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속도로는 행락인파로 넘쳐난다. 발 디딜 틈 없는 고속도로휴게소 화장실 한 켠에서 꾀죄한 차림의 화물트럭 기사가 이리저리 떠밀리며 세수를 하고 있다. 간신히 세면과 용변을 마친 기사는 서둘러 휴게소를 빠져나온다. 밤새 고속도로를 달려와서 잠시라도 눈을 붙여야 하지만 대형트럭은 휴게소에 진입하기조차 어렵고 어쩌다가 주차를 해도 휴게소 직원들의 눈총에 쫓기다시피 나와야 된다. 트럭기사는 다시 수백 킬로미터를 쉬지도 씻지도 못하고 달려야 한다.

#2 4월 13일 부산역광장에는 트럭기사 5000여명이 운집하여 "화물운송노동자 생존권쟁취 투쟁 결의대회"를 벌였다.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나 노래를 부르는 태도는 어수룩하기 짝이 없지만 눈빛만은 빛나고 열기는 여느 노동조합의 집회보다 뜨거웠다. 이런 집회가 3월 22일 포항, 3월 31일 과천에서 잇따라 열렸다. 이날 마무리 집회에서 운송하역노조 김종인 위원장은 대정부 전면투쟁을 선언하고 4월 30일과 5월 1일 이틀동안 1만명의 조합원과 수천대의 대형화물차량을 동원한 상경투쟁 지침을 하달했다.

#3 4/17자 청와대브리핑은 "노무현 대통령은 운송하역노조의 총파업 예고에 관한 보고를 받고 “노사문제는 과거와 같이 경직된 태도나 형식논리에 매달리지 말고 유연성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며“그러나 파업을 미리 정해 놓고 밀어붙이는 일이 있을 때는 법과 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운송하역노조의 총파업이 경제에 미치는 파장에 주목하고 18일 관계장관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해 주도록 지시했다.' 고 전하고 있다.

지입차주라는 형태의 비정규직

<#1>의 화물차기사는 우리가 고속도로휴게소에서 일상적으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휴게소입장에서는 수십명의 고객을 데려다주는 버스나 승용차에 비해 주차공간만 차지하는 화물트럭이 곱게 보일리가 없다. 그래서 트럭기사들은 수백 킬로의 장거리를 제도로 쉬지도 씻지도 못하고 죽음의 장거리 운행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사업용 일반화물자동차(5톤 이상의 대형트럭)는 15만대정도이다. 이들은 대부분 대한통운이나 한진 같은 대형운수업체 직원들이었지만 운수회사의 구조조정으로 강제로 사장님이 된 소위 지입차주 겸 운전기사들이다. 운수회사는 위수탁 계약으로 마땅히 회사에서 감당해야할 기름 값, 도로비 등의 비용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할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지휘통제를 하면서도 사용자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 수천 대의 차량을 보유한 대형운수회사들도 직영 운전기사는 몇 십 명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비정규직은 전산업 평균 57%로 세계최고수준이다. 그런데 화물운송산업 종사자의 97%는 지입차주라는 형태의 비정규직이다.



전근대적인 육상운송 체계

교통개별연구원이 발표한 2000년 국가물류비는 66조7천억원으로 GDP의 12.8%에 해당한다. 이 물류비 비중은 미국 10.1%, 일본 9.59%에 비해 엄청나게 높은 수치이다. 기업에서 직접 감당해야하는 기업물류비를 보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대한 상공회의소가 조사한 매출액 대비 기업물류비는 2001년도에 11.1%로 가히 세계최고 수준이다. 1000원짜리 제품을 수출하면 111원이 물류비로 지출되는 것이다. 한편 물류비의 구성을 살펴보면, 전체 물류비 중 수송비가 64.2%이고 수송비 중 94%가 도로운송비용이다. 즉 물류비의 압도적인 비중이 수송비이고 우리나라 수출입 물동량의 거의 전부가 육상도로운송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육상운송체계가 지극히 전근대적인 구조에 얽매어 있다는 것이다. 역대정부는 육상화물운송 산업의 대규모화, 직영화를 추진했지만 한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일정규모의 자산과 차량을 보유하고 체계적인 운송을 감당할 수 있는 업체에만 운송면허를 허가하던 정책은 그 의도와는 달리 음성적인 지입제를 양산하였고 마침내 97년에 자동차운수사업법에서 분리제정된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 이르러서는 지입제 자체를 합법화하기에 이르렀다. 물류의 대동맥이라 할 화물운송산업의 97% 이상이 영세지입차주겸 기사들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운수업체의 파렴치한 행위

현행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은 5톤 이상 사업용 화물차량(일반화물차량)은 5대 이상을 보유하여야 등록이 가능하게 되어있다. 운수법인업체들은 이점을 악용하여 운송업은 도외시하고 번호판 장사와 지입료 수입 챙기기에만 급급하고 있다. 영세 지입차주겸 기사들은 수천 만원의 돈을 들여 차량을 구입하고도 차량의 소유권을 보장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실제 운송에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다. 오히려 악덕운수업체들은 지입차주들의 차량을 담보로 대출을 받는 등의 파렴치한 행위를 일삼기도 하고 화물차량 지입사기는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다.

