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양극화, 전환기의 한국 사회에서 전혀 다른 복지의 문제
양극화, 전환기의 한국 사회에서 전혀 다른 복지의 문제
김보영 (이화여대 박사후 연구원)
요즘 주변에 틈만 나면 권하는 책이 있다. 영국의 두 보건학자가 쓴 "The Spirit Level: Why more equal societies almost always do better" (2009, Allen Lane)란 책이다. 아직 국내 번역출판이 안된 책이지만 다행스럽게도 한 출판사가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제목대로 먼저 보다 평등한 사회가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매우 다양한 보건과 사회문제에서 우수함을 매우 명확한 근거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우선 사회의 신뢰도(대부분의 사람을 믿을 수 있다는 문장에 대한 긍정 응답율), 약물과 알코올중독을 포함한 정신건강, 기대수명, 영아사망율, 비만, 아동교육 성취도, 십대 임신, 살인, 수감율, 사회이동성 등 거의 국가 간 비교가 가능한 데이터를 모두 동원하여 보건사회지표를 만들었다. 그리고 가장 소득이 높은 50개 국가 중 일정 인구규모 이상인 국가를 중심으로 분석하여 이들 지표의 결정요인이 바로 다름 아닌 사회 불평등도(5분위 소득분배율)라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저자들은 원래 보건 불평등 문제를 연구하던 중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불평등이 서로 다른 계층의 건강문제를 결정짓는 수준을 떠나서 그 전체 사회의 전반적인 보건과 사회문제를 결정짓고 있다는 사실을 찾아낸 것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1인당 국민소득과 이런 보건사회지표와는 전혀 상관관계를 나타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진보건 보수건 간에 보다 건강하고 안정된 사회를 꿈꾸는 것은 모두의 보편적 이상일 진데, 이를 결정짓는 것은 ‘성장’이 아니라 바로 ‘분배’에 있음을 근래 들어 많이 발달된 광범위한 국가간 비교 데이터를 통해서 분명하게 입증해내고 있는 것이다.
더욱 재미있는 지점은 이러한 불평등으로 인한 문제들이 비단 한 사회의 소외계층이나 저소득계층에 한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모두 불평등 국가로 분류되는 영국과 미국의 경우 5분위 소득분배율(하위 20% 대비 상위 20%의 소득비율)이 영국 7.2, 미국 9.2로 상대적으로 영국 더 평등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각 사회 내에서 사회계층과 교육수준에 따라 당뇨, 고혈압, 암, 폐질환, 심장질환 등 주요 질병의 유병률이 더 높게 나타나고 있는데, 놀라운 것은 영국과 미국을 비교하면 더 평등한 영국의 유병률이 전 계층에서 더 낮게 나온다는 점이다. 즉, 예를 들어 미국의 상류층은 미국의 하류층보다는 각종 질병에 걸릴 확률이 낮지만 더 평등한 사회인 영국의 상류층보다는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다시 영국과 그보다 훨씬 평등한 스웨덴(5분위 소득분배율 4.0)과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영아 사망률에 있어 영국은 아버지의 사회계층에 따라 현격한 차이를 보이지만 전 계층에서 스웨덴은 그보다도 현저히 낮게 나오고 있다.
