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007 대통령 선거와 민의(民意)
백승호(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실행위원, 한림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거짓말하는 아저씨다”
2007년 12월 16일 대선후보 3차 TV 토론회가 시작되고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가 소개되자 여섯 살짜리 조카의 입에서 튀어나오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말이었다. 순간 대선후보 2차 TV 토론회에서 권영길 후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명박 후보가 아이들의 미래와 인성 교육을 위해서라도 대통령이 되겠다는 생각을 접는 것이 어떻겠나. 그것이 바로 가장 좋은 교육정책이다"
TV를 보고 있던 어느 누구도 조카의 말에 대꾸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소름끼치던 순간은 아직도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어찌되었든 그 일이 있은 3일 후 예상했던 대로 대한민국의 유권자들은 전례 없는 압도적인 지지로 이명박 대통령 후보를 대통령 당선자 지위에 올려놓았다. 혹자는 노무현 정권이 이명박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이라 말한다. 혹자는 도덕성을 생명으로 여겼던 노무현 정권과 대립각을 세우며 ‘도덕 보다 중요한 것은 능력’이라고 5년 내내 열변을 토했던 중앙일간지 조·중·동을 이명박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이라 말한다. 혹자는 서울시장 시절의 청계천 복원을 이명박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이라 말한다.
그러나 진정 이명박 정권 탄생의 일등공신은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켰던 바로 그 시민들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개혁을 하라고 대통령도 만들어주었고, 여대야소 정국까지 만들어 줬음에도 불구하고, 보란 듯이 그러한 시민들의 요구를 묵살해버린 노무현 정권을 시민들은 이번 대선을 통해서 심판하고 있는 것이다. 소위 한나라당 표현의 ‘잃어버린 10년’을 시민들이 회고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시민들이 보수화되었고, 실용만을 절대선으로 고려하고 있기 때문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평가가 참이든 거짓이든, 시민들은 거짓말하고, 부도덕하다고 비난받아오던 사람을 대통령 당선자 지위에 올려놓았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노무현 정권의 배반에 대한 심판일 것이다. 이는 민의(民意)를 대변하지 않는 정치지도자 및 정치권력은 민주주의 시스템을 통해서 심판할 수 있을 것이라 시민들의 자신감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따라서 이명박 정권이 시민들의 민의(民意)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다면, 그 결과는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이명박 정권만이 아니라 이번 대선에서 대패를 한 정치세력들 또한 이러한 사실들을 뼈 속 깊이 인지하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 내지는 못할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 시민들의 대안적 선택이 진보적 정치세력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적 정치세력이라는 것이 필자가 생각하기에는 매우 유감이지만, 누구에게든 미래는 열려있으니 처절한 패배를 경험한 지금이 절호의 기회일수도 있겠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재의 모습에서는 이명박 당선자측도, 대선 패배자들도 민의(民意)를 충분히 읽고 있지 못한 모습들이 보인다. 대통합신당은 여전히 갈팡지팡하고 있으며, 민노당은 민의(民意)와는 무관한 자신들끼리의 싸움에 매몰되어 있어 답답하다.
그렇다면 현재의 민의(民意)는 무엇일까? 건설업계만 살려줄 대운하, 주택정책일까? 교육양극화를 부추길 교육개혁일까? 선별주의 강화하는 복지정책일까? 대기업주에게만 좋은 외형적 경제성장일까? 그 어느 것도 민의(民意)는 아닐 것이다. 경제를 살려서 비정규직문제 등으로 인한 노동 양극화를 해소하고, 공교육을 내실화하여 교육 양극화를 해소하고, 보편적 복지정책으로 모두가 행복한 복지국가를 만들고, 중소기업이 한국 경제의 주축이 되도록 하는 경제의 체질을 개선하여 경제성장의 내실을 다지는 것 등이 민의(民意)일 것이다.
하지만 정권이 출범하지도 않은 지금 섣불리 판단하는 것이 성급한 면이 없지 않다 하더라도, 이명박 정권이 읽는 민의(民意)와 실제의 민의(民意)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필자는 이명박 정권이 이제라도 민의(民意)를 제대로 다시 읽어 잘 출발해주었으면 한다. 이명박 정권이 민의(民意)를 잘 읽어 역사에 길이 남는 대통령이 된다 할지라도 민의(民意)가 제대로 반영된다면 그 보다 좋은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현재의 모습을 보면 그럴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하기에 진보세력의 행보는 중요해 보인다. 민의(民意)에 반하는 이명박 정권의 정책을 철저하게 감시하고, 비판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명박 정권이 민의(民意)를 제대로 읽을 수 있도록 시민을 조직화하고, 새로운 대안들을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등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할 것이다. 사실 여부와는 무관하게 참여정부시절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들이 관변단체로 인식되었고, 노무현 정부가 민의(民意)를 제대로 읽도록 역할을 하지 못했던 경험은 이제 약이 되어야 한다. 이명박 정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땅에 발 딛고 살아가는 민중들을 위해서 진보정당이, 진보적 시민단체가 제대로 역할을 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이들이 앞으로의 5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민의(民意)는 새로운 대안세력들의 손을 들어줄지를 다시 결정할 것이다.
사실이야 어쨌든, 아이들의 머릿속에 대통령은 거짓말을 잘해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하는 소름끼치는 상황을 다시 만들 수는 없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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