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이후 경제적 불평등이 날로 확산되며 이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최저임금제도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는 최저임금제도의 목적과 취지에서 비롯된다. 최저임금제도는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수준을 사회적 최저수준 이상으로 끌어올려 생활을 보장하고, 임금교섭에 나설 수 없는 미조직 노동자들의 임금인상을 실현한다는 취지를 갖고 있다. 최저임금제도는 이런 사회정책적 효과뿐만 아니라 노동자에게 일정한 수준 이상의 생계보장으로 노동자의 생활을 안정시킴으로써 노동자의 사기를 높여 노동생산성 향상을 가져오고 경영합리화를 촉진하는 경제정책적 효과도 갖는다. 그러나 한국의 최저임금제도는 1988년 첫 시행된 이래 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전체노동자임금의 1/3수준에 그쳐 저임금노동자 보호는커녕 저임금을 유지시킨다는 비난에 직면하고 있다. 특히 IMF 초기에 출현한 "20 대 80의 사회"라는 수사가 이제는 누구에게도 낯설지 않을 만큼 경제적 불평등이 확대된 상황에서, 한국의 노동·사회운동은 최저임금수준의 현실화만이 한국의 빈곤을 치유할 수 있다고 제기하고 있다.

상용직 풀타임 노동자 중위임금의 2/3 이하를 저임금으로 분류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기준에 따르면 지난 2002년 경제활동인구부가조사를 분석했을 때 한국은 무려 전체 노동자의 48.6%가 저임금 노동자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사회통합적 노사관계"를 주창하고 나선 노무현정부의 출범으로, 올해 최저임금 결정과정에 참여하는 한국 노동·사회운동의 기대심리는 예년과 달랐다. 권위주의적 노동억압에 반대한다던 참여정부가 적어도 이런 심각한 사회문제를 외면하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최저임금 결정은 노동계쪽 전원위원 9명이 총사퇴하고 공익위원 2명까지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가운데 이뤄졌다. 그리고 2003년 9월부터 2004년 8월까지 적용되는 최저임금은 6월 27일 사용자위원 9명과 공익위원 6명만 참가한 채 시급 2,510원(한달 567,260원)으로 결정되었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는 노동자위원 전원이 총사퇴했음에도 최저임금위원회가 이를 단순한 "불참"으로 처리해 위법적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했다면서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이 글은 우선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이 생계비, 전체 노동자 임금, 생산성 어느 지표와 비교해도 형편없이 낮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어 왜 최저임금제도가 법적 취지와 달리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을 보호하기에 턱없이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지 분석한다. 이를 위해 2003년 9월∼2004년 8월 적용 최저임금을 결정한 최저임금위원회의 운영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을 제기한다.

최저임금 수준 생계비, 전체노동자임금, "경제성장률+물가인상률"에도 못 미쳐

첫째, 최저임금 수준은 생계비에 턱없이 모자란다. 통계청의 "3인가구 실태생계비" 대비 최저임금 추이를 살펴보면, 1988년 27.8%에서 해마다 떨어져 97년 20.3%까지 떨어졌다. IMF 시기인 1998년에는 23.1%로 소폭 상승하는 듯 했으나 1999년 22.6%, 2000년 21.8%로 다시 하강했다. IMF 이후 소득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아진 2001년 현재 1,863,272원의 22.6%(421,490원), 2002년 1,944,729원의 24.4%(474,600원)까지 상승했으나 최저임금 시행초년도인 1988년의 27.8%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표 빠짐)

또한 최저임금위원회가 매해 10월마다 조사하는 29세 이하 미혼단신노동자 실태생계비의 절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2년9월∼2003년8월 적용 최저임금은 월 환산 514,150원(시급 2,275원 일급 18,200원)으로 2002년 10월 현재 29세 이하 미혼단신노동자 실태생계비 1,014,718원과 50만 원이란 격차를 보여 50.7% 수준이다.(표 빠짐)

둘째, 최저임금 수준은 전체 노동자 월평균임금 대비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1988년에 최저임금제를 실시한 이후 5인 이상 상용노동자 정액급여 대비 최저임금의 비율이 오히려 낮아졌다(1988년 36.1% → 2002년 33.7%).(표 빠짐)

