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1월 29일, 마침내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를 사회적 합의정신에 의해 발전시켜 가려는 우리사회의 노력에 조종이 울렸다. 건강보험 재정 파탄의 대응책의 일환으로 작년 1월 발효된 「건강보험재정건전화특별법」에 의거하여 발족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이하 "건정심")이 파행 끝에 2003년 보험료 및 환산지수를 결정하였기 때문이다.

이날 건정심은 한국노총, 민주노총, 경실련, 농민단체협의회 등 4개 가입자단체 대표와 대한의사협회 대표 2인이 퇴장을 선언하며 불참한 가운데 투표를 강행하여 내년 보험료를 8.5% 인상하는 동시에 환산지수를 2.97% 인상하는 결정을 행하였다. 한달여 건정심을 개최하여 건강보험 재정 상황에 대한 현황파악과 이에 대한 해석, 대응책을 둘러싸고 공급자단체와 가입자단체, 정부가 서로 상이한 인식의 차이를 노정시킨 채 많은 논란을 벌인 것 치고는 결정의 순간은 의외로 짧았고 그리고 간단했다.

그렇지만 그 파장은 그리 간단히 끝나지 않을 것같다. 며칠 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농단협은 아예 건정심에서의 탈퇴를 선언함으로써 가입자의 최대집단인 노동자와 농민의 대표권이 배제된 부담을 안아야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태에서 정상적인 건정심의 운영은 불가능하다고 판단된다.

사실 건정심은 발족 초기부터 심각한 반대의견에 휩싸였었다. 그동안 보험료는 건강보험공단의 재정운영위원회에서, 수가는 보건복지부의 건강보험심의위원회에서 각기 결정하던 것을 한 기구에서 동시에 결정해야 한다는 행정부 편의주의적 발상까지는 재정파탄이라는 전대미문의 위기상황하에서 한시적으로 인정한다하자. 그렇지만 그 구성을 의약계 8명, 가입자단체 8명, 그리고 공익위원 8명 등 24인으로 구성한다는 것은 모든 결정에서 가입자단체와 공급자단체의 의견이 대립될 수밖에 없다면 결국 공익위원들의 입장이 결정적이 된다는 것인데 그 구성이 정부 및 복지부 산하 또는 출연기구 인사들에 의해 다수로 구성된 것은 결국 정부의 의도대로 결정됨을 전제하는 것이다. 더욱이 의약계가 보험료를 결정하는 과정에까지 3분의 1이란 지분을 지니고 참여한다는 자체까지 생각하면 건정심의 구성 자체는 이전의 결정방식보다도 가입자입장이 상당히 불리하게 규정된 것임이 명백했다.

결국 이번 건정심에서 이러한 우려가 현실로 극명하게 나타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금번 건정심에서 2003년의 보험료율과 수가를 결정한다는 것은 단순히 그 수치가 얼마가 될 것인가를 넘어서는 더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즉, 작년 2월 건정심에서 2002년도에 적용될 수가를 2.1% 인하시키고 보험료율을 6.7% 인상시킨 결정 이후 과연 재정상황은 어떻게 되었으며, 특히 복지부의 재정안정화대책이 어떤 효과를 발하였는 지, 그리하여 이후 건강보험재정이 어떻게 운영될 것인지, 나아가 향후 건강보험재정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어떠한 조치가 필요한 지 등에 대한 주요한 진단 또는 방안마련이 행해져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각 주체들의 입장은 너무 달랐다.

먼저 참여연대, 건강연대를 포함한 시민사회단체 및 가입자단체의 입장은 2002년 건강보험 재정상황을 분석해 본 결과 두가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결론 1. 정부의 재정절감대책은 실패하였다. 만일 정부가 약속했던 대로 강력한 재정절감대책을 시행하였다면, 올해 이미 재정균형을 달성할 수 있었다.