대부분의 운수업체들은 차량번호판만을 발급해 줄뿐이고 화물운송 영업은 알선업체(운송주선업)에서 담당한다. 알선업체는 화주와 운송담당자(업체)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법적으로는 직접적인 중개 이상의 다단계 알선은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정부관급 물자수송에서 조차 다단계알선이 관행화 되어 있고 3-4단계의 다단계알선은 일반적인 현상이다. A라는 화주가 100만원의 운임을 주고 의뢰한 화물을 운송담당자는 70만원 정도의 운임밖에 못 받고 운행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현상이 되어버린 불법다단계 알선은 알선업자들의 중간착취이고 불필요한 비용을 화주들에게 전가하게 된다. 도로 화물운송의 97% 이상이 차량 1대를 소유한 영세 지입차주겸 기사들에 의해 감당되고 있다는 것은 사회적 통제불능의 상태를 야기한다.

운행포기 부를 물류비 상승

산업자원부는 "경유차량 사용억제와 에너지 효율성"을 내세워 "에너지세제개편"을 단행했다. 그 내용은 경유가격을 2006년까지 휘발유가격의 75%로 끌어올린다는 것이고 그 방편으로 교통세와 특별소비세를 연차적으로 올리는 것으로 법제화되어 있다. 최근에는 경유승용차를 허용하면서 경유가격을 휘발류 가격대비 85%까지 올려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문제는 휘발유차량으로 대체가 불가능한 사업용 화물자동차의 경우이다. 우리나라 경유차량은 약 700만대이고 사업용으로 등록된 화물차량은 20만대 정도이다. 이 20만대의 사업용화물차량은 경유가격이 리터당 800원으로 돌파한 시점부터 경유가가 전체 운임의 30%를 넘어섰다. 또 2003년 7월 1일부터는 에너지세제개편안에 따라 다시 특별소비세가 올라가게 되면 국제유가변동과 상관없이 운행포기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그나마 2006년 6월까지는 인상된 경유가격의 50%를 정부에서 보전해 준다지만 그 이후에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산업의 동맥이라는 화물차량에 사용되는 경유에 특별소비세를 부과하는 것 자체가 문제이다. 대책없는 경유가 인상이 물류비를 상승시킬 뿐만 아니라 도로화물운송을 붕괴시킬 지경에 이른 것이다.

지입차주의 노동자성 인정 등 필요

억압이 있으면 저항이 있게 마련이다. 2002년 5월 기름 값, 고속도로통행료가 잇따라 오르고 고속도로휴게소들에서는 장사가 안되는 화물차량들의 진입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일단의 트럭운전사들은 TRS단말기를 통하여 의견을 모아 100여대의 대형차량들이 집단적인 고속도로 저속운행시위를 벌였다. 결국 주동자급 2명이 구속되면서 사태는 일단락 되었지만 이들은 민주노총 전국운송하역노동조합에 가입하면서 화물운송특수고용노동자연대(화물연대)로 조직되었다. 10개월이 지난 지금 화물연대 조합원은 1만 명을 넘어섰다. 화물연대는 경유가격인하를 포함한 직접비용인하, 지입제-다단계알선 근절을 비롯한 육상운송체계의 개혁, 지입차주의 노동자성 인정의 3대 요구를 제기하고 정부당국과의 협의를 요청하고 있다. 화물연대의 요구에 공감한 지입차주들의 동참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5월경에는 5만 정도의 세력이 결집될 것으로 예상된다. 화물연대는 조직적으로 통제 가능한 집단이다. 그리고 정부당국과의 협의를 통하여 합리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노동조합은 1월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2월에서는 대통령당선자 직접면담, 3월에는 국회공청회와 노동부, 건교부, 산자부, 재경부 담당과장들과 노동조합의 연석회의에서 요구사항을 전달하였고 4월 12일까지 이후 협의방안에 대해 답변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해당부처들은 소관부서가 아니라며 떠넘기거나 법조문해설을 답변이라고 내놓는 등 구태의연한 태도로 일관했다.

<#2>의 장면은 분노한 화물노동자의 단호한 투쟁선언이다. 그리고 며칠 후 <#3>의 청와대브리핑이 나왔다. 정부당국은 4월 17일 대통령지시를 계기로 4월 19일부터 운송하역노동조합과의 협의를 진행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대통령의 말대로 노사문제를 경직된 틀이나 형식논리에 매달린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밖에 없다. 노사문제는 공안문제가 아니라 경제문제이며 더 중요하게는 삶의 질의 문제이다.

정호희 / 민주노총 전국운송하역노동조합 사무처장, labor@korea.com
2003/05/02 00:00 2003/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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