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호의 특집은 "여가"다. 주제를 이것으로 선택한 이유는 누구나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첫 번째 이유는 당연히 지금이 여름 휴가철이라는 점 때문이다. 계절적 요인이 다른 나라보다 특별히 더 강한 것도 아닌데, 우리 나라에서 유난히 휴가는 여름에 집중된다. 최근에는 그런 경향이 더 강해서 7월 말부터 8월 중순까지는 온 산하가 휴가 인파로 몸살을 앓고, 모든 활동도 올스톱이다. 그러니 복지동향인들 어찌 그냥 넘어가랴.

그러나 첫 번째 이유만으로는 좀 아쉽다. 사실인 즉 두 번째 이유가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한참 휴가를 떠나는 이 참에 노동과 여가의 참된 의의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는 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국가주도의 경제성장 전략을 채택한 이후, 노동과 근면은 한국 사회 구성원의 사람됨을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으로 자리를 굳혀 오고 있다. 어떤 가치도 노동하는 인간의 신성함(?)을 침범치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전통이니, 인간적이니 해도 노동에 대한 강요는 집요하고 강력하다. 심지어 명절에도 "당직"이라는 한마디로 사회구성원의 모든 의무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이런 점만 보면 한국의 자본은 불과 한 세대만에 완벽하게 노동에 순응하는, 따라서 자본에 순응하는 인간형을 성공적으로 길러냈다고 할 것이다.

노동의 관점에서 여가는 불온하다. 주5일 근무제를 극력 반대하는 집단이 두려워하는 것은 주당 몇 시간의 노동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그들이 진정 두려워하는 것은 불온한 여가의 정신과 문화가 광범위하게 유포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여가는 "삶의 질"을 찾게 하고 이는 신성한 노동의 근면성에 반기를 들게 한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저변을 지탱해온 이데올로기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셈이다.

그러나 아직도 여가는 보편적이지 않다. 맹목적 노동에서 벗어나려는 어떤 시도도 당연히 저지된다. 최근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이러한 시도는 점점 더 노골화되고 있다. 2만불 소득이 새로운 국가목표로 등장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예상된 공격이 뒤따른다. '노동생산성을 초과하는 임금 인상', '노동자들의 무리한 요구로 인한 국가경쟁력 저하', '근로의욕 저하'...... 이러한 공격에서 인간의 모습을 한 노동과 여가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여가는 또한 편파적이다. 3박 4일의 휴가조차 수당이니 뭐니 해서 눈치를 보아야 하는 계층이 있는가 하면, 최고위 공직자의 장기(?) 휴가는 어느새 상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장관이 신청한 일주일의 휴가는 구태의연한 눈치보기를 깼다는 이야기를 듣는 만큼 마땅히 모든 이의 보편적 권리가 되어야 마땅하다. 여유있는 계층의 여행과 스포츠는 모든 이의 보편적인 여가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여가를 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참으로 착잡하다. 나 역시 이게 배부른 소리는 아니가 싶다. 마땅히 인간적인 노동으로 가야 하나 현실은 더 어려워 보인다. 여가는 커녕 생계 곤란과 빚 때문에 스스로와 자식의 목숨을 끊어야 하는 것이 2만불 소득을 논하는 지금의 세태다. 그러면서도 '먹고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한 복지'라는 원초적인 논리가 사회적 약자를 짓누르고 있다. 결국, 누가 잘 먹고 잘 살게 되는지도 모르는 사회적 약자가 여가도 없이 온 몸으로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셈인가.
김창엽 /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cykim@snu.ac.kr
2003/08/12 00:00 2003/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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