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한 전문성의 강조인가?
월간 복지동향/2003 :
2003/04/01 00:00
한국 사회복지학의 현주소
1947년 이화여대 기독교사회사업학과의 설치와 함께 시작된 우리 나라의 사회복지교육은 경제 성장의 속도만큼이나 급격한 성장을 경험하였다. 그 결과 매년 엄청난 수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으며, 대학원의 많은 학과에서 지원자가 입학정원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사회복지학과 만큼은 매년 정원의 몇 배가 넘는 지원자들을 받고 있다.
그러나 급속한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사회복지교육은 질적인 측면에서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학문을 도입한지 반세기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업의 상당부분을 외국의 문헌에 의존하고 있으며, 우리의 현실에 맞는 이론과 방법론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양적 팽창에 따라 연구와 실천의 영역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지만, 그것들을 사회복지학이라는 하나의 학문 속에 어떻게 자리매김 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사회복지학은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고민을 뒤로한 채 영역의 확장에만 집중해왔고, 그 결과 각 영역간의 단절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 법한 다음의 상황은 오늘날 우리의 사회복지교육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A, B, C, D, E 는 모두 졸업 후 전공을 살려 사회복지관련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A는 종합사회복지관의 사회복지사로, B는 동사무소의 사회복지전담공무원으로, C는 병원의 의료사회사업가로, D는 사회복지관련 시민단체의 간사로, E는 학교사회사업가로 일하고 있다. 졸업 한지 1년여만에 동문회에서 만난 이들이, 각자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고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A는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마을잔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B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수급자 선정 기준이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C는 소아당뇨환자와 그 가족이 겪는 경제적·심리적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며, D는 사회복지관련 법안의 개혁방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E는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들의 대부분은 대학에서 배운 내용이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는데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으며, 자신의 업무가 학교에서 배웠던 것과 같이 전문적인 일이 아니라는 점을 성토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학교에서 같은 학문을 전공하였고, 졸업 후에도 모두 사회복지사로서 일하고 있지만, 이들은 정작 상대방의 업무 내용이 무엇이며, 그것이 자신의 업무와 어떠한 연관성을 맺고 있는지에 대해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한다. 나아가 자신들 모두가 사회복지실천이라는 동일한 울타리 속에 존재하는 한 식구라는 연대의식도 갖고 있지 않다.
다소 과장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실천현장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해보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회복지사는 전문가'라고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교육을 받았지만, 왠지 내가 하는 일은 그다지 전문적인 일이 아닌 것 같고,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 4년 혹은 그 이상의 전문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교육으로부터 현재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업무에 직접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관련분야의 지식 부족으로 인해 보다 전문적인 업무를 위해서는 추가적인 교육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상황. 그리고, 사회복지실천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보았을 때, 여러 현장의 업무가 왜 중요하며, 그것이 자신의 업무와 어떠한 관련성을 맺고 있는지에 대해 큰 관심이 없으며, 때로는 같은 사회복지사라는 이름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자신은 이미 한 식구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는 현실. 이러한 모습들이 어쩌면 가장 솔직한 우리 사회복지교육의 현주소인 것이다.
지나친 전문성의 강조
사회복지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회복지사는 전문가이다'라는 명제를 마치 쇄뇌에 가까울 만큼 강하게 교육받았음을 인정할 것이다. 그리고 사회복지사가 더 이상 자선사업가와 같은 존재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복지사는 전문가이다'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정규교육을 마칠 즈음에는 자연스럽게 전문직으로서의 사회복지사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
사회복지교육에서 강조하는 전문가는 단순히 특정 분야의 지식이나 기술이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컴퓨터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일반인이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은 뛰어난 기술자일 수는 있지만 윤리강령을 갖고, 자신의 업무에 대해 지역사회의 인가를 받은 전문가는 아닌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전문가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이 곧바로 자선사업가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교육기간 동안 전문가의 전형인 의사나 변호사 이상으로 스스로의 전문성에 대해 강조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전문교육을 받은 사회복지사들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현실은 종종 그들에게 가족치료나 인지치료와 같은 전문적인 업무보다는 단순한 짐꾼의 역할이나 후원자 모집을 위한 우편물의 발송작업과 같은 일들을 요구한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들이 해야할 일의 많은 부분은 분명 학교에서 배운 전문가의 일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처럼 우리의 현실이 요구하는 사회복지사의 모습은 그것이 옳건 그르건, 미국식 전문 사회사업가의 모습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사회복지교육은 미국식 전문사회사업가 교육에서 강조되고 있는 전문성 논의를 그대로 되풀이하여 왔다. 그러나 사회복지교육은 그러한 전문성의 강조가 어떠한 역사적 배경을 갖고 등장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을 하고 있지 않다.
