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학생은 없다
월간 복지동향/2003 :
2003/09/08 00:00
아주 오래된 기억이 하나 있다. 차곡차곡 쌓아 두었던 기억의 편린들 속에서 과거 속에 묻어버리고 싶었던, 다시 기억하기 싫은 기억이 하나 있다. 좁고 어두운 교실에 60명의 학생들이 아침 7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수용되어 있었다. 현재의 어려움이 밝은 미래라는 열매로 되돌아 올 것을 굳게 믿었기에, 현재의 슬픔이 미래에 희망으로 변할 것이라는 신념이 있었기에 힘든 생활들은 견디고 있었다.
학생들은 지치기 시작했고, 경쟁에서 뒤쳐지면서 희망을 상실한 일부 학생들은 폭력에 의존하는 버릇이 생겼다. 학생들은 경쟁의 대열에서 앞선 집단과 반항적 성향의 집단으로 분리되었다. 나는 경쟁에서 앞선 집단에 속했고, 흔히 모범생의 전형으로 평가되었다. 나는 열등생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경쟁에서 뒤쳐진 것은 자신의 노력이 부족하거나 근본적으로 자질에 문제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선생님은 날카로운 말투와 차가운 태도로 나를 대하기 시작했고, 내 시험성적은 예상보다 낮게 나왔다. 시험성적에 대한 의문이 시작되었지만, 답안지를 잘못 작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나 자신의 부주의를 탓하였다. 하지만 그런 일은 반복되었고, 어느 날 우연히 시험성적이 조작되었다는 증거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은 어떤 학생의 학부모 영향력 그리고 봉투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아버린 것이다.
내 나이 15살에 판도라 상자를 열었고, 그렇게 방황은 시작되었다. 세상은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며, 자신의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구조적 벽이 있음에 나는 좌절을 경험한 것이다. 어린 나이에 술, 담배를 알게 되었고, 어느 덧 모범생에서 열등생으로 그리고 반항아로 변해버렸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도 지워버릴 수 없는 기억으로, 깊게 패인 상처로 남아있다.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인지 지금 나는 그렇게도 미워하던 선생이 되었다. 학생들을 접하면서 나는 이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걱정이 앞선다. 또한 내 자신이 예전에 경험했던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한다.
흔히 청소년은 우리사회의 미래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의 미래가 밝을 수 있을지 의문이 앞서는 것은 과거에 내 자신의 경험이 지금도 학교현장에서 다시 반복되는 것을 목격하기 때문이다.
학교, 그리고 공교육이 붕괴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난무하고 있다. 그러면서 어른들은 요즘의 아이들은 어떠하다는 식의 개탄을 한다. 하지만 문제학생은 없다. 오히려 문제를 만들어내는 환경이 있다. 문제학생을 만드는 것은 그가 처해있는 사회, 가정, 그리고 교육환경일 것이다. 한해 300여명의 학생들이 자살하고 있으며,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청소년들이 6만여명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요즘 아이들을 운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어른들의 이기심과 편견이 만든 일은 아닌지 진지하게 자문해 볼 일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자신의 뜻과 관계없이 죽음으로 내몰리지 않아야 하며, 반항과 무관심 속에서 좌절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아이들이 문제 많은 어른을 닮지 않고 굳건하게 자랄 수 있으며, 자신의 삶에 대한 애정과 책임을 가진 건전한 어른으로 성장할 때 우리의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를 위한 슬기로운 방안은 사색이나 분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열린 마음을 가진 의사소통과 토론에서 나오는 것이며, 우리의 아이들을 당당한 삶의 주체로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지치기 시작했고, 경쟁에서 뒤쳐지면서 희망을 상실한 일부 학생들은 폭력에 의존하는 버릇이 생겼다. 학생들은 경쟁의 대열에서 앞선 집단과 반항적 성향의 집단으로 분리되었다. 나는 경쟁에서 앞선 집단에 속했고, 흔히 모범생의 전형으로 평가되었다. 나는 열등생들을 이해할 수 없었고, 경쟁에서 뒤쳐진 것은 자신의 노력이 부족하거나 근본적으로 자질에 문제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선생님은 날카로운 말투와 차가운 태도로 나를 대하기 시작했고, 내 시험성적은 예상보다 낮게 나왔다. 시험성적에 대한 의문이 시작되었지만, 답안지를 잘못 작성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나 자신의 부주의를 탓하였다. 하지만 그런 일은 반복되었고, 어느 날 우연히 시험성적이 조작되었다는 증거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것은 어떤 학생의 학부모 영향력 그리고 봉투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아버린 것이다.
내 나이 15살에 판도라 상자를 열었고, 그렇게 방황은 시작되었다. 세상은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며, 자신의 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구조적 벽이 있음에 나는 좌절을 경험한 것이다. 어린 나이에 술, 담배를 알게 되었고, 어느 덧 모범생에서 열등생으로 그리고 반항아로 변해버렸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도 지워버릴 수 없는 기억으로, 깊게 패인 상처로 남아있다.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는 것인지 지금 나는 그렇게도 미워하던 선생이 되었다. 학생들을 접하면서 나는 이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지 걱정이 앞선다. 또한 내 자신이 예전에 경험했던 일들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한다.
흔히 청소년은 우리사회의 미래라고 부른다. 하지만 우리의 미래가 밝을 수 있을지 의문이 앞서는 것은 과거에 내 자신의 경험이 지금도 학교현장에서 다시 반복되는 것을 목격하기 때문이다.
학교, 그리고 공교육이 붕괴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난무하고 있다. 그러면서 어른들은 요즘의 아이들은 어떠하다는 식의 개탄을 한다. 하지만 문제학생은 없다. 오히려 문제를 만들어내는 환경이 있다. 문제학생을 만드는 것은 그가 처해있는 사회, 가정, 그리고 교육환경일 것이다. 한해 300여명의 학생들이 자살하고 있으며, 학교에 적응하지 못한 청소년들이 6만여명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요즘 아이들을 운운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이는 어른들의 이기심과 편견이 만든 일은 아닌지 진지하게 자문해 볼 일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자신의 뜻과 관계없이 죽음으로 내몰리지 않아야 하며, 반항과 무관심 속에서 좌절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의 아이들이 문제 많은 어른을 닮지 않고 굳건하게 자랄 수 있으며, 자신의 삶에 대한 애정과 책임을 가진 건전한 어른으로 성장할 때 우리의 미래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를 위한 슬기로운 방안은 사색이나 분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열린 마음을 가진 의사소통과 토론에서 나오는 것이며, 우리의 아이들을 당당한 삶의 주체로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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