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발전위원회(이하 위원회)는 국민연금 재정계산 결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재정안정화 방안으로 3개 대안을 제시했다. 위원회의 재정전망에 의하면, 현행 제도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2036년부터 수지 적자가 발생하고, 2047년도에는 기금이 소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위원회는 재정안정을 위해 소득대체율을 하향 조정하는 3개 방안을 제시했다. 즉 2070년도까지 기금이 소진되지 않고, 총지출의 2배를 기금으로 보유한다는 것을 전제로 소득대체율 60% ­ 보험료율 19.85%로 하는 제1안, 소득대체율 50% ­ 보험료율 15.85%로 하는 제2안, 소득대체율 40% ­ 보험료율 11.85%로 하는 제3안이 그것이다.

이런 3개 대안 중에서 하나를 선택할 경우 우리 나라 국민연금의 재정이 안정될까? 위원회의 추계에 따르면 적어도 2070년까지는 총지출의 2배에 달하는 기금을 보유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다음은? 지금과 같은 인구고령화 추세를 볼 때 또 다시 소득대체율 하향조정 ­ 보험료율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필자는 국민연금의 재정불안을 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우리 나라의 국민연금은 이른바 "부분적립방식"(partial funding system)으로 재정을 충당하고 있다. 부분적립방식은 보험료율을 부과방식보다는 높게 책정하여 제도의 시행초기에 적립금이 누적되게 하는 방법으로 조성된 자금을 경제개발에 사용한다. 우리 나라를 비롯한 이집트, 가나, 온두라스, 요르단, 멕시코, 필리핀, 튀니스 등 일부 개발도상국가들이 이런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원래 적립방식은 장래에 지급될 연금을 가입기간 동안 적립하는 재정방식으로서 연금은 일하는 동안 저축한 것을 정년 후 되돌려 받는 일종의 강제저축이다. 그리고 재정관리는 수지상등의 원칙에 입각하기 때문에 재분배 기능은 배제한다. 또한 적립방식은 보통 확정기여방식(defined contribution, DC)으로 운용된다. 확정기여방식이란 사전에 확정된 보험료를 부담하되 그에 상응하는 연금급여는 확정하지 않고 가입자 개인이 결정한 투자의 적립 수익금을 월정연금이나 일시금으로 되돌려 주는 것을 말한다. 급여는 확정하지 않고, 기여만 확정해 놓기 때문에 뮤추얼 펀드에서 보듯이 경우에 따라 투자 손실이 발생하면 가입자들이 감수해야만 한다. 민간보험인 개인연금이나 기업연금이 대표적인 확정기여방식이다.

그런데 현행 국민연금은 기금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적립방식이 분명하지만 시행 초기에 보험료율을 낮게 책정했다가 점진적으로 상향조정했고, 일정한 재분배 기능을 갖고 있는 등 부과방식의 특징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 나라 국민연금을 부분적립방식 또는 혼합방식이라고 하는데, 바로 여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을 도입할 때 정부가 순수한 적립방식을 채택했다면, 재정적자는 정부가 우려할 문제가 아니라 가입자들이 감수해야 할 몫이다. 그리고 지금보다 훨씬 많은 적립금이 확보되어 벌써부터 재정적자를 우려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또 재정적자가 예상된다 하더라도 기여만 확정했을 뿐 급여는 확정하지 않았으므로 정부는 국민들과 보험료율만 가지고 협의하면 된다. 즉 시민들이 보다 많은 연금을 원하면 보험료를 인상하고, 보험료율 인상에 부담을 느껴 반대하면 동결하든지 인하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부분적립방식을 택했기 때문에 "국민연금파동"에서 보았듯이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정부가 전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그리고 제도 시행 초기에 완전적립을 하지 않아 발생한 재정부족이 두고두고 재정적자의 원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여하튼 정부의 국민연금 재정안정화방안을 보면서 착잡한 마음 금할 길 없다. 부분적립방식을 채택해 해마다 적립된 거액의 자금을 장기간 정부가 싼 이자로 가져다 쓰다가 제도성숙기가 가까워 옴에 따라 완전연금수급자가 본격적으로 발생할 게 확실하고, 그에 따라 재정적자가 불가피해지자 보험료율을 대폭 인상하고 급여수준을 크게 낮추겠다는 것은 결국 국민연금 가입자인 시민들의 부담과 희생으로 공적연금의 재정적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전형적인 편의주의적인 발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부가 보험료율과 급여수준을 법으로 규정해 놓고도 적자가 예상된다 하여 보험료율을 올리고, 급여수준을 낮추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인지도 의심스럽다. 왜냐하면 적립방식 하에서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것과 부과방식 하에서 급여수준을 낮추는 것은 국가의 약속위반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원석조 / 원광대 복지보건학부 교수, sjwon@wonkwang.ac.kr
2003/06/09 00:00 2003/06/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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