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힘으로 조례를 바꾸다!!
월간 복지동향/2002 :
2002/05/03 00:00
과천시 보욕조례 개정운동의 진행과정 및 의의
영유아보육문제 가정을 넘어 사회문제로
생물학적으로 말하면, 사람은 자식을 위해 존재한다. 번식은 사람의 본능이기 때문이란다. 이 말을 전부 부정하더라도, 아이를 낳아 기르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역시 아이의 문제다. 특히 맞벌이 부부에게는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위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영유아 보육문제는 가정의 최대 화두이며, 이미 사회문제화 되었다. 그런데 대부분 우리나라 가정에서 고민하는 보육문제라고 하는 것은 "아이를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라는 질적 수준이 아니라, "도대체 어디에 맡길 것인가?"라는 저차원의 문제이다. 부모라면 누구나 안전하고 건강하게 아이가 자랄 수 있는 훌륭한 시설을 원하고, 좋은 보육선생님 밑에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을 활용하길 원한다. 그러나 현실과 맞닥뜨리면 이 모든 것이 쉽게 포기되고 만다. 아이를 볼모로 사익을 추구하는 지금의 보육환경에서 우리의 아이가 제대로 커나가길 바라는 것은 어쩌면 요원한 바람인지도 모른다. 더욱이 국공립어린이집 마저 그러하다면, 보육에 관한 한 대한민국은 절망적이다.
과천시민 보육조례개정의 주체로 나서
작년 가을, 과천시민들이 "과천시영유아및아동보육조례(이하 보육조례)"의 개정을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이미 아이가 커버려 보육의 고통에서부터 벗어난 학부모, 예비 부모가 될 젊은 부부, 당장 보육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부모 등을 비롯해, 공동체보육을 꿈꾸는 공동육아협동조합, 그리고 과천의 여러 시민단체들이 그들이었다. 가장 살기 좋다는 과천이 아이 키우기에도 가장 좋은가? 라고 이들은 반문했고, 그렇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그들은 제도, 즉 보육조례를 뜯어고치자는 의견을 모았고, 곧이어 "과천시보육조례개정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를 꾸리게 된다.
지방자치법 13조 신설, 시민이 조례발의 가능
국가에 법이 있듯, 지방자치단체에는 조례가 있다. 이전까지 조례를 제정, 개정, 또는 폐지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였다. 가장 흔하게는 시장(집행부)이 의회에 조례를 발의하는 경우다. 집행부의 필요에 의해 발의되는 경우인데, 이럴 경우 일반 시민들은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 두 번 째는 지방의원들이 스스로 발의하는 경우다. 종종 시민사회단체들이 친분이 있는 지방의원을 통해 조례를 발의하곤 하는데, 그러나 이 또한 대의제의 한 형태에 불과하다. 그러나 2000년 3월부터 시민들의 요구가 있을 시에는 조례를 제정, 개정, 또는 폐지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직접민주주의 한 형태가 제도로써 안착된 것이다. 이 제도는 지방자치법 13조 3(조례의 제정 및 개폐 청구)에 신설되었다.
20분의 1이상의 지역주민 연서로 자치단체에 조례안 청구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며 이렇다. 지방자치단체에 거주하는 20세 이상의 주민 중 20분의 1이상의 주민들의 연서(서울의 경우 140,000명, 과천은 1,200명)로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조례의 제정이나 개폐를 청구하면 되는데, 대표자가 청구서를 제출하고 공표되면, 이 날로부터 광역은 6개월, 기초는 3개월 동안 청구인명부를 제출하면 된다. 보통의 서명과 다른 점은, 20세 이상이면 누구나 서명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지만, 서명을 받기 위해서는 필히 자치단체에 신고해야 한다. 이를 '수임인'이라고 한다. '수임인'이 많이 확보되면 그만큼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다른 점은 시민들이 서명을 할 때, 주소, 주민등록번호, 날인 등을 필히 기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들에게 부담이 되는 부분이다. 그래서 시민들은 쉽게 서명에 동참하지는 않는다. 동참하더라도 꼼꼼히 조례의 내용을 검토한 후 서명하곤 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청구인 수를 채우면 당해 자치단체는 조례안 전문을 지방의회의 부의해야 한다. 조건 없이 지방의회의 상정된다는 점에서 이 제도의 위력을 확인할 수 있다.