전문성 강조의 배경
Michael Reisch(2002)는 그의 저서 「선택받지 못한 길 : 미국 급진 사회사업의 역사」에서 미국 사회사업의 전문성 강조가 2차 대전 이후의 냉전체제와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의 초기 사회사업은 사회구조와 사회개혁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그러한 전통은 1950년대 메카시즘의 탄압을 받으며 사라지고, 개인의 심리적 문제에 대한 해결이 그들의 주된 관심영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회사업가는 그러한 업무를 담당할 수 있는 전문성을 요구받게 되었고, 그러한 요구에 대한 반응으로 대학원 중심의 전문사회사업 교육을 실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동안 미국의 전문 사회사업교육이 수많은 전문인력을 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소극적인 복지국가로 평가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Harry Specht(1997)는 전문성의 강조가 사회사업가로 하여금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채 자신의 사회적 입지를 높이는데 집중하도록 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미국 사회사업의 전문성 논의가 미국의 사회복지 수준을 향상시키는데 중요한 공헌을 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렇듯 전문성의 추구가 자칫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외면한 채 개개인의 문제에만 집중하게 만들 위험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사회복지교육이 그토록 전문성을 강조해온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의 사회복지교육도 미국식 전문 사회사업가 양성을 목표로 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사회복지사를 자선사업가와 동일시하고, 그들에게 희생과 봉사를 강요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사회복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사회복지사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는 전문성의 강조가 유일한 대안이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가? 만약, 전자가 전문성 강조의 이유였다면, 교육의 내용도 미국의 사회사업교육과 같이 전문 직업교육에 적합한 내용으로 구성되었어야 했다. 그리고 후자가 그 이유였다면, 정말로 전문성의 강조가 유일한 대안이었는지, 전문성의 강조보다는 노동자성의 강조가 보다 현실적인 대안은 아니었는지, 혹은 우리의 현실에 맞는 전문성 논의는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논의가 선행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의 사회복지교육은 이 모든 것을 결여한 채, 미국의 논의를 무비판적으로 되풀이 해왔으며, 그 결과 머리로는 최고의 전문성을 추구하지만, 그것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전문성을 가지고, 전혀 전문적이지 않은 현장에서 일해야 하는 사회복지사를 양산해온 것이다.
앞으로의 과제
이제 대학에서 사회복지교육을 시작한지도 반세기가 넘었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출판된 사회복지관련 교재를 모두 모아도 책장 하나를 채울 수 없었던 현실을 돌이켜보면, 분명 우리의 사회복지학은 적어도 양적으로는 많은 성장을 하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제는 그러한 양적 성장을 질적 성장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미국식 전문성 논의의 강조나 교과과정의 무비판적 수용, 우리의 현실과 맞지 않는 이론과 실천기술의 답습 등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사회복지교육에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명확하고 구체적인 교육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러한 목표를 바탕으로 우리의 현실에 맞게 개발된 이론과 실천 기술을 개발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내용이 수많은 예비사회복지사들에게 교육되어질 때, 우리의 사회복지교육은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원하는 사회복지사를 배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이혜경(1986), '복지사회와 사회복지교육: 학부과정 사회복지교육의 방향 모색을 위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______(1995), '사회복지학의 정체성', 1995년 한국사회복지학회 춘계학술대회 자료집.
Harry Specht. Mark E. Courtney(1997), Unfaithful angels: How social work has abandoned its mission, Free Press.
Michael Reisch, Janice Andrews(2002), The road not taken: A history of radical social work in the united states, Brunner-Routledge.
