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미영 연합군은 불타는 바그다드를 함락시켰다. 비록 이라크가 군사적으로 미국보다 몇백 배 열세였다고는 하지만 명분이 약한 무리한 전쟁으로 국내외 반전 여론에 부딪혀 미국이 패퇴할 수도 있다는 기대와 예측은 이라크군이 예상 밖으로 허무하게 무너짐으로써 보기 좋게 빗나가고 말았다. 그러나 전쟁이 사실상 종결 되었을진 몰라도 향후 안정적 친미정권을 세우기 위한 미군의 점령 이후 이라크 국민들이 얼마나 더 많은 전쟁의 후유증과 고통속에 살아가게 될 것인지 세계 시민들은 지금 불안한 시선으로 이라크를 지켜보고 있다.

우리는 이번 이라크 전쟁과정에서 한편으로는 거대한 군사력 앞에 무력감을 느끼기도 하였지만 날마다 이어지는 반전행동속에서 평화를 향한 여성들의 외침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여성들이 "평화만들기"의 주체가 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적극 고민해보아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되었다.

1991-2003, 계속되는 여성들의 전쟁반대 외침

일찍이 여성들은 1991년 미국과 유엔 다국적군에 의한 대이라크 전쟁이 개시되자 "걸프전쟁과 한국군 파병을 반대하는 어머니 모임"을 결성하고 전쟁중지와 파병반대를 호소하는 활동을 펼쳤다. 그리고 2001년 9·11 테러직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보복전쟁이 감행되려고 하자 25개 여성단체들은 "전쟁반대여성평화행동"을 결성하여 테러피해자에 대한 추모와 미국의 아프간 침공을 반대하는 각종 시위, 전쟁과 여성과 관련한 토론회 등을 통해 여성의 관점으로 테러와 전쟁, 평화를 읽어내었다. 또 대학가와 사이버 공간을 중심으로 "전쟁을 반대하는 여성연대(WAW)’가 결성되었다. WAW는 아프간 여성들의 고통을 상징하는 검은 천을 두르고‘건널목 시위’를 벌이고 <아프간 여성 영상제>를 열어 아프간 여성들의 눈으로 전쟁을 바라보자고 제안하는 등 다양한 실천을 하였다.

그리고 다시 2003년 들어 여성들은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반전평화행동을 펼쳐 나가기 시작하였다. 용기 있는 한 모녀와 여성해방연대의 활동가들이 직접 이라크에 인간방패(평화지킴이)로 들어가 이라크 전쟁을 막아내기 위한 다양한 실천활동부터 "여중생범대위·전쟁반대공동실천" 등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날마다 주말마다 여성들의 반전행동은 이어졌다. 그리고 여성단체들은 이라크 전쟁이 발발하기 전인 2월부터 전쟁반대여성평화행동, 전쟁반대여성연대(WAW), 이라크에 인간방패(평화지킴이)를 파견한 여성해방연대 등 37개 여성단체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긴급하게 다시 "반전평화여성행동"을 결성하였다. 그리고 미국의 야만적인 이라크 공격계획 철회를 요구하는 각종 시위와 인간방패(평화지킴이)를 파견한 이라크 반전평화팀을 후원하는 캠페인을 펼쳤다. 그리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감행되자 이를 규탄하며 침공중단을 요구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내었고 명분 없는 이라크전에 한국군 파병을 반대하는 운동을 펼치는 등 다양한 반전평화행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이라크 전이 끝나가고 있는 지금은 몇몇 단체를 중심으로 이번 전쟁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라크 여성과 어린이들에 대한 의약품 보내기를 진행하고 있다.

