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 계기, 글의 한계, 글의 차례

저는 남들이 말하는 공인회계사입니다. 2002년도에 참여연대 예산감시 팀이라는 소모임에서 서울시 청소년 수련관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법인 회계제도에 대해 얘기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제 글이 사회복지법인의 회계제도에 대해 엄청나게 전문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글이 아니라는 것을 미리 말씀 드립니다. 저는 단지 예산감시 팀에서 잠깐 (9개월 정도) 공부를 했을 뿐입니다. 사회복지법인의 회계장부를 본 적도 없습니다.-보고 싶었지만 기회가 안 닿아서 못 했습니다.- 그러니 제 글에 너무 많은 기대를 걸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사회에 부정부패가 많아서인지 공인회계사의 회계 감사라는 것에 국민들이 거는 기대가 큰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은 제가 공인회계사라고 하니까 ‘기업들이 숨겨놓은 검은 돈 찾아내려고 계좌 추적하는 일 하시죠?’라고 묻기도 합니다. 실망스럽겠지만 아닙니다. 공인회계사는 국민들의 저런 기대에 부응할 만한 힘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저는 이 글에서 우선 주식회사의 회계 감사 제도가 어떤 한계를 가지는지 설명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회계 감사 제도라는 것이 주식회사에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원론적인 것을 알아야 그 다음의 이해가 쉽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사회복지법인 회계 감사 제도가 한계는커녕 전혀 효과가 없는 이유를 설명할 것입니다. 그 다음 마지막으로 그나마 예산 감시를 할 수 있는 아이디어 몇 가지를 대안을 제시할 것입니다.

주식회사의 회계 감사 제도

처음 글 부탁을 하신 분은 저보고 ‘사회복지법인의 회계감사 규칙’을 설명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회계감사 규칙’이라는 것은 회계처리를 이러저러하게 하라고 정해놓을 것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회계감사규칙’이 아니라 ‘회계감사 제도’입니다. 그래서 저는 여기서 주식회사의 회계감사’제도’에 대해 설명할 것이고, 그 다음 부분에서도 사회복지법인의 회계감사’제도’에 대해 설명할 것입니다.

아주 원론적으로 주식회사의 회계 감사 제도는 주주와 경영자의 이해 관계 대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주주는 경영자를 믿고 돈을 맡깁니다. ‘니 이 돈 갖고 함 함 해봐라.’ 그러면 경영자가 장사를 해서 번 돈을 주주에게 돌려 줍니다. 그런데 주주는 경영자를 못 믿습니다. 경영자가 1억을 순이익으로 벌었다며 주주에게 주는데, 주주는 경영자 놈이 정말 1억을 벌었는지, 아니면 2억을 벌어놓고선 1억을 1억을 가로채고 나머지 1억만 주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공인회계사를 ‘고용’합니다. ‘니 가서 저 경영자놈이 정말 1억을 벌었는지 함 알아봐라.’

이를 뒤집어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것은, 주주와 경영자의 이해 관계 대립이 없을 때 회계감사제도가 무용지물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즉 경영자와 주주가 동일인이거나 회계사(감사인)가 경영자와 친구라면 회계감사가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물론이요, 회계감사제도가 가장 잘 발달했다는 미국에서조차 주주와 경영자의 원론적인 이해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현실에서의 이해 관계는 최대주주와 경영자 그리고 회계사가 한 패거리가 되어 정부(국민), 채권자, 소액주주의 이익을 빼앗기 위해 공모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는 것입니다.

이런 불행한 사태를 막기 위해 ‘주식회사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에서 회계사는 부실 감사로 인해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조항이 있어도 지금의 회계감사제도 자체가 처음에 말한 가정(경영자와 주주의 대립)에 근본을 두고 있어서, 그 근본 가정이 깨어지는 현실 상황에선 회계감사제도가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나마 저런 손해배상 제도가 만들어진 것도 채권자와 소액주주라는 또 하나의 이해집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감시의 눈을 부라린 결과 부실감사에 대한 손해배상제도가 생겨난 것입니다.

