한명의 아동도 예외 없이 질 높은 보육서비스를 제공받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적자원이 핵심인 사회에서 모든 아동은 예외 없이 소중하다.

권영길 후보도 정동영 후보와 같이 4가지 정책 모두에 대해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을 대표하는 진보정당의 여성아동가족정책 공약이라고 보기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주장들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표 2>에서와 같이 출산수당과 양육수당의 현실화를 주장하는데 (현실화의 수준이 어디까지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이러한 정책들은 산업화된 복지국가에서는 대부분 보수정당들이 주장하는 정책 내용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 보수정당을 대표하는 이명박 후보의 공약이라면 자신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정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진보정당의 후보가 이 같은 주장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결국 출산수당과 양육수당을 현실화하자는 것은 여성의 전통적 성 역할을 강화하고 저소득 계층(주로 여성)의 노동권을 제도적으로 제한하자는 것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표 2> 후보별 아동가족정책의 주요내용

문국현 후보는 다른 대통령 후보자들과 비교했을 때 4가지 정책과 아동여성가족정책 모두에서 상대적으로 보편주의와 젠더관점을 견지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일과 가족양립정책이 단지 가족 내 돌봄 노동의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노동시장에서의 재구조화(탄력근무제, 변형근로시간제 등)를 요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이인제 후보는 <표 1>에 제시된 4가지 정책 중 아동수당의 보편적 확대에 대해 반대하고 나머지 3가지 정책에 대해서는 찬성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유는 모순적이다. 양육관련 휴가와 공적보육시설의 보편적 확대에 대해 동의하면서 보편적 아동수당의 도입을 보편적이라는 이유로 반대한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인제 후보의 이유를 들어보자. “보편적 제도는 언제나 비효율성과 낭비의 위험이 큼. 전 국민대상 보다는 진정으로 필요한 대상자들에게 실질적 혜택이 더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라고 주장하고 있다. 보편적 제도가 비효율적이라고 주장하면서 다른 보편적 제도에 동의하는 것은 무슨 의도일까? 그 의도는 일단 차치하고 보편적 아동수당에 대해 반대하는 것은 한국사회의 당면한 사회정책의 과제를 적절히 인식하고 있지 못한 결과로 이해된다. 지식기반사회에서 요구하는 높은 수준의 인적자본을 갖춘 인력은 교육훈련에 대한 투자만을 통해 키워지는 것이 아니다. 높은 질의 인적자본은 소득보장, 의료보장, 주거보장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필요의 충족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와 같이 기초보장에 대한 제도가 부실한 사회에서 보편적 아동수당 도입에 반대하는 것은 한국사회의 필요를 정확히 인식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소위 소득이 필요한 계층에게 재원을 집중하자는 것은 복지확대를 반대한다는 의지를 효율성의 논리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보편적 복지확대를 지양하고 저소득 계층을 중심으로 복지를 제도화한 국가에서 사회적 불평등, 빈곤, 양극화가 완화되었다는 전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도를 주장하지만 여성아동가족정책에서 이러한 주장은 보수의 또 다른 표현에 불과하다.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대부분의 후보는 개별정책의 취지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있지만 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구체적 비전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 예를 들어, 아버지할당제를 도입에 찬성하고 있지만 현재 그 대상이 고용보험 가입자로 한정되어 있어, 비정규직 등 고용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는 임금근로자와 자영업자, 농어민 등 비임금근로자가 배제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이처럼 여성아동가족정책은 몇 몇 가지 제도의 도입과 개선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사회보장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고 대선후보들의 복지공약은 이러한 과제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한다.

결국 다양한 정책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핵심은 이들 정책을 실현할 재원확대에 대해 각각의 후보들이 어떤 의지를 갖고 있는 가이다. 한국복지의 핵심적 과제는 복지자원의 절대적 규모를 확대하는 것이다. 지지정당에 관계없이 대다수 국민이 경제성장 제일주의의 벽을 넘어서고 있지 못한 상황에서 복지확대를 위해 세금을 더 내자는 주장은 정치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요구되는 복지재원의 확대가 정부지출의 효율화라는 지엽적 대응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나 정치적이다. 더욱이 감세는 대안이 될 수 없다. 지름길도 없고 돌아갈 길도 없다. 정도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민주주의사회에서 그 정도는 복지확대에 대한 국민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이끌어내는 길 뿐이다. 복지확대가 한국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저해하는 ‘장애’가 아닌 ‘토대’라는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야한다. 대선주자들이 국민에게 복지에 대한 장밋빛 환상을 심어주면서 정작 복지확대의 근간이 되는 증세에 대해서 입을 다물고, 도리어 감세를 주장하는 것은 지도자가 가야할 정도가 아니다. 복지확대ㆍ증세가 국민의 삶을 초토화시키는 ‘세금폭탄’이 아닌 우리 모두의 번영을 위한 토대라는 믿음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복지천국이라 일컬어지는 북유럽국가들이 높은 세율에도 불구하고 높은 수준의 국가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대통령은 우리 국민 모두에게 희망과 웃음을 줘야한다. 그리고 그 희망과 웃음은 국민모두가 인간적이고 문화적인 삶을 보장받고 동등한 기회를 부여받을 때 가능할 것이다. 

2007/12/01 15:12 2007/12/01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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