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이 있어도 사먹을 수 없는 백혈병 환우
월간 복지동향/2003 :
2003/03/10 00:00
2월17일, 전국사회보험노동조합위원장과 함께 <한국백혈병환우회>란 조그만 푯말이 붙은 문을 열었을 때, 6평 남짓한 좁디좁은 오피스텔 방은 발 디딜 틈도 없이 백혈병 환자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지방엔 상담창구가 전혀 없어 광주, 부산 등지에서 다급하게 올라온 이들의 하소연은 끝 모르게 이어지고 있었다.
"급성골수성인데요, 혈소판 헌혈자를 구해야 되요…., "골수이식자를 좀 찾아주세요, 아이가 죽어가요…."
절박한 절규 마디마디엔 한 줌의 희망이라도 건져보려는, 생명을 향한 원초적 집착이 온통 배어있었다
"혈액원에서도 성분채집혈소판을 공급하고 있어요. 병원에서 적극적으로 요구하면 구할 수 있어요...", "혈액원에 재고가 없으면 헌혈의 집에서 헌혈을 해달라고 요청해 보세요..."
한국백혈병환우회 강주성 사무국장과 상근자 3명의 도움 손길은 턱없이 모자랐다. 생명! 그 앞에서 요구하는 자와 요구받는 자 사이엔 안타까운 촌각의 다툼만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구석진 모퉁이에서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빗발치는 문의를 겨우 물리치고 짬을 낸 강주성 사무국장과 마주할 수 있었다. 사무국장님은 "글리벡"과의 힘겨웠던 그간의 싸움을 풀어나갔다.
"백혈병 환자들이 복용해야만 하는 글리벡 약값 인하와 보험적용 확대를 요구하는 환우회와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중심이 된 글리벡공대위의 끈질긴 투쟁은 만성과 중기백혈병환자들에게만 적용되던 의료보험이 초기 및 소아백혈병환자들에게도 확대될 수 있도록 검토하게 만들었습니다. 회원단체들을 조직화하고 인권위 농성 등 2년에 걸친 험난한 투쟁의 결과입니다. 식약청에 의해 보험적용이 결정될 경우 400명에 이르는 초기 및 소아백혈병환자들이 부담하던 월 300∼400만원의 약값은 1/10정도로 줄게 됩니다."
하지만 나는 사회적 최약자인 희귀-난치병 환자들이 이 사회에서 생존을 보장받으려면 얼마나 많은 대가와 눈물겨운 투쟁을 감수해야되는가를 생각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백혈병 환자들의 과도한 약값은 그들에게 글리벡은 죽음의 약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엔 집을 팔고, 다음엔 전셋집에서 사글세로 옮기고, 결국엔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가정이 파괴되고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죠. 많은 백혈병 환자들이 돈이 없어 가정이 파괴된 채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대부분의 병원이 환자가 낸 수혈료 안에 공여자의 혈액검사비가 포함되어 있는데도 공급자의 혈소판을 검사 후 그 검사비를 챙겼어요. 벼룩의 간을 빼먹는 거죠. 골수이식을 위해 환자에게 맞는 혈소판 검사를 위해서는 15∼20명의 공여자를 검사해야 하는데 검사료가 5만원이니 100만원까지 주머니를 털어 간 것입니다. 이를 되돌려준 병원은 딱 한군데였어요. 그것도 환자의 항의에 마지못해서."
사회보험노조 박표균 위원장은 5,300명의 노조원으로부터 모금한 글리벡 약값 지원을 위해 1,500만원의 성금을 전달했다. 건강연대와 함께 글리벡공대위의 참여단체인 사회보험노조는 건강보험업무를 담당하면서도 이들에게 보험혜택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논의 끝에 현실적인 글리벡 약값 지원방법을 택한 것이다. 우리는 고마움의 표시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하는 사무국장님과 짧은 대화를 마쳐야 했다. 급박한 상담자들이 줄을 잇기 때문이었다.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조금은 흥분했던 마음은 내게서 이미 사라졌다. 1만명이 넘는 희귀-난치병환자들도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받으려면 그 힘겨운 투쟁을 해야만 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동안에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가정을 파괴당하며 죽어가야 한단 말인가. 약은 있어도 돈이 없어 죽어야 하는 현실은 또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
이번 글리벡 약값투쟁은 글리벡에 대한 보험적용 확대를 통해 환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으로 마무리지어야 했다. 당초 제기했던 약값문제는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보험확대도 어디까지나 백혈병환자의 글리벡에 한해 적용하는 선에서 물러난 것이다. 결국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어내지 못하고 다국적 제약회사의 횡포와 이에 놀아나는 정부의 안일한 대응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약값이 제약회사의 전략대로 결정되는 현재의 약가결정구조를 바로 잡지 않고서는 언제든지 이와 같은 상황이 재연될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약가를 결정하는 심평원의 약제전문위원회와 복지부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제약업계와 공급자 중심의 구성에서 탈피하지 못한다면 상대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의료소비자는 제 2의 백혈병 환자가 되어 또다시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백혈병환우회를 나서면서 약이 있어도 사 먹을 수 없는 우리나라 의료현실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답답한 가슴이 치밀어 오른다. 돌아오는 차창 밖의 한강 물결이 유난히 차갑게 보였다.