1947년 이화여대 기독교사회사업학과의 설치와 함께 시작된 우리 나라의 사회복지교육은 경제 성장의 속도만큼이나 급격한 성장을 경험하였다. 그 결과 매년 엄청난 수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으며, 대학원의 많은 학과에서 지원자가 입학정원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독 사회복지학과 만큼은 매년 정원의 몇 배가 넘는 지원자들을 받고 있다.
그러나 급속한 양적 팽창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사회복지교육은 질적인 측면에서 여전히 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학문을 도입한지 반세기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업의 상당부분을 외국의 문헌에 의존하고 있으며, 우리의 현실에 맞는 이론과 방법론을 개발하지 못하고 있다. 양적 팽창에 따라 연구와 실천의 영역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지만, 그것들을 사회복지학이라는 하나의 학문 속에 어떻게 자리매김 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사회복지학은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논의와 고민을 뒤로한 채 영역의 확장에만 집중해왔고, 그 결과 각 영역간의 단절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 법한 다음의 상황은 오늘날 우리의 사회복지교육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A, B, C, D, E 는 모두 졸업 후 전공을 살려 사회복지관련 현장에서 일하고 있다. A는 종합사회복지관의 사회복지사로, B는 동사무소의 사회복지전담공무원으로, C는 병원의 의료사회사업가로, D는 사회복지관련 시민단체의 간사로, E는 학교사회사업가로 일하고 있다. 졸업 한지 1년여만에 동문회에서 만난 이들이, 각자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고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A는 지역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마을잔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B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수급자 선정 기준이 어떻게 바뀌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C는 소아당뇨환자와 그 가족이 겪는 경제적·심리적 어려움에 대해 이야기하며, D는 사회복지관련 법안의 개혁방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E는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들의 대부분은 대학에서 배운 내용이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는데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으며, 자신의 업무가 학교에서 배웠던 것과 같이 전문적인 일이 아니라는 점을 성토하고 있다. 그러나, 같은 학교에서 같은 학문을 전공하였고, 졸업 후에도 모두 사회복지사로서 일하고 있지만, 이들은 정작 상대방의 업무 내용이 무엇이며, 그것이 자신의 업무와 어떠한 연관성을 맺고 있는지에 대해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한다. 나아가 자신들 모두가 사회복지실천이라는 동일한 울타리 속에 존재하는 한 식구라는 연대의식도 갖고 있지 않다.
다소 과장이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고 실천현장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와 유사한 경험을 해보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사회복지사는 전문가'라고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교육을 받았지만, 왠지 내가 하는 일은 그다지 전문적인 일이 아닌 것 같고, 사회복지사가 되기 위해 4년 혹은 그 이상의 전문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교육으로부터 현재 자신이 담당하고 있는 업무에 직접적인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관련분야의 지식 부족으로 인해 보다 전문적인 업무를 위해서는 추가적인 교육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느껴지는 상황. 그리고, 사회복지실천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보았을 때, 여러 현장의 업무가 왜 중요하며, 그것이 자신의 업무와 어떠한 관련성을 맺고 있는지에 대해 큰 관심이 없으며, 때로는 같은 사회복지사라는 이름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자신은 이미 한 식구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는 현실. 이러한 모습들이 어쩌면 가장 솔직한 우리 사회복지교육의 현주소인 것이다.
지나친 전문성의 강조
사회복지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회복지사는 전문가이다'라는 명제를 마치 쇄뇌에 가까울 만큼 강하게 교육받았음을 인정할 것이다. 그리고 사회복지사가 더 이상 자선사업가와 같은 존재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복지사는 전문가이다'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정규교육을 마칠 즈음에는 자연스럽게 전문직으로서의 사회복지사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된다.
사회복지교육에서 강조하는 전문가는 단순히 특정 분야의 지식이나 기술이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컴퓨터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일반인이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은 뛰어난 기술자일 수는 있지만 윤리강령을 갖고, 자신의 업무에 대해 지역사회의 인가를 받은 전문가는 아닌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전문가로서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이 곧바로 자선사업가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교육기간 동안 전문가의 전형인 의사나 변호사 이상으로 스스로의 전문성에 대해 강조 받는다.