셋째, 최저임금이 저임금 노동자의 생활보호와 소득격차 완화라는 취지에 합당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명목임금인상률이나 "실질경제성장률+물가인상률"만큼이라도 올라야 한다. 그러나 최저임금 수준은 이를 하회한다. 1988년 이래 최저임금이 명목임금인상률 만큼만 올랐다면 2002년도 최저임금은 시급 2,298원이 돼야 한다. 그러나 2002년도 최저임금은 시급 2,100원으로 결과적으로 명목임금 인상수준에도 못 미치는 수준에서 인상된 것이다. 88년 이래 5인 이상 상용노동자 전체 임금인상보다 최저임금 인상이 8.62% 낮은 수준으로 오히려 노동 내 임금차별을 확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표 빠짐)

88년 이래 최저임금이 실질임금 현상유지선인 "실질경제성장률+물가인상률"만큼만 올랐다면 2002년 최저임금은 시급 2,440원이 돼야 한다. 그러나 2002년도 최저임금은 시급 2100원으로서 결과적으로 최저임금제도가 실시된 88년이래 최저임금 수급대상 노동자들은 실질임금이 340원(13.93%) 삭감되는 결과를 초래했다.(표 빠짐)

그렇다면, 왜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이 이 지경인지 의문을 품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저임금위원회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해마다 최저임금은 노사공익위원 각 9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하기 때문이다. 올해 9월부터 내년 8월까지 적용되는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위해 최저임금위원회는 4월 25일 1차회의를 연 데 이어 모두 7차례의 전원회의, 각각 2차례의 생계비전문위원회와 임금수준전문위원회를 열었다. 여기에서는 각 위원회의 문제점을 지적할 것이다.

생계비 기준연령이 18세?

현행법에 따르면 최저임금 결정기준은 생계비, 유사노동자의 임금, 생산성이다. 물론 일본 최저임금법을 베낀 것이다. 최저임금위원회(이하 최임위)는 이 가운데 생계비 수준을 검토하기 위해 생계비전문위원회를 두고 있다. 이 회의는 노·사·공익위원 각 3명으로 구성되며 보통 위원장은 최임위 부위원장이자 9명의 공익위원 가운데 노동부 관료출신의 상임위원이 맡는다. 올해는 5월 2일과 9일 두 차례에 걸쳐 열렸다. 여기서는 구체적으로 최임위 사무국이 지난 해 10월 조사한 29세 미혼단신노동자의 생계비와 한국노동연구원이 제출한 생계비를 검토한다.

문제는 생계비전문위원회가 이만저만 "닫힌" 회의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 노동자위원은 이 회의에 앞서 4월 25일 제1차 전원회의에서 '최임위 사무국이 조사한 생계비실태조사 원자료(raw data)를 달라. 올해는 우리도 분석해서 참여하고 싶다'고 요구하자 최임위 부위원장은 '적극 검토하겠다'는 말로 회피했다. 노동계 쪽이 재차 이를 요구하자 참관하고 있던 근로기준국장의 대답인즉 '통계법상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노동계 쪽이 다시 '통계법상 개인신상에 관한 내용은 공개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개인신상을 분석할 것도 아니고) 노동부에서 주관하는 통계는 노동부가 결정하면 된다'고 재촉하자 '법적인 문제만 없다면 드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결국 이 원자료는 생계비전문위원회가 완전히 끝나고 한 달도 더 지난 6월 20일께 노동계에 전달됐다. 최저임금을 결정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받은 이 원자료를 어디다 쓰겠는가. 따라서 노동자들은 생계비전문위원회에 참여하고도 최임위 사무국이 제출하는 생계비가 제대로 분석됐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생계비 기준연령도 닫혀 있었다. 최임위 사무국과 한국노동연구원은 각각 18세를 기준으로 생계비를 제출해 왔다. 올해 최임위 사무국이 제시한 생계비는 624,819원, 한국노동연구원의 생계비는 579,793원이었다. 물론 당시 법정 최저임금 514,150원은 이마저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이는 노동계 쪽에서 비판의 대상이었다. 노동계는 5월 2일 제1차 생계비전문위원회에서 작정하고 57만 9천 원을 제시한 한국노동연구원 쪽의 설명을 중단시켰다. 그리고 '취직할 연령대도 아닌 18세를 기준으로 생계비를 내는 저의가 무엇이냐', '18세 기준을 폐기하고 29세 미만 단신노동자 실태생계비만 제출하라'하면서 쏘아 부쳤다. 이때 참가한 사용자위원의 말이 최저임금 결정기준 가운데 첫째 사항인 생계비의 현실을 웅변해준다. '생계비 때문에 이러니 저러니 해봐도 나중에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재계가 낸 생계비도 아니고 정부가 낸 생계비가 이 모양이냐'는 노동계의 항의와 설전 끝에 내년부터 생계비 기준 연령은 29세로 조정됐다.

