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금관리기본법 개정의 문제점
월간 복지동향/2002 :
2002/03/06 00:00
국민연금기금운영의 기본정신 훼절시킨 기금관리기본법 개정
우리는 이제 국민연금기금운영에 있어 사회적 합의정신에 입각한 참여민주주의원리가 관철되고 있음을 더 이상 내세울 수 없게 되었다.
그간 각종 사회보험기금운영이 부실하게 또는 정부 자의적으로 관리되어왔던 십수년의 역사로부터 진일보하여, 비록 완전한 것은 아닐지라도 가입자와 정부, 공익적 주체들이 사회적 합의의 틀 아래 모여 기금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쌓아가는 시금석의 역할을 했던 1999년 개정 국민연금법의 기본정신에 조종(弔鐘)이 울렸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2001년 12월 말 항간에 공론화과정도 거치지 않은 가운데 슬며시 개정된 기금관리기본법에 의하면, 국민연금기금을 포함한 모든 공공기금이 예산과 똑같이 정부의 예산수립과정을 거치게 되어있고 아울러 국회의 심의 의결을 거치는 과정을 밟게 됨으로써 더 이상 국민연금기금에 관한 현재의 운용 틀이 유지되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연금기금운용의 현재 틀이 어떻게 이루어지게 되었던가?
1999년 이전에는 국민연금기금은 정부의 공공투자재원의 확보처였고 그 결과 연금기금의 고갈을 가속화시킨다는 국민들의 원성이 극에 달하여, 이를 해소하고자 새로운 틀이 짜여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 연금기금운용의 현재 틀이 어떻게 짜여졌었던가?
먼저, 국민연금기금의 운용의 핵심은 기금운용위원회를 정점으로 한 삼각체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최종적인 의사결정은 사회적 합의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정책수립 및 관리감독기능은 정부당국에서, 그리고 기금의 실질적인 운용책임은 국민연금관리공단내의 기금운용본부에서 각기 담당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핵심중의 핵심은 바로 기금운용에 관한 한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구성상 사회적 합의틀을 갖추었다는 사실이다. 이 위원회는 주지하다시피 모두 21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위원장인 보건복지부장관과 나머지 정부위원 5명, 공단이사장, 전문가 2인을 제외하면 과반수를 넘는 12인이 가입자진영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그 구성의 민주성과 사회적 합의기구로서의 의의를 높게 평가할 수 있다. 또한 이 위원회의 전문적 판단을 지원하고 기금의 운용성과를 평가하는 역할을 맡은 국민연금운용실무평가위원회의 구성 역시 이러한 골격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면에서 국민연금법 상의 기금운용체계는 원칙적으로 참여민주주의의 정신을 살린 것이며 그동안 연금기금을 둘러싸고 일어났던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단초를 마련한 것이었다(<표 1> 참조).
[표 1] 국민연금기금관련 기구의 구성과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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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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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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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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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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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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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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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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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금운용지침에 관한 사항
2.기금을 관리기금에 예탁할 경우 예탁이자율의 협의에 관한 사항 3. 기금운용계획에 관한 사항 4. 제87조제3항의 규정에 의한 기금의 운용내역과 사용내역에 관한 사항 5. 기타 기금운용에 관한 중요사항으로서 운용위원회 위원장이 부의한 사항 |
-복지부장관, 재경부, 농림부, 산자부, 노동부, 기획예산처 차관, 공단이사장
-다음 각호의 자 1. 사용자대표 3인 2. 근로자대표 3인 3. 지역가입자 가. 농어업인단체 2인 나. 자영자관련 단체 2인 다. 소비자 및 시민단체 2인 4. 관계전문가 2인 |
총 21명, 심의의결기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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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실무평가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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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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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금운용자산의 구성 및 기금의 회계처리에 관한 사항
2. 기금운용성과의 측정에 관한 사항 3. 기금의 관리, 운용에 있어서 개선하여야 할 사항 4. 운용위원회에 상정할 안건 중 실무평가위원회의 위원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한 사항 5. 기타 운용위원회에서 심의요구한 사항 |
-보건복지부 차관, 상기부처의 2,3급 공무원
- 다음 각호의 단체에서 추천하는 전문가 1. 사용자 대표 3인 2. 근로자대표 3인 3. 지역가입자 가. 농어업인단체 2인 나. 자영자관련 단체 2인 다. 소비자 및 시민단체 2인 4. 관련전문가 2인 |
20명, 심의기구 |
또한 이 위원회에서 통과된 기금운용계획은 비록 절차적으로는 국무회의의 의결을 거치고 국회에 보고될 뿐이지 실제로는 기금운용위원회의 안 자체가 최종결정의 의미를 갖는다. 즉, <표 2>의 왼쪽 흐름도에서 알 수 있듯이 기획예산처의 역할은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최종계획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의 협의의 대상이지 결정의 주체는 결코 아닌 것이다.
