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나라가 굿모닝시티 비리사건으로 시끄럽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 검찰은 사상 최초로 여당 대표에게 사전 구속영장을 발부하겠다고 한다. 이것이 사건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란다. 아마도 줄줄이 엮을 모양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나오는 부패드라마 연속극을 또 보게 생겼다. 끝난 줄 알았던 드라마가 또 나오는 것이다. 이제는 몇 편 째인 줄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번 드라마의 특징은 돼지가 주연인 척 조연을 해 냈다는 것이다. 빙긋이 웃으면서 말이다. 지난 대선에서 희망의 돼지 저금통은 깨끗한 정치와 국민참여를 상징하는 일대 사건이었다. 60∼70년대 경제성장기에 사람들은 집집마다 사무실마다 빨간 돼지 저금통 놓고 부자 되는 꿈을 꾸었었다. 돼지의 배를 가르는 순간 부자의 꿈이 이루어질 것으로 믿었었다. 지금이야 저금통 들고 은행에 가면 창구의 아가씨가 어이없다는 듯 인상을 쓴다. 아무튼 국민들의 희망을 모았던 노란 돼지 저금통이었는데, 돼지가 우물에 빠진 것인가? 자칫 정치 패션 쇼로 전락할 지도 몰라 안타깝다. 성실과 정직 그리고 희망을 상징하는 돼지 저금통이 굿모닝 시티를 만나 아주 우습게 되어 버렸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난 지금도 쓰고 남은 동전을 돼지 저금통에 넣는 습관이 있다. 요즘은 패션 저금통도 많지만 그래도 저금통 하면 역시 돼지 아닌가? 복사하고 남은 돈, 자판기 커피 마시고 남은 돈, 여기 저기 다니다 보면 교통비 쓰고 남는 잔돈들을 저금통에 넣는다. 그래서 어린이 날이나 크리스마스 때 아이들 보는 앞에서 저금통을 개봉한다. 10원 짜리부터 500원 짜리까지 수북히 쌓인 동전을 아이들과 함께 세어 본다. 대개 7∼8만 원 정도 나온다. 아이들 눈이 휘둥그래진다. 놀랐겠지? 이게 동전의 위력이다. 저축의 보람이다. 이렇게 모은 돈을 개봉하는 순간 일단 통쾌한 성취감을 맛보게 된다. 더 이상 소유에 대한 욕망은 강하지 않다. 뭔가 의미 있는 일이나 좋은 데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아이들이 평소 절약하고 짜임새 있는 소비를 하면서 나중에 돈을 의미 있게 잘 쓰게 되기를 바라며 해온 내 나름대로의 교육방법이었다. 돼지 저금통은 교육 기자재였던 것이다.

요즘 은행이나 공공 사무실 같은 곳에서는 결식아동이나 해외의 기아 어린이를 돕기 위해 잔돈을 넣어달라는 문구를 붙여 놓은 돼지 저금통을 종종 볼 수 있다. 천 원 짜리 지폐와 동전들을 담고 있는 투명한 돼지 저금통이다. 그러나 나는 한 번도 그런 돼지에게 먹이를 준 적이 없다. 왜냐하면, 정말 그 돈이 약속된 곳에 전달되는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남의 푼돈 긁어모아 사무실 경비를 쓰는 지 회식을 하는 지 누가 안단 말인가? 만일 돼지 코에 붙여 놓은 문구의 약속대로 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결코 현명하거나 정당한 방법은 아니다. 남을 돕거나 타인과 나누기 위해 일반 사람들을 대상으로 돈을 모금하려면 그 주체가 모금에 합법적이거나 최소한 공신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복지 팔아서 치부하는 파렴치한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좋은 일이라고 해서 자격도 없이 절차도 없이 하는 일은 문제가 있다.

일반적으로 정치자금이나 복지자금은 공적인 영역에 비영리를 목적으로 쓰여야 하는 돈이다. 아무리 훌륭한 이념을 가지고 정치를 하고 복지를 실천한다 해도 그에 들어가는 비용의 조달과 지출이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곧 부패하게 된다. 돈의 소유와 흐름을 투명하게 하는 것은 돈으로 인해 부패하게 되는 인간과 사회를 구하는 방부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이기적인 인간들은 투명한 돈보다는 검은 돈을 좋아한다. 바로 거기에 엄청난 이익의 비밀이 담겨 있으니까. 물론, 들키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도로교통법을 위반했을 때 법대로 처리하면 수 만 원을 내고 벌점도 먹어야 하지만 경찰 아저씨와 적당히 사바사바하면 만 원이면 다 해결된다. 경찰 좋고 기사 좋고 얼마나 좋은가? 검은 돈은 이래서 좋은 것이다.

이기적인 사회에서 돈은 이익을 따라 흐른다. 제 아무리 법과 윤리가 돈의 흐름을 방해한다 해도 터널을 파거나 돌아가더라도 그것을 피해 이익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 돈의 속성이다. 그러나 이것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면 시장과 사회는 곧 헝클어지고 썩게 된다. 또한 돈은 시장의 길을 벗어 나 복지와 같은 비영리 영역의 길로 흐를 수도 있다. 이러한 돈 역시 비영리 영역에서 혹시라도 영리를 추구하는 지 철저하게 감시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피해는 이루 말할 수 없게 된다. 조세와 달리 국회의 통제가 약한 복지관련 국가의 기금들도 투명하게 운용되어야 한다.

명심컨대, 투명하지 않은 사회에서 정치는 개혁될 수 없으며, 복지를 실천한다는 것은 우둔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개혁이나 복지를 팔아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모리배들이 설치는 와중에 한편에서는 생활고를 비관하여 자살하는 사람들의 대열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다가 자살공화국이 될 것 같다. 이제 정치도 복지도 좋은 아침의 시대를 이루어야 한다. 굿모닝, 돼지? 굿모닝, 복지?

윤 찬 영 / 전주대학교 사회과학부 교수·사회복지학 pjyooncy@hanmail.net
2003/08/12 00:00 2003/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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