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마이카" 선생님들

우리 대학에 '호마이카' 라는 별명을 가진 세 명의 선생님이 있는데 이 별명은 시인 황지우 선생님이 지어준 것이다. 머리에 머리카락이 몇 개 남지 않아서 호마이카처럼 빤짝 빤짝하다는 이유에서인데 너무 적절한 표현 같아 본인들의 엄청난 저항에도 불구(?) 나는 끈질기게 호마이카라고 부르고 있다. 왜냐하면 나도 그만큼 맨날 이 선생님들의 집단 골림을 당하고 살기 때문이다(^ ^).

그런데 그중 특히 한 선생님의 경우는 아마도 아기 때부터 머리카락이 별로 없지 않았나 싶은 의구심이 들 정도인데 여하튼 어디서 이마가 끝나고 머리가 시작되는지 전혀 짐작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머리 전체가 아무 것도 없이 시원하다. 하지만 주름살은 하나도 없고 훤한 미남형으로 생겨 얼굴만 자세히 보면 완전 청년 얼굴이다. 그런데 이 선생님이 하루는 오더니 지하철에서 어떤 젊은이가 일어서면서 '할아버지 여기 앉으세요' 그랬다면서 그 말을 듣는 순간 하도 충격을 받아 한참동안 죽고 싶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를 얼마나 절절하게 하는지 나는 '에구.. 이 선생님도 이렇게 여린 면이 있다니...' 싶어 웃음이 터져 나와 죽을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연민이 막 드는 거였다. 또 그 외에도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의 미혼 여자 제자들이 '아줌마' 소리 듣고 충격과 열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한 두 번 들은 것이 아니고 심지어 손주까지 두신 우리 엄마도 슈퍼마켓에 갔더니 '할머니'라고 불러 충격을 받았다고 하셔서 내가 '아고.. 호칭 수난시대이구먼' 이라고 생각을 했을 정도이다(^ ^).

나 - 교수님, 선생님, 아줌마, 형님(?)

내가 영어 공용론을 찬성한다면 일상에서의 호칭 부르기와 관련된 고민해소나 호칭으로 인한 각종 스트레스를 좀 완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한가지 이유이다. 나의 경우를 보아도 얼마나 다른 여러 호칭으로 일상에서 불리는지 스스로도 정체감 혼동(?)이 올 정도이다. 직장에서 보면 교수님, 선생님, 학과장일 때는 학과장님, 연구소 소장일 때는 소장님, 그리고 밖에 나가면 박사님, 선배님, 후배님, 동문님, 게다가 최근엔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로 일하는 한 남자 후배는 전화 중 앞으로는 나보고 '형님'으로 부르겠단다(이유는 잘 모르겠음). 그리고 또 쇼핑 장소나 길거리 등에서는 아줌마, 아주머니, 사모님, 어머님, 언니, 고객님, 손님 그리고 한 10년 전쯤에는 딱 한번 아가씨라고 불린 적도 있다(^ ^). 몇 년 전 영국에 안식년 1년 가있을 때 생각해보면 그때 사람들이 나를 부른 호칭은 'you', 'sookjin' 'Dr. Sung' 이거 세 가지로 끝난 것 같은데 거기에 비교하면 정말 한국사회의 호칭이 얼마나 복잡, 다양한지 알 수 있고, 또 그런 이유로 생길 수 있는 여러 잠정적 상황 등을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호칭은 너무 과하면 불편, 너무 폄하적이면 불쾌하다. 기분 좋게 외출하여 낯선 이로부터 들은 어떤 호칭 한마디로 인해 종일 기분 팍 잡쳐서 자신의 실존적 가치까지 회의를 해보게 만드는 일이 생긴다면 이는 너무 불필요한 소모전 같다는 생각을 한다. 농경사회를 벗어나 급격한 산업화가 된 사회에 살면서도 여전히 타인을 부를 때 아줌마, 아저씨, 할머니 같은 친족 용어를 쓴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친근함과 정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정서를 잘 반영한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상황에 적절한, 상대를 배려하는 그런 섬세함이 조금만 더 첨가된다면 훨씬 더 좋을텐데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동네 길거리에서 트럭에 과일을 놓고 파는 남자가 있는데 나는 과일을 사든 안 사든 지나칠 때 꼭 인사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무척 친해지게 되었다. 그런 경우엔 나도 가끔 '아저씨' 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그 호칭 속엔 어떤 정감과 친근함 그런 내 마음이 실려있다고 느껴져서 그렇게 부른다. 하지만 처음 가보는 길거리 오뎅 파는 곳에서는 절대로 '아줌마' 혹은 '아저씨' 라고 부르지 않는데 서로 간에 전혀 정감이나 친근함이 쌓이지 않은 상황에서 '아저씨', '아줌마' 라는 호칭은 단지 특별한 직함이 없는 사람들을 통틀어 막 부르는 폄하적 호칭처럼 느껴져서이다. 그런 경우엔 그냥 '저기요..' 이렇게 시작하면서 뭔가 용건을 말한다.

불쾌함 보다 불편함이 나을까?

그래도 불쾌한 것보다는 불편한 심정이 더 나을까... 즉 어떻게 불러야 할지 잘 모르는 그런 애매모호한 상황에서는 호칭 상에서 모자라는 것보다는 차라리 과한 것이 안전한 접근법이 아닐까 싶다는 말인데 내 호마이카 동료가 할아버지라는 호칭으로 인해 겪은 처절한 고통을 보면서 앞으로 지하철에서 그 선생 비슷한 또래의 호마이카 남자를 보면 '저기.. 총각, 이 짐 좀 들어주시겠어요?' 이렇게 한번 불러볼까 말까 생각중이다. 흐흐..

성숙진 / 한신대학교 인간복지학부 재활학과 교수, sookjin@dreamwiz.com
2003/02/10 00:00 2003/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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