<표 1>은 보건복지부가 01년 5. 31과 10. 5, 그리고 02. 4. 등 3차에 걸쳐 1조 8천억에 이르는 재정절감을 하겠다고 선언한 바에 따라 제시했었던 목표치와 11월 시점에서의 실현이 예상되는 전망치, 그리고 그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표 1> 2002년도 건강보험 재정 상태

출처 : 보건복지부가 건강정책심의워원회 보험료소위에 제출한 자료임.

이 표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첫째, 올해 국민으로부터 보험료 수입으로 7,449억원을 추가로 걷었으나 의료급여는 7,714억원이 증대되어 의료기관의 수입은 작년대비 4.5%인 5,891억원이 더 지급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더군다나 작년 2월 건정심에서 결의한 대로 수가의 2.9% 인하에 의해 1,900억원이 추가로 절감될 것이라고 예상한 것을 고려하면 실제 의료급여비의 추가지출은 9,600억원에 이르게 되어 보건복지부가 애초 약속한 1조 8천억원 재정절감효과가 절반만 성공한 결과라는 것이다.

셋째, 외형적으로는 당기수지상의 목표를 실현한 것 같지만, 이는 억제하지 못한 재정지출 증가를 국민의 주머니에서 더 염출해 보험료 납부액으로 메꾼 결과에 기인하는 것으로서 국민의 부담이 담보된 것이었다는 것이다.

넷째, 만일 정부가 목표했던 재정절감정책을 제대로 실현하여 지출수준을 약속한 13조 9천억원으로 묶었더라면 올해 이미 재정균형은 실현되었을 것이므로 결과적으로 정부는 재정절감대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며 향후 더욱 강력한 재정안정화 대책을 국민에게 제시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공급자단체는 의료기관의 수입 감소만을 반복할 뿐 특별한 분석을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저러한 설명자료를 제시하였는 데, 재정지출이 억제되지 않은 이유로 약품비 상승, 의료수요의 증가와 부분적인 재정절감효과의 미비를 들고 있었다. 건정심 제출자료에 의하면,

진료건당 약품비

8,853원("01.5월) 10,694원("02.5월)으로 20.7% 증가

내원일수

"01. 2/4분기 13,888만 일(日) "02. 2/4분기 15,805만 일(日)로 13.8% 증가

등으로 인해 5,745억원의 예상외지출이 있었으며, 본인부담금 조정 실패와 복지법인 의료수가 미조정으로 인해 2,004억원의 지출절감 실패 등 모두 합쳐 총 7,949억원의 정책실패가 있었다고 해명하였다. 그러나 이는 정부가 재정절감정책의 실패사유를 의료소비자인 국민의 과잉의료이용에 있는 것으로 몰아 붙임으로써 정부와 의료계의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려는 한심한 책임회피라는 반박을 면키 어려운 것이라 비판받게 되었다.

내원일수의 증가는 "국민의 의료기관 이용도의 순증가" + "의료기관의 과잉유도처방"이라고 볼 수 있으나, 이미 보건복지부는 자연적인 내원일수의 증가로 6.9%를 상정하였으나 실제 13.8%의 내원일수 증가가 나온 것은 의료계의 과도한 처방에 기인한 것으로 보이며 이는 수가의 인하를 보전하기 위한 수단이었음이 분명하고 정부는 이러한 의료계의 내원일수 증가에 대한 강력한 통제기전을 마련하지 못한 책임을 면키 어려운 것이었다.

결론 2. 정부는 지역가입자의 재정을 축소 추정하였고 이로부터 국고부담분을 과소하게 책정하였다.

재정건전화특별법에 의하면 지역가입자의 급여비 지출과 관련비용의 합계에 대한 40/100을 국고보조로, 그리고 10/100을 담배부담금으로 조달하게 되어있다. 결국 50/100을 정부가 명시적으로 책임지게 되어있다.