등산가야 하니 회의는 나중에

생계비전문위원회에 이어 열린 임금수준전문위원회에서 노사 양쪽은 최저임금 요구안을 제출하고 설명한다. 이 회의는 노·사·공익위원 각 9명으로 구성되며 올해는 5월 16일, 30일 두 차례 열렸다. 이 회의에서는 노사의 최저임금안 말고도 정부가 제출하는 각종 경제지표, 임금실태 분석결과가 검토된다. 정부가 발표하는 각종 지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노동자들이 참여할 방법이라고는 전혀 없다는 점에서 이 또한 철저히 닫힌 구조다. 한국노동연구원 쪽은 제2차 임금수준전문위원회에서 또 한 차례 의미 있는 수치를 제공했다. 2003년 타결임금인상률이 전년도와 비슷하고 정액급여 상승률의 둔화를 고려하면 2002년 6월∼2003년 8월 비농민간전산업 정액급여 상승률이 "9.3%"로 예측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온 숫자 세 개, 11.2%, 8.2%, 9.3%가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은 이 정도다"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은 뒤늦게 깨달았다.

이처럼 닫힌 내용을 검토해야 하는 임금수준전문위원회는 올해는 그야말로 진정하게 "임금수준접수위원회"로만 기능했다. 5월 16일 열린 제1차 회의는 아침 식사만 들고 끝났다. 이날 최저임금 요구안을 발표해야 할 한 사용자위원이 "다른 일정이 있다"는 이유로 아침을 들자마자 자리를 일찍 뜬 탓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다른 일정이란 자사 사원 등반대회였다. 이어 5월 30일 열린 제2차 회의에서 노사가 각각 최저임금 요구안을 설명했다. 노동계의 요구안은 지난 해 전체 노동자 월평균 임금의 절반인 700,600원(시급 3,100원)이었다. 사용자 쪽은 두 개의 요구안을 제출했다. 경총의 요구안은 한계·저임금 업종 3년간 생산성 평균치인 3.5% 인상으로 532,230원(시급 2,355원)이었고 중소기업을 실제로 운영하는 한상원 위원이 용감무쌍하게도 "동결안"을 제출했다.

이에 따라 이날 회의는 공익위원들한테서조차 사용자 쪽이 씹히는 분위기였다. '한계업종이라니 무슨 뜻인가. 당장 망할 업종에 조립금속도 해당되면 삼성전자 말고 망하지 않을 기업이 어디 있는가', '최저임금 적용대상에서 외국인노동자를 빼라니 우리도 60년대에 독일로 일하러 가면서 그런 대우를 받은 적은 없다. 기업이 세계화를 하자면서 그런 주장을 하면 어떡하나', '재계가 단일안을 내지 않으면 도덕적으로 보나 회의운영의 효율성으로 보나 문제가 된다'는 질책이 이어졌다. 재계가 경총안으로 단일안을 제출한 것은 6월 13일 제3차 전원회의에 이르러서다. 아무튼 이번 임금수준전문위원회는 첫날은 사용자위원이 바빠서, 둘째 날은 재계가 단일안을 내지 않아서 토론다운 토론 한번 진행하지 못한 채 임금요구안만 접수받고 끝났다.

