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파업의 쟁점과 배경



지난 5월 23일 시작된 병원 파업이 계절이 두 번 바뀌고 무려 5달을 넘기면서도 해결되지 않은 채 장기화되고 있다. 가톨릭중앙의료원 3개 병원(강남성모, 여의도성모, 의정부성모병원 10/28현재 파업 159일째) 목포가톨릭병원(파업 155일) 제주한라병원(파업 153일) 제천정신병원(파업 109일) 이 바로 그들이다.

▲10/8일(화) 오전 강남성모병원앞에서 가톨릭의 노조탄압과 그로 인해 고통받는 병원노동자를 상징하는 십자가시위를 전개했다. (사진제공 : 병원노조)


그 사이 "대∼한민국"을 외쳤던 전세계 축전 월드컵도 있었고 남북이 하나되어 응원했던 부산 아시아게임도 있었지만 파업은 계속 되었다. 병원의 파행적 운영과 환자의 불편은 물론 노동자들의 고통은 커져만 가고 있다. 병원노조 사상 유례가 없는 장기파업이다.

왜일까? 왜 명동성당 서울대교구 앞에서, 광주 대교구 앞에서, 제주에서, 제천에서 수백명의 노동자들이 차가워진 늦가을 날씨, 영하로 내려가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길거리에서 천막을 치고 집단단식까지 하면서 처절한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을까?

뭔가 문제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노-사간 문제이니 만큼 어느 한 쪽이 문제인 것은 분명하다. 노조가 과격해서? 그러나 보건의료노조 산하 150개 지부들이 똑같은 요구를 내걸고 교섭을 시작해서 대부분 노조들이 월드컵 전 원만히 끝난 걸 보면 남아있는 노조들이 특별히 무리한 요구를 한 탓은 아닌 것 같다. 그럼 무엇이 6개 병원의 파업사태를 이렇게 장기화시키고있는 걸까?

전국 150여개 병원에서 의사를 제외한 간호사, 간호조무사, 의료기사, 약사, 사무직, 영양과, 시설과 등 50여개 직종 4만여명의 노동자가 가입되어있는 전국보건의료노조는 지난 5월 23일 "주5일제 쟁취와 인력확보, 의료의 공공성 강화, 산별교섭 쟁취와 직권중재 철폐, 비정규직 정규직화"등 4대 산별요구를 내걸고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투쟁은 대다수 병원이 주요요구를 원만히 합의하면서 마무리되었다. 특히 장기파업중 이었던 경희의료원마저도 파업 119일만인 9월 18일 극적으로 타결되었다. 하지만 위의 6개 병원은 사측의 완강한 거부로 사학연금 제도개선, 정리해고등 구조조정 반대, 비정규직 고용보장등 일부 요구가 미해결 쟁점으로 남아있고, 특히 사측의 전근대적 권위주의적인 노사관 때문에 노조탄압이 심해지면서 파업이 장기화, 해결의 실마리를 못 찾고 있다.

가톨릭중앙의료원등 6개 병원은 외형적으로 노조가 파업을 하고있지만 내용적으로는 병원사용자들이 파업을 하면서 노조를 몰아붙이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위 6개 병원들은 그동안 노조의 성실교섭 요구는 물론 노동부, 시민단체등 외부에서의 그 어떠한 중재노력에도 불구하고, 대화와 타협 자체를 거부하고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노조탄압에 대한 지적과 타결요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노조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내면서 오늘 이 시간까지도 폭력과 밀어붙이기에 의존하고있는 것이다.

제주한라병원은 정규직까지 나서서 비정규직의 고용보장을 위해 싸우는 보기드문 사례임에도 불구하고 파업조합원 108명 전원을 해고하여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더니, 그것도 모자라 용역깡패를 동원해서 방패로 찍고, 군화발로 짓밟고, 고춧가루 물대포를 쏘면서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가톨릭중앙의료원 산하 3개병원은 9월 11일 3,000여명의 경찰병력이 새벽에 들이닥쳐 농성중인 병원노동자들을 성당까지 경찰이 난입하여 연행했다. 연약한 여성 노동자들은 십자가를 부여잡고 가톨릭에 호소했지만 끝내 무참하게 끌려나가 구속되었다. 그리고 이후에도 경찰을 불러들여 정문에 상주시키면서 조합원들의 병원 출입을 봉쇄하고, 심지어는 병원내에서의 선전 활동조차 경찰과 중간관리자가 합작하여 저지하고있는 실정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경찰이 민중의 지팡이로서가 아니라 일개 병원 자본가의 사병으로 전락한 꼴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민주화의 성지라는 명동성당에까지 경찰 투입을 요청했다고 한다. 파업중 경찰투입으로 길거리로 내몰린 성모병원 노동자들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절박한 상태에서 마지막 선택한 피난처였지만, 약간의 불편을 명분으로 공권력 투입을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가톨릭중앙의료원이 시종일관 폭력에 의존하여 노조를 굴복시키려는 그 집요함에 놀랄 따름이다. 사랑과 평화를 온 몸으로 실천하는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운영하는 병원임에도 불구하고.

