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주거운동
월간 복지동향/2002 :
2002/03/06 00:00
-임대료인상반대에서 주택취득까지
인권과 건강, 가족생활, 복지, 민주주의에 기초한 거주사상의 확립을 위해 동경대출판회가 1996년에 엮은 『세계의 거주운동』의 각 장을 독자들에게 연중기획으로 소개한다. 그 두번째로 책의 제 1장 영국 편이다.
최초로 산업혁명이 발생한 영국은 공업화, 도시화와 관련된 주택문제에 최초로 직면한 나라이기도 하다. 영국경제의 산업화, 공업화의 영향으로 대규모 인구의 도시집중 현상이 발생한 시기는 18세기이다. 이 시기 이후로 관련된 다른 산업을 포함하여 생산활동의 도시집중화는 무분별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농촌에서 이주한 사람들은 주로 고밀도의 비위생적인 주거지에서 살았다. 생활환경은 극히 불결하고 열악했으나 지방정부나 중앙정부의 대처는 미흡했다. 이 당시 선거권은 재산소유에 따른 제한적인 참정권에 근거하고 있었기 때문에 투표권을 가지지 못한 노동자 계층의 주거문제에 대한 요구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민간임대주택의 쇠퇴 : 국가개입 시작
이러한 현상은 19세기에 접어들면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노동자 계층으로 참정권이 확대되어 제한적인 투표권을 행사하면서 그들의 요구는 힘을 갖게 되었다. 1840년대 콜레라의 유행으로 도시의 위생문제에 모든 계층이 민감하게 되었고, 건강한 노동자는 생산활동과 직결되는 중요한 자산이라는 고용주의 시각도 함께 작용했다. 또한 주거문제의 근원을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주택공급, 시장 규제 및 제도의 결함으로 보는 시각이 확대되었다. 따라서 주택문제에 관한 새로운 행동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로 인해 가장 영향을 받았던 최대의 이해집단은 민간집주인이다. 공중위생의 수준을 개선하기 위한 19세기의 각종 개입은 민간임대인의 이익획득 기회를 서서히 제한하기 시작했으며 그들의 지위를 침범하는 보다 까다로운 개입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민간임대인 집단은 정치적으로 주변부에 위치하며 개혁의 요구에 대한 저항도 무력했다(D. Englander).
스코틀랜드에서는 민간임대주택 집주인의 대리인 역할을 하는 지가징수인이 있었고, 이들은 집주인과 고도의 연대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임차인이 지가를 지불하지 못할 경우 임차인의 동산을 압류하는 권리를 사용하거나 임대료 체불이 적체되기보다 차라리 빈집으로 두어 1910년에는 10호당 1호가 빈집이었다. 이 시기에 크게 두 가지 흐름이 나타났다. 하나는 생활조건의 개선을 요구하는 다양한 그룹들의 활동이 전개되었고, 공중위생에 관한 여러 시책이 확대되었다. 또 하나는 민간 집주인이 경제의 다른 분야로 투자의 대상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이때 지방정부가 주택의 건축을 가능하게 하고, 이를 원활히 진행하기 위하여 보조금을 도입해야한다는 제안이 상정되었다. 즉, 민간임대인 계급의 독립화와 주택투자 감소가 국가의 개입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잉글랜드에서도 임차료 증액이라는 임대인의 제안에 임차인동맹의 강한 반발이 있었으나 결국은 퇴거의 위협 때문에 실패하고 그들은 지자체의 공영주택에 대한 요구를 지지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1908년과 1911년의 지방선거는 공영주택이 필요하다는 원칙에 모두 동의하되, 단 어떠한 공영주택을 세울 것인가라는 쟁점을 둘러싸고 싸웠다. 또한 1914년에서 1918년의 제1차 세계대전 중 전시의 인플레 아래 집주인들이 이윤확대와 임대증액의 기회로 보는 착취가 이루어졌고, 임차인들은 임대료 지불을 거절하는 것으로 대항했다. 전시중의 시민 폭동이라는 두려움 속에 정부는 집주인의 임대인상을 금지하는 임대료 통제제도를 도입하였다. 그 이후 민간임대인의 이익은 존재하기 어려웠다.