즉, 주주든 채권자든 ‘자신의 이익을 지키고자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인간들’이 있어야만 회계 감사라는 것이 제대로 굴러간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회계사를 누가 고용했고, 누구에 대해 책임을 지는지 잘 알 필요가 있습니다. 회계사라고 해서 마냥 정의감에 불타 오르면서 부정부패를 캐 낼 것이라고 믿는 순진한 어린 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회복지법인의 회계감사 제도

여기서도 이해관계의 대립을 분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회복지법인이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을 때 이해관계는 어떻게 성립할까요? 한 편에는 그 예산의 원천인 납세자(국민)이 있고 다른 한 편에는 그 예산을 받아 일을 하는 사회복지법인이 있으며, 그 사이에 그 예산을 집행하는 정부가 있습니다.

여기서의 이해관계자인 정부도 예산을 감시하려고 형식적인 시도는 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봤던 서울시 청소년 수련관의 경우, 정부와 사회복지법인의 위탁 계약서에 따르면 사회복지법인 운영자가 그 예산을 사용하기 전에 예산서를 제출하고 예산을 사용한 후에 결산서를 정부(서울시, 행정부 등)에 제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식회사의 회계감사가 생겨난 이유는 돈 임자인 주주가 자기 돈을 경영자가 제대로 관리하는지 알아보려는 매우 이기적인 목적 때문이었습니다. 자기 돈이 달린 문제이니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 것입니다. 그러나 사회복지법인에선 이런 주주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회복지법인에서 정부 돈 1억을 떼 먹었다고 합시다. 국민이 5천만 명이면 국민 한 사람 당 피해액은 2원밖에 안 됩니다. 그러니 어떤 국민이 2원에 관심을 가지겠습니까? 정부가 관심을 가질까요? 정부 돈을 관리하는 공무원 입장에서 그 돈 잘 관리한다고 월급이 올라가나요? 즉, 사회복지법인에 제공되는 정부예산에 대해서는 이해관계자가 없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그러니 누구도 감시의 필요성을 안 느끼고, 사회복지법인이 횡령을 해도 손해배상소송을 하는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서울시 청소년 수련관의 결산서를 봤더니 어떤 공인회계사가 회계감사를 했노라고 서명을 했습디다. 이거 웃기는 짓입니다. 이 공인회계사가 회계감사를 잘못했다고 해서 피해 볼 사람도 없습니다. 1억을 횡령했어도 국민 한 사람 당 피해액은 2원밖에 안 되니 누가 그 공인회계사에게 피해 소송을 내겠습니까? 그러니 그 회계사가 감사를 제대로 했을 리가 없습니다. 이해관계자가 없는 상황에서 공인회계사의 회계감사는 국민들이 낸 세금을 감사수수료로 날리는 쉬운 길일 뿐입니다.

(가장 안 좋은 상황을 가정하고 쓴 것이므로, 모든 사회복지법인이 예산을 횡령하는 것처럼 오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정도 독해 능력은 있다고 믿습니다.)

어떻게 예산을 감시할 것인가?

1)방향

앞에서 계속해서, 문제는 이해관계자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니 답도 간단합니다. 우리 자신이 이해관계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낸 세금에 대한 권리를 찾고, 1인당 2원밖에 안 되는 작은 돈에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말고 되찾아오는 것입니다.

또한 회계감사의 출발은 횡령 감시, 즉 부정적발 감사이므로 아래 아이디어들을 실행할 적에는 회계규칙에 연연해 하지 말고 ‘횡령한 돈 찾아내기’에 주력하면 될 것입니다. 사실 지금의 사회복지법인 재무회계규칙은 어기고 말 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두리뭉실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회계규칙이라기보다 회계도덕에 가깝습니다. 사회복지법인의 재무제표나 회계장부는 횡령을 밝혀내는 수단으로 이용하기만 하면 좋을 것입니다.

