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3] 참여정부 복지정책 평가 - 연금정책
2000년대 초중반 우리나라 연금제도는 일종의 갈림길 앞에 서 있었다. 연금재정 문제와 함께 광범위한 사각지대 문제가 충분히, 반복적으로 제시된 상황이었던 데에다, 본격적으로 완전연금 수급자가 출현하기 직전으로서 아직 연금에 관한 기득권(?)이 표면화되지 않은, 근본적인 제도개혁이 가능한 마지막 기회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이 갈림길에서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급속한 노령화 국면의 한국사회 노후소득보장이 어떤 원칙 하에서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지, 즉 어떤 노선을 걸을지 결정된다고 할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집권 5년 동안 참여정부 하에서 속속 시행된 연금개혁은 우리나라 연금제도의 공공적 성격을 상당히 축소시켜 놓았다. 노후소득보장에서 공적 책임 영역은 극도로 축소되어 노후보장의 책임은 사회에서 개인으로 이전되었으며, 뿐만 아니라 연금제도와 금융시장의 결합은 더욱 공고해졌다. 더 정확히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실현되어보지 못한 사회적인(?) 형태의 노후보장의 꿈은 지난 2005년부터 2007년 사이에 무산되었다. 연금제도에 대한 사회적 기대는 사그라들었으며, 노후보장은 온전히 개인과 시장의 몫으로 남겨지게 되었다.
이러한 주장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2007년 연금개혁은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을 대폭 낮추어 연금적립률을 높이고, 약간의 기초(?)연금을 도입하여 사각지대 문제에 대응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축소가 적정 수준의 노후소득보장 책임이 이제 개인에게 있음을 명확히하는 반면에 이를 보완한다고 하는 기초연금 수준은 매우 낮은 데에다 졸속으로 도입된 만큼 실질화 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
먼저 국민연금은 40년 가입 평균소득자 기준으로 60%에서 2008년에 50%로, 이후 2008년부터 2028년까지 0.5%씩 낮추어 최종적으로 2028년에 40%로 조정되도록 하고 있다. 즉, 평균소득자의 경우 국민연금 급여액은 2/3 수준으로 낮아진다. 일례로 월소득 180만원인 노동자가 국민연금에 30년 가입하는 상황을 가정한다면 약 90만원 정도였던 연금급여액은, 순전히 이번 개정안을 적용한다고 가정한다면 58만원에 불과하게 된다. (2038년 수급 가정, 현재가치 기준). 참고로 이는 2006년 1인가구 기준 월 최저생계비인 43만 5천원을 약간 웃돌고, 2인가구 최저생계비인 월 73만 4천원에는 크게 못미치는 금액이다. 20년 가입시 연금액은 최저생계비에 못 미친다. 즉, 국민연금 급여액은 꾸준히 20년 이상 보험료를 꾸준히 납입한 보통의 노동자가 노후에 겨우 혼자 최저생계를 이을 수준으로 대폭 하락하였다. 20년 이상 가입한 성실한 가입자에 대한 국민연금의 보장은 그야말로 최저보장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축소된 국민연금은 이제 가입자들에게 적정생활수준을 유지하고 싶다면, 사회보장제도가 아니라 개인연금이든, 펀드든 알아서 적립하고 투자하라고 권유한다.
한편 기초연금제 도입은 애초에는 참여정부 안에서는 고려되고 있지 않았으나, 애초의 국민연금보험료 및 급여축소안이 좌절되면서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들의 제안을 정부가 받아들이면서 급속도로 추진되었다. 기초연금은 시민권에 의거한 수당 개념으로 통용되는 용어로서 애초 시민사회단체의 기초연금 기획도 그에 준하는 것이었으나, 참여정부가 도입한 기초노령연금은 사실상 노인에 대한 공공부조의 보완물에 불과하다. 보충급여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실제 연금액은 소득인정액에 따라 2만원에서 8만 4천원 사이로 분포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기초연금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 그리고 기초노령연금 수준이 A값의 5%(2008년 8만 4천원으로 시작)라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 수사이자 거짓에 불과하다 기초연금급여액의 실질화(정부안인 A값의 10%)는 매우 느리게 진행되어 2028년까지 무려 20년에 걸쳐 5% 포인트(연평균 0.25%씩) 올라가 최종적으로 10%에 도달하도록 되어 있다.