공영주택 확대에서 주택취득정책으로
이제 더이상 민간임대부문에 투자하는 것은 경제적인 이익이 없었다. 또한 노동자 계급의 항의와 선거권의 확대, 노동운동의 성장은 국가의 개입과 공영주택의 확대로 이어졌다. 이것은 주택보조금제도의 확대로 이어진다. 1919년 내무부 보조금 제도는 주택개혁을 사회불안과 혁명의 공포를 방지하는 한가지 방법으로 정부에 의해 추진되었으나 길게 유지되지는 못했고, 그 액수도 관대하지 않았다.
공영주택 건설을 위주로 하는 주택건설 프로그램의 발전은 노동당의 정치적 역할의 근간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지자체가 임대료 수입을 거두기 위해 부유한 노동자 계급의 수요를 충족시키려 해, 저임금 노동자와 실업자, 여성, 비가족세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노동당이 모든 지자체에서 임대인과 임차인 분쟁이 발생하는 것을 해결할 정도가 되지 못했다는 문제가 있었다.
1960년대 후반 이후로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자가소유주택에 새로운 의미부여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주택문제가 대부분 해결되었다고 보기 시작하여 보조금 제도에 대한 견해를 재검토시키며 임대료를 인상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임대료인상에 반대하는 많은 임대스트라이크를 가져왔고, 공영주택거주자의 공영주택취득권 도입이 제안되었다. 이로 인해 임차인 운동의 연대성은 떨어졌으나, 집세제도와 공영주택 거주형태 변화로 임대료가 주거급여로 완전히 충당되었기 때문에 집세인상이 더이상 임차인들에게 불리한 영향을 주지 않았다.
한가지 놀라운 것은 1980년대까지 임차인들의 움직임은 제한적이었고, 전국임차인거주인협회(NATR)라는 단체가 있었지만 요구사항을 담은 전국적인 캠페인 하나 실시한 적이 없었다. 그들은 오히려 공영주택취득권과 공영주택스톡의 이전을 도왔다. 공영주택을 둘러싼 논쟁의 주목해야 할 점이 바로 공영주택임차인들이 임대인인 지방 정부에 대해 가지고 있는 변하지 않은 충의와 지지이다. 임대인인 지방 정부는 몇 번의 실패와 문제에 직면했고, 관리하는 건물이 낡고, 유지비용 문제로 주택수준을 높은 상태로 유지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임차인들은 지금까지도 공영주택에 거주하기를 바라고 있다. 공영주택의 임차인은 주택에 더 많은 투자와 건축 및 주택개선요구를 계속하고 중앙정부에 대한 관계에서 자신들의 거주하고 있는 지자체와 일체감을 계속 가지고 있다. 전체로서 싸우는 방법은 정당의 정치적 접근을 넘는, 의회 밖의 강력한 싸움으로 발전시키는 것보다도 오히려 기존의 정치적 및 제도적인 시스템의 안에서 논쟁과 항의를 하는 경향이 있다. 쉘터(Shelter)와 같은 단체를 포함한 현대적인 로비활동을 하는 조직은 홈리스 및 사회적으로 무시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행동을 요구하는 비교적 중산계급의 사람들의 조직으로 간주할 수 있으며 그들은 자치체의 임차인과 강하게 연대하고 있다.
자가주택 소유
민간집주인의 소멸 및 지자체의 공영주택제도 확장과 나란히 영국 주택제도에는 자가주택소유의 성장이 보여진다. 자가주택소유는 시장 안에서 가장 중요한 주택보유형태로 성장하고 민간분야 및 주택 분야에서 전문가단체와 금융기관의 이익을 대표하기까지 되었다. 자가주택소유는 가장 바람직한 주택보유형태가 되고 자가주택소유 요구는 영국 주택운동의 하나의 특징이다.
