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사전적 의미는 "둘 이상의 서로 대립하는 국가 또는 이에 준하는 집단간에 군사력을 비롯한 각종 수단을 사용해서 상대의 의지를 강제하려고 하는 행위 또는 상태"라 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이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는 적대적 갈등상태인 것이다.

전쟁을 말하면서 사전적 의미를 운운하는 것이 어찌보면 공허하게 들린다.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정당성을 강조해도, 혹은 전쟁이라는 일련의 사건에 화려한 의미를 부여해도, 전쟁은 전쟁이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전쟁은 대규모의 파괴와 폭력을 동반하는 것이며, 잔혹한 살육과 인간성 말살의 극치일 뿐이다.

이라크 전쟁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그런데 머나먼 낯선 곳에서 일어난 전쟁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꼼꼼하게 따져 볼 일이다. 우리민족이 전쟁을 일상적으로 경험해왔다는 역사를 언급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라크 전쟁은 우리에게 또 다른 의미의 전쟁을 촉발시켰다. 즉, 미국이 주도하는 전쟁에 참여할 것인가에 대한 국가적 논쟁을 지칭하는 것이다. 북한 핵 문제와 결부되면서 참전과 국익의 연관성에 대해서 치열한 논쟁과 집단행동을 야기했으며, 이는 국론분열로 연결되었다. 국론분열은 참전을 반대하는 "반전진영"과 참전을 지지하면서 북한 핵 문제의 적극적 대처를 요구하는 "반핵진영"으로 나뉘어졌다.

반전과 반핵의 갈등은 긴 평행선을 그리며, 합의가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전쟁에 대한 공포와 평화에 대한 기원을 공유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에게 반전과 반핵 그 모두가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아닌지..... 우리 모두가 전쟁에 동반된 대규모의 폭력과 파괴를 피하려는 노력은 아닌지..... 좀 더 차분하게 생각해 볼 일이다.

역사 속에서 사회복지는 전쟁과 불가분의 관련성을 가져왔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전쟁을 치루는 과정에서 사회복지제도가 확충되었다. 또한 복지국가라는 용어가 1930년대 영국에서 독일 나치정권의 전쟁국가(warfare state)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국민복지의 유지·향상을 지향하는 국가를 뜻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는 점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맥락에서 이번 호에서는 "전쟁과 복지"에 대하여 논의하였다. "전쟁과 빈곤"이라는 글에서는 전쟁으로 인한 파괴는 교전 당사자들의 절대빈곤을 초래하며, 이로 인하여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의 해결이 절박함을 역설하고 있다. 또한 전쟁이 종료된 이후에도 빈곤의 악순환이 계속된다는 점에서 전쟁복구에 있어서도 세심한 계획과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전쟁과 의료지원"은 긴급의료와 보건의료 서비스가 전쟁에서 살아남는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며, 외부의 도움 없이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전쟁속의 아이들", "전쟁과 여성"의 논의는 현대 전쟁의 특성상 전쟁 피해자의 90% 이상이 민간인이라는 사실, 그리고 이중 80% 이상이 어린이와 여성이라는 점에서 출발한다.

건강보험 재정통합 문제와 국민연금 재정계산에 의한 재정안정화 방안 역시 논란을 야기하고 있다. 유리지갑과 가죽지갑의 차별성을 강조하면서 재정통합을 유예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인지 의심스럽다. 자칫 소모적인 논쟁으로 뒷다리 잡는 것은 아닌 걱정이 앞선다. 연금재정의 안정화가 제도의 지속성을 보장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급여 인하를 통한 재정문제의 해결은 노후 소득보장이라는 연금제도의 기본목표를 훼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해야 한다. 또한 연금재정의 수입을 확충하는 것 역시 보험료 인상만이 유일한 수단은 아닐 것이다.

보육업무의 여성부 이관 논의는 사회복지계를 뒤흔들고 있다. 보육을 아동복지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다는 입장, 보육의 책임을 현실적으로 여성이 담당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입장, 그리고 보육을 아동교육과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 등 글자 그대로 백가쟁명의 상황이다. 그렇지만, 보육에 대한 논의가 부처 이기주의나 공급자의 입장이 강조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보육을 어느 부처에서 담당할 것인가는 독립변수가 아닌 종속변수이다. 보육의 공공성을 높이는 것, 국가의 책임을 보다 명확하게 하는 것, 보다 체계적이고 통합적인 보육 서비스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공급자 중심의 사고는 사회복지사업법개정안에도 투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된다. 시군구 차원의 사회복지협의회를 법인화하여 설치하는 것이 지역사회 문제해결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튼실하게 하려는 것인지, 혹은 조직의 몸집을 키우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인지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

軍事作戰模型과 展示模型에 근거하여 정책을 결정하는 "사회복지스럽다"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참여복지를 기반으로 사회통합을 지향하는 "사회복지답다"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정홍원 /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사회복지학부, chunghw@kkot.ac.kr
2003/05/02 00:00 2003/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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