물론 국민연금법상의 기금운용상의 구도가 완벽했다는 것은 아니다. 약 3년여의 가동기간을 거친 결과 몇가지 중대한 결함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중 핵심은 기금운용의 틀에 있어서 절차적으로는 참여민주주의의 정신을 구현한 면이 있다지만 진정한 의미의 실질적인 참여민주주의는 아니라는 것이다. 좀더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면, 먼저 이 기구는 비상설적 위원회에 불과하므로, 기금운용과 관계된 권위있고 책임있는 기구로서의 역할을 행하기에는 매우 부족하다. 극단적으로 평가하면 이 위원회가 알고보면 보건복지부 산하에 놓여진 수많은 형식적 위원회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까지 표현될 수 있음도 일정정도 사실이다.
둘째, 이 위원회를 구성하는 시민사회노동농민단체의 대표들이 이 기금운용의 중대성에 걸맞는 전문성이나 현실적인 관심도가 많이 결여되어있다는 점이다. 평소에 국민연금기금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를 수용하여 이 문제에 대한 입장과 대안 모색 등에 주력한 바가 없는 기관들이 위원회에 참석하여 의례적인 회의를 거쳐 결과적으로는 정부의 원안 통과에 대한 격식을 차려준 적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기금운용위원회의 상설독립기구화하자는 의견이 제시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정부의 경제부처들과 일부국회의원들의 생각은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었고 그 결과가 기금관리기본법의 개정으로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원래 이 법의 개정은 국민연금기금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것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현정부들어 각종 공공기금의 운용성과를 평가한 결과 매우 부실함이 드러났었고 특히 기금이 국회의 심의사항이 아니고 보고사항이라는 점에서 운용의 부실함이나 자의성은 예고된 것이었다는 진단에 따라 금융성기금을 제외한 모든 공공기금을 기획예산처에서 책임관장하며 국회를 통해 심의 의결되는 안을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 개정안의 출발은 의원발의의 형태였다. 개정안은 국회 운영위에서 2000년 10월 이훈평의원을 비롯하여 이강두(2000. 12. 4), 김학원(2000. 12. 27), 홍재형의원(2001. 1. 3) 등이 발의한 4개안이 작년 정기국회시에 통합심의 의결되면서 탄생하게 되었고 2002. 3. 1에 발효되게 되었다.
개정안의 주요골격은,
첫째, 공공기금과 기타기금의 구분을 없애고 기금으로 일원화한다.
둘째, 금융성기금을 제외한 모든 기금의 기금운용계획과 결산의 국회심의ㆍ의결(정부는 기금운용계획안을 회계연도 개시 80일전까지 국회제출,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이를 심의ㆍ확정)한다.
셋째, 금운용 부처의 자율적 운용계획 변경범위를 주요항목지출금액의 50%에서 30%로 축소한다.
넷째, 기금의 존치 필요성이 낮거나 유사ㆍ중복되는 기금은 폐지ㆍ통합한다는 등으로 압축된다.