[조례 제·개정 청구의 과정 ]
청구서 작성의 전(前)단계(주민의사의 수렴 및 형성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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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서 작성 / 청구대표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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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례 제·개정 청구서 제출 / 대표자 증명서 교부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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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을 수집할 사람(수임자) 선정 및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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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수집 (기초는 3개월, 광역은 6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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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인 명부 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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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단체장이 조례안을 작성하여 지방의회에 안건으로 부의
'수임인'의 모집과정 주민발의 운동의 정당성과 필요성 전달
우선, 운동본부는 참여하고 있는 단체의 회원을 중심으로 '수임인'을 모았다. 앞서 지적했듯이, 좀 번거로운 절차이긴 하지만, 서명을 받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필히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해야 한다. '수임인'의 수는 청구인의 요건을 갖추기 위한 필요조건이 되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들을 통해 운동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수임인'의 수는 주민발의 운동의 교육적인 효과와 내용적인 성과를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모인 '수임인'의 수는 140여명이었다. 과천이 소도시임에도 불구하고 공동체교육을 지향하며 현장에서 남다르게 보육문제를 고민하고 있는 공동육아협동조합이 세 군데나 있었다는 점은 '수임인'을 확보하데 있어서 뿐 아니라, 전체적인 주민발의 운동의 과정에서도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
길거리서명으로 자신감 얻어
특히 3개월간의 서명운동에 돌입할 즈음, 초기 열성에 못 미치는 단체 회원들의 참여율을 보면서, 과연 이 운동이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공동육아협동조합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맨 땅에 헤딩하듯, 무작정 거리로 나갔고, 시민들의 의외의 반응에 많은 자신감을 얻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주말마다 참여 단체의 회원들이 시나브로 길거리에 모여 지나가는 시민들의 옷자락을 붙들고 조례개정운동에 동참을 호소했고, 약 한 달간의 서명을 통해 청구인 명부의 조건을 채울 수 있었다. 결국 길거리 서명을 통해 얻은 자신감은 전체적인 주민발의 운동의 흐름을 좌우했고 운동본부의 분위기를 촉발시키는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정책결정 및 시설운영 상의 민주성과 투명성 제도화
주민들이 발의한 조례안의 기본 원칙은 ① 보육의 공공성 확보 ② 정보의 공개 ③ 시민 참여의 보장 및 확대 ④ 위탁 과정의 투명성과 민주성 ⑤ 보육정보센터 설립 ⑥ 과천시 보육종합발적계획 수립 등이다. 사실, 이러한 내용은 행정을 담당하는 공무원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될 수 있다. 편의적 행정, 탁상공론식 행정, 그리고 밀실행정 등이 더 이상 빛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의 보육행정의 양태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에 통과된 보육조례는 정책결정 및 시설운영 상의 민주성과 투명성을 제도화시킴으로써, 보육의 사회적 책임을 확대시켰고, 이후 운영의 묘는 공무원뿐 아니라 과천시민에게도 일정한 책임이 넘어갔다고 볼 수 있다. 시민참여의 확대, 정보공개의 원칙, 그리고 위탁 및 재계약 과정의 투명성과 민주성 확보라는 기본적인 원칙이 이번에 통과된 보육조례에 고스란히 담겨 있지만, 무엇보다 이런 제도를 어떻게 활용하고 운용할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보육조례개정안의 통과는 아이가 자라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첫걸음일 뿐이다.
자정 넘어서까지 시의원 로비
운동본부 측은 마지막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조례안을 두고, 대부분의 시의원들은 전체적인 취지에 동의하면서도 부분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입장이 엇갈리기도 했다. 조례안이 상정되던 날, 사회복지과 공무원들은 실무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며 시의원을 상대로 치열한 로비를 펼쳤고, 이에 맞서 운동본부 측에서도 자정을 넘기면서까지 개별적으로 시의원들과 미팅을 갖기도 했다. 결국 지난 3월14일, 과천시의회 본회의에서는 몇 개의 자문만 수정함으로써 원안을 그대로 통과시켰다. 우리나라 최초로 시민들의 직접 참여에 의해 보육조례를 개정시키는 쾌거를 올린 것이다.
행정의 수혜자에서 주체로
누구나 인식하고 있듯, 보육문제는 공공의 영역이다. 과천시 보육조례가 담고 있는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내용도 "보육의 문제를 행정담당자와 시설관계자, 그리고 시민들이 함께 풀어보자"라고 요약될 수 있다. 제도만으로는 보육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한다면, 이번에 통과된 보육조례가 빛을 더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자치적 요소가 가미되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는 이미 그 가능성을 보았다. 행정의 수혜자였던 시민들이 더 이상 수혜자의 위치를 거부한 것이다. 조례안을 받아 쥔, 한 시의원이 "쉽게 올 수 있는 길을 어렵게 왔다"고 표현했듯이, 140여명이 수임인과 1650여명의 서명자들은 직접 참여함으로써 아주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을 버렸다. 행정의 주체임을 스스로 확인한 것이다.
지역운동의 새로운 가능성 열려
이번 과천에서의 개가는 직접민주주의의 길을 열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지방자치법에 명시된 조례 제·개·폐청구권이 그 취지에 비해 너무 까다로운 절차를 내포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지만, 이를 극복하는데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결국 직접민주주의의 성패는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에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준 것이다. 또한 이번 주민발의운동의 성공은 지역운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기도 했다. 추상적인 주제나 시민을 대변하는 운동의 형식이 아니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생활상의 문제를 통해, 지역민 스스로가 문제의 해결점을 찾고, 서로 소통하며, 공동체를 꾸려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미 여러 지역에서 주민발의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이런 흐름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제도의 개혁만으로 풀뿌리가 튼튼해지지 않는다. 시민이 스스로 움직일 때, 풀뿌리가 견고해진다는 건 주지의 사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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