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청주지검 충주지청으로부터 국고보조금 및 후원금 횡령 등의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오웅진 신부가 지난 2월 2일 천주교 청주교구에 사임의사를 전달했고 2월 26일 청주교구는 오 신부의 사임을 결정했다. 지난 90년대 말에도 꽃동네 문제로 사임했던 오 신부는 슬그머니 다시 복귀한 전례가 있어 이번 사임이 단지 수사의 압력을 피하려는 일시적인 방편인지 최소한 도의적 책임을 지려는 것인지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러나 지난 3월 14일 충주지청장의 기자간담회 내용을 보면 꽃동네측이 검찰의 자료제출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장부를 관리하는 종합행정실의 수녀는 연락이 1∼2주씩 두절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분위기를 보면 이번 꽃동네 사건은 오 신부 개인에 국한된 사건은 아닌 것 같다.

실체적 진실은 앞으로 수사와 재판 결과를 봐야 하겠지만,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만으로도 이번 사건은 대형 사회복지시설에서 발생할 수 있는 총체적 비리사건에 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지난 1987년 부산 형제복지원, 1995년 소쩍새마을, 1996년 에바다농아원, 1998년 양지마을 등 사회복지관련 시설에서 발생한 굵직한 사건들만 해도 즐비하다. 아마도 사회복지시설의 재정비리와 관련하여 이번 꽃동네 사건은 이 부문에서 사상 최대규모가 아닌가 싶다. 이러한 사건들은 중앙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지역의 작은 비리사건까지 합치면 그야말로 고질적인 우리 사회의 병폐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사회복지시설의 인권침해와 재정비리는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에바다농아원 사건의 경우 김대중 대통령이 TV 생중계방송으로 했던 "국민과의 대화"에서 그 해결을 직접 약속했지만 재단과 시설측의 격렬한 저항을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생산적복지체제에서도 사회복지시설의 비리는 해결되지 못했고, 현 정부의 참여복지정책 속에도 이러한 개혁의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경험적으로 보면 대개 이러한 사건들은 경찰이나 검찰에 고발되어도 그냥 묻혀버리는 경향이 있었다.

이번 꽃동네 사건을 계기로 사회복지시설의 비리문제를 정리해보면 이렇다. 첫째, 절대 다수의 시설이 종교관련 법인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종교의 사명으로 보면 당연할 수 있다. 종교인들의 말처럼 신앙은 이성을 뛰어넘는 것이니 이들에게는 법, 전문성, 과학적 실천 등 이성주의 범주에 속하는 개념들은 안중에 없다. 모든 것이 신의 뜻에 따라 하는 것이며 또한 좋은 일 하겠다는 것인데 누가 감히 왈가왈부 하느냐며 외부의 비판을 무력화시킨다. 한마디로 양심범 수준이다.

둘째, 시설의 장이나 법인 대표이사는 지역의 정·관계, 법조계, 언론계 등과 유착되어 누가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뚫을 수 없는 난공불락의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는 봉건 영주와 같다는 점이다. 따라서 시설 내에서 그들의 말은 곧 법이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성역으로 군림하게 된다. 대외적으로는 좋은 일 하는 봉사자요 희생자로 추앙된다. 어떻게 보면, 꽃동네처럼 사건이 외부적으로 표출된 시설들은 매우 불운한 경우에 해당된다고 하겠다. 역대 대통령들이 이렇게 저렇게 연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표면화되었으니 지독히 재수없는 경우를 만난 것이다.

사회복지법인과 종교법인 등 모든 비영리법인은 기본적으로 재단법인의 형태로 존재한다. 즉 공익의 목적을 위해 출연(出捐)된 재산이 법인격을 취득한 것이 곧 재단법인이다. 이러한 법인들의 재산은 시장으로부터 이탈한 재산으로서 그 의미를 갖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재화는 시장에서 존재하며 상품성을 가지고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운용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이며 본질적인 속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단법인은 하나의 재물로서 이익추구라는 자기본질을 부정하고 타인의 이익을 위한 비영리적 존재로 전환한 재물이다. 이런 면에서 대단하다고 할 수도 있으나 재물이 시장을 벗어나 진정으로 비시장적 목적, 즉 이타적인 공익 목적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지 반드시 검증을 받아야 한다.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시장을 이탈해서 비시장 영역에서조차 독점적인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소위 좋은 일 한다는 것이 대수가 아니라 진정으로 이익을 포기하고 공익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지 확인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재단법인에게 요구되는 일차적 사명이다.

정부가 공익법인의설립운영에관한법률과 사회복지사업법 등의 허가권, 감독권 규정을 제대로 집행한다면 상당한 정도의 비리와 인권침해는 막을 수 있다고 본다. 정부 스스로 사회복지사업을 추진하지 못하다 보니 민간 사회복지시설의 사회복지사업에 대해 약간의 보조금 지급으로 책임을 면하려는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여 대형 비리시설을 온존케 하는 것이다. 물론 정부가 적극적으로 국민들에게 사회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민간 사회복지시설에 대해 좀 더 큰 소리칠 수 있겠지만, 이와 같은 재단법인의 본질을 이해한다면 감독을 철저하게 하는 것이 국가에 일차적으로 요구되는 사항이다. 윌렌스키(Wilensky)와 르보(Lebeaux)가 사회복지를 한정짓는 기준으로 '목적상 이윤추구를 해서는 안 된다'고 제시한 것은 결코 순진한 말씀만은 아니다. 꽃이 핀댔자 며칠을 갈 것이며, 썩은 꽃은 얼마나 역겨운 냄새가 나는가?
윤찬영/전주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
2003/04/01 00:00 2003/04/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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