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장훈은 참 아름답다. 그는 음반과 공연 수익 대부분을 보육시설 등에 기부하고 있다. 그래서 ‘기부 천사’로 불린다. 지난 20일 제19회 아산상 사회봉사상을 수상하고 받은 상금 5000만원도 가난한 이웃을 위해 내놓았다. 연말 콘서트에 대비해 모아둔 2억5000만원과 함께.
지난 9년간 기부액은 30억원을 넘는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은 보증금 5000만원짜리 월세 아파트에 산다. 이제 40대에 접어들어 노후 걱정이 들만도 한데 전혀 개의치 않는다. 이런 선행이 처음 알려졌을 때, 우리에게 감동을 준 그의 말이 기억난다. “난 그저 (팬들이)기부할 수 있도록 도운 ‘휴먼뱅킹’일 뿐입니다.”
벤처신화의 주인공 정문술 전 미래산업 회장은 아름다운 경영인이다. 애지중지 소장해온 미술작품(30억원어치)을 모레 특별경매에 부쳐 기부할 예정이라고 하니. 자신이 창업한 미래산업을 2001년 자식들이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넘기고 한국과학기술원에 사재 300억원을 기부했을 때도 찬사가 쏟아졌는데…. 버림은 소유의 끝이 아니라 소유의 절정이라는 신념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어려운 이웃을 열성적으로 도와온 프로골퍼 최경주는 체계적인 자선활동을 위해 며칠 전 ‘최경주재단’을 설립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베푸는 삶을 통해 인생의 동력을 얻고자 한다고. 폐지와 고물 등을 팔아 모은 전 재산 254만4000원을 이웃돕기 성금으로 기부하고 최근 세상을 뜬 88세 노인의 이야기 또한 가슴 뭉클하다.
참으로 아름다운 삶들이다. 자족과 자기희생 없이는 불가능한 삶이다. 어찌 인간적 갈등이 없었을까마는 이들에겐 비움의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겠다. 기독교의 근본 정신 중 하나인 ‘자기 비움’(케노시스)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런데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천문학적 액수를 기부해온 삼성 등 재벌그룹의 모습에선 아름다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발적이라기보다는 사회적 문제에 직면했을 때 마지못해 하거나, 보여주기 위한 기부라는 인상이 짙기 때문이다. 비움이나 나눔의 흔적을 찾아보긴 어렵다.
최근 불거진 삼성의 비자금 조성 및 각계 로비, 경영권 편법 상속 의혹 등도 부(富)와 권력에 대한 끝없는 욕망과 집착에서 잉태된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진실 여부는 (대통령이 특검법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면)특별검사에 의해 밝혀지겠지만 삼성이 애당초 진정한 비움의 정신으로 무장해 있었다면 이처럼 여론이 악화되진 않았을 게다. 정문술 전 회장이 은퇴 당시 미래산업 경영진에게 “착한 기업을 만들어달라”고 당부했던 말은 지금 삼성을 비롯한 재벌들이 곱씹어봐야 할 대목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더 많이 가질수록, 더 많이 원할수록 무엇을 바라는 마음은 점점 커질 것이다.” 사업 실패로 한때 자살을 결심했던 독일 작가 미하엘 코르트는 절망이 고개를 들 때마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의 이 명언에서 인생의 지혜를 발견했다고 한다. “문제를 계속 생각하는 사이, 나는 행복에 이르는 길이 우리를 얽매는 ‘채움’이 아니라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비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고백이다(미하엘 코르트 ‘비움’·이승은 역).
박정태 교육생활부장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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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비움의 정신, 그리고 삼성 (국민일보 11/25) :: 2007/11/26 17:20트랙백 주소 :: http://blog.peoplepower21.org/samsung/trackback/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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