"급성골수성인데요, 혈소판 헌혈자를 구해야 되요…., "골수이식자를 좀 찾아주세요, 아이가 죽어가요…."
절박한 절규 마디마디엔 한 줌의 희망이라도 건져보려는, 생명을 향한 원초적 집착이 온통 배어있었다
"혈액원에서도 성분채집혈소판을 공급하고 있어요. 병원에서 적극적으로 요구하면 구할 수 있어요...", "혈액원에 재고가 없으면 헌혈의 집에서 헌혈을 해달라고 요청해 보세요..."
한국백혈병환우회 강주성 사무국장과 상근자 3명의 도움 손길은 턱없이 모자랐다. 생명! 그 앞에서 요구하는 자와 요구받는 자 사이엔 안타까운 촌각의 다툼만 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구석진 모퉁이에서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빗발치는 문의를 겨우 물리치고 짬을 낸 강주성 사무국장과 마주할 수 있었다. 사무국장님은 "글리벡"과의 힘겨웠던 그간의 싸움을 풀어나갔다.
"백혈병 환자들이 복용해야만 하는 글리벡 약값 인하와 보험적용 확대를 요구하는 환우회와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이 중심이 된 글리벡공대위의 끈질긴 투쟁은 만성과 중기백혈병환자들에게만 적용되던 의료보험이 초기 및 소아백혈병환자들에게도 확대될 수 있도록 검토하게 만들었습니다. 회원단체들을 조직화하고 인권위 농성 등 2년에 걸친 험난한 투쟁의 결과입니다. 식약청에 의해 보험적용이 결정될 경우 400명에 이르는 초기 및 소아백혈병환자들이 부담하던 월 300∼400만원의 약값은 1/10정도로 줄게 됩니다."
하지만 나는 사회적 최약자인 희귀-난치병 환자들이 이 사회에서 생존을 보장받으려면 얼마나 많은 대가와 눈물겨운 투쟁을 감수해야되는가를 생각지 않을 수가 없었다.
"백혈병 환자들의 과도한 약값은 그들에게 글리벡은 죽음의 약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엔 집을 팔고, 다음엔 전셋집에서 사글세로 옮기고, 결국엔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가정이 파괴되고 죽음에 이르게 되는 것이죠. 많은 백혈병 환자들이 돈이 없어 가정이 파괴된 채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도 대부분의 병원이 환자가 낸 수혈료 안에 공여자의 혈액검사비가 포함되어 있는데도 공급자의 혈소판을 검사 후 그 검사비를 챙겼어요. 벼룩의 간을 빼먹는 거죠. 골수이식을 위해 환자에게 맞는 혈소판 검사를 위해서는 15∼20명의 공여자를 검사해야 하는데 검사료가 5만원이니 100만원까지 주머니를 털어 간 것입니다. 이를 되돌려준 병원은 딱 한군데였어요. 그것도 환자의 항의에 마지못해서."
사회보험노조 박표균 위원장은 5,300명의 노조원으로부터 모금한 글리벡 약값 지원을 위해 1,500만원의 성금을 전달했다. 건강연대와 함께 글리벡공대위의 참여단체인 사회보험노조는 건강보험업무를 담당하면서도 이들에게 보험혜택을 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논의 끝에 현실적인 글리벡 약값 지원방법을 택한 것이다. 우리는 고마움의 표시를 어찌해야 할지 몰라하는 사무국장님과 짧은 대화를 마쳐야 했다. 급박한 상담자들이 줄을 잇기 때문이었다. 어려운 이들에게 도움을 준다는 조금은 흥분했던 마음은 내게서 이미 사라졌다. 1만명이 넘는 희귀-난치병환자들도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받으려면 그 힘겨운 투쟁을 해야만 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동안에 얼마나 많은 환자들이 가정을 파괴당하며 죽어가야 한단 말인가. 약은 있어도 돈이 없어 죽어야 하는 현실은 또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가.
이번 글리벡 약값투쟁은 글리벡에 대한 보험적용 확대를 통해 환자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으로 마무리지어야 했다. 당초 제기했던 약값문제는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보험확대도 어디까지나 백혈병환자의 글리벡에 한해 적용하는 선에서 물러난 것이다. 결국 문제를 근본적으로 풀어내지 못하고 다국적 제약회사의 횡포와 이에 놀아나는 정부의 안일한 대응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약값이 제약회사의 전략대로 결정되는 현재의 약가결정구조를 바로 잡지 않고서는 언제든지 이와 같은 상황이 재연될 수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약가를 결정하는 심평원의 약제전문위원회와 복지부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제약업계와 공급자 중심의 구성에서 탈피하지 못한다면 상대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의료소비자는 제 2의 백혈병 환자가 되어 또다시 거리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백혈병환우회를 나서면서 약이 있어도 사 먹을 수 없는 우리나라 의료현실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아 답답한 가슴이 치밀어 오른다. 돌아오는 차창 밖의 한강 물결이 유난히 차갑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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