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6일, 사회연대은행 발족



사회연대은행의 운영원리

드디어, 아니 이제서야 사회연대은행이 우리 나라에서도 시작되었다. 신용카드가 1억장 이상 발매된 나라, 보험사·카드사에서 돈 빌려가라고 날마다 전단이 날아오는 나라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은행이 이제서야 시작된 것이다.

사회연대은행은 이름 그대로 연대적인 방식으로 운용되는 은행이다. 우선 사회연대은행은 돈이 아니라 연대(連帶)를 저축한다. 기부 받은 돈 이외에도 다양한 투자금들을 모아, 가난한 사람들의 자활의지에 투자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자가 아니라 연대정신을 되돌려 받는 것이 저축의 목적이다. 기부를 한 사람들은 고기 잡는 법을 일러주는 데 돈이 쓰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며, 투자를 한 사람들은 벤처기업이 아닌 "벤더(vendor)기업"이 어떻게 성장하는지를 보게 될 것이다.

돈을 빌려줄 때는 보증인과 담보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데 기존 은행과 가장 큰 차이가 있다. 노숙자들이 작은 리어카라도 구해 장사를 하기로 결심했다면 누가 돈을 빌려줄까? 담보도 보증인도 없는 여성가장이 작은 분식집이라도 차리려면 어느 은행에서 돈을 빌려줄까? 사회연대은행은 이처럼 자활의지는 있지만 기존의 제도권 은행에서 외면 당하는 빈곤층들의 은행이다. 비록 담보나 보증인이 없지만, 자활후견기관이나 종교기관 등의 "추천"으로 대출받게 되는 것이다. 물론 추천한 기관은 물질적인 보증의 책임을 지지는 않지만, 돈을 빌린 사람이 안정적으로 창업해서 경제활동을 꾸려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은행측과 수시로 상의해야 되는 책임이

그리고 사회연대은행이 제도권 은행과 가장 다른 점은 돈을 빌려주는 데 그치지 않고 창업정보와 경영·기술자문을 제공하며 나아가 판로개척도 지원한다는 데 있다. 대부분 빈곤층들의 소원은 "내 가게"를 갖는 것이다. 건설일용노동자들도 "내 사업"을 하는 것이 목표이며, 파출부 아줌마도 "내 식당"을 차리는 게 목표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내 가게"는 정보부족, 기술부족으로 몇 해 안가 문을 닫아온 게 그 동안의 경험이다. 따라서 사회연대은행은 각 분야 전문가들의 참여를 통해 다양한 창업지원책을 설계하고 제공하는 데 주안점이 있다. 현재 중소기업청이 운용하고 있는 소상공인지원센터 같은 공공부문의 지원 네트워크도 활용하게 될 것이다. 전국적으로 200여 개가 있는 자활후견기관은 창업지원 및 관리 네트워크이자, 돈이 필요한 사람을 추천하는 역할도 병행하게 된다.

따라서 사회연대은행은 돈과 함께 공동체의 연대를 제공하는 은행이다. 제도권 은행들이 큰돈은 기업에 떼이면서 서민금융에 박하고, 더구나 창구직원을 날로 줄여서 서비스까지 부실해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사회연대은행의 직원들은 돈을 대출 받은 사람들을 주기적으로 방문하여 필요한 사항이 없는지 파악하게 된다. 또 창업자들이 자신감과 자존감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 결과 사회연대은행은 돈을 버는 은행이 아니라, 돈을 많이 쓰는 은행이다. 대출이 늘수록 더 많은 직원들이 현장을 돌아다녀야 하는 것이다. 다만 다양한 네트워크들이 어떻게 구축되는가에 따라 비용도 절감하고, 효율화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국의 사회연대은행

외국의 사회연대은행으로는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뱅크(Grameen Bank)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유럽에서도 다양한 형태와 이름으로 발달해 있다. 가령 이탈리아에서는 윤리은행(Banca Etica), 프랑스의 경우는 연대은행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 대부분의 연대은행들은 기존의 은행권으로부터 금융지원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지원 가능한 사업은 공익적이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또 가급적 시민들의 협동 및 연대정신에 입각한 공동창업이나 기업인수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사회연대은행은 조직에 따라 중점 사업은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지역복지 서비스 제공이나 고용창출, 공동창업 등을 지원하는 재원으로 활용된다. 또 사회연대은행은 지역사회의 자원을 활용하고, 시민사회가 사업과정에 참여한다는 취지를 살리기 위해 운영에 필요한 사무국 이외에 민관협의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은행에 따라서는 지원하는 사업이 공익성을 띠고 있는가를 평가할 수 있는 평가위원회를 둔 경우도 있다.