자가주택소유의 역사는 18세기 상호보험건축조합의 설립으로 시작된다. 상호보험건축조합은 노동자가 자신의 주택을 건설하거나 구입할 수 있도록 자금을 모아두는 역할과 원조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1945년 이후에는 은행 및 지방당국의 대부가 보완되어 고소득자뿐만 아니라 소득의 규모가 적은 사람까지도 주택보유가 가능하게 하였다. 1950년대 중반 이후로는 자가주택에 세제상의 우대와 보조금까지도 지급되었다.
자가주택 소유의 확장에 대한 논란도 존재한다. 하나는 자가주택소유의 확장이 주택문제를 둘러싼 집단적, 사회적 행동의 부족을 설명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건축조합은 조합에서 융자를 받고 있는 사람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건축조합의 자금융자정책 및 도시의 일부지역의 주택 매각과 구입을 곤란하게 하는 융자금지지역 설정의 관행만이 아니라 성별 및 인종에 관련한 차별적인 취급을 둘러싼 논점도 있다.
주택정책의 탈쟁점화
1990년대 영국에서 주택에 관한 정치는 분열로 특징지어 진다. 전체 인구의 2/3는 자가주택소유자이지만 대부금 잔액, 재산가치 하락 여부에 따라 각기 다른 관심을 갖는다. 따라서 어느 특정한 그룹의 자가주택소유자를 위한 로비활동이나 금융기관 및 전문직업단체의 이익을 반영하는 로비활동은 형평성 문제가 항상 제기된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자가주택소유자에 대한 문제해결은 아무런 결정도 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민간임대부문도 마찬가지이다. 영국에서는 민간부문이 소규모이지만 최근에는 그것이 경제적으로 손실이라고 보는 논의가 주목받고 있으며, 1980년 이후 보수당 정부의 일반적인 경향으로 되었다. 그러나 민간임대에 여전히 자금이 원활하게 공급되는 것은 아니다.
공영주택의 임차인 및 거주자 조직은 거주운동의 가장 강력한 풀뿌리조직이다. 그러나 공영주택의 많은 부분이 1980년 이후 공영주택취득권에 근거해서 매각되었기 때문에 많은 지자체에 공영주택의 가장 강력한 옹호자는 이제는 자가소유자이다. 남아 있는 임차인 안에서는 부유한 노동계급 세대는 소수가 되고 있다. 공영주택취득권 및 인구, 경제구조의 변화의 결과 공영주택의 임차인은 점점 잔여적인 사람이 되었다. 임차인은 노인, 특히 독거노인, 실업자 및 저수입 세대, 편부모세대, 그리고 홈리스가 결과적으로 공영주택의 임차인으로 구성되었다. 노동시장 및 주택시장에서 교섭력이 한정되어지기 때문에 정치적인 관심을 끌어 자신들의 주거상황에 관련한 중요한 요구를 달성하려는 능력도 제한되어 있다. 공영주택의 임차인들이 직면한 주택문제는 모두 같지 않고,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관심사에 대한 해결방법도 또한 각각 매우 다르다. 어떤 사람은 양도를 바라고 어떤 사람은 부동산의 개선 및 수선을 원하고 어떤 사람은 임대료에 관한 행동을 원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보면 대다수의 사람은 자가소유자이며 임대주택부문에 있는 사람은 매우 다른 종류의 문제에 직면해 있다. 그 결과 1990년대에 있어서 거주운동은 100년 전에 존재했던 통일성 및 초점과 유사한 것은 가지고 있지 않다. 이것은 주택문제를 둘러싼 아무런 요구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택이 국가적으로도 정치적인 과제에서 벗어나 버렸다는 점은 주목해야 할 것이다. 1970년대 중반이후 주택은 선거정책상의 중심 논점이 아니었다. (번역 : 박경란, 정리 : 박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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