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와 가난에서 해방돼 자유로우소서!!
빈곤/분배 :
2002/03/28 10:35
최저생계비 현실화 투쟁 벌였던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최옥란씨 사망
12월의 바람은 너무 차다.
하지만 겨울 칼바람보다 더욱 마음을 에이는 것은 힘있는 자들의 침묵이었다.
개인별, 가구별 특수성을 무시한 행정 편의적 최저생계비 산정은 몸도 가누기 힘든 중증 장애인을 그 서린 바람을 맞으며 거리로 나서게 만들었다.
작년 12월 명동성당 앞에서 '생존권 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위한 농성'을 벌였던 최옥란 열사는 끝내 차디찬 병실에서 숨울 거두었다. 그가 자살을 기도하고 응급실로 옮겨진지 한달 동안 곁을 지켰던 가족과 동료들은 끝내 오열을 터트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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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년 12월, 기초생활보장법상 최저생계비의 현실화를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던 고 최옥란 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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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에게 가혹한 현실이 자살로 이끌어
26일 새벽 한강성심병원에서 세상을 떠난 최옥란 씨는 길지 못했던 생애를 장애해방운동을 위해 바쳤다. 1988년 장애문제연구회 '울림터'의 창립회원이었고, 1989년에는 장애인 고용 촉진법 제정과 장애인 복지법 개정을 위한 공대위 투쟁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특히 2001년 1월에는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지하철 선로점검 시위를 이끌었고, 12월에는 그 추운 겨울날 생존권 쟁취와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주장하며 명동성당 앞 텐트 안에서 단식농성을 벌였다.
그녀의 삶은 자체가 너무나도 힘든 나날이었다. 노점상 일을 했던 그녀는 최저생계비 수급을 위해 노점상 일마저 포기해야 했지만, 장애인의 특수성을 무시하고 일괄적으로 지급되는 최저생계비 26만원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했다.
20만원의 치료비, 영구임대아파트 임대료 16만원을 매월 부담해야 하는 그녀로선 이 세상을 견뎌내기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토록 어려운 현실 속에서 그녀는 자신에게 그리고 그보다 더욱 더 힘겨운 생활을 견뎌내야만 하는 장애인들에게 너무나도 냉담한 현실과 휠체어에 몸을 싣고 싸워나갔다.
"...저는 저의 텐트농성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정말로 저 같이 가난한 사람들의 최저생계를 보장하는 제도로 거듭나기를 희망합니다. 벌써 두 명의 수급권자가 자살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더 이상 수급자들이 자살하거나 저 같이 자살을 생각하지 않도록 바뀌었으면 합니다..." (명동성당 농성에 들어가기에 앞서 쓴 결의문 중)
하지만 그가 그토록 변화시키고자 했던 우리사회는 차가운 미소로 그녀에게 선택을 종용했다. 4년 전 남편과 이혼한 그녀에겐 9살의 아이가 하나 있었다. 하지만 장애인이며 최저생계비 수급자인 그녀가 양육권을 가질 수 있을리는 만무한 일이다.
양육권을 위해 주변으로부터 도움을 받아 경제력을 인정받으면 수급권은 포기해야 한다. 뇌성마비 중증장애인의 몸으로 그토록 장애인의 권익을 위해 정열적으로 투쟁해 왔던 그녀였지만, 가난으로 모성마저 포기해야하는 현실에는 도저히 견딜 수 없었으리라.
결국 그녀는 지난 2월 21일 과산화수소와 수면제을 먹고 자살을 기도했다.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병원으로 옮겨졌고,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시 일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했건만 26일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야 말았다.
한강성심병원 영안실에 빈소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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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우한승씨는 아무말이 없었다. 연신 '답답하다'라는 말 이외엔 어떤말도 잇지 못하는 당신의 모습에는 이땅의 모든 장애인들의 어머니들이 느껴야 했던 설움이 담겨 있으리라. 그 눈물을 함께 나누고 닦아줄 수 잇는 세상은 아직 요원해만 보인다.
빈소의 한 켠에는 열사의 9살짜리 아이 준호가 피곤에 지쳐 잠들어 있었다. 눈물로만 아이를 떠올렸을 고인의 영정이 더 이상 분노도 슬픔도 지운채 내려보고 있었다.
"장애인이고, 실업자이며, 여성이었던, 사회의 모든 약자"였던 그녀는 가장 절망적인 곳에서 가장 치열하게 싸우다 가장 외롭게 떠나갔다. 하지만 그를 알았던 모든 이들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빈소를 찾은 장애인 이원호씨(37세)는 "허전하고 안타깝다"면서도 "그녀의 죽음이 결코 그녀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혼자사는 장애인들은 혼자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떨군다.
28일 세종문화회관 앞 민중복지장으로 열려
최옥란 열사의 장례식은 빈소가 마련된 한강성심병원에서 6시에 출발, 명동성당 들머리를 거쳐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민중복지장(8:00∼10:00)으로 열린다. 장애인들이 함께 꿈꾸고 희망을 일구어 내는 세상을 바라는 모든이들과 함께 고인의 가는길을 지켜게 될 것이다.
다음은 열사의 장애인생존권 투쟁을 지켜봐 왔던 참여연대 식구가 보내온 글이다.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최옥란씨 얘기를 들었습니다.
최근 참여연대에 오는 휠체어 장애인들을 보며 혼자 얼굴 붉어졌던 것을 시작으로
8년전 최정환. 이덕인. 이젠 지겹기만 한 에바다. 이슈화 되지도 못하고 있는 각종 정신지체인 인권문제들까지. 여러 사건들이 떠오르며 마음이 아픕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한걸음 부터겠죠.
기대합니다.
참여연대가 편의시설을 설치 하지 않았다고 숭실대 처럼 고발도 당하는 날도 오기를.
에바다. 에강. 에시냇물 같은 이 땅의 크고 작은 마지막 시설까지 해결은 물론이고 사라지는 날이 오기를.
국가가 1년에 몇번 가지도 않는 관공서 보다 목욕탕. 술집. 미장원. 피시방에 편의시설 설치하라고 국민을 괴롭히는 날이 오기를.
내가 낳은 아이가 정신지체친구들과 놀아도. 내가 정신지체를 낳아도 앞날 고민 없는 세상이 오기를.
시각장애직원들과 함께 일하는 날이 오기를.
청각장애친구들과 한국영화보러가는 날이 오기를.
최옥란씨가 하늘에 가서는 당신이 낳은 아들을 마음대로 안아볼 수 있기를.
다리뿐만 아니라 팔어깨무릎머리 다 남들과 다르더라도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 수 있기를.
마음 편하게 잠들고 내일을 기대하며 일어날 수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옥란씨.
편히 가십시오.
당신을 멀리서 지켜봤던 시민입니다.
장례비 모금계좌 : 서울은행 23104-1615218 (예금주:유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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