사회연대은행의 재원과 관련해서 다음 세 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전통적인 협동조합 및 공제조합 방식으로, 은행의 재원을 회원들의 회비에서 충당하여 사용하는 경우이다. 여기에는 프랑스의 "대안적 지역예금관리를 위한 투자모임(Cigale)"이나 벨기에의 "크레달(Cr dal)"과 같은 은행이 해당된다.

둘째, 그 기금을 전적으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에 의존하는 경우이다. 여기에 해당하는 사례는 프랑스의 "여성창업지원금고(Fond Garantie pour l"Initiative Feminine)"가 대표적이며, 최근 들어 공공자금이 재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이다.

셋째, 민간 예금주 및 투자자들의 예치금과 공공기금 유치를 통해 기금을 조성하고 이를 자활지원사업에 투자하는 경우이다. 이탈리아의 "윤리은행(Banca Etica)"이나 덴마크의 "메르뀌르 은행(Mercur Bank)", 프랑스의 "프랑스 창업금고(Entreprendre en France)" 등의 사례가 있으며, 1990년대 후반 이후 세계적으로 설립이 증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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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의 공동체에 대해 소액의 자금을 빌려주는 것으로 유명한 그라민 뱅크는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바 있다. 가장 가난한 나라의 하나인 방글라데시에서 시작된 이 은행이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주목받는 것은 바로 풍요 속에서의 빈곤문제에 대해 기존의 제도권 은행이 별다른 대안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라민 뱅크에 대한 우스개 소리를 하나 소개하자. 누군가 '그라민은 정말 은행인가'라고 물었다. 그에 대해 그라민 뱅크의 창립자인 유누스 교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은행"이 부자에게만 대출하는 곳이라면 그라민은 은행이 아닙니다. 그라민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대출을 하거든요.

"은행"이 담보를 요구하는 곳이라면 그라민은 역시 은행이 아닙니다. 그라민은 담보 없는 사람들에게만 대출을 하거든요.

"은행"이 대출자의 40%가 상환을 하지 않는 곳이라면 그라민은 은행이 아닙니다. 그라민의 손실률은 2%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만약 세계은행(World Bank)이 은행이고, 혈액은행(Blood Bank)도 은행이라면, 그라민 뱅크는 은행인지 아닌지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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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출범하는 사회연대은행에 힘을!

사회연대은행이 "좋은 일"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자활의지는 있으나 제도권 금융기관에서 도움을 얻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돈뿐 아니라 각종 지원을 제공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돈을 빌려갈 사람들을 자활후견기관이나 지역사회단체, 종교기관 등이 추천함으로써, 지역사회와 연계된 자활지원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바는, 이미 다양한 창업지원 프로그램들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점이다. 영세민 생업자금융자는 돈을 빌려갈 사람들이 없어 매년 예산이 이월되는 상황이다. 또 여성창업지원이나 실업극복국민운동 성금을 이용한 창업지원도 성공한 사례가 거의 없다. 자활후견기관이 지원하고 있는 자활공동체도 아직 이렇다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뜻은 좋지만, 돈만 떼일 것'이라고 걱정을 해 주시는 분들이 많다.

새로 시작하는 사회연대은행은 그 같은 우려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점도 있다. 무엇보다 앞에서 열거한 지원프로그램들마저도 보증인이나 담보를 요구하거나 후속지원이 사실상 전무했던 점에 주목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영세민 생업자금융자이다. 반면 그라민 뱅크 모델을 원용하여 소규모로 추진되어 온 <신나는 조합>의 창업지원 및 성공사례에서 우리는 사회연대은행에 대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사회연대은행이 성공하거나, 적어도 정착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요소가 세 가지 있다. 첫째 돈이다. 이웃돕기에 머물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이 자활하는 데 "투자"할 수 있는 돈이 필요하다. 기초생활보장기금과 같은 정부의 공공자금을 출자하거나, 병행 지원도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면 사무실이나 작업장 임대에 소요되는 비용은 공공자금으로 충당하고, 손실 위험성이 높은 운영비는 사회연대은행의 대출을 받아 이용하는 방법이다. 둘째, 전문적인 자원의 참여이다. 소규모 창업 전문가, 경영, 회계, 세무, 법률 전문가 등의 광범한 자원봉사가 필요하다. 서울에만 집중되어서도 안 되고 전국적으로 고르게 참여하여, 인근의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 셋째, 지역사회와 민간의 네트워크 구축이다. 사회연대은행이 돈만 빌려주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지원을 조직하는 것이라면 이들 네트워크의 구축은 관건이 아닐 수 없다.

2월 26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대강당에서 사회연대은행 출범식이 있었다. 성공회대학 김성수 총장을 비롯해 몇몇 "꿈 많은" 현장활동가, 전문가들이 중심이 되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도 삼성의 기탁금 중 상당한 액수를 대출금으로 출자했다. 이제 불안하지만, 아름다운 투자가 시작되었다.
김수현 /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연구위원, shkim@sdi.re.kr
2003/03/10 00:00 2003/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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