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1인당 국민소득 1만불 시대에 살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소득 2만불 시대"를 국가 비전으로 제시하였다.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어느 정도의 사회보장제도가 갖추어진 곳이다. 국민기초생활을 보장하는 제도도 갖추어져 있으며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4대 보험도 시행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81세 노인이 제대로 된 치료를 거의 받지 못하고, 보호자 한사람만 탄 장의 차를 타고 쓸쓸히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오늘 우리가 목격하는 현실이기도하다.

김필란 할머니는 올해 81세이셨다. 성수동의 5평 짜리 부엌 한 칸과 방 1칸 딸린 길가 단층 슬라브 집에서 살았다. 김 할머니는 시집살이에 못 이겨 두 살 아들을 두고 집을 나와 혼자 살아 왔다고 한다. 성수동에서 90세의 이복돌 할아버지와 10년 넘게 동거를 하며 살아왔다. 김 할머니는 이 할아버지가 지금 사는 집에서 홀로 사는 것이 안타까워 자주 찾아가 빨래도 해주고 식사 수발도 해주었던 것이 인연이 되어 동거했다고 한다.

김 할머니 부부는 그 동안 보증금 100만원, 월세 10만원에 살아 왔다. 할아버지 큰아들이 보내주는 생활비 20만원과 동에서 주는 경로연금 3만원으로 두 부부는 생계를 유지했다. 동사무소에 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 신청을 하였으나, 할아버지는 부양가족인 자식이 재산이 있어 수급권자 선정에서 탈락됐다. 할머니도 마찬가지 이유였다.

수급권자 선정이 안되었기 때문에 건강진료도 거의 받지 못하였다. 김 할머니는 5년 전 중풍으로 한쪽 다리가 마비된 상황이었으며 거동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 수급권자인 독거 노인들이 복지관을 통해 받고 있는 반찬 지원 서비스도 대상이 되지 못하였다. 자녀에게도 병환이 있는 김 할머니를 부양할 것을 요구해보았지만 "고부간의 갈등이 있어 힘들다"고 전해졌다.

지난 6월에는 김 할머니 부부에게 더욱 더 안 좋은 일이 생겼다. 살고 있던 집이 3개월 후인 9월에 재건축이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었다. 당장 이사할 집을 마련해야 할 상황이었다. 살기에 막막했던 김 할머니는 "자원봉사자 손을 붙잡고 수급권자에 선정이 되면 천번만번 절하고 감사하겠다"할 정도였다.

재건축 소식 이후 김 할머니는 보름 동안 시름시름 앓았다. 그러다 지난 6월 29일 쓸쓸히 홀로 이 세상을 떠나셨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 동안 성동희망나눔에서는 매월 5만원의 결연 후원금을 김 할머니 가정에 지원하였으며 주 2회 자원봉사자들이 가정봉사활동을 진행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만으로 김 할머니의 죽음을 막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였다.

이러한 상황을 목격하면서 현재 우리 국가의 사회안정망에 대해서 다시 돌이켜 본다. 바로 복지 사각지대의 문제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국민의 최저 생계보장이라는 획기적인 제도로 평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수급권자에 선정되지 못하면 국가차원의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다. "all or nothing"인 것이다. 즉 차상위 계층에 대한 대책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못한 현실이다. 김 할머니에게 의료지원 서비스라도 있었다면 병원 한번 못 가보고 이 세상을 떠나는 이런 현실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노인복지서비스의 측면에서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독거노인에게 제공되는 서비스의 경우도 대부분 수급권자에 한정되어 있다. 이 또한 부족한 복지 인프라 자원에서 어쩔 수 없는 한계로 볼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자식이 있음에도 전혀 부양을 받지 못하는 독거노인들이 다수가 있다면 이들에 대한 대책을 세워야 하는 것도 국가의 몫이 아닐까?

또 한편으로는 지역사회공동체 형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로 떠오른다. 사회가 고도로 도시화되기 전에는 한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이웃 공동체였다. 서로가 매일 얼굴보고 안부 전하고 문안 인사하는 열린 지역사회였다. 만약 지금의 도시 사회가 예전의 이웃 공동체성이 여전히 살아있었다면 이렇게 홀로 쓸쓸히 한 노인을 떠나 보냈을까?

돌아가시기 전에 김 할머니는 "맛있는 것 먹고 싶다"고 자주 했었다. 그 말이 지금도 뇌에 떠오른다. 김 할머니를 저 세상으로 보내고 이제 홀로 남아 있을 이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옆에서 지켜보는 우리가 오리려 안타깝다. 사무실에서 이 할아버지에게 안부 전화를 하는 담당 사무국 간사의 목소리가 애절하기만 하다.

'할아버지 오늘 잠 편히 잘 주무세요. 약주 너무 많이 하시지 마시고요. 내일 아침에 또 전화 드릴게요'

김성기 / 성동희망나눔 사무국장, skknd@dreamwiz.com
2003/08/12 00:00 2003/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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