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11월 26일, 에바다 농아원 어린 학생들에 의해 사회에 알려진 이후 5년여 간 처절한 투쟁을 벌여왔던 에바다 문제가 마침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2001년 8월 경, 민주적인 이사들이 에바다복지회 이사회 내에서 구 비리재단 측 이사들보다 수적 우위를 점하면서 민주적 이사진 개편을 통한 해결의 발판이 마련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에바다에 대한 사유욕을 버리지 못한 구 비리재단 측은, 1월 3일 신임 농아원 원장 선임으로 급진전된 에바다 정상화를 아무런 명분없이 저지하고 있다. 구 비리재단 완전 척결과 민주적 이사진 개편을 위한 투쟁은 아직 진행 중인 셈이다.

에바다 투쟁 5년을 이사진 개편 과정을 중심으로 돌아보고, 현재 논의되고 있는 에바다 정상화 계획을 함께 알아보았으면 한다.

□ 에바다 투쟁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964년 미국인 선교사가 사회복지법인 "어린이동산 보육원"을 설립한 후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당시 이사로 있었던 한국인 최성창에게 에바다복지회의 전신이 되는 이 시설을 넘겼다. 최씨는 기증받은 땅과 전국 에바다 교회와 기타 기부금으로 법인을 재설립하고, 자신을 법인의 이사장으로 추대한 후 "사회복지법인 에바다 농아복지회"로 명칭을 정했다가 이후 다시 명칭을 현재의 "에바다복지회"로 바꾸었다. 96년 농성 초기 당시까지 이사장이었던 최씨는 자신의 가족들을 이사회 뿐만 아니라, 복지회(=법인) 산하에 있는 에바다농아원, 에바다학교, 에바다장애인종합복지관의 장으로 배치시켰다. 자신의 돈은 한 푼도 내지 않은 채 기증 받은 땅과 기부금 등으로 법인을 설립했음에도 족벌체제 운영을 통해 법인을 사유하고자 한 것이다.

에바다 최씨 일가는 사리사욕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국고보조금과 에바다농아원을 후원하는 후원금을 착복하고 농아원생에게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최씨 일가가 자신의 재산을 불리는데 힘을 기울이는 동안 어린 농아원생들은 한겨울에 난방이 되지 않아 찬물로 목욕을 하고, 배가 고파 음식을 훔쳐먹거나 개밥을 주워 먹고 있었던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최씨 일가는 원생들의 장부를 이중으로 조작하고, 유령직원을 허위로 신고했으며, 심지어는 농아가 아닌 원생을 강제로 수용하는 방법으로 인원을 늘려 국고 보조금을 더 받아내었다. 또한 그들은 농아원생을 돈을 받고 해외로 불법 입양을 시켰으며, 어린 농아원생을 제본공장에서 새벽 1시까지 강제로 일을 시키고도 돈을 주지 않는 비인간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재산을 불렸다. 심지어는 자신의 양자와 어린 농아원생을 강제 결혼시킨 뒤 식모처럼 부려먹었다. 그 농아원생은 후에 힘든 일과 폭력을 견디다 못해 도망쳤지만 최씨 일가의 구타로 사망에 이르렀다는 추정도 있다. 이외에도 98년에 의문사 처리된 최미선(당시 나이 7세, 농아) 사망 사건에 대한 의혹도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에바다농아원과 학교 내에 구타, 피살 의혹, 실종 사건 등이 잇달아 벌어짐에도 불구하고 비리재단 일가는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아무런 문제없이 재산을 불리고 있었다. 이에 1996년 11월 27일 새벽, 어린 농아원생들은 찬반투표를 거쳐 스스로 농성에 들어갔으며 그로부터 5년째에 접어든 현재까지도 이 투쟁은 계속 되고 있다.

□ 5년여 간의 에바다 투쟁의 과정들

: 에바다복지회 민주적 이사진 개편을 중심으로

에바다복지회 이사진 개편 과정

에바다 정상화를 위한 농성 중인 에바다농아원 원생들 및 교사들의 요구는 여러 가지였으나 그 중 가장 실질적이고 단기적인 방안은 "에바다복지회의 민주적 이사진 개편"이었다. 지금까지의 장애인생활시설을 비롯한 여타의 시설 비리 사건이 발생했을 때마다 비리의 주범들이 사건이 잠잠해지거나 처벌을 받은 후 시설로 복귀하여 운영권을 다시 소유하는, 도저히 상식적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일들이 계속 반복되어 왔다. 그러기에 장애인생활시설비리에 맞선 투쟁은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더라도 비리의 주범들을 완전히 뿌리뽑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에바다 투쟁이 "장애인생활시설비리철폐투쟁"의 희망이 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비리재단 세력을 완전 축출하기 위한 전략으로써 "민주적 이사진 개편"은 반드시 달성해야 할 과제였던 것이고 이는 앞으로도 유효하다.