기초노령연금의 '최대' 급여액이 8만 4천원이라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며, 기초노령연금이 아니라 노령부조가 차라리 정직한 표현이다. 게다가 정부 내에서 국민연금 삭감의 조건부로 급속히 의제화된 기초노령연금은 재정적 준비가 매우 미비한 상태였으며, 재정조달방안에 대한 어떤 사회적 논의도 제대로 이루어진 바가 없다. 복지재정 확충에 대한 근본적인 의지 없이, 복지책임의 중앙-지방 분담에 대한 원칙 없이 도입된 기초연금의 재정적 기반은 취약하기 짝이 없다. 연금개혁안 국회 부결 이후 급작스럽게 수개월만에 기초노령연금안을 구성한 소치이자, 이는 기초연금과 노후소득보장에 대한 철학의 부재를 반영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참여정부의 연금개혁이 연금재정문제를 해결하였는지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재정고갈시점은 늦춰졌으나 이는 어느 시점에서는 피할 수 없다. 적립식 연금재정을 고수하는 것은 어떤 경우든 어느 시점까지만 가능하다. 부과방식으로의 전환기를 몇 년 늦췄다는 것이 연금재정에 대한 대단한 기여로 보이지 않는다. 차라리 적립식에서 부과방식으로의 전환을 부드럽게 할만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현명할 듯하다. 게다가 지금이 아니면 안되며 자신들이 아니면 안된다는 독선 또한 이해하기 어렵다. 200조의 연기금은 위험한 것임이 틀림없기도 하지만, 노후소득보장제도 재구성을 위한 사회적 논의를 위한 시간을 벌어주고 있었음 또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둘째, 퇴직연금제 도입 또한 참여정부 연금정책의 중요한 요소이다. 참여정부는 2005년 12월부터 퇴직금 대신 퇴직연금제도가 실시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축소를 퇴직연금으로 보충가능하다고 역설하였다. 그러나 퇴직연금제도는 사용자측의 반발을 의식하여 퇴직금 제도의 법적 지위를 강화하는 아무런 조치 없이 도입됨으로써 실질적인 노후소득보장안으로서 당분간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퇴직금제도는 현재 5인 이상 사업장의 정규직 노동자에게만 적용되고 있다. 즉, 4인이하 사업장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는 제외되어 있으며 전사업장 적용은 2010년으로 미루어져있는 상태이다. 노동자 수로 볼 때 5인 이상 기업 근로자 수는 전체경제활동인구의 30% 미만이며, 퇴직금 실제 적용 노동자 수는 이보다 더 적다. 또한 퇴직금이 적용되는 근로자들도 상당 수가 연봉제 도입을 계기로 퇴직금 중간정산제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우리나라 근로자들 평균 근속연수는 6년 미만이다. 그만큼 이직이 잦다는 이야기다. 이 때에도 많지 않은 퇴직금은 구직 기간에 생활자금 등으로 이직 때마다 물 새듯 사라져 버린다. 비공식 부문의 비중이 높다는 점에서 여전히 전근대적인 데에다 노동시장 유연화가 가속화되는 상황에서 퇴직금이 점차 약화되는 상황에서 퇴직금을 퇴직연금으로 전환하는 조치만으로는 노후소득보장 강화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다.
퇴직연금제는 여러가지 효과를 가지지만 무엇보다도 퇴직금 자산의 상당부분이 금융시장으로 투입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 경우 가장 큰 수혜자는 노동자나 사용자가 아니라 다름 아닌 금융자본이다. 기존의 퇴직금이 모두 퇴직연금으로 전환된다면 내년 기준으로 무려 70조원 규모의 자산운용 시장이 새로 열린다. 이 가운데 50%만 잡아도 35조원 규모다. 연금을 운용하게 될 금융기관들은 수수료를 2%만 받아도 해마다 7천억원을 벌어들이게 된다. 금융연구원 추산에 따르면 2015년이면 퇴직연금 규모는 155조 9천억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155조9천억원 가운데 1%만 수수료로 산정하여도 1조 5,590억원이 된다. 삼성증권은 퇴직연금 관련 전체 수수료 규모가 2010년 5천억원, 2015년에는 1조 9천억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들이 챙기게 될 수수료는 주식시장 등락과 무관하다. 확정급여형의 경우 사용자가, 확정기여형의 경우 근로자가 위험부담을 지겠지만 금융회사들은 그 가운데서 수수료만 챙길 뿐이다(이정환, '퇴직연금, 누구를 위한 블루오션인가', 2005.11.18).