그러나, 이러한 전문교육을 받은 사회복지사들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현실은 종종 그들에게 가족치료나 인지치료와 같은 전문적인 업무보다는 단순한 짐꾼의 역할이나 후원자 모집을 위한 우편물의 발송작업과 같은 일들을 요구한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들이 해야할 일의 많은 부분은 분명 학교에서 배운 전문가의 일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처럼 우리의 현실이 요구하는 사회복지사의 모습은 그것이 옳건 그르건, 미국식 전문 사회사업가의 모습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사회복지교육은 미국식 전문사회사업가 교육에서 강조되고 있는 전문성 논의를 그대로 되풀이하여 왔다. 그러나 사회복지교육은 그러한 전문성의 강조가 어떠한 역사적 배경을 갖고 등장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을 하고 있지 않다.
전문성 강조의 배경
Michael Reisch(2002)는 그의 저서 「선택받지 못한 길 : 미국 급진 사회사업의 역사」에서 미국 사회사업의 전문성 강조가 2차 대전 이후의 냉전체제와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미국의 초기 사회사업은 사회구조와 사회개혁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지만, 그러한 전통은 1950년대 메카시즘의 탄압을 받으며 사라지고, 개인의 심리적 문제에 대한 해결이 그들의 주된 관심영역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회사업가는 그러한 업무를 담당할 수 있는 전문성을 요구받게 되었고, 그러한 요구에 대한 반응으로 대학원 중심의 전문사회사업 교육을 실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동안 미국의 전문 사회사업교육이 수많은 전문인력을 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여전히 소극적인 복지국가로 평가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Harry Specht(1997)는 전문성의 강조가 사회사업가로 하여금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채 자신의 사회적 입지를 높이는데 집중하도록 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결과적으로 미국 사회사업의 전문성 논의가 미국의 사회복지 수준을 향상시키는데 중요한 공헌을 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렇듯 전문성의 추구가 자칫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을 외면한 채 개개인의 문제에만 집중하게 만들 위험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사회복지교육이 그토록 전문성을 강조해온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의 사회복지교육도 미국식 전문 사회사업가 양성을 목표로 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사회복지사를 자선사업가와 동일시하고, 그들에게 희생과 봉사를 강요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사회복지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사회복지사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서는 전문성의 강조가 유일한 대안이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가? 만약, 전자가 전문성 강조의 이유였다면, 교육의 내용도 미국의 사회사업교육과 같이 전문 직업교육에 적합한 내용으로 구성되었어야 했다. 그리고 후자가 그 이유였다면, 정말로 전문성의 강조가 유일한 대안이었는지, 전문성의 강조보다는 노동자성의 강조가 보다 현실적인 대안은 아니었는지, 혹은 우리의 현실에 맞는 전문성 논의는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고민과 논의가 선행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우리의 사회복지교육은 이 모든 것을 결여한 채, 미국의 논의를 무비판적으로 되풀이 해왔으며, 그 결과 머리로는 최고의 전문성을 추구하지만, 그것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전문성을 가지고, 전혀 전문적이지 않은 현장에서 일해야 하는 사회복지사를 양산해온 것이다.
앞으로의 과제
이제 대학에서 사회복지교육을 시작한지도 반세기가 넘었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국내에서 출판된 사회복지관련 교재를 모두 모아도 책장 하나를 채울 수 없었던 현실을 돌이켜보면, 분명 우리의 사회복지학은 적어도 양적으로는 많은 성장을 하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제는 그러한 양적 성장을 질적 성장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미국식 전문성 논의의 강조나 교과과정의 무비판적 수용, 우리의 현실과 맞지 않는 이론과 실천기술의 답습 등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가 사회복지교육에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명확하고 구체적인 교육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러한 목표를 바탕으로 우리의 현실에 맞게 개발된 이론과 실천 기술을 개발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내용이 수많은 예비사회복지사들에게 교육되어질 때, 우리의 사회복지교육은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원하는 사회복지사를 배출해낼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이혜경(1986), '복지사회와 사회복지교육: 학부과정 사회복지교육의 방향 모색을 위한 연구', 이화여자대학교.
______(1995), '사회복지학의 정체성', 1995년 한국사회복지학회 춘계학술대회 자료집.
Harry Specht. Mark E. Courtney(1997), Unfaithful angels: How social work has abandoned its mission, Free Press.
Michael Reisch, Janice Andrews(2002), The road not taken: A history of radical social work in the united states, Brunner-Routled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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