그런데, 실제 2002년 재정전망에 있어 정부는 2001년 10월 5일의 2차 재정안정화 대책 후 지역가입자의 보험지출 총액을 6조 5,994억원으로 제시하였고 이로써 국고보조 및 담배부담금의 합계를 3조 2,335억원으로 책정하였다. 그러나 위의 표에서 보듯이 실제 2002년 지역가입자 재정지출 총액은 7조 588억(복지부의 건정심 제출 자료에 의함)으로 예상되는 바, 이에 의하면 정부부담금은 총 3조 5,294억원이어야 했다. 따라서 올해 모두 3조 131억원을 투입한 정부로서는 결과적으로 5,163억원의 과소부담을 한 것이다.

의도적으로 지역가입자 재정규모를 적게 추정하여 정부부담금을 줄이지 않았는가 의혹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표 2> 정부의 건보재정지원액의 과소액

(단위 : 억원)

한편, 2003년도에 대한 재정전망과 이에 기초한 적정 보험료와 적정 환산지수 수준의 시각차는 더욱 크다. 정부는 건정심에 <표 3>과 같이 수가 및 보험료가 동결될 시의 2003년도 건강보험 재정 전망을 내놓았었다.

<표 3> 수가 및 보험료 동결시의 2003년 건보재정 전망

출처 : 보건복지부가 건강정책심의워원회 보험료소위에 제출한 자료임.

주 : 괄호안은 전년 대비 증가율(%)

그러나 이에 대해 시민사회단체 및 가입자단체는 세가지 중대한 이의를 제기할 수 밖에 없었다.

이의 제기 1. 정부는 국고 및 담배부담금 지원에서 3,053억원을 과소책정하고 있다.

정부가 지역가입자의 지출 총액에 대한 50%를 지원한다고 할 때 모두 3조 6,291억원을 지원하여야 하지만 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정부 예산편성에 의해 실제 책정된 것은 그로부터 3,053억원이 적은 상태라는 점이다. 그러나 또 다른 문제로서 정부가 아예 올해 재정 운영 결과에서 보듯이 지역가입자의 재정규모를 과소하게 책정했을 가능성이 있음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 정부는 2003년도의 지역가입자 급여비용이 2002년에 비해 고작 1.74%, 1,148억원 증가한 것으로 책정하였다. 이는 2003년도 지역가입자를 전년보다도 51만명 줄어든 것으로 상정하였지만, 이는 과도한 추정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03년도의 지역가입자 수를 51만명 줄이고, 직장가입자 수를 94만명 늘려잡은 것에 동의할 수 없었다.

이의 제기 2. 정부는 03년도 급여비의 자연 증가율을 10%로 예상하였으나 이에 동의할 수 없다.

정부는 03년도 급여비를 추정함에 있어 지난 94-99년간의 보험급여비 증가추이를 토대로 급여비의 자연증가율을 10%로 책정하였다. 그러나 이는 최근의 의약분업 실시 등 의료환경의 변화를 생각할 때 단순한 과거의 평균치를 적용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매년 급여비의 10%씩의 증가를 허락할 것인가하는 문제까지도 원점에서 재검토해 보아야 하는 것이지 무조건 과거의 수치로 전망치를 정당화하고 기정사실화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결국 내원일수를 기준으로 5-6%의 증가 이상을 허락하는 것은 결국 보험재정에서 감당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 명확하다.

이의 제기 3. 정부는 "03 년도 재정절감 효과를 전년의 달성도인 70%를 적용하였는 바, 이는 100% 효과를 잡는 것이 당연하다.

정부는 02년도의 재정절감효과 70%만을 익년에 적용하였는 바, 이는 명백히 잘못된 것으로서 애초에 정부가 약속했던 재정절감액 전액을 실현하도록 하여야 하며, 이에 대해 정부는 실효성있는 정책수단들을 강구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함을 운운하며 슬며시 정부재정절감대책의 실패요인을 규명함없이 안이한 행정을 집행하려는 발상에서 우려감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이러한 재정전망에 대한 이의 제기는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은 상태였고, 정부로부터 2,600억원에 해당하는 추가국고분의 투입과 700억원의 추가 재정절감액을 확보하는 수준에서 03년도 재정전망치가 수정된 가운데 최종 결정과정에 돌입하였다.