2005년 12월에 시행된 퇴직연금제도는 노사의 반발을 의식하여 의무전환도 아니고 확정급여형과 확정기여형 중 자율적으로 선택하게 함으로써 어정쩡한 형태로 도입되었으나, 사용자들이 확정기여형을 선호한다는 점에서 퇴직연금제로의 전환시 대부분 확정기여형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확정급여형은 정해진 급여액을 사용자가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고도성장 시기에는 사용자에게 유리하며, 저성장시대,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이 큰 시기에는 사용자에게 불리하다. 한편 확정기여형은 연금급여액이 기여액의 투자성과에 따라 정해진다는 점에서 투자 수익과 위험을 고스란히 노동자가 감수하는 형태이다. 퇴직연금제를 오랜동안 운영한 미국의 경우 확정급여형 비중이 더 컸으나 성장률이 떨어지고 금융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확정기여형이 늘어나고 있다. 경영실적 침체와 주가 하락이 겹치면서 기업들 부담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IBM과 포드, GM, 델파이, 유나이티드항공과 노스웨스트항공 등은 지급불능 사태에 빠지기도 했다. 미국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의 규모는 1985년 910억달러에서 올해는 2조1천억달러로 22배 이상 늘어났는데 이 가운데 70% 이상이 주식시장에 유입되고 있다. 주식시장 투자의 위험부담은 모두 노동자들의 몫이다(이정환, '퇴직연금, 누구를 위한 블루오션인가', 2005.11.18).
확정기여형 퇴직연금 가입 노동자들은 연금펀드 투자자로서 거듭나게 된다. 주식시장, 펀드가 일상적 관심사가 되고, 금융회사들은 마케팅에 열을 올리게 된다. 구조조정, 인수합병 등을 통한 주식가치 높이기에 관심이 집중되며 이 과정에서 대량해고나 비정규직 증가, 임금 억제 등의 문제는 별다른 관심사가 되지 않는다. 이미 펀드 열풍에서 보여지듯이 한국사회에서도 아담 햄즈(Adam Harmes)가 언급한 대중투자문화가 생각보다 빨리 도래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 퇴직연금은 그 중요한 일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퇴직연금제 도입이나 운영방식, 퇴직연금 운용에 대한 규제 등에 관한 논의는 충분히 공론화된 적이 없다. 그러나 퇴직연금 보험료는 8.3%로서 국민연금 보험료 9%에 비해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퇴직연금은 노후소득보장에 미치는 영향이나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결코 국민연금보다 가볍지 않다.
게다가 참여정부 말기에 진행된 연기금운영위원회의 재편에 따라 일종의 사회적 기금, 공공자금이라 할 수 있는 국민연금기금에 대한 통제권은 점차 소위 민간전문가, 다시 말하면 금융시장 이해관계자의 손에 놓여질 것이 전망된다.
노후보장의 공공성 축소와 연금제도와 금융시장의 결합이라는 참여정부 시기의 연금정책 전환의 결과는 노후소득보장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최소화하고, 개인 책임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는 노동시장에서의 양극화와 불안이 노후에도 재생산됨을 의미한다. 흔히 꿈꾸는 안정되고 여유로운 노후라는 미래는 시장에서의 승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 되었다. 정부의 역할은 사실상 공공부조인 기초연금과 최저생계비를 크게 넘어서지 않는 국민연금 급여를 통해 최저보장을 하는 것으로 축소되었다.
참여정부는 노령화와 노동시장 유연화로 어느 때보다 현명한 비젼 도출이 필요한 시대에 집권하였으되 그에 걸맞는 책임을 다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는 애초에 집권 당시 노후복지에 대해 제대로 된 원칙도 비젼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노후소득보장의 새로운 비젼 구성을 위해 시민사회진영과 제대로 대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퇴직연금제, 특히 국민연금제와 기초연금제는 모두 정권말에 관료들에 의해 급조된 안을 채택하고 말았다. 대화는 제스츄어에 불과했으며 민주화의 시대에 관료들의 독재는 더욱 지독하였다. 그 결과 타협을 위한 고육책으로 간신히 도입된 기초연금은 '기초연금'이 아니게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신년인사회에서 "복지를 위해 5년 동안 노력했으며, 복지제도가 이제 기틀이 잡혔다"고 강조했다. "자신은 진보 쪽이다"라는 자기규정 또한 빼놓지 않았다. 연금제도와 금융시장과의 결합을 추구한 지난 5년간의 연금제도 변화를 보면 차라리 좌파'시장'주의자라는 고백이 더 참을만하다. 연금제도의 시장화를 위해 5년 동안 노력했으며 노후소득보장의 개인책임화라는 정책 방향에 기틀이 잡혔기 때문이다. 여하튼 선무당이 사람잡았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