현지실정조사 의미퇴색

최임위는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현지실정 방문조사를 나간다. 주로 본격적인 최저임금 교섭이 진행되기 전에 이뤄지는데 최저임금 결정과정에 이렇다할 주요 근거로 작용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하여간 조사결과는 80쪽 가까운 분량의 보고서로 제출돼 각 위원들의 책상에 올라온다. 노동계와 재계는 사업체 방문 경험이 이후 공익위원들의 최저임금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고 사업체 노사대표한테서 보다 그럴듯한 대답을 끄집어내기 위해 애를 쓴다. 사실상 노사의 힘 겨루기가 "장외"로 이어지는 셈이다.

올해는 두 차례 열린 임금수준전문위원회 중간인 5월 19일 성남·안양지역에 있는 업체 각각 두 곳, 22-23일 원주·강릉지역에 있는 업체 각각 두 곳이 선정됐다. 필자가 지적할 대목은 이 현지실정 방문조사 역시 노동계가 관여할 길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첫째, 사업장 선정 문제다. 8개 사업장 중 7곳은 노동부 추천이고 1곳은 민주노총 추천 업체다. 조사대상 지역과 조사시점은 4월 25일 제1차 전원회의에서나 알게 됐다. 사업체를 방문하려면 적어도 선정대상은 5월 중순 이전에 결정돼야 한다. "추천할 사업체가 있으면 하라"는 것은 정말 "예의상" 한 제안이 아니었을까. 민주노총 쪽은 그만 눈치도 없이 의왕에 있는, 최저임금을 위반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로템 청소용역업체를 최임위에 추천했다. 둘째, 사용자 편향적인 면접대상 선정문제다. 이번 방문업체 여덟 곳 중 그나마 노동자쪽을 면접할 수 있었던 곳은 다섯 곳밖에 안 된다. 그러나 사용자를 면접한 시간에 견주어 절대적으로 짧은 시간을 할애해 현행 최저임금액 인지여부, 적정한 최저임금 수준을 묻는 선에서 그쳐야 했다. 강릉에 있는 한 업체의 경우 노동부 쪽이 노동자 쪽도 조사한다는 사실을 전달하지 않아 조사당일 노동자 쪽 면담을 요청하자 사업주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셋째, 사업체 노동자대표를 만나더라도 정작 최저임금 적용 대상자들은 만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 사업체에서 용역이나 파견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의 경우 방문업체 소속이 아니라는 이유로 면접조차 할 수 없었다. 넷째, 면접내용의 진위성조차 확인하기 곤란하다는 점이다. 앞서 밝혔듯이 민주노총이 추천한 로템 청소용역업체는 최저임금 위반여부가 확실시되는 사업장이었으나 현지실사 결과 위반으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이후 다시 방문해 한 청소용역 노동자를 면접한 결과 사업주가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체의 연장노동시간이 없다더니 주당 49시간 이상 일한다는 대답이 나왔다. 4대 사회보험이 다 적용된다더니 노동계약서에는 '산재발생시 회사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버젓이 적혀 있었다.

이상의 현지실정 방문조사에는 전원위원 27명 가운데 성남·안양은 14명, 원주는 4명, 강릉은 2명이 참여했다. 노동자의 생활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가정방문까지 하는 어떤 나라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사업주 어렵다는 소리나 듣는 현지실정 방문조사는 하루 속히 탈피해야 할 것이다.

최저임금의 적정수준은 논의도 할 수 없어

공익위원들이 비공개로 자체 회의를 열어 노사 모두에 대해 "최저임금의 적정수준"이란 이름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노사가 제출한 최저임금 요구안은 그야말로 무용지물이 된다. 올해 공익위원은 최저임금 교섭이 막바지에 이르던 6월 20일 서울 시내 모처에서 모여 최저임금 가이드라인을 논의했다. 공익위원들은 그 결과를 6월 24일 제5차 전원회의에 알렸다. 회의장은 일순간 긴장감이 감돌았고 한 공익위원은 '논의된 기준은 세 가지'라고 말했다. 첫째, 생산성임금제에 따른 7.4%. 둘째, 최임위 사무국이 분석한 생계비인상률인 11.2%. 셋째, 분배율을 고려한 15.1%로 7∼15% 범위라는 것이다. 또 다른 공익위원은 '경기전망 업무를 하는 친구한테 전화를 해서 국민경제생산성 증가율을 반영한 인상률을 계산해 보니 6.7%더라'고 말했다.