이 전쟁을 반대하는 이유 - 군사주의와 전쟁

왜 여성은 전쟁을 반대하는가? 사실 여성·남성 할 것 없이 전쟁은 남녀 모두에게 엄청난 고통과 희생을 준다. 그러나 폭력의 세기라는 20세기의 무력갈등에서 전쟁피해자의 90%이상이 민간인이라는 사실은 이번 이라크전을 계기로 더욱 확실하게 확인되고 있다. 더욱이 전쟁 난민의 80%이상이 여성과 어린이라는 엠네스티 여성인권보고서는 전쟁이 더 이상 여성들과 무관한 남성들만의 일만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무력갈등 시, 여성들은 사상자가 될 뿐만 아니라 여러 형태의 극심한 고통을 경험한다. 전쟁과 여성과의 상관관계에 천착한 학자들의 연구을 빌어 그 고통의 면면을 잠깐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전쟁은 아무리 신기술을 앞세운다해도 민간인을 죽이는데 최근의 전쟁에서는 전쟁에 가담하지 않은 여성들과 어린이들 중에서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91년 걸프전 이후에 이라크 갓난아기들의 사망률이 5배나 높아진 사실과 열화 우라늄탄의 후유증으로 인해 아직도 고통받고 있는 이라크 어린이와 여성들의 비극만 봐도 그렇다. 그리고 이번 이라크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여성과 어린이들이 무방비상태에서 미사일과 폭탄에 목숨을 잃고 다쳤는가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전쟁과 군사주의는 여성과 소녀들을 강간과 성폭력에 종속시키고 침략의 문화는 여성에 대한 가정폭력을 조장한다. 여성과 여자 어린이들은 그들의 낮은 사회적 지위와 성 때문에 무력 갈등 시 무차별적인 성폭력의 희생자가 된다. 강간, 강제임신, 강제불임, 강제매춘, 성적 노예제(위안부), 온갖 형태의 성적 고문과 성적 모욕으로 여성들은 인권을 유린당하고 공격을 받는다. 일본군 성노예제도, 보스니아, 르완다, 동티모르의 집단강간과 인종학살등이 그 예라 할 수 있겠다.

셋째, 전투에서의 "적"의 정복은 극단적 남성성의 표출을 필요로 함으로, 강한 남성다움이 사회의 우위적 가치로 자리잡는다. 전쟁과 관련된 어떤 것을 말할 때, "정복, 강인함"과 같은 이야기들은 남성적인 것으로 고려되면서 칭송되는 반면, "동정, 약함, 패배"와 같은 이미지들은 여성적인 것으로 비유되면서 하찮은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군사회된 사회에서의 여성의 성 역할은 고정되어 있고, 여성은 남성에 비해 열등한 인간으로 취급받는다. 가부장적 구조와 상호작용 하면서 작동하는 군사화는 여성을 타자로서 주변화 시키며, 남성에 대한 종속성을 더 강화시킨다. 여성은 전쟁 수행에 적합하지 않은 집단으로 제외됨에 따라 남성은 국가방위의 주체자로서 여성을 보호한다는 신화를 창조, 강화한다. 이러한 구도에서, 국가안보의 주체자가 되지 못하는 여성들은 한 사회의 온전한 시민의 정체성을 획득할 수가 없다.

넷쩨, 대량살상무기는 세계적으로 환경을 오염시키며 유산과 출산시 질환과 암을 야기한다. 다섯째, 전쟁은 전 세계적으로 여성의 빈곤을 증가시킨다. 전쟁은 생산과 인간의 복지에 사용해야 할 엄청난 자원을 파괴적으로 소모한다. 그리고 여성들이 전시에만 피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시가 아니더라도 전쟁을 준비하는 모든 사회에서 여성은 전쟁과 관련된 피해자일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빈곤의 여성화"는 군사부분 지출의 확대와 연관되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군사비의 증대가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들의 복지비 축소를 가져오는 것은 물론이다.

여섯째, 여성은 그들의 가족과 공동체를 부양하는 짐을 짊어진다. 여성들은 전쟁 중에도, 전쟁의 폐허 위에서도 가족들(자녀, 노인, 약자, 부상자)의 생계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돌봐야 한다. 전쟁으로 먹을 것 ,입을 것이 모두 파괴되거나 모든 물자가 전쟁터로 가버리고 나면 여성들은 굶주리는 가족들을 먹이고 안전(security)을 도모하기 위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는다. 뿐만 아니라 남편과 아들이 전사하고 나면, 여성의 지위와 안전이 전적으로 남성에게 달려있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달리 생계수단이 없는 과부 또는 여성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과 함께 자신과 가족부양의 고통을 일생 지고 살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이렇게 전쟁에서 여성은 큰 피해자이지만 동시에 여성은 전쟁의 가해자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도 있다. 2001년 미국의 아프간 침공이 억압적인 탈레반 정권 치하에서 아프간 여성들을 해방시키는 일이라고 전쟁을 정당화한 여성들이 그렇고 이라크 침공을 강행한 미 부시 대통령과 궤를 같이하는 곤돌리자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국가정책결정과정에 영향력을 증대시켰다고 보는 여성들이 바로 그들이다.