목포가톨릭병원도 집단해고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가 노조가 반발하자, 일방적 폐업을 단행하면서 노동자들을 길거리로 내몰았으며, 제천정신병원도 노조결성이후 노조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부당인사와 더불어 노조활동의 기본인 단협 체결을 미루고 있다.

사상 유례가 없는 노조탄압에 맞선 장기 파업 159일로 지금까지 노조에게 돌아온 것은 다섯 달동안 한푼도 받지못한 월급봉투와 구속 20명, 체포영장 발부 37명, 고소고발 361명, 190명 해고, 징계위회부 1,048명, 징계 188명, 손해배상 청구 34억원, 임금 및 조합비 가압류 77억, 재산가압류(차량 및 집) 107명, 경찰병력 투입과 사설용역깡패까지 동원한 폭력테러였다.

이번 보건의료노조에 가해지고 있는 탄압은 다시한번 한국 노동기본권의 현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단순한 임금·단협 과정상의 노동기본권 행사로 인해 이렇게 많은 구속, 수배, 해고자가 발생하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게다가 파업으로 인한 손실을 이유로 노조와 조합원에게 손해배상청구를 하고 임금과 개인재산을 가압류하는 것도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탄압이다. 이처럼 한국은 21세기가 한참 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노조와 파업을 불온시하는 노동기본권 후진국을 면치 못하고 있다.

병원 사용자들은 왜 이렇게 집요하게 목숨걸고 노조깨기에 매달릴까? 그것은 바로 병원에서 추진하고있는 구조조정의 걸림돌을 제거하고, 장기적으로 병원을 노동자와 환자는 아랑곳없이 돈벌이중심병원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지금 우리나라 병원계는 신자유주의 "시장"중심 논리에 의해 "돈벌이 병원" 시스템으로 재편되고있다. 우리나라 보건의료수준은 세계 58위로서 정부예산중 보건의료예산이 0.3%에 불과하고, 건강보험이 제 역할을 못해 보험료를 다달이 내고도 의료비중 외래 경우 67%를 본인이 부담하고있다. 행위별 수가제와 민간병원이 90%를 차지하고있는 잘못된 의료제도 때문에 과잉진료가 남발, 제왕절개율이 40%로 세계 1위 수준이다. 항생제 남용으로 페니실린 내성균 출현율이 70%로 이 또한 세계최고이다.

연봉제가 도입되면서 성과위주 진료 때문에 환자 수는 줄어도 진료비는 늘어나는 과잉진료가 만연하고있다. 선택진료제(특진제)는 환자의 선택권이 없는 상태에서 서민들의 진료비 부담만 가중시키고 있다. 이런 잘못된 보건의료문제 때문에 우리의 건강과 생명은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의사파업으로 강력해진 의사들과 병원 자본의 힘에 의해 보건의료문제는 뒷걸음질만 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 병원 노동자들은 싸우고있는 것이다.

따라서 보건의료노조의 장기파업투쟁은 민주노조를 사수하는 투쟁이자, 병원 자본가들이 돈벌이 중심병원을 만들려고 하는 것을 저지하면서 환자중심의 병원,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투쟁이기도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들은 장기파업의 성격과 본질을 이해해야하고 지지·연대해야 한다. 그렇지않고 약간의 불편함과 보수적 여론공세에 함께 편승했을 때 결국 그 피해는 노조무력화와 더불어 국민을 위한 의료개혁의 좌절, 의료서비스 질 저하로 나타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번 장기파업에 대한 정부의 책임 또한 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장기파업에 대한 안이한 대응과 사측 편들기 태도를 지양하고, 장기파업에 대한 올바른 교훈을 찾아, 필수공익사업장 직권중재(강제중재)제도등 불합리한 제도를 바꾸고, 적극적인 중재조정시스템을 만들어 분쟁 해결에 나서야한다. 노사평화와 민주적 노사관계를 파괴하는 경찰의 과잉개입관행과 사측의 불법부당노동행위를 엄벌할 수 있는 법·제도를 정비해야한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노동기본권 보장에 대한 정부와 일반국민들의 열린 마음과 사회적 연대이다.

날씨가 급속도로 추워지고 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길거리에서 천막을 치고 처절하게 싸우고있는 병원노동자들이 조속히 이번 파업사태가 해결되어 환자 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다시한번 많은 이들의 관심과 해결 노력이 진정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이주호 /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정책국장
2002/11/10 00:00 2002/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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