이러한 우리의 주장과 투쟁이 5년여간 계속 되어옴에 따라, 지난 해 3월 2일 에바다 정상화를 위한 민주적 개편의 가능성이 열리게 되었다. 이날 열린 에바다복지회 이사회(당시 이사장 김종인 나사렛대 재활학과 교수)에서 "에바다정상화를위한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가 추천한 민주적 이사 3인을 이사로 추가 승인, 우여곡절 끝에 2001년 4월 28일 오후 5시로 구 비리재단 측과 민주이사 측이 5 : 5 구조로 이사회 구도가 크게 바뀌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구 재단 측 이사 5인 중 1인이 사퇴를 함으로써 5년 간의 투쟁동안 최초로 민주적 이사들이 이사회의 수적 우위를 점하게 되어 이사회 내 역관계가 역전되는 국면을 맞게 된다. 이 여세를 몰아 작년 8월 7일 이사회가 김칠준(인권변호사), 김용한(평화운동가), 박경석(노들장애인야학 교장), 박래군(인권운동연구소 상임연구위원) 등 민주적 이사 4인의 추가 선임안을 결의하였고, 이로써 에바다복지회 이사회가 에바다연대회의 추천 이사 9인과 구 비리재단 측 이사 4인으로 구성되는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또한 그 날의 이사회에서 김종인 이사가 대표이사(이사장)에서 사임하고 후임으로 민주적 이사인 윤귀성 이사가 대표이사에, 비리재단 측 이우복 이사가 상임이사에 선임되었다.

꿈을 현실화시킨 우리의 투쟁들

에바다복지회 이사회가 개편될 시기마다 집중적으로 얘기되어지던 "민주적 이사진 개편" 요구 투쟁은 2000년 여름 이사진 개편 시기를 적기로 삼아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농성단의 단식투쟁, 대학생들의 광화문 점거 농성, 이순신 고공 시위에 뒤이은 대학생들의 구속, 새 관선 이사진 구성을 둘러싼 평택시청 앞 철야농성 등의 투쟁을 전개한 끝에 평택시청(시장 김선기)으로부터 "연대회의 추천 인사 과반수 보장"이란 전제 하의 새 이사회 구성 약속을 받아내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은 채 구 비리재단 측 인사 5인과 연대회의 측 인사 2인으로 이사회가 구성되어 에바다농아원과 학교는 파행적인 운영을 또다시 반복해 왔다. 그러다가 2001년 3월 2일 에바다복지회 이사회에 4인의 이사가 참석하여 이찬진 변호사·우철영 목사·윤귀성 병원장 등 연대회의 측 이사 3명을 추가로 선임하기로 결의하였고, 우여곡절 끝에 지난 해 4월 28일 새 이사진의 등기를 완료하게 되었다.

잠시 소강상태에 있던 구 비리재단 측의 반발은 지난 5월 15일부터 구 비리재단 측이 에바다농아원생들을 사주하여 에바다 학교 내에서 난동을 피우게 하면서 다시금 시작되었다. 거의 매일 되풀이되었던 농아원생들에 의한 난동 과정에서 심지어 선생님이 제자들에게 구타당해 병원에 실려 가는 일까지 발생하였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평택 경찰서는 형식적인 "생색내기" 수사만을 일삼으며 한 달여 간 계속 되었던 학내 난동 사태에 대한 실질적인 대응을 회피하였다. 에바다 구 비리재단 측의 반발은 이런 집중 행동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위기감을 느낀 구 비리재단 측은 등기처리까지 완료된 신임(민주적) 이사 3인에 대해 효력정지가분신청을 내었고, 에바다정상화를위한연대회의는 민주노총을 비롯한 각 사회단체 명의의 탄원서를 법원에 보내는 운동을 전개하며 에바다 정상화를 위한 투쟁을 계속 해 나갔다.