물론 이러한 부분은 아직까지 국가 간 비교 가능한 데이터가 다양하지 않기 때문에 보건사회지표처럼 확실하게 말할 순 없지만 분명한 것은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부자역시 불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상관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다양한 임상실험 결과들을 제시하고 있다. 그중 인상 깊은 것은 스트레스 요인과 관련된 200여개의 연구를 분석한 것이었다. 그 어떤 요인보다도 자존감이나 사회적 지위와 관련된 이른바 ‘사회평가적 위협’을 받을 때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호르몬인 코르티졸의 현격한 변화가 나타난다는 내용이다. 코르티졸이 장기간 방출될 경우 비만, 고혈압, 만성피로, 만성두통, 면역력 감퇴 등을 불러올 수 있다. 즉,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하위계층이던 상위계층이던 더욱 심한 사회평가적 위협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데 그 결과 계층과 관계없이 정신건강과 신체건강에 문제를 겪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증거들은 물론 어느 나라에나 중요한 함의를 가질 것이다. 예를 들어 가장 불평등도가 심각한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감율을 비롯, 각종 정신질환과 보건상의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 가장 평등한 국가수준으로 불평등도를 감축시키면 정신질환은 2/3가 감소하고, 수감자는 자그마치 75%가 줄어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결정적인 함의는 오히려 우리나라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많이 알려져 있다시피 양극화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비교하자면 근 10년만에 5분위 소득분배율에서 있어 불평등도가 낮은 국가군에서(1996년 4.17) 불평등도가 가장 심각한 국가군으로(2008년 6.2) 매우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즉 이것이 단순히 상대 빈곤층이 늘어나는 것을 의미하는 것 뿐 아니라 약물중독을 비롯한 정신질환이 급증하고, 십대 임신이 늘어나고, 살인이 들어나고, 교도소에는 범죄자가 넘쳐나고, 사람들의 건강도 악화되는 등 각종 사회문제와 건강문제의 급증을 동반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 안의 문제를 지적하느라고 우리나라가 항상 다른 나라보다 못하다고 인식해왔지만 실은 사회적으로 그렇지만은 않았다. 일제 강점과 한국 전쟁 등으로 사회계급이 형성되어봤자 반세기 정도밖에 안 되는 우리나라는 그 계급의 역사가 수백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유수한 서구의 복지국가에 비해 사회문제는 오히려 덜 겪어왔다. 우리나라는 외국에선 그 흔한 마약문제도 아직 연예인 따위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청소년 문제라야 범죄라기 보단 비행수준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간간이 전해지는 뉴스에서 보듯이 점점 새로운, 더욱 심각한 사회문제에 노출되고 있는 것은 현대사회에 들어 처음 겪는 급격한 양극화와 무관하다고 할 수 있을까? 말하자면 우리 사회는 그전의 사회문제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문제를 맞닥뜨리게 되는 사회적 전환기에 있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새로운 연구 결과에서 더욱 결정적인 함의는 스웨덴과 일본에서 나온다. 놀랍게도 가장 평등한 대표적인 국가로 복지국가로 잘 알려진 스웨덴과 함께 일본(5분위 소득분배율 3.4)이 꼽히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결과 전 보건사회지표에서 일본은 가장 우수한 성적을 보이고 있다(물론 국제 비교가능 데이터들이 모두 2000년대 초의 것이라 최근의 변화는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분배의 수준에 있어서는 스웨덴과 일본은 거의 정반대에 있다. 즉 세금에 의한 소득불평등 감소 효과는 스웨덴은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인 반면 일본은 가장 하위군에 속해 있다(물론 우리나라가 최하위다). 그런데도 일본은 별다른 분배 없이도 이미 그 이전 소득의 평등을 이루었기 때문에 같은 분배수준을 가진 미국과는 보건사회문제에 있어 정반대의 결과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해 복지의 노력과 관계없이 절대적인 불평등이 그 사회를 결정짓는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이를 우리나라에 적용해 보면 양극화와 사회복지에 대한 함의는 더욱 정확하게 드러난다. 그동안 우리는 꾸준히 OECD국가에서 비교도 할 없는 최하위의 복지 수준에 대해서 문제를 지적해 왔지만 그렇지 않아도 유지되는 사회 평등이 있었기에 그에 의한 후과를 경험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이고 심지어 복지학계 조차도 복지확대에 대해서 당위적으로 주장해왔지만 정작 그 시급성을 크게 느끼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일 수 있다. 그동안 복지확충을 게을리 한 탓에 여전히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본격적인 사회 양극화와 그에 따라 폭증하는 사회문제를 맞닥뜨리게 될 테니 말이다. 그 것도 유례가 별로 없는 매우 급격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으니 그것이 단순한 문제의 증가만 뜻할지 아니면 그 것을 뛰어넘는 그 어떤 것일지는 아직 아무도 가늠하기가 어렵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