어쨌든 군사주의와 전쟁으로 인한 인간의 고통과 파괴적인 자원낭비에 대한 여성들의 비극적 경험은 평화에 대한 여성들의 특별한 관심과 참여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 가운데 특히 우려되는 것은 이번 이라크 전에서 보듯이 앞으로 미국식의 보복 전쟁이 허용될 때, 테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은 "평화"와 "시민의 안전"을 위해 전쟁을 준비하고 군비를 증강하고 비상사태를 선포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전 세계는 "전쟁을 준비하는 사회"가 되고 군비의 증강은 당연히 사회복지의 축소를 가져오고, 복지의 주 수혜자인 여성과 장애인, 어린이 등 사회적 소수자들은 더욱 가난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 될 것이다.

평화에서 적극적 평화로

여성, "평화만들기"의 주체로 앞장서야


나이로비 세계여성대회문서는 평화를 "전쟁, 무력갈등, 군사적 점령, 외세개입과 같은 폭력을 방지하고 강제력의 역할과 위협을 감소시키는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사회, 경제적 정의, 평등, 완전한 인권과 기본적 자유를 향유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정의하고 있다(The Nairobi Froward-Looking Strategies for the Advancement of Women(FLS) 1985, para. 13) 따라서 이제 평화는 전쟁이나 무력갈등, 분쟁이 없는 상태의 소극적 평화(negative peace)의 의미를 넘어서 이제 우리 사회의 불평등, 갈등, 성차별, 상대적 빈곤감 등의 영역으로 적극적 의미의 평화로 확장되어야 한다. 소극적 평화개념에서는 안보도 군사중심의 안보개념으로 협소해진다. 이에 반해 전쟁이 없는 상태뿐만 아니라 사회정의와 인권이 보장되는 상태인 적극적 평화(positive peace)는 단순히 폭력이 없는 상태만이 아니라 평등한 기회, 권력과 자원의 공정한 분배, 공평한 법적 보호와 집행을 통해 사회정의가 보장되는 상태이다. 따라서 적극적 평화 개념에서는 안보의 개념도 인간안보라는 광의의 개념을 채택하고 있다.

이제는 무엇보다도 군사력 중심의 안보개념에서 포괄적 인간안보로 전환하는 일이 중요하다. 안보가 군사력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 경제, 정치 등의 영역에까지 확대되어 집에서나, 직장에서나 거리에서 일상적 삶에서 사람들의 안보가 확보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세계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분쟁과 갈등에서 보듯이 군사력만으로 무력갈등을 해소할 수 없다. 무엇보다 쉽게 보이지 않는 사회구조적, 문화적 폭력의 갈등을 읽고 그 갈등해결을 위한 합리적 방안에 대한 현실적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러할 때, 군사력 강화와 남성성의 우월성을 기반으로 남성만을 국가안보의 주체자로 설정하는 구도를 넘어서서, 여성도 다양한 활동의 삶의 주체로서, 포괄적 인간안보의 주체로서 세우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만들어질 것이다. 더욱이 인간안보의 개념에 관계성, 협력, 상호소통 등의 여성적 가치가 통합된다면 남성성과 여성성의 이분법을 넘어선 다양한 가치들이 결합되어 적과의 대립과 갈등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방법과 기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여성들은 앉아서 평화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직접 행동을 통해 평화를 실현하자는 뜻에서 반전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를 위해서 여성들은 앞으로 "지켜지는 평화(protected peace)가 아니라 활동적인 평화( working peace), 평화유지(peace keeping)가 아니라 평화만들기(peace making)를 더욱 지향할 것이며 그 과정에서 적극적인 주체로서 역할을 다해나가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김엘리(2002), '전쟁과 여성', 아우내재단 미래문화연구원 월간 살림지

무영(2003), '우리는 왜 여성의 이름으로 이라크 전쟁을 반대하는가?', 「이라크 전쟁, 여성은 무엇을 할 것인가」토론회 발제문

이김현숙(1999), '여성과 평화운동', 21세기 평화운동과 여성 자료집

정현백(2001), '여성의 관점에서 본 전쟁과 테러, 그리고 평화', 전쟁반대평화실현여성공개토론회 자료집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2002), 창립 5주년 기념 자료집

최문성미 / 한국여성단체연합 조직 국장, meeya@women21.or.kr
2003/05/02 00:00 2003/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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