2)납세자 소송법

참여연대가 꾸준히 얘기하고 있는 납세자 소송법이 제일 급한 일입니다. 정부 예산을 누가 횡령한 경우, 지금으로서는 국민들이 관심이 있어도 어찌 해볼 도리가 없습니다. 전공이 아니라 잘은 모르지만 지금의 소송법에 의하면 구체적인 피해를 당한 사람만이 소송의 당사자가 될 수 있습니다. (당사자 적격성) 정부 예산의 경우 지금의 소송법에 의하면 납세자는 당사자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정말 열 받는 횡령사건이 일어나도 국민은 통치자가 어련히 잘 알아서 하시도록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뭐 그나마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참여연대 회원이 되어서 잘 싸워 달라고 기부를 하는 정도?)

납세자 소송법은 납세자에게도 소송의 당사자 적격성을 주어서 정부 예산 횡령 등의 사건이 일어난 경우 납세자인 국민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법률 제도입니다. 그러니 이게 우선 되어야 국민이 손발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3)단체 기부의 대가로 예산 감시 권한 따 내기

납세자 소송법이 없는 상황에서 사회복지법인 예산을 감시할 수 있는 재미난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전에 신문에서 보니까 서울지하철 노조에선가 어느 고아원에 정기적으로 후원을 한다고 합디다. 이렇게 자매결연 비슷하게 맺어서 정기적인 후원을 하는 단체가 있으면 (없으면 이 기회에 만드는 것도 아름답고…) 후원자인 단체가 그 사회복지법인에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단체가 당신네 사회복지법인을 정기적으로 후원할 테니, 그 대신 당신네 결산서를 우리가 감사할 수 있도록 하라. 싫으면 후원도 없다.’

사회복지법인이 좋은 일 하자는데 꼴랑 몇 푼 기부한다고 감사까지 하겠다고 나서는 게 미안한 일 아닌가? 절대 아닙니다. 감사를 하는 게 그 사회복지법인을 위해서도 좋은 일입니다. 어떤 단체든 감사를 받고 투명해져야만 훌륭한 단체가 되기 마련입니다.

만일 기부자 단체에게 회계감사 능력이 없다면 회계사들에게 부탁하면 됩니다.좋은 일 하려는 회계사들도 찾아보면 많이 있습니다. 공인회계사회에 전화해서 그런 뜻을 전한 다음 자원봉사로 일해줄 회계사를 찾으면 구해줄 것입니다. 아니면 회계사들이 많이 이용하는 인터넷 게시판에 광고를 해도 될 것입니다.

4)사회복지법인 회계감사 하게 해 달라고 정부에게 조르기

사회복지법인의 회계를 투명하게 만들 수 있는 두 번째 아이디어입니다. 부정부패가 의심되는 특정 사회복지법인을 찍은 다음, 그 사회복지법인에 예산을 제공한 정부기관을 찾아갑니다. ‘우리가 납세자로서 우리가 낸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궁금하다. 저 사회복지법인에 대해 우리가 1주일 동안 회계감사를 할 테니 감사 권한을 달라.’라고 요구합니다.

위에서 정부가 사회복지법인의 회계감사를 제대로 안 한다고 했는데,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한다고 하는 게 맞습니다. 정부 예산을 받는 사회복지법인이 수천 개이니 그 자잘한 것들에 대해 모두 감사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멋진 사람들이 가서 정부를 설득하면 정부도 감동하고 좋아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 사회복지법인을 찾아가면 그 운영자는 분명 회계 감사하러 온 사람들을 싫어할 테고 자료도 다 숨겨버릴 것입니다. 이때는 정부에게 사실대로 말하면 그만입니다. ‘가봤더니 우리를 전혀 안 도와준다. 켕기는 게 많은 것 같다. 함 조사해봐라.’

그래도 희망

며칠 전 한겨레신문을 봤더니 레비 스트로스가 쓴 책을 소개했습디다. 구조주의를 만들었다고 불리는 레비 스트로스가 그 책에서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구조라는 것은 사회 현상을 설명하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다.’

저는 이 말을 다음과 같이 읽었습니다. ‘사회 구조가 어떠하더라도 내가 열심히 한 만큼 사회는 아름다워진다.’ 열심히 살아야지요.

장용창 / 안진회계법인 세무자문본부, yojang@deloitte.com
2003/03/10 00:00 2003/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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