일각에서 지적하는 대로 그동안 막대한 규모의 국민연금기금의 정책적 활용가능성을 모색해 온 정부가 이 기회에 이를 자신들의 통제권에 두겠다는 불순한(?) 의도가 있었는 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법의 적용대상이 되는 기금들 중 절대액에 있어서나 상대적 규모로 보아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국민연금기금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다 아는 상태에서 국민연금기금의 현재틀을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정부당국이 전혀 모른 채 오로지 순수한 충정의 발로로 이 법을 만들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결국 최대규모의 국민연금기금의 관리 운영을 경제운영부처의 산하에 묶어두겠다는 발상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문제의 심각성은 분명하다. 이는 참여민주주의 정신의 후퇴라는 추상적 의미를 넘어서 국민연금기금의 정부 장악과 정치적 중립성의 상실이라는 두가지 문제로 압축된다.
먼저 국민연금기금의 정부장악이란 것을 살펴보자. 이는 <표 2>의 오른쪽 흐름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의 핵심은 예산처가 기금운용위원회의 심의안을 넘겨받으면 협의 및 조정권이 부여되고 국무회의 의결과정과 이후 국회 상정된 뒤에도 이에 대한 협의권을 독점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제 국민연금기금의 운용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기금운용위원회가 협의의 대상이 되고 실질적인 결정의 주체는 예산주무부처가 된다. 예산과 마찬가지로. 결국 국민연금기금은 처음에는 재경부의 손안에 있다가 보건복지부의 손을 거쳐 이제 기획예산처의 손으로 흘러들어가는 부평초신세가 되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표 2> 국민연금기금운용계획 확정 절차 비교
출처 : 국민연금운용실무평가위원회 2002년 제1차회의 보고자료.
둘째로 정치적 중립성의 상실이란 면을 보자. 혹자는 오히려 국회 심의 의결과정을 거친다는 점을 들어 확실한 사회적 합의와 국민적 동의절차를 거치는 것이라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국회의 심의 의결과정을 거치는 전형적인 예가 국가예산이라고 할 때 과연 국회를 거친다는 사실이 결코 사회적 합의라거나 전문적인 심의과정을 거친다고 말할 수 있는 지에 대한 답은 자명하다. 정쟁의 소산으로, 선심성 지역구 숙원사업 챙기기로 오히려 정부의 원예산안마저 분탕질되는 곳이 국회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국회의 심의 의결이란 오히려 국민적 합의의 과정이 아닌 정치적 흥정의 제물화하는 과정이다. 나아가 정치자금과 연결된 로비의 결과로 국민연금기금의 활용처가 결정된다면 이는 또 한번 국민연금제도와 관련된 심각한 파국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현재의 사태를 직시한다면 이에 상응하는 대응이 시민사회복지계에서 나타나야 할 것이다. 그 대응책은 다음과 같은 두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기금관리기본법이 지닌 국민연금법 정신에 대한 위배성을 정확히 지적하고 정부와 국회로부터 이에 대한 법률개정을 요구하여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기금관리기본법에서 국민연금법을 예외로 못박을 수도 있고 아니면 국민연금법에서 기금관리기본법의 적용을 받지 아니하는 것으로 할 수 있다.
둘째, 국민연금기금운영을 위한 상설화체제를 조속히 갖추는 것이다. 국민연금기금의 관리를 위한 독립적인 기구가 설치되어 금융감독원이나 국가인권위원회와 같은 권위를 인정받으면서 정부인사와 시민사회노동단체의 대표, 그리고 민간전문가가 포진된 가운데 상근인력을 갖추고 기금운용계획과 관리감독, 성과에 대한 평가등을 책임지는 체제로 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기금관리기본법의 개정은 국민연금기금운용에 대한 현재의 불완전한 틀을 조속히 변모시키는 논의의 활성화를 앞당기는 역할을 한 것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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