최종태 최임위 위원장은 이어서 '공익적인 입장에서, 중립적인 입장에서 모든 걸 감안해서 심도있게 논의했다'면서 '참고사항뿐이고 어디까지나 암묵적이다'라고 비껴갔다. 그러나 최저임금은 해마다 이처럼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범위 안에서 결정돼 왔다. 지난해에는 7.5∼10.5% 인상범위가 나왔다. 노동계는 이를 조금 벗어난 11.4%를, 재계는 8.3% 인상안을 최종안으로 제시했고 결국 공익위원들은 재계 쪽에 손을 들어줬다. 7∼15% 범위라…. "한국의 최저임금 수준이 너무 낮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는 청와대 태스크포스팀에서도 이 정도 선에서 얘기가 나왔다고 알려진다. 문제는 현행 법정 최저임금이 1백만 원이나 2백만 원이 아니라 고작 51만 원이라는 데 있다. '최저임금의 적정수준에 관해 노동계는 전체 노동자 월평균 임금의 절반을 요구하는데 공익위원들은 이 요구가 맞는지, 맞으면 어느 정도 단계를 거쳐 도달할 수 있는지 견해를 밝혀달라'는 노동계의 요구에 대해 '그건 당신네들의 주장일 뿐이다'라고 일축하더니 겨우 55∼59만원 사이에서 한 달을 살아보라고 결정한 것이다. 이 액수와 "공익(public interest)"은 어떤 관계를 갖는 걸까.

근엄한 현직 교수들이 대다수인 공익위원들과 뒷짐 쥔 채 빠져있는 정부 쪽이 위선자로 보이는 까닭은 이들이 제시한 경제지표들은 이미 다 나와있다는 점이다. 앞서 제기했듯이 그 경제지표가 제대로 작성됐는지 아닌지 노동계로서는 확인할 길도 없다. 다 결정해 놓고 어디 주장이나 한번 해보라는 뜻에서 노사단체에 대해 요구안을 내라고 한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최저임금은 이처럼 경제논리를 기본으로 깔고 있는 공익위원들과 정부가 제시하는 인상범위 안에서 결정돼온 것이다.

'참여는 좋다, 논의는 싫다'

1987년 6월 민주항쟁과 7-9월 노동자대투쟁 이후 이익집단의 참여를 보장한다는 그럴 듯한 이유를 들어 각종 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이 가운데 노사 모두에게서 중요도가 높은 위원회로 꼽힌다. 최종태 위원장은 회의석상에서도 연신 '우리 위원회처럼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고 흐뭇한 웃음을 지었으며 재계 쪽 관계자들도 비슷한 소리를 한다.

그러나 도대체 뭐가 민주적이라는 건가. '최저임금의 적정수준을 밝히는 것은 가치관이 개입되기 때문에 교수 사회에서는 금기다', '토론이고 뭐고 필요 없다'는 사람들과 도대체 무슨 대화를 한단 말인가. 절차와 순서에 따라 회의만 진행하면 민주적으로 운영됐다고 좋아할 일인지 궁금하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범위는 어느 선이라고 정해놓고서 노사단체를 형식적으로 참여시키는 것도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되물음이다.

군사정권의 권위적이고 일방적인 정책결정에 견주어 이익집단을 참여시키는 구조는 분명 "열린" 구조이긴 하다. 그러나 "참여"한다는 사실 이외에 아무 것도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열린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올해 9월부터 내년 8월까지 적용되는 최저임금이 노동계가 총사퇴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고 결정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에 따른 필연적인 결과다.

정경은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정책부장 joungke@nodong.org
2003/09/08 00:00 2003/09/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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