지난 2000년 3월 2일 이사회 회의에서의 "민주적 이사 3인 추가 선임" 안건이 통과되었지만, 끝내 구 비리재단 측 이사들은 에바다복지회에 대한 운영권과 이를 넘어선 사적 소유욕을 포기하지 못한 채 신임 이사 3인을 이사회에서 몰아내고 5년여의 에바다 투쟁을 원점으로 되돌리려 했다. 하지만 효력정지가처분신청은 에바다 정상화 투쟁의 성과로 기각되어 에바다복지회는 마침내 구 재단 측과 연대회의 측 이사가 5:5 동수를 이루게 되었고, 구 재단 측 이사 5인 중 1인이 사퇴를 함으로써 5년 간의 투쟁동안 최초로 민주적 이사들이 이사회의 수적 우위를 점하는 4:7 구도의 현 이사회를 쟁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에바다복지회 내 권력이 역전되면서 구 비리재단 측의 무모한 역공 또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 해 8월 경, 구 비리재단 측 이사들이 제기한 공대위 추천 이사에 대한 "이사 자격 정지 가처분 소송"이 기각당하고 신임 교장이 취임하는 등 에바다 정상화를 막을 수 없게 되자, 10월 26일부터 학교 내 난동사태를 일으켰고, 신임 교장은 사태 발생 직후 휴교령을 내리는 등 단호한 조치를 취하였다. 에바다 학교 휴교령이 일주일만에 철회되고 학교 수업이 다시 재개되었으나, 최씨 일가 측 이사 4인의 이사회 부정, 양봉애 전 농아원장직무대행의 신임 이사들에 대한 거부로 인해서 합법적인 이사들이 제대로 업무 파악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 수개월 동안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현재 신임 교장과 교감, 권오일 선생은 학교 교문에서부터 구 비리재단 측에 사주를 받은 농아원생 일부에 의해 출입을 저지당하고 있다.

에바다 농아원 정상화를 위한 투쟁

이러한 상황에서도 에바다 복지회 민주적 이사진들은 "에바다 정상화"에 대한 확고한 의지 속에서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며 비리세력 청산 작업에 착수했다. 가장 급한 것이 바로 구 비리재단 측 일가의 마지막 보루인 에바다농아원의 정상화였다. 이에 따라 지난 1월 3일 이사회를 통해 신임 농아원장으로 변승일(前 서울농아인협회 부회장)씨가 선임되었고 1월 7일부터 정상 근무를 나가고자 했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농아원생들과 농아인들을 동원한 폭력과 불법 시설 점거 등으로 인해서 대표이사들을 비롯한 이사, 학교장과 신임농아원장이 시설 내에 출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학교 내의 수업은 진행될 수 없었고, 농아원은 통제되지 않는 불법천지로 지속되고 있다. 현재 최씨 일가의 마지막 저항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사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불법 점거인 출입금지가처분신청 및 비리 직원들에 대한 징계위원회 회부 등을 통한 강력한 대응을 하고 있다.

그리고 연대회의는 지난 5년간 에바다 투쟁을 해오면서 뇌물수수 등 공무원과의 유착관계, 도교육청의 무사안일, 일방통행식 교육행정, 사태초기 은폐축소수사로부터 시작된 평택 경찰서의 회피적인 태도, 비리에 연루된 평택시장의 무책임한 양비론적 태도 등이 에바다 문제를 5년 넘게 끌고 온 주된 이유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고, 이번 사태에서조차 "양비론적 태도"만을 고수하는 관계 당국-평택시청과 평택 경찰서, 경기도 교육청-을 강력히 규탄하고 있다.

□ 에바다 정상화는 시간 문제이다

1월 7일과 10일, 14일 세 차례에 걸쳐 변승일 신임농아원장과 학교장, 그리고 민주적 이사들이 에바다농아원에 진입하고자 했으나 구 비리재단 측의 사주를 받은 일부 농아원생과 비리 직원들, 그리고 최성창 목사 교회에서 동원된 신도들에 의해 무산되었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민주적 이사를 비롯한 연대회의 측에서는 구 비리재단 측의 잔존 세력을 청산함에 있어, 모든 강제적이고 합법적인 수단 및 방법을 동원키로 했다. 에바다 정상화는 시간 문제이나 더 이상 느긋이 저들의 억지 주장들이 법의 테두리에서 승인받고 묵인되는 모습을 지켜보아선 안된다는 판단인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에바다정상화를 위한 "비리세력 완전척결"의 과제를 미룰 수는 없다.

향후 출입금지가처분신청의 결과가 나오는 대로 현재 에바다농아원을 불법 점거하고 있는 이들은 모두 강제 해산될 것이다. 이 시기를 더욱 재촉하고 농아원 장악 이후 시설 정상화 프로그램 및 장애인생활시설문제에 대한 대안들을 준비하는 것이 현 이사회와 시설장들, 그리고 에바다 해결을 위해 5년여간을 싸워온 평택 지역 공대위 및 연대회의의 남겨진 과제일 것이다.

에바다문제 해결과 장애민중 연대를 위한 제6기 전국에바다대학생연대회의
2002/02/15 00:00 2002/0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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