최종 결정과정에서 가입자단체가 제시한 최종안은 2003년에 예상되는 5,800억의 적자를 고통분담의 차원에서 공급자와 가입자가 공동으로 부담하자는 것이었으며 이에 의하면 환산지수의 2.6% 인하와 보험료율의 2.6% 인상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가입자단체는 그간 누적되어온 의약계의 과도한 수가인상과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의약계의 고수익 확보 경향을 해소하여 국민의 의약계에 대한 불신을 완화시키고 재정파탄의 일차적 원인을 제공한 의약계 스스로 원인해소를 한다는 차원에서 수가의 인하는 당연히 시도되어야 한다고 인식했던 것이다. 반면 올해 초 보험료율의 6.7% 인상결정에 의해 실제적으로 보험료인상액은 두자리 이상이었으며 재정지출을 통제하지 못한 정부가 공단으로 하여금 가차없는 징수를 획책하여 99.7%라는 초유의 징수율을 자랑하면서 목표 수입보다도 7,000여억원을 추가 징수하는 개가의 희생자된 국민은 올해도 철저히 건강보험의 과잉재정지출의 봉역할을 담당하였으므로 내년 보험료의 인상폭은 최소화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인식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공급자단체는 수가의 8.7%인상과 보험료율의 14.4% 인상을 통하여 2003년도에 당초 예상된 재정규모보다도 무려 1조 5,000억원이나 추가수입이 가능하도록 하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이는 국민들이 그동안 의사 및 약사에게 가지고 있던 최소한의 신뢰와 존경의 념을 가시게 하는 후안무취한 발상인 동시에, 그들의 표현대로 스스로 이익만을 쫒는 '개인사업자'로서의 평소 인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한심한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러한 양측의 대치상황에서 공익위원들의 조정의견이 제시되고 이에 대한 찬반으로 결정하자는 의견이 대두되어 공익위원들을 회의를 통해 조정안을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공익의 조정안이란 결국 복지부가 2001년도 5.31 재정건전화대책에 의해 2003년 수가와 보험료에 있어 물가상승률만큼의 수가인상과 9%의 보험료 인상이라는 입장을 내 놓은 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공익안은 회의과정에서 소수의 반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가 2.9%인상, 보험료율 8.5% 인상으로 귀결되어 발표되었고 이에 대한 찬반으로 들어가 다수결로 통과되었던 것이다.

중립을 가장하여 복지부의 원안을 공익이란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한 이 조정안은 결국 의약계에게는 자신들의 추가이윤을 확실히 보장하는 안으로서 속내는 환영할 만한 매우 감사한 안이었고 투표과정에서 가입자단체는 대부분 반대한 반면 공급자단체 전원이 찬성한 것에서도 명백히 드러난 것이다.

이로써 건정심은 공익(公益)아닌 공익(空益)을 포진시켜 놓은 절묘한 구성을 통해 항시 복지부와 의약계의 야합에 따른 거수기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는, 즉 건정심은 외형은 사회적 합의기구이지만 대부분의 정부 산하위원회가 그렇듯 정부의 꼭두각시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하겠다. 그러므로 건강보험제도의 사회적 합의정신은 마침내 조종을 울린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본인은 더 이상 공익위원 신분을 유지할 수 없었으며 결국 투표과정에 참여하지 않은 채 사퇴를 선언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 새로운 정부의 탄생과 함께 건정심의 틀도 새롭게 조정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은 한 건정심은 건강보험재정의 사회적 합의 기구로서의 위상을 인정받기 어려울 것이다.
이태수 /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교수, LTS1115@kkot.ac.kr
2003/01/10 00:00 2003/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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